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주택공사의 일이 드디어 끝났다.
김태호는 이것에 매진한 덕분에 한 달이나 미국에 가지 못했다.
그랬기에 이번 출장은 장기가 될 터였다.
김태호는 졸린 눈을 비비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일부러 야근을 했다.
몸이 피곤해야만 한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곧바로 수면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그 좁고 비좁은 공간 속에서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터였다.
비즈니스석을 끊을까 했지만, 아직은 그런 호사를 누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수마를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려고 할 때였다.
전화가 울렸다.
[동생.]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생인 김태준이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한창 힘들 때였다. 서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반갑다는 마음보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어쩐 일이야. 태준아.”
“그냥. 또 떨어졌다고.”
“······.”
김태호는 위로의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동생인 김태준은 총명했다.
대학교 재학 중에서도 1차를 붙었을 정도였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2차도 될 것이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술 깨고 형이 먼저 생각났어. 미안해. 형이 있어서 난 공부만 했는데. 진짜 그것만은 잘 했는데······.”
“태준아. 네가 힘들 때 전화를 해줘서 고마워. 형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더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 그때는 세상이 무서워졌지.”
김태호는 이해한다는 말을 가볍게 내뱉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태준아. 난 아버지의 회사를 이을 때가 그랬어. 어머니도 아프셔서 일 하나 받으려고 사정사정 했을 때. 넌 내 희망이었어.”
“···뭐가 희망이야. 혼자서 성공하겠다고 아득바득 공부만 했는데.”
“바보야. 학비를 형한테 부담주기 싫다고 매일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 다녔잖아. 목표를 쫓아가는 네가 난 너무 멋졌어. 날 그만큼 믿어준다는 거였잖아.”
“그게 이기적이지. 형은 학교도 그만뒀는데. 난···병신이야.”
김태준은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았다.
무너져가던 회사. 거기에 뼈와 살을 바친 형. 그리고 그걸 외면하고 공부를 했던 자신.
그 무게가 다시금 실패자를 짓눌렀다.
“난 네가 나 대신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쳐 줘서 너무 좋았어. 실패 좀 하면 어때. 다시 노력하면 되는 거잖아.”
“맞아. 형의 성공은 내 성공이야. 그래서 자랑스러워. 매일 엄마가 신문 챙겨보시더라.”
김태준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태준아. 너 원래 법대였잖아. 로스쿨은 어때?”
“···어? 가, 갑자기?”
“원래 로스쿨 생각했잖아. 지금이라도 너 하고 싶은 길로 가.”
김태호는 동생이 왜 행정고시를 본 줄 알고 있었다.
회사가 무너졌었기 때문이다. 무너진 집안 사정상 로스쿨의 학비를 대기란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갈 수 있어. 지금의 재영공업은 가능해. 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성공했어.”
“내가 무슨 염치가 있어. 형. 그건 아니야. 나 공부하는 동안 형이 무슨 고생을 했는데. 죽어도 행시 봐야지. 그리고 붙어야지.”
“형이 힘들 때 어머니 용돈은 오히려 네가 챙겼잖아. 다 말씀해주셨었어. 난 너라는 희망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 동생아. 지금이라도 로스쿨 가자. 네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자. 이번에는 형이 너의 힘이 돼주고 싶어.”
“···고마워. 형. 이번에는 진짜 가족의 희망이 되고 싶어. 나 같은 놈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어.”
수화기 너머. 김태준은 꺽꺽 거리는 울음을 토했다.
통화를 끊은 뒤.
김태호는 입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 *
솔크의 첫 연료전지는 판매용은 아니었다. 자사의 시설에 발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무실과 발전소 등에서 중점적으로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뽑아야만 했다.
그걸 토대로 안정화된 모델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 뒤, 오하이오 주의 관공서 건물에 설치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업은 진짜를 위한 준비일 뿐이었다.
그들이 예상한 수소발전기의 종합효율은 87%였다. 발전효율은 55%에 반응열은 32% 정도로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랬기에 경쟁사들의 견제가 심했던 거였다.
풍력이나 태양열쪽에서 성장한 솔크였다. 그 노하우를 수소산업에 접목시키면 어떤 성장을 보일 것인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체되던 사업도 에디 킴의 인맥 덕분에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
스타팅 업체의 한계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만족할만한 제품의 퀄리티가 나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솔크는 그래도 인내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프로젝트의 진행도 힘들었었을 것이다.
프로젝트 자체는 이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드디어 가동을 시작한 날.
솔크의 CEO, 핸더슨은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받았다.
결과는 예상보다 높았다.
종합효율이 무려 90%를 달성한 것이다. 특히 발전효율이 58%로 올라간 것은 고무적이었다.
“우리가 노력한 결과가 드디어 나오는군!”
핸더슨은 감격했다.
경쟁사들이 아무리 방해해도 상관없었다.
역시 솔크의 기술력이다.
그는 만족했다. 모두 직원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었다.
직접 연구소로 가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정말 잘했다. 우리 솔크라면 역시 이래야지! 이 기세면 오하이오만이 아니라 드넓은 미국 땅에 모두 우리의 연료전지가 쓰일 수 있다! 그때 연봉을 기대하라고!”
찬란한 미래가 보였다. 그건 솔크를 위한 약속된 일이었다.
핸더슨은 상상의 나래는 멈추지 않았다.
넥스트 에너지와 알파퓨얼셀마저도 시총으로 찍어 누르는 것까지 나아갔을 때.
“음?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핸더슨은 뒤늦게 위화감을 느꼈다.
군중 속에서 그는 이방인이었다.
한껏 들떴든 그와는 반대로 연구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분위기 자체가 다운되어있었다.
‘왜 성과에 기뻐하지 않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오히려 사고가 났을 때가 아닌가.
“지금의 데이터는 모두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런가.”
“저희의 예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지?”
“재영공업이 예상한 결과입니다.”
“······.”
핸더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서 왜 그 말이 나오는 것인가. 그로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연구소 직원들은 앞선 상황을 설명했다.
재영공업이 금속분리판을 납품하던 날이었다.
[다른 제품들과 다를 겁니다. 본사의 제품이면 당신들의 이론치보다 무조건 상승합니다.]
바로 에디 킴이 한 말이었다.
연구소는 당연히 한 귀로 흘렸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났다.
정작 재영공업이 자신들의 제품을 잘 파악했다는 말이었다.
이건 굴욕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촉매도 아니고 금속분리판 하나 때문에 효율이 그렇게 오른다고? 자네들이 더 잘 알 것 아니야. 그게 얼마나 미친 소리인 줄!”
핸더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직원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만 속이고 짜고 치는 연극 같았다.
“당장 다른 곳에서 금속분리판을 받아와 봐! 재영공업이 얼마나 개소리를 하는 것인지 밝혀버리면 될 것 아냐!”
핸더슨은 화를 참지 못했다.
그의 지시로 연구소는 업체를 수소문해 어렵게 금속분리판을 받아왔다.
그렇게 재영공업의 것과 다른 회사를 비교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경악스런 결과가 나왔다.
이론값보다 발전효율이 2% 감소한 것이다.
“···미친.”
핸더슨은 충격을 받았다.
53%의 발전효율.
겨우 이딴 결과를 위해 발품을 팔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재영공업 제품이랑 발전효율이 5%는 차이가 나는데?”
핸더슨은 실험 어딘가에서 조작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몇 번을 살펴도 결과는 같았다.
“···지금 당장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을 다 뜯어내 봐.”
재영공업의 제품.
풍문으로 생각한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
그래서 욕심이 일어났다.
만약 재영공업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어떻게 될까.
업계의 판도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애송이 하나에게 휘둘릴 이유도 없었다.
* * *
“피곤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얼굴이 좋으시군요.”
에디 킴은 한 달 만에 본 김태호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전과 다르다.
피로를 떠나 사람 자체가 밝아졌다.
“그냥 일이 있었어요.”
김태호는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보다 일은 어떻게 되고 있었습니까.”
“앉으시죠. 바로 보고 하겠습니다.”
에디 킴은 커피를 내주었다.
“먼저 솔크쪽에서 일이 생겼습니다.”
“그쪽은 왜죠? 스타팅 업체랑 트러블이 있었나요?”
“제품을 만들다가 문제가 생겼다면서 자꾸만 더 보내달라더군요.”
“그러면 해주면 되잖아요.”
김태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칼 같았다.
“안 됩니다. 사장님.”
“어째서죠?”
김태호도 뭔가 있음을 직감했다.
“솔크는 분명히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더 제품을 달라고 한다? 이건 이들이 자사의 제품을 실험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밝히지 못하잖아요. 차라리 단가를 대폭 높이는 것은 어떨까요?”
“계약서상의 물량은 다 보냈습니다. 추가물량에 대한 조항에서도 강제적인 것은 없었고요.”
에디 킴은 계약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다.
예전의 재영공업이면 몰라도 앞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솔크와의 계약은 미국공장의 투자금 회수였을 뿐입니다. 그들보다 더 양질의 계약이 있는데, 뻔 한 바보짓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죠.”
“맞네요. 우리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업체를 길들이는 거니까요.”
김태호도 파트너쉽이 없는 업체와 오래 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걸러지면 좋았다.
“그리고 이 일을 보시면 아쉬운 마음도 사라지실 겁니다.”
에디 킴은 PPT를 띄웠다. 그간 들어온 제의 중에 양질의 것을 추린 것이다.
“제가 보기에 사장님이 관심이 있을 일은 이것입니다.”
에디 킴이 보여준 것은 거대한 선박이었다. 바로 선박용 연료전지 사업의 참여였다.
조선업계의 탄소배출은 연간 약 10톤이었다. 이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2.5%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 탄소배출을 줄이려고 LNG선 등을 활용했다.
하지만 온실가스가 일부 배출됨을 확인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실제로 덴마크의 세계최대해운사가 메탄올과 암모니아 추진선을 도입을 하기도 했죠.”
에디 킴은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 한국 등의 여러 업체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의 눈이 반짝거렸다.
“한국에서는 이미 사업참여가 완료되었었어요!”
“맞습니다. 미국은 아직 틈이 있죠.”
에디 킴은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과 같은 대형선박에 바로 실현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처음이 중요합니다. 처음 제품이 다음을 위한 기준점이 되니까요. 만약 그 기준이 재영공업이면 어떨까요.”
“좋아 죽을 겁니다. 후속주자들은 결코 우리를 넘지 못할 테니까.”
김태호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선박회사들은 모를 것이다. 재영공업의 제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다른 회사의 제품은 받지 못하겠죠. 아주 자연스럽게 재영공업만을 찾을 것입니다. 왜? 같은 스펙의 제품인데 성능은 아예 차이가 나니까요.”
“그리고 인프라를 확장해 금속분리판이 아닌 연료전지 전체를 제공한다면?”
“그때는 업계를 장악하는 겁니다.”
에디 킴과 김태호의 눈이 마주쳤다.
대체할 수 없는 제품.
이건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다.
“선박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군요.”
김태호는 온몸이 근질거렸다.
에디 킴이 준 숙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니, 이건 그를 위한 선물이었다.
“비록 금속분리판이지만, 본사는 타사의 연료전지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하겠죠. 이걸 차곡차곡 쌓을 겁니다.”
“그들의 기술로 그들보다 더 뛰어난 제품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달이 나겠죠. 정작 자신들은 빼 오지 못하니까.”
“흉내도 내지 못하게 할 겁니다.”
김태호는 머릿속이 환해졌다.
미국에서 자신이 할 일이 너무나 명확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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