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음날. 에디킴은 곧바로 한국으로 떠났다.
[취업 성공.]
SNS에는 그 말과 함께 재영공업의 홈페이지 사진을 첨부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경영가.
그의 행보가 한국이라는 것은 꽤나 화제가 되었다.
재영공업의 홈페이지는 트래픽의 급상승으로 잠깐 먹통이 될 정도였다.
김태호는 첫 선물부터 헛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재영공업은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되었다. 그래도 이런 적이 없었다.
“반갑습니다. 김태호 사장님!”
재영공업에 도착한 에디 킴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운동선수가 연상되는 튼튼한 체격. 그에 어울리지 않게 김태호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팬이라고 하더니 입 발린 말은 아니었네.’
김태호도 그만큼 배려했다.
“먼저 본사의 현황부터 보시죠.”
그는 회사를 보여줬다. 직원과 설비, 현재 진행 중인 사업과 진행할 것 등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사업적인 이야기에는 에디 킴도 진지했다. 날카로운 눈으로 설비와 작업과정을 면밀히 살폈다.
“보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자동화 프레스를 제외하면 1980년도에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현 시대에서 따라갈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이군요.”
에디 킴은 복잡한 심경으로 말을 이었다.
“재영공업이 외계인을 납치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재영공업은 가짜고 뒤에 한국 정부가 있다거나 말입니다.”
“아쉽게도 둘 다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죠.”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수소연료전지에 해박한 이들일수록 더 그랬다.
에디 킴이 연료전지에서 문외한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런가요? 전 지금 둘 중에 어느 것이라도 믿고 싶은 심경입니다.”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 조립이 말이 안 됩니다.”
“조립이요?”
김태호의 시선이 움직였다.
직원들이 부지런히 스택을 적층 중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들의 손놀림이 특별히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조심성이 뛰어나지도 않아요. 작업대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정도 제대로 안 되고 수평도 맞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저렇게 대충하는데 좋은 작업물이 나오는 겁니까!”
에디 킴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번에 온 분들도 그런 반응이었죠.”
적층 과정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제품이 불량이 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로 인챈트의 힘이었다.
김태호는 에디 킴과 함께 사무실로 갔다. 이제부터는 더 중요한 업무를 논해야만 했다.
먼저 수출 시점을 논했다.
지금은 한국주택공사의 사업 이후를 계획했다.
“제 사업계획에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어떤 겁니까.”
“바로 재영공업의 기술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는 겁니다.”
에디 킴에게 제일 위험한 변수는 그것뿐이었었다. 직접 보니 그 걱정이 덜어졌다.
재영공업의 비밀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세상 누구도 제 비밀을 알아갈 수 없어요.”
김태호는 그 부분에서는 여유로웠다.
마나 글자를 쓰기 전에도 누구 하나 재영공업의 비밀을 캐내지 못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곳이 세계에 주목받는 회사라는 것을 누가 믿을까!’
에디 킴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연료전지 업계에서도 무수한 러브콜을 받았다. 실제로 성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그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재영공업은 가능성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괜찮다면 법인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 추천 드립니다.”
“법인은 괜찮지만, 전 앞으로도 회사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미리 양해를 부탁드리죠.”
“이해합니다. 저도 지분에는 관심 없습니다. 일을 진행할 때 제가 그쪽이 더 편해서니까요.”
에디 킴은 김태호의 팬이었다. 그의 과거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민가족 출신의 동양인이 겪게 되는 무수한 편견과 차별. 자신의 그러한 역경도 김태호의 앞에서는 무색했다.
“앞서 밝혔듯이 전 당신의 팬입니다. 그저 가까이에서 최고의 자리에 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죠.”
에디 킴은 진심이었다.
김태호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일단 주택공사 이후는 늦습니다.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야만 하죠.”
“그렇죠. 저번에도 말 하셨으니까. 차라리 지금은 어떨까요. 수소 트럭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면 가능할 것 같은데.”
김태호는 대출 상환을 늦추면 필요한 설비도 증설할 수 있었다.
에디 킴은 재정과 일정을 살폈다. 김태호의 말대로였다. 빈 일정은 활용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장비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임은 확인했습니다만, 앞으로의 경쟁을 위해서는 노후화된 장비를 전체적으로 바꾸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으음. 전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재영공업이 예전부터 노후된 기계로도 좋은 성과를 냈음은 알지만, 결국 사업은 보이는 부분도 큽니다. 최신기계가 기본적인 성능이 높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거기에 재영공업의 기술력이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제가 그 부분은 안일했습니다.”
잠깐 침묵하던 김태호는 실수를 인정했다.
노후화된 기계로 거래가 취소된 것이 몇 번이던가. 막상 제품이 잘 나온 것에 만족하고 지나쳤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노후화된 장비는 전부 교체하죠.”
“좋은 결정이십니다. 재영공업은 앞으로도 이미지 메이킹을 신경 써야 합니다. 그다음 수출 건은 건일ADOS때 처럼 금속분리판으로 시작할 겁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니 어디나 원할 겁니다.”
“넥스트 에너지쪽은 제외하세요. 거기는 이미 절 경쟁자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규모의 회사도 다 제외하죠.”
에디 킴도 불안요소를 지웠다. 거래 가능한 회사의 목록을 정리해서 보여줬다.
김태호도 대부분 그도 아는 기업이었다.
“현지 공장을 빠른 시일내에 구하면 좋습니다. 지금처럼 자동화로 한다면 현지를 책임질 공장장이랑 생산관리 직원 몇 명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공장의 보안은 제가 아는 스타팅 기업에 맡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쪽 시스템이 뭐냐면······.”
에디 킴은 해당 업체에 대해 알려줬다.
김태호도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지금의 재영공업에 있어서 최적의 업체였다.
에디 킴은 나머지 사업계획들을 말했다.
김태호는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해외시장을 노린 계획은 너무 공격적인 시도인가 싶었다.
하지만 에디 킴은 모든 상황을 꼼꼼하게 고려했었다. 작은 행동에도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내가 부족한 점을 채워줄 사람이다!’
김태호는 신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했던 것은 주먹구구식에 불과했었다.
“에디 씨.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서로 상의한 사업의 틀에 벗어나지 않는 한. 당신의 모든 판단을 존중하겠습니다.”
“그 신뢰에 답하겠습니다. 골치 아픈 일을 먼저 해결하죠.”
에디 킴은 기꺼워했다.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윌리엄 차관님. 잘 지냈습니까?”
[SNS는 봤네. 정말 재영공업에 취직을 한 것인가?]
바로 미국 에너지부의 차관 윌리엄이었다.
“우리 김태호 사장님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울 예정입니다.”
[맙소사! 자네가 해냈군. 에디! 정말 잘했어. 이 친구야. 배부른 돼지들을 내쫓고 우리 국민들에게 일거리를 줄 기회라고!]
윌리엄은 잔뜩 흥분했다.
맞은편의 김태호에게도 또렷하게 음성이 들릴 정도였다.
“먼저 금속분리판으로 자금을 충당할 예정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김태호 사장님은 경영의 온전한 자립이 모토니까요. 혹시 좋은 공장 부지 없습니까?”
[실리콘밸리에 적당한 곳을 구해주지! 우리가 정식으로 가정용 발전기를 제의하기 전에 가급적 자리를 잡아주게!]
“뭐. 은행에 잘 이야기를 해주시면 더 빨라지지 않겠습니까.”
[실적이 있다면 더 이야기가 쉽겠지?]
“알겠습니다. 하하하.”
에디 킴은 좋은 분위기에서 통화를 마쳤다.
“윌리엄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자리를 줄 것이니 문제는 끝났죠.”
“다음 계획은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일거리를 물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에디 킴은 하얀 이를 보였다.
재영공업의 미국 진출을 알리는 축포를 장전할 차례였다.
* * *
고작 이틀, 에디 킴은 휴식을 취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마저도 피로를 걱정한 김태호의 호의 때문이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흥분해서 잠을 잘 수 없다고.’
에디 킴에게 김태호는 아이돌이었다. 차마 우상에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태호였다.
첫 만남에 그가 자신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재영공업은 김태호의 모든 것이었다. 그 경영권을 자신에게 맡겼다.
에디 킴은 그 의미를 잘 알았다.
‘내가 인정을 받았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사나이에게!’
성공한 경영가로서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났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을 준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김태호 뿐이었다.
고향처럼 익숙한 삶의 터전, 실리콘밸리. 거기까지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 차관이 되니까 힘 좀 써주는군.”
윌리엄이 소개해준 부지. 거기에 도착한 에디 킴은 눈을 빛냈다.
현 재영공업의 부지보다 2.5배는 넓었다. 그렇다고 임대료가 비싼 것도 아니었다. 거의 염가에 내준 셈이었다.
본사보다 미국공장이 더 큰 상황!
“어떻습니까. 사장님!”
[이렇게까지 해준다고요? 와! 너무 좋은 곳인데요?]
영상통화로 부지를 본 김태호는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좋은 땅을 통화 한 번으로 얻을 줄은 몰랐다.
‘미국은 진짜 무섭구나.’
그래서 더 경각심이 생겼다.
윌리엄의 이민 제안을 승낙했다면, 재영공업에게 목줄이 채워졌을 것이다.
[현지 인원의 채용도 일임하겠습니다.]
부지가 넓다면 더 많은 직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걱정은 없었다.
산업스파이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염탐을 해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재영공업의 기술을 누가 밝혀낼 것인가.
[PAL에게 견적이 왔습니다. 물품이 공장에 도착하는 대로, 현지에 가서 세팅을 하겠습니다.]
“아! 사장님. 그렇다면 차라리 과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떤 말씀이시죠?]
“라이브 쇼요. 보여주는 겁니다. 그냥 눈앞에서요.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세요. 실무를 모르는 멍청이들에게 말입니다.”
[···좋네요, 하죠.]
김태호도 빼지 않았다. 억눌러진 목소리에서는 감출 수 없는 열의마저 느껴졌다.
“기대하십시오.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당신을 볼 것이고, 당신을 원하게 될 겁니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일 터죠.”
에디 킴은 두 눈을 감았다.
드넓은 공장은 오케스트라 공연장이 될 것이다.
김태호는 홀로 무대에 마에스트로가 될 터였다. 지휘를 하듯이 기계를 만질 것이고, 가공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펼쳐지리라.
에디 킴은 그때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 목적지는 솔크였다.
친환경에너지 전문회사인 그들은 저력이 있는 회사였다.
수소생산 기술만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수소발전기의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의 연료전지 업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로운 경쟁자는 늘 신경이 쓰였다. 그게 솔크라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 뻔했다.
보이지 않는 견제는 지독했다.
솔크는 연료전지 제작 자체에 전전긍긍하고 했다.
“어서 오게. 에디!”
솔크의 CEO인 핸더슨은 구원자를 반겼다.
에디 킴. 실리콘 밸리의 유능한 경영가의 인맥이라면 이럴 때 더 기댈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핸더슨씨.”
“잘 지냈나? 요즘에 취직했다고는 들었는데.”
“재영공업입니다.”
“아! 그 회사 말이지?”
핸드슨은 눈을 빛냈다.
연료전지 사업에 뛰어들면서, 가장 주목한 회사였다.
“저라면 어려움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영공업의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건가? 맙소사. 자네는 천사로군!”
“공장이 완성되면 한 번 구경하러 오시죠. 우리 김태호 사장님이 직접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핸더슨도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재영공업의 비밀은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머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제가 아는 스타팅 업체를 소개해드리죠. 이들이라면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
“고맙군. 정말 고마워.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하면 되겠나?”
핸더슨은 몸이 달아올랐다. 그만큼 에디 킴의 등장은 시기적절했다.
다음날부터 솔크가 재영공업에게 금속분리판을 납품받는다는 소식이 퍼졌다.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들은 에디 킴에게 연락을 했다.
누군가는 회유를. 누군가는 협박을.
에디 킴은 그 모든 것이 반가웠다. 김태호라는 존재는 이렇게 수많은 이들을 미치게 만든다.
“곧 우리 사장님이 미국에 올 겁니다. 전화를 하신 김에 직접 작업을 구경하시겠습니까?”
그러니 김태호가 펼칠 공연에 초대를 했다. 모름지기 관객이 많을수록 연주는 빛나는 법이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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