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솔크와의 계약은 마쳤다.
그건 쇼케이스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모든 이들이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을 원했다. 이때가 제일 중요했다.
김태호는 쇼케이스가 끝나고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미팅을 위해 챙겨 온 정장을 입을 때였다.
“호텔에서 쉬셔도 괜찮습니다. 미팅은 저만 가겠습니다. 당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는 거래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에디 킴은 아직도 그 전율을 잊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노동에 지나지 않는 일. 그걸 김태호는 모든 이들을 몰입시켰다.
그건 예술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미국까지 왔는데 제가 없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응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하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경외하겠죠. 발로 뛰고 말로 하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사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 귀한 시간을 고작 사람과의 만남에 쓰이게 할 수 없었다.
그건 에디 킴의 것이었다.
“당신은 CEO입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전 당신을 믿어요. 에디 씨. 저에게는 결과만 알려주면 됩니다.”
“그래서 요청드리고 싶습니다만, 미국에는 얼마나 자주 오실 수 있으십니까.”
“이주에 한 번, 늦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오겠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을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접해야 하니까요. 솔크 이후로는 수많은 업체에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이 들어갈 겁니다.”
에디 킴은 김태호를 미국에 자주 부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에디 킴조차도 김태호가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김태호는 유일한 존재였다.
“아예 금형도 현지에서 제작하게 견적을 짜두죠.”
“그러시면 더 좋습니다! 처음에만 바쁠 겁니다. 최대한 많은 업체와 일을 할 테니까요.”
에디 킴은 이미 계산이 끝났다.
모두 순수한 의도는 아니리라. 단순히 제품을 넘어 기술을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상관없었다.
재영공업의 기술은, 김태호의 가공은 감히 재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에디 킴은 회의실에는 무려 열 개의 CEO들이 모였다. 다들 쇼케이스를 직관한 이들이었다.
같이 모인 불편함보다 김태호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았다.
“김태호 사장님께서 거래에 대한 것은 저에게 일임하셨습니다.”
에디 킴의 말에 다들 납득했다.
김태호는 장인이었다. 이런 자리를 선호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자. 제의하시죠. 솔크 이후, 재영공업의 시간을 사실 분은 누구십니까.”
에디 킴은 백지를 내밀었다.
전이라면 감히 이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태호.
세상에서 유일한 그 존재 덕분이었다. 그가 가늠할 수 없을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CEO 중 누구 하나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에디 킴의 뒤에 누가 있던가. 그것만으로 당연하게 느껴졌다.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금이 아니면 여러분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영공업의 제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조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향할 터였다.
다시없을 기회.
이걸 놓치면 경쟁자들에게 뒤 쳐질 수 있다.
에디 킴은 그걸 자극했다.
CEO들은 더이상 눈치 따위를 보지 않았다. 백지를 받아가서는 공사금액을 적었다.
단 1달러라도 상관없다.
상대보다 더 높은 금액이어야만 했다.
아예 보란 듯이 최고액으로 적으면서 과시하는 이도 있었다.
재영공업의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제시한 금액 이상의 결과를 볼 테니까!
* * *
김태호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달 동안 미국에 체류했다.
에디 킴은 전문경영가였다.
김태호처럼 기술자가 아니었다. 현장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그였다.
솔크와의 생산계획을 세우는 한편, 미국 직원들의 교육을 했다.
특히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공장장에게는 전담 마크를 했다.
공장장은 업계에서만 20년 일한 숙련공이었다.
에디 킴과도 인연이 있어서 어렵게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다만, 공장장의 성격에 대해서는 주의를 요했다.
하지만 공장장은 김태호에게 지극히 깍듯했다. 소문 난 트러블 메이커도 김태호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전 그 사람이 그렇게 깍듯한 줄 몰랐죠!”
“그래도 에디 킴 씨입니다. 공장장님은 믿을 만한 분이었어요.”
“사장님이니까 머리를 숙이는 겁니다. 그 사람은 직급을 떠나서 다른 사람은 모두 무시하거든요.”
김태호를 공항까지 배웅해주는 차 안. 에디 킴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현장에서 의외로 자주 보이죠.”
“지식보다 경험이라는 겁니까?”
“지식만큼의 경험이죠.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무시하거든요.”
김태호는 그 경험을 무시하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그 속에서도 경험을 꽃피운 이들도 대단했다.
“한국에서의 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물론입니다. 3KW 연료전지도 개발해야죠.”
미국에 직접 온 것은 다행이었다. 현지를 살피자 계획은 더 명확해졌다. 예상보다 미국의 농가는 넓었다. 자칫하면 제품은 반쪽짜리가 나올 뻔했다.
천안주택공사와 한국주택공사.
두 사업에 쓰는 1KW로는 부족하다.
곧바로 3KW부터 개발에 들어갈 터였다.
“그렇습니다. 연방정부가 스마트팜 사업에도 연계를 기대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장님의 사업이 농가와 특히 연계가 짙으니 그쪽으로도 말이 나올 겁니다.”
“스마트팜이면 건물용으로 해야 하겠네요. 최소 5KW쪽으로 이야기가 잡힐 것 같아요. 수요에 따라 10KW도 보고 있다고도 전해주고요. 어떤 작물이냐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니까 확인해주실 것이 많습니다.”
김태호에게 에디 킴은 축복이었다.
에디 킴의 인맥은 엄청났다.
곁에서 지켜보니 더 놀라웠다.
하루에 몇 번이고 사업에 중요한 정보가 나왔다. 대부분 찌라시로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예, 그쪽으로 개발의향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윌리엄을 통해 연방정부가 우리를 지켜줄 테니까요.”
에디 킴의 계획에 연방정부의 보호는 필수적이었다.
일본업체들은 아직 낙관했다.
재영공업은 현실적인 인프라 문제가 있다. 시장점유율을 넓히기 전, 자신들이 상응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 전제조건은 틀렸다.
재영공업은 완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나머지는 미국의 업체들이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일본업체들은 늦었다.
뒤늦게 정계로비를 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도 영향은 적었다.
역으로 재영공업이 점유율을 노릴 최적의 시기였다.
에디 킴은 그때를 노렸다.
“좋네요. 역시 에디 킴 씨는.”
모든 것은 안배가 되었다.
남은 것은 김태호의 능력일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월리엄은 우리의 계획을 크게 반길 겁니다. 적어도 이번 정권이 유지되는 동안은요.”
월리엄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최소 3년.
재영공업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 * *
한국에 도착한 후.
김태호는 가슴 속에서부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게을러질 수는 없었다.
먼저 한국주택공사의 사업현장으로 갔다.
미국에 간 사이에 공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일이 잘 된다면, 다음 일거리도 자동적으로 연장이 된다.
그랬기에 공사는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태호는 감독관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공사의 현장은 알파시스템이 맞았다. 연료전지 시스템으로 들어온 그들이 이런 일은 적합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다만, 1KW보다 더 높은 용량을 원하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해당 농가에는 복수로 설치할 예정이죠.”
“그런 가구가 몇 개죠? 3KW를 기준으로 한다면요.”
“조사결과 100가구가 조금 넘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100가구를 넘는 정도면, 예상보다 많았다.
하지만 좋은 기회였다.
“제가 3KW으로 만들어볼게요. 임시로 설치해보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1KW 세 개로 양해를 구하고요.”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김태호가 전부 부담할 생각이었다.
감독관도 별 말은 못했다. 그저 위에 보고만 할 뿐이었다.
알파시스템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번 사업은 김태호의 것이었다.
김태호의 한 마디에 다음 사업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그러니 본사로 돌아간 김태호는 즉각 3KW 제작에 착수했다.
“단순하게 스택을 키워서는 안 돼.”
1KW를 세 개 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재영의 것은 특별해야만 한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면, 그건 재영이 아니었다.
김태호의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경량화. 그리고 소형화였다.
먼저 엔드 플레이트와 같이 가장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을 줄이기로 했다.
미국 체류 기간에 본 논문. 그중에서는 수소연료전지업계의 불필요한 무게와 부피에 대한 것이 있었다.
“그 기준으로는 20%는 줄일 수 있었으니까.”
이론은 이론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순히 이론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구성 강화 등 기계적 성질을 올리는 인챈트를 플레이트에 각인한 것이었다.
무게와 부피는 그렇게 줄일 수 있었다.
문제는 스택이었다.
이걸 줄이면서도 출력은 3KW를 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금속분리판이야.”
스택의 구성품. 그중 대부분은 다른 기업들의 것이었다.
재영공업이 다루는 것은 금속분리판과 가스켓 뿐이었다.
먼저 0.08mm 이하로 금속분리판을 줄여야만 했다. 가스켓은 거기에 저절로 맞추어질 것이다.
김태호는 그간 미루었던 실험가공에 들어갔다. 0.08mm는 그에게 있어서 벽이었다.
이전처럼 계속 같은 실수가 반복되었다.
“이 느낌이 아냐. 조금 더. 조금 더 집중해야해.”
쇼케이스 때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때처럼 모든 것을 집중한다면 달라질 것인데.
공장에 주저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때의 나는 어땠었지.’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끄집어진 기억을 따라 감각이 살아났다.
김태호는 곧바로 가공에 들어갔다. 실패에 실패. 그 하나하나가 쌓일 때마다 세팅을 조금씩 바꾸었다.
전이라면 굳이 건드리지 않을 것들.
그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쿠구구구궁!
“아······!”
그리고 벽이 무너졌다.
0.08mm의 금속분리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태호는 제품을 어루만졌다. 뜨거워진 몸 때문일까. 표면의 마나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나가 나에게 반응한다.”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까.
땀과 함께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전제조건이 틀렸었어.”
감동과 감상은 거기까지다.
눈앞에 드러난 문제점이 더 앞섰다. 움직이는 마나가 유로에 부딪혀 다 나아가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께에 지금의 유로는 맞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다른 유로로 만들어둔 금형을 세팅했다.
무려 여섯 유형의 가공.
그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였다.
금속분리판의 마나는 아까 전과 달리 유로를 원활하게 움직였다.
사아아!
완성된 제품을 들었을 때.
옅은 바람 한 점이 불었다. 땀에 젖어 헝클어진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
김태호는 놀라 주변을 살폈다.
공장의 문은 닫았었다.
바람 한 점 조차 불 수 없는 환경이었다.
* * *
[정말입니다. 이번에 제조하신 3KW를 지급받은 가구의 상시가동률이 100%입니다!]
감독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영공업의 3KW가 설치되고 한 달 후였다.
“네. 보고 감사드립니다.”
김태호에게도 웃음꽃이 폈다.
1KW에 비하면 부피와 무게는 고작 1.5배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제품은 품질은 물론 가동 시의 소음도 확 줄었다.
[그래서 한국주택공사에 항의가 자꾸 간다고 합니다. 같이 정부지원 받고 설치하는 것인데 왜 차별하냐고요!]
그 항의도 좋은 지표였다.
재영공업의 기술이 더 성장했다는 것이니까.
3KW라면 정부로서도 가정용이 아닌 건물용으로의 확장도 꾀할 수 있었다.
김태호는 감독관에게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며 마무리했다.
그 소식을 그대로 에디 킴에게 전했다.
[정말입니까?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에디 킴은 기뻐하며 현지의 사정을 알려줬다.
윌리엄 쪽에서도 몸이 달았다는 것이다. 계속 관련 상황을 물어봤다는 것이다.
“맙소사. 한국주택공사에게까지 연락을 했다고요?”
[네. 공사 성과는 어떤지 일정은 언제 끝나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더군요.]
“제가 먼저 연락할 것을 그랬네요.”
[사장님께서 먼저 연락을 하지 마십시오. 그건 밑의 사람인 제가 하겠습니다. 그보다······.]
에디 킴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주저하다 이어 말했다.
[혹시 어디까지 김태호 사장님이 만드신 겁니까.]
“혹시 연료전지 이외에도 손을 썼을까 봐요?”
[네. 이건 중요합니다.]
에디 킴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윌리엄이 재영공업을 원한 이유. 그건 연료전지 이외에는 자국의 기업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어서였다.
연료전지 이외의 행동으로 거둔 성과. 그렇다면 일본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재영공업은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되었다.
“일본기업들을 내쫓을 준비만 해주세요.”
김태호는 그 기대에 답했다.
재영공업은 늘 결과로 보여줄 것이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