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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7화 (7/175)

제7화

그가 무슨 심정이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

빛 구체를 든 남자를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플래시를 켜고 중간쯤에 끼었다.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플래시로 주변을 밝혔다.

“형, 저 잠시만 반대편에 다녀오면,”

“안 돼. 선우가 없는 지금 우리 공대의 메인 딜러는 너야. 붉은 용의 가죽을 뚫을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고.”

“그렇지만, 반대편엔 아직 가루다가⋯⋯.”

병아리 헌터가 우물쭈물 말을 흐리며 사람들 쪽을 흘끗거렸다.

누가 봐도 우리 쪽으로 오고 싶단 얼굴이었다.

“포기해. 우리는 할 거 다 했어. 이제는 정말 운에 맡기는 수밖에.”

마지막 사람까지 다리를 다 건넌 걸 확인한 식물 헌터가 다리를 거두며 말했다.

병아리 헌터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섭섭해질 거라고 그녀를 나무랐지만, 일반인이 이 거리에서 저 말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각성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더니 정말로 일주일밖에 안 된 티가 났다.

“운이 좋으면 가루다 군단을 마주치지 않을 거고, 운이 나쁘지 않으면 위층에서 내려온 정부 소속 헌터들을 만날 거야. 그러니까 신경 끄고 가자. 예리 언니가 앞에 혼자 있잖아.”

앞으로 가는 그녀의 걸음걸음마다 새로운 꽃이 피었다. 이번에는 가시가 날카롭고 위협적인 검은 장미였다.

“아가씨, 아가씨! 뭐 하고 있어? 그렇게 서 있다간 뒤처질 거야! 빨리 이쪽으로 와!”

헌터들을 지켜보느라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내게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우리 엄마랑 동년배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였다.

“헌터들이 안 따라와서 섭섭하지? 너무 실망하지 마. 그래도 저 헌터들은 우리 많이 봐준 편이니까.”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일행의 뒤를 부지런히 쫓았다.

시체와 혈흔이 낭자한 공간. 거대 말벌의 사체와 죽은 로즈마리 길드 헌터의 시체가 뒤섞여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육 년 전, 그 사이비 교주의 말대로 게이트가 열리면서 만들어 낸 현실.

열리지 않았더라면 그저 영화 속 장면이었을 뿐일 상황.

“나는 예전에도 웨이브에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땐 그 어느 헌터도 일반인을 도와주지 않았어. 정부 헌터가 때맞춰 오지 않았으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아주머니는 거대 말벌의 사체를 피해 둥글게 돌아가며 빙그레 웃었다.

죽음을 말하는 얼굴답지 않게 그녀는 웃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가씨가 아까 헌터한테 말한 것처럼, 죽을 거였다면 진작 죽었겠지.”

몬스터의 체액과 죽은 헌터의 피가 신발 밑창에 진득하니 달라붙었다.

불결한 것들로 축축하게 젖은 바지 밑단이 걸리적거렸다.

작은 빛 구체와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해 나아가는 길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의 산이었다.

으아앙-!

또다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수족냉증 때문에 차가운 손을 데우던 온기는 아이가 우는 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내 손을 꼭 잡고 걷던 아주머니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아이 엄마 곁에 가 있었다.

콰과과광-!

지하철역 저 끝에서부터 폭음이 들린다.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고, 불쾌한 냄새와 알 수 없는 꽃향기가 섞여 났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수십 개의 빛과 유성처럼 쏟아지는 푸른 궤적.

붉은 용 군단을 상대하는 새벽 제3공대의 모습.

“저기요, 아줌마. 애 입 좀 막을 수 없어요? 소리 듣고 몬스터가 몰려오면 어떡해요! 이러다 다 죽겠어요!”

빛 구체를 들고 가던 남자가 짜증 난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 엄마는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혀 사과했고, 아주머니도 아이를 달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나는 한 편의 희극 같은 그 장면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플래시가 여러 개여도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다.

걸음을 서두르던 무리는 켜진 불화로 인해 잠시 이동을 멈추게 되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사람들에게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버리자고 말했고, 사람들은 동요했다.

자기 목숨이 다른 이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당연한 거지.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봐 왔다. 위기 앞에서 냉정하게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사람들.

따지고 보자면 저 헌터들도 위험 요소인 우리를 제거한 거지. 이젠 감흥도 없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이는 빨리 달래 볼게요. 그러니까 버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숨이 멎도록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아이 엄마의 얼굴이 울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말의 동정심조차 갖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아이 때문에 모두가 죽게 되겠지.

솔직히 버리고 가는 게 당연한 거였다. 내가 힘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나도 분명 그랬겠지.

“엄마⋯⋯.”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그녀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우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나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사람과 그들을 모나게 흘기는 사람, 그리고 이 무리의 리더인 남자를 보았다.

그들은 이들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크르르릉-!!

지하를 울리는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그들을 두고 떠나기로 결정한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플래시를 비춰 근처를 둘러보았다.

헌터들은 모조리 게이트에서 나온 붉은 용 군단에 맞서 싸우고 있고, 이전 웨이브에서 나와 이쪽 라인에 잔류 중인 가루다 군단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예측했던 것처럼 모두가 죽겠지.

“뭐 해, 아가씨! 빨리 저 사람들 따라가. 여기 있다간 큰일 나!”

“선생님도 안 가셨잖아요. 여기엔 아이들도 있고요.”

“어휴, 선생님은 무슨. 아줌마라고 불러. 그리고 우린 괜찮아. 잠깐 숨어 있으면 돼. 사실 우리 언니가 A+급 헌터인데, 내가 진작 불렀어. 곧 올 거야. 그러니까 아가씨는 우리 걱정 말고 빨리 따라가. 위험하잖아.”

나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너스레를 떨며 웃고 있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맞아요. 따라가세요. 아주머니도 같이 따라가시고요.”

“애기가 이렇게 우는데. 어떻게 따라가. 자아, 착하지?”

그녀는 다시 우는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고, 아이 엄마는 큰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위로 고개를 들었다.

거대 말벌의 날갯짓 소리가 앞서 나간 사람들 쪽에서 들렸다. 그리고 비명도.

곧 바람을 타고 인간의 혈향이 퍼졌다. 말벌의 애벌레는 육식을 한다.

아마 앞서 나간 사람들은 애벌레의 한 끼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명으로 얼룩진 몇 분이었다. 나는 몇 분 새에 뻣뻣하게 굳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앞서간 사람들이 다 죽었나 봐요.”

이런 식으로 팩트 체크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 이것 말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후방에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니까.

어쨌든 앞서간 사람들은 다 죽었고,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였다.

“저희는 이제 어떡하죠?”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모두 끌어안은 아이 엄마가 울상을 지은 채로 말했다.

애써 괜찮은 척 웃던 아주머니는 초조하게 입술을 씹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A+급이라던 언니를 부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말벌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나는 배터리가 고작 17% 남은 휴대폰을 위로 들어 올렸다.

밝게 켜진 휴대폰 플래시가 거대 말벌의 외골격을 비췄다.

인간의 피로 얼룩진 몬스터 몇 개체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들고 여기 얌전히 계세요.”

나설 생각은 없었는데, 하는 수 없지.

나는 손가락 마디를 뚜둑 꺾으며 내 휴대폰을 아주머니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 쪽으로 달렸다.

“아가씨! 아가씨!! 어쩌려고 그래!! 빨리 돌아와!!!”

말벌의 형태를 띠고 있는 가루다 군단의 특징은 단단한 외골격이다.

그들의 외골격은 몹시 단단하고 뚫기 힘들지만, 반대로 안은 연약하고 말랑말랑하기 짝이 없다.

검고 윤기 나는 몸과 검은 날개, 징그럽게 뻗은 아래턱과 털이 난 커다란 앞발.

나는 말벌의 앞발을 타고 뛰어올라 거대한 눈을 향해 킥을 날렸다.

터지는 체액, 끔찍하게 꿈틀거리는 몸통, 비벼지는 날개, 거칠게 움직이는 앞발.

손끝을 타고 흐른 전류가 말벌의 외피를 바싹 구웠다.

공기를 가르고 치는 번개와 뒤따라 이어오는 천둥, 그리고 터지는 섬광.

몰려온 말벌 몇 마리는 얼마 안 가 모조리 타 버리고, 땅에는 한 더미의 재가 남았다.

나는 얄팍한 옷가지를 끈적하게 적신 몬스터의 체액에 진저리치며 고개를 돌렸다.

바보 같은 얼굴을 한 그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지금 각성했어?”

그리고 질문은 더 바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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