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죄송한데 제가 일반인이라서요-2화 (2/175)

제2화

철컹-!

간발의 차로 빠져나온 지하철 입구를 경찰들이 막아서기 시작한다.

겨우 빠져나온 사람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 혼잡한 입구.

나는 질서를 지켜 돌아가 달라고 외치는 경찰의 외침에 따라 사람들 틈에 섞였다.

“와, 이번 돌발 게이트에 S급 온다는데?”

“S급? S급이 여길 왜 와?”

“몰라. 근처에 있나 보지. 11위가 온다나 봐.”

“뭐?! 11위? 일소검이 여기 온다고?!”

옆에 선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입구에 모인 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이 재난 현장이 순식간에 아이돌 팬 미팅 대기 장소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헌터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우리가 헌터를 지칭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

우선 첫 번째로 랭킹.

랭킹은 보통 던전 공략도와 그 헌터의 강함, 그리고 그 헌터가 세간에 미친 영향을 종합해 매긴다.

보통은 세 개가 고르게 분포해 점수가 매겨지지만, 간혹 하나가 몹시 뛰어나 높은 랭킹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보통 특수 계열 헌터들이 그렇다.

랭킹은 저명한 국제 헌터 협회에서 집계하고, 100위까지만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헌터는 랭킹 안에 드는 걸 목표로 전투에 임한다.

왜냐하면 100위 밑의 헌터들은 공식 이명도 없고, 혜택도 적으니까. 좀 아쉬운 일이지.

한 헌터가 랭킹에 들면, 국제 헌터 협회에서는 막 랭커가 된 그 헌터에게 붙여 줄 공식적인 이명을 고른다.

이명은 뭐랄까, 100위 안에 들어 봤다는 전리품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만약 누군가 랭킹에 들지 못했는데 이명은 있다면 그건 랭킹에서 추락한 헌터라는 소리다.

그래서 헌터들은 이명이 붙었는데 랭킹 안에 없는 걸 가장 굴욕적인 일로 쳤다.

난 저게 왜 굴욕적인 일인지 잘 모르겠어. 이명 붙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이명은 인터넷에서 그 헌터를 지칭하는 별명으로 붙기도 하고, 그 헌터의 전투 특성을 참고해 붙기도 한다.

그림 리퍼처럼 대낫을 휘두르는 어떤 헌터는 이명이 사신으로 붙었고, 총기류를 주로 쓰는 어떤 헌터는 이명이 저격수로 붙었다.

아무튼 이명은 그 헌터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보통 닉네임이 부끄럽고 이상한 헌터를 지칭하기 위해 쓴다.

그래, 그⋯⋯ 손가락테크닉 같은 사람⋯⋯.

“이야, 내가 살다 살다 일소검을 다 보네. 이러다 핑거킹까지 보는 거 아냐?”

“꿈 깨라. 핑거킹 신비주의라서 안 나오잖아. 저번에 디스텐스에서 핑거킹 파 보려다가 새벽한테 고소당한 거 못 봤음?”

“아, 하긴. 그럼 우연히 본다고 해도 못 알아보겠네. 설마 지금도 옆에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남몰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혼자 뜨끔했다.

저 사람은 뭔데 감이 저렇게 좋냐. 명동에 돗자리 까셔도 될 듯.

핑거킹, 손테, 손가락테크닉.

한 명이 랭킹 1위의 닉네임을 꺼내자 주변이 단체로 들썩거렸다.

하긴 이 나라 사람들이 허구한 날 해 대는 게 핑거킹 정체 맞추기다.

뭐 핑거킹이 모 미국 만화 박쥐맨처럼 재벌이라 숨기는 거 아니냐고 흔히 말하곤 하지만, 그럴 리가.

진짜 핑거킹은 지금 랭킹 11위 일소검 기다리면서 남의 말이나 훔쳐 듣고 계십니다.

“그래도 핑거킹 게이트 자주 다닌다던데.”

“그거 새벽이 다 막고 있잖아. 헌터 협회 공홈에나 정보 좀 있다는데, 그건 일반인이 못 보고.”

“우리야 뭐 유튜브나 보는 수밖에 없지. 핑거킹은 왜 닉네임도 핑거킹으로 지었대. 괜히 사람 궁금하게.”

그러게. 그거 나도 진짜 궁금함.

어느 누가 전 세계에 보일 닉네임을 핑거킹으로 짓냐? 그치?

누가 닉네임을 손가락테크닉으로 지음?

[하급 게이트 출현 경고 -헌터 협회 본부-

손가락테크닉 귀하]

⋯⋯그러니까 나도 궁금하다. 과거의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특정 헌터를 지칭하는 방법 세 번째, 그건 바로 헌터 닉네임.

헌터들은 각성을 하고 나면 헌터 협회에 각성했음을 알리고 단말기를 받는다.

단말기는 각 국가의 정부와 연결되어 있어 비상 알림이나 출동 알림, 그리고 강제 소집 등을 받을 수 있고, 헌터 마켓 또한 이걸로 들어갈 수 있다.

마켓에서는 각종 장비와 재료템, 몬스터 잔해 따위가 사고 팔린다. 가격은 당연히 어마어마하다.

단말기를 처음 받으면 앞으로 사용할 닉네임을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사실 말만 닉네임이지 앞으로 헌터 일을 하며 쓸 이름을 정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데, 여기서 저게 정말 닉네임이라고 생각하고 아무거나 입력하면 큰일 난다.

⋯⋯그래, 손가락테크닉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헌터의 본명과 신상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게 원칙이랍시고 짓는 닉네임인데, 그 닉네임 때문에 모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버렸다.

손가락테크닉이 누군지 알아내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전 세계 신상 털이범들의 주요 타깃. 그게 바로 현재 세계 랭킹 1위, 손가락테크닉이었다.

이제 와서 이런 변명하기 참 뭐하지만⋯⋯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에는⋯⋯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 참 큰 뜻이 담겨 있다.

테크닉, 테크닉은 참 미묘한 단어지만, 또 국어사전을 따르면 참 바르고 옳은 단어다.

국어사전 왈, ‘악기 연주, 노래, 운동 따위를 훌륭하게 해내는 기술이나 능력’을 테크닉이라고 한다.

그럼 손가락테크닉이 좋으면 리듬 게임도 아주 잘하겠네? 그러겠네?

그래서 내 게임 역사의 모든 닉네임은 손가락테크닉이었다. 그리고 나는 보통 모바일 리듬 게임을 주로 했다.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임을 했단 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단말기를 처음 받았을 때는 한창 전쟁 통이었고, 각성자들을 전쟁터에 밀어 넣는 데 바빴기에 누가 받아 갔는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당시엔 신상조차 제대로 등록하지 않았기에 초기 각성자를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은 닉네임뿐이었다.

그래서 협회에서도 손가락테크닉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주 아주 극소수였고, 덕분에 손가락테크닉은 신비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데.

신비주의는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닉네임이었다.

나는 닉네임을 입력하라길래 그냥 게임 닉네임 같은 식인 줄 알았지. 이 닉네임을 영원히 바꾸지 못할 줄은 몰랐지!

랭커가 아니면 바꿔 줄 수도 있지만, 랭커라서 못 바꿔 준다고?

랭커가 아니어도 유명세가 너무 엄청나서 못 바꿔 준다고?

손가락테크닉이 손가락테크닉이 아니게 됐을 때 세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라고?

군신이라는 멋진 이명 붙여 줬으니까 그걸로 부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나는 억울함에 씩씩대며 액정을 세게 두드렸다.

저기 외국에서야 날 군신 마르스나 아레스나 그런 애칭으로 불러 준다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다들 날 손테로 부르잖아!

아니면 손가락테크닉! 그것도 아니면 핑거킹!

나는 얼마 전 SNS에서 수많은 따봉을 받았던 굴욕적인 글을 떠올렸다.

손가락테크닉은 얼마나 손가락 기술이 좋길래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을 지은 거냐는 내용의 게시물이었는데, 정말로 궁금해서 내 신상 까 보고 싶다는 헛소리가 참 강렬했다.

저기⋯⋯ 그게 범죄인 건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임?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 눈에는 개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몹시 곤란한 우리나라 국민의 지적 수준과 교양 수준을 걱정하며 레지스탕스 액정 두들기기를 했다.

띵! 띠링!

리듬 게임 노트 튕기는 소리가 참 경쾌했다.

야, 너희는 너희 나라랑 목숨을 더블로 구해 준 사람 보고 그러고 싶음?

빰빠바밤빰↗빠밤↘

웅장한 노랫소리와 한숨이 내 고막을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비처럼 쏟아지는 노트 위로 메시지 하나가 까똑!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 울 딸~ 엄마 퇴근~~ 언제 와?

Perfect가 넘치던 화면 위가 Miss로 가득 찼다.

친구였으면 욕해도 좋을 상황이었으나, 마님이라면 말이 달랐다.

응~ 곧 감~ ◀

나는 요새 군침으로 유명한 모 어린이 캐릭터가 루다닥 뛰어가는 이모티콘을 보내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와아아악!! 일소검!! 일소검이다!!”

“형! 여기 좀 봐 주세요!”

“야! 저기 하람 떴다!!”

안 그래도 주변이 난리였기 때문이다.

저기 버티고 서 있는 경찰들도 방금 나타난 11위 때문에 정신없고.

슬슬 빠져나갈 때가 됐지.

나는 반질반질 광이 나는 얼굴의 일소검을 보며 슬슬 뒷걸음질했다.

국내 길드 1위인 새벽 길드의 S급, 길드장 반서준이 이끄는 새벽 제1 공대의 근접 딜러.

수많은 까만 머리통 사이에서 하얀 머리통이라는 독보적인 색깔을 뽐내는 그가 이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레몬 사탕 같은 노란 홍채가 보인다. 까만 동공이 무언가를 발견하곤 크게 확장된다.

나는 왠지 그와 눈을 마주쳤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왠지 귀가 가렵네. 누가 내 욕 하나.

* * *

그러니까 얼마 전의 일이다.

“연희 너 옷은 왜 입어? 어디 나가게?”

저녁 식사 이후, 사과를 사각사각 깎던 엄마가 티비 앞에서 물었다.

나는 엄마 옆에 냉큼 붙어 깎아 놓은 사과를 홀라당 집어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비에서는 막 아까 있었던 돌발 게이트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당산역에 게이트가 열렸었다나 봐. 당산이면 바로 옆 역인데, 이 근처는 게이트가 왜 이렇게 많이 열린대?”

“그러게. 우리도 역삼동으로 이사 가자. 그쪽에 헌터 협회 있잖아.”

“어휴, 돈이 있어야 가지. 그쪽은 부자들 동네잖아.”

엄마가 농담도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하긴 그쪽에 헌터 협회 생긴 후에 역삼동 땅값이 미친 듯이 올랐다.

근데 엄마. 간과한 게 있는 모양인데, 엄마 딸 핑거킹이야.

역삼동으로 이사 가는 것 따윈 정말 아무것도 아니⋯⋯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주 최강 손가락테크닉좌는 익명이 철저히 보장되는 게이트 산 물품 거래나 비공식 헌터 용품 제작 같은 은밀한 곳 외엔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정말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곳에 살려면 헌터가 되어야 할걸? 그것도 랭킹 아주 높은 헌터. 아마 로또 1등 하는 게 더 빠를 거야.”

아니야. 내가 해 봤는데, 로또 1등보다 세계 1등이 더 쉽더라.

내가 핑거킹인 것만 알리면 인생이 참 편해질 텐데, 왜 1등을 해 놓고 1등인 걸 알리질 못하니?!

여기엔 놀랍지 않게도 이유가 있다.

“요즘 애들은 다 헌터하고 싶어 한다던데, 연희 너도 헌터가 부러워?”

“뭐⋯⋯ 조금?”

나는 엄마의 눈치를 힐끗 살피며 답했다. 엄마는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항상 하던 말을 읊었다.

“헌터는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지만, 알고 보면 고충도 많을 거야. 게다가 게이트에 들어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잖니. 죽은 헌터 가족들은 얼마나 슬프겠어?”

항상 들었던 이야기다. 건조한 목소리 위로 과거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연희야, 엄마는 다 필요 없어. 연희 너만 건강하게 잘 살면 소원이 없어. 그러니까 밖에 나갈 땐 휴대폰 들고 가. 헌터 보면 일단 도망가고, 게이트에 휘말리면 헌터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 알았지? 평상시에는 그러지 말고 게이트 열렸을 때만 그래. 알겠지?’

대다수의 사람은 헌터를 동경했지만, 헌터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엄마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흉악한 몬스터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들.

오히려 그 힘으로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사람들.

엄마가 생각하는 헌터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도 살아남기 힘든데 민간인을 지키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헌터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너진 도시의 돌발 웨이브.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몬스터를 앞에 둔 각성자가 도망간다.

‘저기 쟤 도망가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거야?’

게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보던 일행이 말을 건다.

나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본 즉시 일행을 밟고 추진력을 얻어 도약했다.

찌그러져 죽는 몬스터 사이로 작고 왜소한 어깨가 보인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그렇다면.

나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며 그 사람의 어깨를 꽉 잡았다.

이윽고 돌아가는 고개.

큰 충격과 환희로 물든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아.

한창 전쟁이 반복되던 시기,

서로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가 1년 만에 마주한 엄마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나 각성했어.’

라고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그 표정 말이다.

내가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건 손가락테크닉이라는 닉네임의 영향도 있었지만, 엄마의 영향이 가장 컸다.

고시 공부를 한다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손가락테크닉의 명의로 된 통장에 쌓인 돈을 엄마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쓰지 못하는 것도 다 그런 것 때문이었다.

“연희 넌 시험이나 딱 붙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 요새 각성자 되겠다는 애들이 많아서 불법 학원이 그렇게 많다더라. 다 사기인데 말이야. 쯧쯧쯧.”

엄마가 혀를 차며 사과를 내밀었다. 나는 사과를 냉큼 받아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밀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비밀 히어로가 된 것뿐이지.

특급 게이트도 그랬다.

내가 안 갔어도 누군가는 들어갔을 곳이었고, 내가 가지 않았다면 나라가 쫄딱 망했을 일이었다.

그러면 나나 엄마 같은 서민들은 미처 대피하기도 전에 몬스터 웨이브에 죽었겠지.

나는 헌터만 되면 사는 게 훨씬 나아질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어른들 말로는 다 팔자대로 사는 거라더니, 내 팔자가 원래 고생할 팔자인가 봐.

나는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사과나 열심히 얻어먹다가, 편의점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왔다.

[하급 게이트 출현 경고 -헌터 협회 본부-]

엄마가 그렇게 멀리하는 헌터 일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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