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에서 만반의 준비를 끝낸 뒤.
김태호는 곧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그가 없어도 본사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짐을 덜었다는 것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매뉴얼은 그만큼 확실했다.
“이번에는 미국에도 적용시켜야겠어.”
한미양국을 오가는 부담이 적어질수록 좋다.
하지만 본사의 것을 그대로 쓸 생각은 없었다. 한국은 한국이고 미국은 미국이었다.
양국의 문화는 달랐다.
현지에 맞춘 매뉴얼이 필요했다.
김태호는 미국지사에 도착 후, 곧바로 공장장을 찾았다.
“댐버 공장장. 이번에 상의할 것이 있어요.”
“얼마든지요. 사장님!”
“이야기가 길어지니 사무실가서 대화를 하죠.”
김태호는 댐버에게 매뉴얼에 대해 설명했다. 아무래도 미국현지에 대해서는 댐버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댐버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업방식에 대해서는 한 번 말씀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진즉 물어볼 것을 그랬군요.”
“아닙니다. 그저 존경하는 사장님의 방식이 워낙 결과가 좋아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저도 공장장님과 같은 분은 존경합니다. 언제나 존중하려고 하죠. 그러나 공장장님의 직급이라면 이런 부분은 언제든지 말해주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댐버는 지극히 깍듯했다. 그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이들이 보면 기가 노릇이었다.
“그러니 일단 직접 매뉴얼을 봐보시죠.”
간략한 설명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김태호는 자신이 출력해 온 매뉴얼을 댐버에게 보였다.
“과연 대단합니다! 이 정도의 퀄리티로 만드시다니!”
댐버는 꼼꼼히 매뉴얼을 살폈다. 다 읽은 뒤에 조심스레 덮으며 감탄했다.
갑자기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거기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김태호는 대단한 장인이지, 대단한 관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관리자로서도 완벽하구나.’
김태호의 매뉴얼에서는 현장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가 돋보였다.
블루컬러로서는 완벽하게 만족할만하다.
‘그러면서도 화이트컬러쪽과도 연계가 너무 좋아.’
특히 만족한 것은 다른 직원들과의 연계였다.
현장과 사무직.
이 둘은 서로 필요하면서도 자주 이해관계가 달랐다. 또한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었다.
김태호는 그 교통정리를 너무나 잘해 놓았다.
“제가 여러 업체를 다녔지만, 이보다 더 좋은 매뉴얼은 보지 못했습니다.”
댐버는 머리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장담할 수 있었다.
다른 업체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재영공업의 매뉴얼을 보면서 새롭게 배워야 할 터였다.
재영공업의 매뉴얼은 작업자들을 지나치게 억압하지 않았다.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능동적인 사고를 요구했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직원들을 부품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제 경험을 담았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에 대해 김태호는 짧게 설명했다.
바닥의 바닥에서 구르고 굴렀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사장이 되어 잊겠다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업마다 환경이 다 다릅니다. 그렇게 극찬을 받을 것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런 매뉴얼만 있어도 얼마나 효율이 올라가는데요.”
“공장장님이 이곳에 맞게끔 도와주세요.”
김태호는 댐버의 경험이 필요했다.
댐버도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끼지 않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 중에서 김태호는 납득이 가는 부분들을 고쳤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물으면서 최대한 합리적인 방향을 잡았다.
“미국의 직원분들이 잔업을 선호한다고요?”
그러다 알게 된 의외의 내용도 있었다.
바로 잔업이었다.
“예. 다들 잔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우리 공장 자체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서 경력순으로 끊고는 하죠.”
“제가 그건 생각도 못했네요. 잔업을 선호한다니.”
한국에서도 잔업을 택하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건 낮은 임금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서였다.
‘아니지. 지금은 예전의 재영공업이 아니잖아.’
현재 본사의 직원들도 가능하면 잔업을 했다. 그걸 단순히 한국의 문화라고 여겼다.
“다들 부모니까요.”
“아······.”
김태호는 탄식했다.
댐버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문화를 떠나 공통적인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부모라는 점이다. 또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것이었다.
“제가 충분한 일거리를 약속하겠습니다.”
김태호도 그건 충분히 약조할 수 있었다. 재영공업에 일을 맡기려는 이들은 수없이 많았다. 오히려 지나친 배려로 많이 조절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삶의 여유보다 자식의 삶의 여유가 더 중요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김태호는 잊고 있던 그걸 깨달았다.
* * *
김태호는 수정된 매뉴얼을 미국의 직원들에게 배포를 했다. 그 습득은 어렵지 않았다.
다들 빠르게 적응을 했다.
그 효과는 현장에서 바로 나타났다.
공장장을 중심으로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명확해지자 특히 기뻐했다. 같은 일이지만 그 중요성을 자각한 것이다.
사무직 쪽에서도 익숙해질 때.
에디 킴은 다른 주에서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저희와 같이 일할 업체에 대해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거액의 돈이 든 만큼, 그들은 확실한 자료를 보증하죠.”
그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문 업체의 조사는 다양한 시선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윌리엄이 추천한 것보다 더 양질의 목록이 될 터였다.
“그러면 우리도 4공장에 필요한 장비를 넣어야겠군요.”
필요한 부품들이 갖추어졌다. 그렇다면 그걸 맞출 기반이 필요했다.
김태호는 4공장을 플레이트 가공 및 스택 조립용으로 쓰기로 했다.
그래서 펼친 것은 수십 개의 카탈로그였다.
미국은 확실히 기회의 땅이었다.
재영공업에 자신들의 기계를 넣어달라며 하루에도 몇 곳이나 되는 회사들이 접촉해왔다.
거기서 선택만 하면 된다.
“제가 봐둔 것은 이쪽 제품군들입니다.”
그는 미리 눈여겨 둔 것들을 펼쳤다.
에디 킴은 그걸 살폈다. 성능을 떠나 가격 차이가 너무 심했다.
차라리 김태호가 정하지 않은 다른 쪽이 합리적인 것 같았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이쪽 회사가 더 좋겠습니다. 전체 가격이 5억 원은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기능의 다양성과 변수를 생각하면 PAL에게 무게가 실려요. 제가 피드백을 했기에 확실히 보증할 수 있거든요.”
김태호의 선택에는 늘 PAL이 있었다. 다만, 그들의 기계는 가격이 특히 높은 편이었다.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면 PAL의 기계는 너무 고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이번에는 PAL의 기계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쪽이랑 종종 연락을 하는데 높은 가격을 책정한 이유가 타당하거든요.”
“사장님의 의견이라면 저도 인정합니다.”
에디 킴도 더 이견을 세우지는 않았다. PAL은 김태호가 테스트를 해줌으로써 공작기계의 명가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김태호의 시선이 정확할 것이었다.
김태호는 곧장 설계 프로그램에 공장의 면적을 띄웠다. 그리고 구매할 기계를 배치해보며 가장 이상적인 구도를 잡았다.
에디 킴도 거기까지 확인을 마쳤다. 전달할 것도 전달받을 것도 끝났으니 그는 일찍 퇴근했다.
4공장에 필요한 설비가 하나씩 채워졌다.
김태호는 본사 직원을 미국으로 소환했다. 연료전지 스택의 조립교육을 위한 조교 역할이었다.
“본사의 직원입니다. 제 설명에 따라 작업을 진행할 숙련공이니 여러분들께서는 따라 배우시면 되겠습니다.”
김태호가 신호를 주었다. 본사직원은 정해진 절차대로 작업을 했다.
거기에 따라 김태호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보다 더 좋은 장비들에 인챈트까지 완료가 된 상황이었다.
본사의 직원은 만족스럽게 작업을 마쳤다.
미국현지 직원들이 그만한 수준이 되려면 아무리 짧아도 며칠은 걸렸다.
김태호는 아예 통역사를 고용했다. 교육의 성과를 보려면 충분한 시간이 요구가 되었다.
남은 시간에 휴식은 없었다.
에디 킴이 의뢰했던 기업명단이 나온 것이다. 그는 김태호의 책상에 자랑스럽게 그걸 올려뒀다.
산더미처럼 쌓인 명단. 그걸 본 김태호는 깜짝 놀랐다.
“어, 엄청나게 많네요?”
“당연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었으니까요.”
에디 킴은 어림잡아 윌리엄의 것보다 세 배는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기업 하나하나가 부족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김태호도 첫 장부터 살폈다. 기업들의 분석이 상세해서 이해를 하기가 좋았다.
전문기업과 공무원들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이었다.
천안주택공사 때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제 예상보다 더 많군요. 역시 미국입니까.”
“사실 제시된 조건이 적어서 부합하는 기업이 너무 많습니다. 사장님께서 정해주시면 해당 기업들을 거르도록 하죠. 예를 들면 사업적인 측면에서 빠질 수 없는 단가입니다.”
에디 킴은 예상 단가를 고려하면 이 중에서 절반을 줄일 수 있음을 알려줬다. 양산을 하고자 한다면, 1원이라도 더 경쟁력 있는 가격을 가진 업체가 최우선이었다.
“단가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걸 논할 단계가 아니지 않을까요. 우리는 윌리엄과 브래드를 만족시켜야하니까요. 일본기업까지 이기려면 최대한의 이익추구는 성장의 방해물이 될 수 있어요.”
“이해했습니다. 그 부분은 본사가 점유율을 높인 다음이 맞겠죠.”
“그때는 당연히 에디 킴씨의 의견을 존중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경영가로서는 이 부분에서의 언급은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에디 킴은 아쉽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재영공업이 성장한 이유. 그건 김태호가 가격이 아닌 제품을 먼저 보이는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검증된 업체가 우선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거래 규모를 파악해서 본사와 계약 비중을 늘릴 수 없다면 제외하는 것이 옳아요.”
“동반성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윌리엄이 바라는 것에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에디 킴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조건에 맞지 않는 기업을 정리했다. 그것만으로도 30%의 업체가 사라졌다.
“다음 조건은 어떤 것이 좋으십니까.”
“최근 1년 이내에 본사가 의뢰할 가정용 연료전지 사업에 참여를 한 기록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죠. 최근까지 일을 했어야 호흡이 맞으니까요.”
“포기를 한 업체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김태호는 거기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두 번째 조건이 정리되자 40%의 업체가 추가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예상보다 많이 사라졌습니다. 역시 일본기업들에게 시장이 먹힌 결과로군요.”
“마지막에는 제품 수급을 위해 거리가 가까운 주였으면 합니다.”
김태호가 요구한 세 번째 조건.
남은 회사는 고작 56개에 불과했다.
각 파트별로 감안하면 다섯 곳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러면 선택하기는 편하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네요. 저걸 일일이 살필 수 없어요.”
“데이터로만 판단하시는 것은 무리십니까?”
“제가 직접 보는 것 이상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김태호는 고민에 빠졌다. 한국이라면 작정하고 공장 곳곳을 다닐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직접 움직였다가는 이 주일은 미국을 방랑해야만 했다.
“차라리 사람을 더 고용해서 해당 공장을 살피도록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영상자료까지 있다면 더 없이 좋죠!”
김태호가 생각하기에도 묘안이었다.
직접 가는 것만 못해도 영상자료라면 신뢰할 수 있었다.
“아. 잠깐만요. 검증할 방법이 하나 더 생각났어요.”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본사가 어떻게 성장하신 줄 아시잖습니까.”
“설마 그겁니까!”
“그렇습니다. 건일ADOS의 테스트죠.”
김태호는 히죽히죽 웃었다.
건일ADOS의 중소기업 상생 프로젝트. 거기에서 재영공업은 비상할 계기를 얻었다.
이번에는 반대가 가능했다.
재영공업이 오히려 수많은 업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고 품질과 수량을 만족할 수 있는 업체부터 우선 접촉하도록 하죠.”
“좋은 생각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적지 않지만,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있죠.”
김태호의 시간이 줄어든다. 그 가치를 에디 킴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줄 숙제를 고민하겠습니다.”
김태호는 즉각 본사에 연락을 했다. 연구진들과 머리를 맞대어 테스트의 제품과 기준을 만들어야만 했다.
과연 미국의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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