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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6화 (6/175)

제6화

엄마가 일 터지면 헌터 옆에 붙어 있으라고 말해서 지금 헌터 옆에 꼭 붙어 있는 세기의 효녀, 우연희는 생각했다.

“핑거킹 신호가 잡혔다가 사라졌다고? 그게 말이 돼?”

“그렇지만 진짜 사라졌는데요. 저번처럼 단말기를 끈 건 아닐까요?”

“일리 있는 말이네. 하긴 어제도 스틸 당하고 나서 깨달았지.”

저 둘한테 내 목숨을 맡겨도 좋을까.

저렇게 멍청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다가 이 라인 펑 터지는 거 아니겠지.

“혹시 모르니까 앞으로 간 예리 누나랑 민주한테 연락해 볼까요? 핑거킹 님이 그쪽에 계실 수도 있잖아요.”

“신호가 어디서 잡힌 거야? 6호선 쪽은 아니었지?”

“네. 2호선에서 잡혔어요.”

2호선 홍대 입구 방면 라인 담당 초코우유와 병아리 헌터가 ~손가락테크닉과 1위의 행방불명~ 수사에 착수했다.

아주 바보 같은 게 안방극장 1위 달성도 가능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반대편 라인의 로즈마리 쪽에서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일단 민주랑 예리한테 연락해 봐. 붉은 용이 게이트를 완전히 빠져나오면 더는 둘이서 버틸 수 없을 테니까.”

전방을 맡은 나머지 공대원들을 불러들이겠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그래, 여기에 일반 시민들만 없었더라면 올바른 판단이었다.

붉은 용을 A급도 안 되는 헌터 둘이서 막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하지만 저 둘은 여기서 시민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저 앞의 둘을 불러오면 헌터가 아닌 일반인도 붉은 용을 마주하게 되는 건데, 그러면 무조건 사상자가 나올 거다.

쟤들이 그때 썼던 비탈킷 같은 거라도 뿌리면 모를까⋯⋯.

그렇지만 5분간 공간 틈새에 머무를 수 있는 비상 탈출 키트는 몹시 비싼 아이템. 소모품인 주제에 아주 비싸지.

가격은 대충 지금 우리 집 스무 채 정도? 그래도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싸긴 싼데.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은 시민은 대략 열다섯 명.

지금까지야 무난하게 버텼다만, 붉은 용이 나온 이상 이 많은 인원을 다 보호할 방법은 없다.

종합 B+ 웨이브라니까. 원래 같았으면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힘들걸.

지금 몰려나왔던 탐욕왕 제6군단이야 뭐. 초반인 데다 저 헌터들이랑 상성이 맞아서 무사 클리어한 거지.

그 말벌 놈들은 외피만 단단하고 안은 말랑말랑한 게 특징이라 관통형 공격수 하나만 있으면 별것도 아니다.

6군단 군단장인 킹 가루다가 나오면 모를까.

하지만 여기 보스 랭크는 B++.

한 군단의 군단장은 무조건 A+랭크 이상으로 분류한다.

경험이 많은 나조차 군단장을 본 건 몇 번뿐이었다.

쿠구구구구-!

두 헌터의 진지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려는지, 거대한 지진이 지하철역 내부를 관통한다.

거센 광풍과 함께 몰아치는 자잘한 돌조각, 도미노 쓰러지듯 무너져 내린 광고판과 스크린 도어.

부실한 천장에서 비 오듯 돌 부스러기가 쏟아졌다. 이거 이러다가 무너지겠는데?

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뜯으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 또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비틀 난리도 아니었다.

아, 그러게 아까 보내 줬으면 좋았잖아. 고랭크 헌터 찾으면서 시간 끌다가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물론 내가 나설 수도 있었지만, 손가락테크닉이라는 것을 밝힐 수는 없으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물론 고랭크 헌터나 찾는 거 보고 꼬운 것도 있지.

그래서 어디까지 가나 한번 지켜보자 했는데….

결국 이 자리에 곧게 서 있는 건 나와 나머지 두 헌터뿐이었다.

“젠장. 서빈아, 너 저거 무너지는 순간에 다 쏴서 쪼갤 수 있겠어?”

“형, 제가 무슨 기관총이에요? 속사포 연사를 하게? 저 각성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요!”

“잔말 말고 쏴 봐!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빛에서 나오는 열로 돌을 녹이는 것보단 활로 쏴서 쪼개는 게 빠르겠지!”

아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빛으로 녹이든 활로 쏘든 천장 무너지면 죄다 작살난다고. 그리고 빛으로 녹이는 건 한세월 걸리겠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대로 천장 무너지면 나 헌터인 거 다 들통나는데.

나는 초조하게 손톱까지 물어뜯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길 가다 교통사고가 나도 사람이 다치는 게 아니라 차가 부서지는 게 바로 신체 강화형 헌터들이다.

왜, 술 먹고 음주 운전해서 교통사고를 냈는데 하필 친 게 신체 강화형 헌터라서 운전자가 죽은 만화 같은 사고도 있잖아. 저번 달 뉴스로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천장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작살 나는 건 내가 아니라 천장이고, 나는 이 자리에서 올해의 핫 스타가 될 수 있다.

‘던전을 스틸 당해서 어쩔 수 없이 B+급 웨이브에 참여한 새내기 헌터나, 알고 보니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일반인이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S급 헌터 손가락 테크니션 핑거킹?!’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라고.

와, 정말 끔찍하다.

특히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S급 헌터 손가락 테크니션 핑거킹이 제일 불쌍해.

나는 내가 이대로 그들에게 들켜 내 정체가 동네방네 소문나게 될 미래를 그렸다.

일단 엄마한테 등짝 스매시를 맞겠지. 너는 나한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런 중대한 일을 말 안 한 거냐고.

또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오겠지? 나와 엄마의 작고 소중한 24평 스윗 홈은 곧장 개판이 될 거야.

그것뿐인가? 세계에도 큰 반향이 일겠지.

지금도 대다수의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오~ 그 손가락테크닉 있는 나라~? 하고 인지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큰 주목을 받겠어.

그럼 이제 내 평화로운 시절은 다 간 거야. 안 돼, 안 돼!

상상 속에 지옥이 도래했다. 나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내게 또다시 행운이 찾아오길 빌었다.

언제나 눈 감고 건전한 정신으로 기도하면 행운이 오더라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늘 그랬다. 꼭 누가 날 돕기 위해 움직인 것처럼.

쿠궁-!

지하를 울리는 진동이 멎질 않았다. 붉은 용 군단의 거대한 앞발이 지척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천장은 곧장 무너질 것 같았고, 널린 말벌 사체와 끈적하고 찝찝한 냄새, 그리고 어둑한 지하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바람이 분 것은 그때였다.

“내가 그러길래 저 둘 묶지 말자고 했잖아.”

“그래도 조금 전엔 괜찮았어, 언니.”

붉은 용 군단의 포효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 천장을 바람의 벽이 막았다.

거세게 부는 돌풍이 막힌 길을 뚫었고, 무너지는 돌덩이들을 모아 한구석에 던졌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동공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새카만 홍채가 특징인 미인, 부산우유가 바람과 함께 등장했다.

불어온 바람의 뒤를 따라 소박한 풀이 자랐다.

교복을 입은 소녀의 걸음걸음마다 피어나는 풀은 반대편 라인을 맡은 길드의 이름과 같은 허브, 로즈마리였다.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나도 방에서 열심히 키우고 있다. 물론 가져다 놓은 건 백수 왕 우연희가 아닌 우리 마님 되시겠다.

“내가 확인했는데 반대편 라인의 로즈마리 헌터는 모두 죽었어. 그러니까 이쪽의 붉은 용은 우리끼리 막아야 할 거야.”

분홍색 풍선껌을 터뜨린 소녀가 입가에 붙은 껌 조각을 떼어 내며 말했다.

바닥 곳곳에 생긴 허브가 그녀의 손짓에 따라 거대하게 자라났다.

자연계 식물 속성 헌터인가?

빛 속성보다 더 희귀한 속성인데, 신기하네.

“붉은 용이 게이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면 주변은 쑥대밭이 될 거야. 아까 6호선의 일연에게 연락해 봤는데, 그쪽도 피해가 크다나 봐. 못 빠져나간 일반인이 다 죽었다고 했나.”

바람을 일으켜 말벌 사체를 한구석에 죄다 몰아넣은 부산우유가 말했다.

“저 많은 사람을 다 지키면서 붉은 용과 싸울 수는 없어. 빨리 위로 보내든가, 아니면 버리든가 해야 해.”

“버린다고요? 아이랑 노약자도 있는데요?”

“무작정 버린다고는 안 했어. 아까 민주가 건너편을 살펴봤는데, 무너지지 않은 출구가 있다 하더라고.”

부산우유가 당황하는 병아리 헌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베테랑 B+급 헌터답게 아주 냉정하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하긴 길드는 이익을 추구하는 헌터들의 집단이다. 그들은 부와 명예를 위해 싸웠지, 공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물론 매체 앞에서는 온갖 정의로운 척을 다 하지. 새벽 길드의 길드원이면 모를까, 길드장은 정의로운 사람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길드원이 무조건 길드장을 따라가야 하는 법은 없다.

길드에 가입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공익을 추구했으면 정부에 속했을 거다.

어쨌든 그들이 게이트에 휘말린 우리를 무조건 구해서 살려 보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건 6호선의 상황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못 빠져나간 일반인이 다 죽었다잖아. 길드 소속 헌터라고 대놓고 광고하고 다닌 것 같네.

“그래도⋯⋯.”

활을 꽉 쥔 병아리 헌터가 미간을 좁힌다.

그와 동시에 민주라고 불린 자연계 식물 속성 생장 특성 헌터가 건너편과 이곳을 잇는 다리를 만들었다.

아까 천장을 받친 식물 줄기가 단단하게 자라 튼튼한 다리가 되었다.

그르르르⋯⋯.

붉은 용의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지하 내부를 울렸다.

저 멀리서 들렸던 울음소리가 훌쩍 앞에서 들리는 걸 보니 게이트에서 거의 다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잘 들어 주세요, 여러분.”

짝짝짝. 박수 세 번을 연달아 친 부산우유가 말을 시작했다.

“저희는 다음 웨이브에서 나올 몬스터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지켜 드릴 수 없어요. 또한, 여러분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드릴 수도 없고요.”

부산우유가 잠깐 말을 끊고 초코우유에게 눈짓했다.

초코우유는 남은 사람 중 가장 건장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빛 구체를 건넸다.

“그러니 반대편에 있는 출구까지는 여러분이 알아서 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리를 이어 놓았으니 이 다리를 통해 반대편에 건너가 무너지지 않은 출구를 찾으세요. 그게 여러분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모두가 얼음땡 놀이를 하는 것처럼 쩡 얼어붙었다.

나는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초코우유의 빛은 충분히 밝았지만 플래시까지 켜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헌터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말벌보다 더 크고 무서운 몬스터를 물리치러 가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지켜 줄 수 없고, 지켜 줄 의무도 없다.

하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헌터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걸 안다.

6호선의 사람들처럼 버려지지 않은 게 어디인가. 이들은 적어도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출구가 있다는 걸 알려 줬고, 반대편으로 가는 다리 또한 만들어 줬다. 이 정도면 해 줄 거 다 해 줬다.

그게 여기 남은 다른 이들이 가진 생각.

두려움에 벌벌 떨던 사람들이 부산우유가 붉은 용을 향해 뛰쳐나가자마자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기 가만히 있다 죽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지. 저 헌터들은 그래도 우릴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근데 저기 건너편에 아직 안 죽은 말벌이 있어서 내가 보기엔 그대로 가면 전멸인데.

침묵이 무겁다. 시커먼 저편의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두려울지 나는 안다. 발을 내딛는 것조차 두려운 상황을 안다.

저 헌터들도 그랬겠지.

목숨 아까운 건 헌터나 일반인이나 하나같다.

하지만 단순히 두려움이라는 이유로 저들의 행동을 포장하기엔 이미 많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아 왔다.

쟤들도 이미 두려움을 핑계로 랭커나 찾았잖아.

그러니까 저들이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웠다면 지금 남은 사람들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전에, 대피를 위해 나왔던 공무원 헌터 일부가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남아 있는 공무원 헌터들이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면.

지금이라도 새벽 길드원들이 우리가 빠져나가는 동안 저들끼리 막아 보겠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목숨을 걸지 않고 무사히 대피할 수 있게 될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단말기만을 보는 공무원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오, 아무래도 기대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생각 정리는 단순하게 끝났다.

여기서 우리에게 미련을 가진 각성자는 아까 내 말에 감명받은 병아리 헌터뿐이다.

몬스터와의 첫 조우를 B+급 웨이브에서 하게 된 병아리 헌터가 다리 앞에 선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넘치는 정의감으로 범벅된 그 얼굴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쟤 조만간 죽겠다.

던전 1,893회, 웨이브 780회 클리어라는 빅-데이터에 근거한 추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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