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4화 (4/175)

제4화

대헌터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의 마음가짐이란 자고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이트가 열리면 나대지 말고 헌터 옆에 찰싹 붙어 있자!’

우리 엄마가 귀에 딱지가 얹히게 읊어 댄 이 말은 대헌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연희의 신조였다.

정확히는 나대다 핑거킹인 거 들키지 말고 일반인인 척 헌터 옆에 찰싹 붙어 있자!

치지직-!

픽.

깜빡깜빡 점멸하던 조명이 이윽고 꺼진다.

나는 회상에서 벗어나 어두컴컴한 지하철 안의 혼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악-! 발 밟지 마세요!!”

“헌터들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게이트 터진 지 벌써 50분이라고!”

“거기 이탈하지 마세요!”

얼마 전에 공사가 끝난 역, 합정에 게이트가 빰! 하고 터졌다.

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얼마 전엔 당산역에 열리더니 이번에는 합정이네.

나는 두 사이비와 불타는 사랑의 술래잡기를 한 기억을 떠올리며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지하철을 타지 말아야겠다. 무슨 지하철만 타면 이상한 일이 생겨. 역시 만악의 근원은 대중교통이야.

외제 차 살 돈이 생기면 당장 외제 차 하나 뽑겠다는 과거의 꿈은 진작에 물거품이 되었다.

아니, 왜 돈이 있는데 쓰질 못하니? 나도 게이트에서 안전한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 외제 차 몰고 다니고 싶음.

하지만 현실은 보증금 내고 일회용 카드 뽑아 쓰는 지하철이었다.

한창 전쟁하던 시절에 지하철이 그렇게 숨기 좋았는데⋯⋯.

라떼는 말이야~ 가 절로 나오는 기적의 환경. 게이트 터져서 부서진 지하철!

그때 하도 숨어서 역사가 죄다 부서졌지. 지금도 공사 안 하는 역 찾기가 힘들 정도다.

“이쪽이에요! 다들 이쪽으로 대피하세요!”

돌발 게이트 소식에 뛰쳐나온 정부 소속 헌터들이 시민들을 한데 모아 놓곤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정부 소속 헌터들은 보통 랭크가 낮아 공무원의 삶을 택한 각성자들.

그들에게 이런 돌발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물리칠 재량은 없다. 기껏해야 교통정리나 하지.

삐빅-! 삐비비빅-!!

선량한 시민의 탈을 쓰고 헌터들의 말을 따르는 것도 잠시, 나는 고막을 파헤치는 소리에 미간을 팍 찌푸렸다.

헌터들이 가진 단말기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삑삑 소리가 났다.

덤으로 내 단말기에서도.

이 망할 고물 단말기. 또 멋대로 켜졌네. 조만간 갈아치우든가 해야지.

나는 투덜거리며 단말기 전원을 끄고 후드 집업 주머니 안으로 굴려 넣었다.

그리고는 위기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냈다.

솔직히 다들 안전 불감증이라 이런 거 봐도 신기하기만 하잖아. 봐, 나 말고도 다 휴대폰 두들기고 있구먼.

20xx-04-21 17:45 조회:341,890 추천:3,674

[BEST] 오늘 자 던전 스틸범 핑거킹좌

작성자: 제라늄(새벽)

(우주체강_핑거킹_1.jpg)

(불꽃_비임_핑거킹_.jpg)

(우주체강_핑거킹_2.jpg)

(핑거킹과_불타는_악어고기들.jpg)

(이삭_줍는_핑거킹_.jpg)

오늘 신입 데리고 던전 갔는데 존엄하신 핑거킹께서 스틸하고 가심;;

이삭 줍는 핑거킹짤에서 보이듯이 이번 던전 드랍에 바실로의 가죽 있었는데ㅠㅠㅠㅠ 망함ㅠㅠ

암튼 조만간 바실로 가죽 마켓에 매물 올라올 듯.

악어가죽 장비 맞추려고 존버하던 분들 존버 해제 각임다 ㄱㄱ

솔직히 스틸 당한 건 우주체강 핑거킹 님이라 별생각 없는디 울 신입 공략던 찾으려고 다시 뺑이 칠 거 생각하니까 넘 슬프네용ㅠㅠ

저희 뼝아리 던전 언제 가나용? 갈 수는 있나용?

마지막으로 갓-핑거프린스 님 이 게시물 보시면 저희 길드장님 좀 만나 주십쇼.

길장님이 길원 맨날 갈궈용ㅠㅠ

오늘도 핑거킹이랑 던전이랑 같이 물어 오라고 길드원 겁나 조짐ㅠㅠㅠㅠ

아무래도 조만간 튀어야겠음 ㅇㅇ

다음 게시글에선 (새벽) 말고 (@@) 붙이고 뵙겠습니다.

그럼 다들 새-바!

댓글(1068)

ㅇㅇ: 핑!

ㄴ 무지개(레전드): 거!

ㄴ 초코우유(새벽): 킹!

ㄴ ㅇㅇ: ㄴㄴㄴ 핑거프린스

ㄴ 아이디(보증): 아님 핑거프린세스임;

ㄴ ㅇㅇ: 다 틀렸음 ㅡㅡ 존귀하신 핑거퀸 님임

ㅇㅇ: 와; 핑거프린스 님 새벽 길드 게이트 스틸하심? 대다나다

ㄴ 사랑하는(낙원): 울 핑거퀸 님은 저희 길드 게이트도 진작에 스틸하셨다고요ㅋㅋㅋ 새벽 길드 따윈 조빱임

ㄴ 리키(새벽): 얼마나 허접이면 진작에 스틸당함ㅋㅋㅋ 늄 님 새바하시면 길드장님이 가만 안 둘 거임 그냥 얌전히 계세여

ㄴ 제라늄(새벽): ㅠㅠㅠㅠㅠ

ㅇㅇ: 근데 손테 님 근황 되게 오랜만에 올라온 거 아님? 먼일 있으셧나

ㄴ 초코우유(새벽): 저희 길장님이 귀찮게 해서 그래요 ㅎㅎ 세계 최고 공대 왕이 되시겠단 꿈을 27살 처먹고도 버리질 않으셨음ㅠ

ㄴ ㅇㅇ: 와ㅋㅋㅋ 그래 봤자 손테 님 길드 안 들어가실 텐데 집착 오지넹;

ㄴㅇㅇ: 여윽시 돌아이계의 쌍두마차 새친놈;;

ㅇㅇ: 핑거킹 님 이 댓글 보시면 저희 길드 꼭 와 주세요.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갓-길드 낙원에서 핑거킹 님을 급히 모십니다.

ㄴ 제라늄(새벽): 안됨 핑거프린스 님 우리 거임ㅡㅡ

ㄴ 론도(새벽): 아 사이비 놈들 또 난리네; 스틸 자제 좀;

ㄴ 리키(새벽): 손테킹 님 낙원 놈들 말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털린 건 저희라고요ㅠㅠ

ㄴ ㅇㅇ: ?ㅅ?

ㄴ 네가정말좋아(낙원): 우리두 털렸는뎅,,,

ㅇㅇ: 던전 정보 공유합니다. >링크클릭<

ㄴ ㅇㅇ: 사기임 들가지 마셈

주한솔(로즈샤워): 근데 손테 님 스틸하시면 주위 상황 같은 거 안 보시고 조지시잖음. 새벽 님들 사망자는 없음?

ㄴ 제라늄(새벽): 저희는 던전 공략 시 비상 탈출 키트 필수라서 그거 썼음다. 근데 없었으면 죽었을 거임.

ㄴ 루루룽(새벽): 맞아요저희진짜죽을뻔했음

⋯⋯

아, 저번에 게이트 스틸했던 그 일인가? 몇 주 전 게시물인데 최근까지 댓글이 달렸네.

하긴 1위 목격 떴다 하면 어디든 난장판이 되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20xx-04-21 17:45 조회:342,438 추천:3,693

[BEST] 오늘 자 던전 스틸범 핑거킹

작성자: 제라늄(새벽)

댓글(1079)

손가락테크닉(무소속): 님들 그거 E급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종합 C+급이었잖음. 비탈킷도 목숨 하나밖에 안 되는데 조난 안 당하게 해 준 거 감사히 여기셈.

나는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소리치는 헌터들의 지시에 따르며 댓글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썼다.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이러는 거 아니다. 아니라고.

헌터 협회의 게시판은 각종 사건 사고를 몰고 오는 헌터들 때문에 항상 떠들썩하다.

고정 닉을 달고 길드 홍보 겸 활발하게 활동하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익명이라는 점을 악용하여 분탕을 치기 위해 찾아온 어그로 종자들도 잔뜩이었다.

위의 손가락테크닉 글은 그중에서도 가장 불타는 것 중 하나였는데, 그것 때문에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손가락테크닉을 일부러 적어 넣기도 했다.

“거기 분홍색 캡 모자 쓰신 분!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요! 그리로 가시면 몬스터 웨이브에 휘말리실 수도 있어요!”

정부 마크 완장을 찬 헌터가 버럭 소리치며 주의를 줬다. 나는 휴대폰을 슬그머니 내리며 얌전히 그 말에 따랐다.

합정역에 열린 B급 게이트는 흔히 보는 외부 차원형이 아닌 내부 차원형 게이트로 판명 났다.

차원이 이어질 때 생기는 분진이 지하철 역사 안을 가득 채운 걸 보니 조만간 웨이브가 시작될 것 같았다.

“「현재 시민 대피 진행 중입니다! 본 게이트 섬멸에 참여하는 ‘새벽’, ‘일연’, ‘이면’, ‘로즈마리’, ‘노네임’ 길드의 헌터분들께서는 잠시 자리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반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중에도 틈틈이 헌터들을 위한 안내가 나왔다.

[합정역 중급 게이트 확산 중.

웨이브 형 게이트.

추정 게이트 랭크 C. 추천 특성: 번개.]

아까 단말기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게이트는 C급.

그리고 저 방송에 따르면, 이번 게이트 처리에 동원되는 길드 다섯 중 둘이 5대 길드.

그중 새벽은 소수 정예를 모토로 내세운 길드라 소속 인원의 랭크가 다들 높다.

일연 또한 오대 길드에 속하니 다들 한가락 하는 건 당연하고.

내부 차원형 게이트인 걸 고려해 봐도 정말 엄청난 인선이다.

이거 추정 랭크가 맞다면 다른 길드 없이 두 길드만으로 깨겠는데?

20xx-04-21 17:45 조회:345,598 추천:3,910

[BEST] 오늘 자 던전 스틸범 핑거킹좌

작성자: 제라늄(새벽)

댓글(1578)

손가락테크닉(무소속): 님들 그거 E급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종합 C+급이었잖음. 비탈킷도 목숨 하나밖에 안 되는데 조난 안 당하게 해 준 거 감사히 여기셈.

ㄴ ㅇㅇ: ???? 형이 왜 여기서 나와...?

ㄴ ㅇㅇ: 와 지금 핑거킹 직접 등판한 거임? ㅁㅊㄷㅁㅊㅇ

ㄴ 크림(여름비): 대박ㅋㅋㅋㅋ 핑거킹이 이걸?

ㄴ ㅇㅇ: 근데 저거 사칭 아님? 어그로가 하루에 몇인데. 게다가 울 핑거킹 님이 저런 말투를 구사하실 리가 없잖음ㅋㅋㅋㅋㅋㅋ

ㄴ ㅇㅇ: ㅇㅈ 저번 게시글에 달린 댓은 좀 더 잼민이 같았음

ㄴ 론도(새벽): 아ㅋㅋ 잼민이 못 참지ㅋㅋㅋ 잼민이하면 또 우리 길드장이지ㅋㄱㅋㄱㅋㅋㅋㄲㅋ

ㄴ ㅇㅇ: 님 그러다 뒈짐;;

제라늄(새벽):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메신저 좀 받아 주세요 핑거킹 님 제발요 아니몀ㄴ저ㅈㄷㅜㄱㄱ어요

ㄴ 부산우유(새벽): 핑거프린스 님의 E급 던전 스틸로 오늘 C급 웨이브에 와 있지만,,, 괜찮,,,읍니다,,, 존경합,,,니,,,다,,,,^^7

ㄴ 세로(노네임): 새벽 애들 오늘 합정역 온 이유가 그거였어? 어쩐지 안 올 애들이 온다 했음ㅋㅋㅋ 근데 새벽은 스틸 당해서 그렇다 쳐도 일연은 왜 온 거임?

ㄴ 하야뉭(로즈마리): 새벽 오니까 왔겠지. 그 길드 대빵 요새 1위 하겠다고 벼르잖음.

ㄴ 네가정말좋아(낙원):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ㅋ

ㄴ 리키(새벽): 너정ㅈ 또 인성질하네 ㅎ.ㅎ

⋯⋯

안 본 지 몇 분 됐다고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이거 저번 달 게시물인데 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음? 죄다 월급 도둑인가 보다.

중간에 잼민이 같다고 하는 놈은 또 뭐야. 하여간 화제의 인물 핑거킹. 어딜 가나 사칭이 뒤따르지.

핑거킹 어그로가 난무하듯이 난무하는 핑거킹 닉네임 조작. 덕분에 헌터들은 찐 핑거킹이 나타나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뭐, 정체 안 드러나면 나야 좋지.

나는 휘파람을 불며 댓글을 읽었다.

“「역 안에 있는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열린 게이트에서 이상 조짐이 발견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신속히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귀청 떨어지게 큰 안내 방송이 역 안에 울린다.

그때였다.

허공에 흩날리는 검은 분진. 안개처럼 흐린 세상과 조각나는 공기.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새까맣게 몰려오는 몬스터의 형상.

[중급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아니, 이 망할 고철 덩어리. 결국 또 켜지네.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한숨을 쉬고 싶지 않은데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깊게 진동하는 역 안.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인간이 아닌 것들이 붉은 눈을 떠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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