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38화 (38/49)

38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두 달 뒤.

김태호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실리콘밸리.

먼 타지에 세워진 재영공업의 공장이었다.

한국주택공사와의 일로 점점 바빠지는 와중에 미국으로 온 이유는 하나.

델프의 기계가 공장에 도착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독을 풀 시간도 없었다.

“여기에 부탁드릴게요!”

김태호는 호텔에 짐만 풀었다.

델프의 직원들과 함께 기계들을 설치했다.

쇼케이스가 코앞이었다. 1초라도 빨리 작업이 완료되어야만 했다. 또한 정확해야만 했다.

“잠깐만요. 거기 조금만 틀어주세요.”

김태호는 레이저레벨기를 켰다. 쏘아지는 레이저는 수평을 이루었다.

프레스의 높낮이를 맞춰야만 했다.

설치된 기계는 아주 약간 틀어져 있었다.

김태호는 지나칠 수 없었다. 직원들에게 말해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똑같은 것을 몇 번이나 하는 겁니까!”

“이제 수평이 맞지 않아요?”

델프의 직원들은 투덜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완벽한 수평이었다.

저 동양인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아뇨. 차이가 납니다. 저대로 두면 가공할 때 틀어져요. 제 말을 믿으세요.”

김태호는 끄떡도 안 했다. 금속분리판의 아주 작은 오차도 알아차리는 그였다.

그의 기준에서는 아직 수평이 아니었다.

기본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반드시 이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 전에는 절대 델프의 직원들을 보낼 수 없었다.

“더럽게 집요한 사람이야.”

“VIP만 아니었으면.”

그들은 투덜거리면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다른 이였다면 기계를 내려두고 그냥 갔을 것이다.

델프에게 김태호는 특별했다.

그가 자사의 기계만 쓴다는 것에 매출이 대폭 늘었다.

지금 김태호가 만지는 프레스가 대표적이었다.

“자! 다들 너무 화내지 말고 식사나 하러 갑시다.”

진땀을 흘리며 수평을 맞췄다.

입술이 튀어나온 그들을 에디 킴이 얼른 챙겼다.

“내가 좀 깐깐하기는 하지.”

김태호도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하건 간에 타협할 수 없는 선이 있다.

어쨌든 혼자가 되었다.

타국에서 외로움조차 느낄 여유는 없었다.

아직 세팅은 남아 있었다.

배낭에서 인챈트 부품을 꺼냈다.

기계의 커버를 걷어내고 하나씩 교체했다.

우우우웅!

진동감소부터 내구성 강화 등 인챈트들이 하나씩 스며들었다. 서로 겹쳐지자 인챈트는 공명을 했다.

조화로운 빛과 소리.

김태호는 은하수 아래에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좋아. 완료.”

인챈트 안경을 쓰고 확인했다.

기계에 서로 얽히며 피어난 마나는 꽃봉오리처럼 만개했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었다.

*       *       *

에디 킴은 쇼케이스 막바지로 분주했다.

김태호는 얼굴을 마주한 것보다 통화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쇼케이스 당일은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정말로 기계를 가동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에디 킴은 아쉬움을 표했다.

기계를 설치하던 첫 날. 그때를 제외하고 김태호는 공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게 쇼케이스 조건이잖아요.”

쇼케이스에 내건 조건. 그건 설치 이후에는 가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준비 후에 실시간으로 가공하는 것이 개요였다.

시험가공부터 완성가공까지.

당일에 성공하는 재영공업의 기술력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쇼케이스는 다 짜고 치는 겁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지만, 돌발상황은 생기지 않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한 번 몰래 가동해보시죠.”

“아뇨. 그러면 티가 나요. 에디 킴씨가 너무 열심히 해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도 오잖아요.”

김태호는 장난스럽게 넘겼다. 그의 여유에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에디 킴도 더 말하지 않았다. 차오르는 걱정을 누르는 것은 완전한 신뢰였다.

김태호는 김태호다.

세상의 누구보다 금속분리판을 잘 만드는 이였다.

둘은 실리콘밸리의 공장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참 부지런한 친구들입니다.”

에디 킴은 혀를 내둘렀다.

김태호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공장의 문을 열었다.

구석에 놓아둔 금형을 옮겼다.

포장이 된 상태로 한 번도 뜯지 않았었다.

쇼케이스의 진실됨을 보여주는 완벽한 증거였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거야?”

“배짱이 크군.”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거지?”

몇몇 이들이 웅성거렸다.

모두 솔크의 라이벌들이었다. 그들은 김태호와 에디 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쇼케이스가 조금이라도 틀리다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었다.

‘저걸 보니 내 선택이 맞네.’

김태호는 노골적인 적의를 느꼈다.

쇼케이스의 시작 시간. 지각이나 불참은 없었다.

솔크의 연구소장은 참가자들에게 이번 쇼케이스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했다.

“시간이 이렇게 빠듯했다고?”

“이러면 진짜 현장에서 바로 하는 거잖아.”

타임라인을 본 이들은 술렁였다.

이 일정이면 금형이 완성되고 바로 온 수준이었다.

가공으로 쇼케이스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준비를 한 뒤에야 했다.

자신감인가. 혹은 자만인가.

쇼케이스의 참석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목할 점은 솔크의 제품이었다. 자체개발한 연료전지에 쓰일 금속분리판은 무려 0.085mm이었다.

물론 그 괄목한 성과는 문제로 돌아왔다.

금속분리판의 두께에 따라 가공난이도는 급변하기 때문이다.

CEO인 핸더슨의 어두운 표정도 그래서였다. 경쟁사들을 원한을 담아 바라봤다.

모든 원인은 저들이었다.

제조업체들이 다들 솔크를 피하지 않았더라면!

‘아니야. 재영공업이면 오히려 다행이지.’

지금의 상황이 빌어먹었을 뿐이다.

시선은 다시 김태호에게 쏠렸다. 그가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의문이 차올랐다.

과연 이 조건에서 해낼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한다면 재영공업과 솔크의 명성에 흠집이 갈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김태호는 작업에 들어갔다. 주변의 소란은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눈앞의 일이 먼저였다.

그는 처음부터 인챈트 안경을 썼다.

시력 문제는 아니었다.

금형의 인챈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우우우웅!

금형이 하나씩 기계에 맞춰졌다. 표면이 맞닿았다. 위치고정 및 원점일치 인챈트가 반응했다.

드르륵.

금형이 조금씩 움직여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위치로 갔다.

가까이에 있는 그만 보이는 미동이었다.

“···좋아.”

한 발자국 물러났다.

금형과 기계의 마나들이 어우러졌다.

인챈트는 문제가 없다.

예상한 그대로 정상적이었다.

남은 금형들도 동일한 작업을 거쳤다.

오감은 오로지 작업에만 확장되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오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무슨 현상이지?’

그리고 이변을 느꼈다.

공장을 채운 사람들의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조된 자신 때문일까.

기계를 순환하는 마나가 평소보다 더 활발해졌다. 그 생동감은 그를 사로잡았다. 마치 마나가 자신을 알아달라고 뽐내는 것만 같았다.

피어 오르는 마나가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역겨움은 아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가동 시작합니다.”

그랬기에 보고 싶었다.

이 마나의 흐름은 작업에서 어떻게 변할까.

우우웅!

전원을 눌렀다.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로봇암이 움직였다.

그리퍼가 재료를 컨베이어 롤러로 옮겼다.

센서가 스캔을 했다. 재료의 문제가 없기에 금형 앞까지 이동했다.

다시 로봇암이 금형에 얹었다.

인챈트들이 미세하게 어긋난 재료를 정확한 위치로 잡아줬다.

구우우우웅!

그리고 프레스가 눌러졌다.

금형 사이에 얹어진 재료가 형태를 갖췄다.

모든 공정마다 마나는 춤을 췄다. 상호작용하는 인챈트들은 충만한 빛을 보였다. 상반되는 것들은 서로 부서지며 사그라졌다.

그 빛의 연회는 아름다웠다.

김태호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된 것 같았다.

프레스가 가공을 끝낼 때마다, 1막이 끝났다. 찾아오는 적막감이 이성을 찾아줬다.

다음 연주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연주는 더 완벽해야 해. 지금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김태호는 재료의 상태를 보고 세팅을 바꿨다.

건일ADOS와 솔크의 유로는 흡사했다. 그랬기에 두 손은 정답을 알았다.

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혔다. 뚝 떨어져 렌즈에 묻어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오로지 김태호에게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빛난다. 평소보다 더!’

등을 쑤시는 수많은 시선들.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몰입을 멈출 수 없었다.

마나가 무엇인지 정말로 알 것 같았다.

순간 인챈트는 별처럼 빛났다.

찰나의 순간, 김태호는 피부로 느꼈다.

“···끝입니다.”

세 번째 금속분리판. 그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       *       *

쇼케이스에 모인 이들은 정재계의 인사가 두루두루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흉흉한 것은 넥스트 에너지와 금형분리판 전문가공업체인 유스틸이었다.

처음에는 경계했다.

그들은 김태호와 재영공업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그랬기에 쇼케이스 자체를 의심했다.

김태호와 에디 킴.

이 둘의 조합이었으니 숨겨진 꿍꿍이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타임라인을 보며 깨달았다. 김태호의 고집이 일을 키운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길어봐야 반나절 만에 양품을 만든다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도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준비도 제대로 못한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 가공조건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너무 높더군요.”

“흥. 이러면 금형끼리 충돌이 나는데 모르나 봅니다.”

“바닥이 드러난 거죠.”

두 회사는 숙덕거렸다.

다가올 실패로 차오를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어? 저 세팅을 저렇게?”

“맙소사. 말도 안 돼.”

그리고 펼쳐지는 광경에 당황했다.

김태호가 세팅을 시작한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그의 손놀림은 간결하고 재빨랐다.

그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장인에게서만 풍기는 무게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현장을 모르는 정계의 인사들조차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김태호의 작업은 모두를 몰입시켰다.

‘맙소사. 저런 압박감이라니.’

에디 킴도 다르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 김태호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넋을 잃었다.

등을 돌린 김태호의 모습은 장엄했다. 나이를 떠나 한 분야의 장인에게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흥건하게 고인 땀이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졌다. 그만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업체는 재영공업의 기술을 쫓아갈 수 없겠구나!’

에디 킴은 깨달았다.

재영공업의 기술은 절대 재현될 수 없었다. 그 어디에도 김태호와 같은 수준의 작업자는 없었다.

이 드넓은 기회의 땅에서 몇이나 찾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공장에서의 일을 더러운 일이라고 했다. 배운 것이 없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도 여겼다.

손에 묻은 먼지와 기름때. 그 위로 떨어지는 땀. 당당함을 넘어선 결사의 의지마저 보였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과연 지금의 김태호조차도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어루만진 기계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쿠구구구구.

김태호의 손을 따라 기계가 가동되었다. 기계음 특유의 진동은 퍼레이드의 행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

몰입하고 보던 누군가가 탄식을 터트렸다.

장엄한 연주가 멈추었다.

김태호는 세 번째 금속분리판을 들어 올렸다.

금속분리판의 가공은 쉽지 않았다. 그 까다로운 작업은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그래서 반나절도 짧은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호는 보란 듯이 결과로 보여주었다.

기다리고 있던 솔크의 직원들이 곧바로 정밀측정을 했다. 결과를 본 그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직접 보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세 번의 가공이었다.

김태호는 오차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짝짝짝!

“아름다운 가공을 한 우리 김태호 사장님에게 박수를.”

에디 킴은 박수를 쳤다. 그제야 다들 호응을 했다.

쇼케이스는 고작 두 시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뺏긴 것 같은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우리 재영공업은 성공적으로 솔크에 금속분리판을 납품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믿는 분들은 얼마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당신들에게만큼은 재영공업의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에디 킴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쇼케이스의 파급력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고작 하루 사이었다. 미국 소재의 기업이 오십 곳은 넘게 금속분리판에 문의했다.

에디 킴은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이보다 완벽한 데뷔전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