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맙소사. 이래서였어?”
김태호는 두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왜 직원이 이것만큼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한 줄 알았다.
회사 혹은 예전에 공개한 개인메일에 수백 개의 메일이 쌓였다.
재영공업이 언론에 노출 될 때마다 있는 연례행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상 못했다.
정부가 재영공업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미국, 독일, 일본 등 누구나 알 법한 국가에서 그를 초대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해외언론을 찾아봤다. 한국 정부의 사업에 대해 기사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재영공업의 이름도 제품도 없었다.
“이거 골치 아픈데.”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늘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들뜨지 않았다.
김태호는 객관적인 사람이었다. 제품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었다.
환경적 요소가 결정적이었다.
그도 사업가이기에 세계수소시장의 흐름도 알았다.
각국에서는 탄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파리 협정에서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 달성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수많은 정책과 지원에도 성과는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김태호가 나타났다.
연료전지사업으로만 본다면 그는 아무런 기반이 없었다.
기대치를 떠나 존재 여부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행보를 보라. 금속분리판을 넘어 가정용 발전기까지.
재영공업은 각국의 거대기업들조차 쫓아갈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제품은 항상 이론을 벗어난 스펙을 보였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김태호는 이단아였다.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 미궁에 빠질 터였다.
이런 존재를 찾기란 어려웠다.
“앞으로도 없겠지.”
그랬기에 김태호도 잘 알았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터였다.
기술력을 떠나 그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를 직접 초대하는 것이 증거였다.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핑계로 보였다.
연료전지 학계나 산업에서 김태호는 특이한 존재일 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강대국들이 초청할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다.
“내가 어리니까 어수룩해 보였나. 가르쳐달라고 하면 다 가르쳐줄 것 같아?”
입술은 비틀어졌다.
거슬리는 내용은 자국의 기업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게 웃기기만 했다. 이건 배우고픈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할 일이다.
국가가 직접 나설 일은 아니라 판단했다.
“아니면 곁에서 보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가.”
이미 국내에서는 재영공업의 기술을 모방이나 재현하는 걸 포기했었다.
해외라고 다를 수 없었다.
넥스트 에너지는 왜 자신들의 배관이 문제였는지 앞으로도 모를 터였다.
무조건 거절이다.
다만, 기업이 아닌 각국이 상대라는 것이다.
김태호도 지나치게 날을 세울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결국 수출도 염두에 둬야만 했다.
뒤탈이 나지 않아야만 한다.
최대한 정중한 입장을 고수해야만 했다.
지금은 일정의 문제로 확답을 줄 수 없다는 식으로 택했다.
최대한 정중해야만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문제가 있을 부분도 점검까지 받았다.
남은 메일들 중에서 그의 흥미를 끄는 것도 있었다.
“이건 흥미롭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여해달라는 것도 있었다.
국가의 모임에 개인의 참여.
이건 더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기업들의 제의와 언론들의 인터뷰였다.
기업들의 제의는 다 거절했다.
지금은 거기에 집중할 이유가 없었다.
“인터뷰는 자주해도 안 좋은 것 같아.”
인터뷰는 고민이 깊어졌다.
물론 재영공업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는 했다.
하지만 잦은 인터뷰는 독이었다.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자신의 모습은 늘 낯설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경영가. 마치 아무런 노력 없이 선택만 하면 성공만 할 것 같은 사람.
자신의 본질에서 멀었다.
언론에서 비추어지는 모습에 익숙해지기가 싫었다.
“이번에도 포기하자.”
굳이 인터뷰에 응할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정부 쪽에서 알아서 소스를 풀어주고 있었다.
그보다는 신형 가정용 연료전지가 우선이었다.
프로토타입은 성공적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인 생산계획을 잡아야만 했다.
이번은 천안주택공사가 아니었다.
바로 한국주택공사와의 사업이었다. 거기에 맞는 시공사와 납품업체를 선별해야만 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사금액도 워낙 컸던지라 좋은 기업들이 줄을 지어 섰다. 그중에 옥석을 가리는 것도 힘들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루테늄 복합촉매였다.
김태호의 선택은 해당 업체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애물단지였던 복합촉매에 대한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생산시설이었다.
테스트용이면 모를까 이번 사업에 참여하기에는 모자란 설비였다.
확장하겠다는 계획은 세웠다지만, 유사시에는 대체할 업체도 찾아야만 했다.
그 기간까지 김태호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프로토타입이었다. 양산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제품의 상용화 이전이 가장 바빴다.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거듭 실험 및 연구를 진행했다.
하나의 문제점이 나올 때마다 며칠 밤낮을 매달려 개선점을 찾아냈다.
어디 그뿐인가.
재영공업 또한 확장된 만큼의 생산인력을 갖춰야만 했다. 그래서 직원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눈 돌릴 틈도 없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김태호의 머릿속이 새 사업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였다.
“사장님. 저번의 그 메일이 왔는데 한 번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메일을 말하는 거죠?”
“···전의 그 초청 건 관련입니다.”
“확인하죠.”
직원의 말에 김태호는 쓰게 웃었다.
공무원들은 집요하다. 그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일 줄은 몰랐다.
정중한 거절의사였기에 포기를 못한 것 같았다.
“···아니구나. 이번에는 다르네.”
예상이 아예 빗나갔다.
한국의 우수사례를 보기 위해 시찰단이 꾸려질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그 일정에 천안 수소규제자유특구의 방문이 예정되었단다.
그만 괜찮다면 재영공업에 들러도 되냐는 말이었다.
불러도 오지 않으니 직접 가겠다.
그 뜻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각국에서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찾는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좋은 기회였다.
세계에서 평가하는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알 수 있으리라.
직접 오겠다면 최대한 편의는 봐줄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족할 만큼의 시간은 내어줄 수 없었다.
김태호는 일정에 대해서 문의를 했다. 몸이 달았는지 답장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왔다.
“진짜 바쁠 때 오는 구나.”
그 시기는 루테늄 복합촉매층에 대한 최종 확인이 있을 때였다.
김태호는 하루 밖에 시간을 낼 수 없음을 정확하게 명시했다. 거기에 대해서 최대한 양해해달라는 마무리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했으니까.”
귀찮은 일은 없으리라.
김태호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 * *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차관님. 자국의 기업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아시아의 작은 기업을 찾아간다니!]
넥스트 에너지의 CEO 마이클.
수화기 너머의 음성은 거칠고 빨랐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정도였다.
“남자의 헐떡거리는 소리는 취향이 아닙니다. 마이클씨.”
[그게 아니잖습니까. 윌리엄 차관님!]
“목소리 낮추시죠. 당신보다 어려서 청력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미합중국의 에너지부 차관.
귀가 아픈지 윌리엄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이클의 항의는 여전했다. 이래서 굳이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놈의 기업가들.’
마이클은 좋게 볼 수 없었다.
이 연료전지 업계의 거물은 지독한 자본주의에 찌들었다. 또한 은혜라는 것도 몰랐다.
넥스트 에너지는 탄소중립으로 인한 정책의 최대 수혜주였다.
그들은 항상 뭔가 불리할 때는 국익을 운운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자신들이 힘을 쓰게 도와달라고만 했다.
그러고는 정작 국익을 말하면 시장의 자유를 외쳤다.
정책에 대한 협조를 제대로 구하기도 힘들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국익이요? 좋죠. 넥스트 에너지와 건일자동차와의 수소 트럭도 좋은 국익입니다. 경쟁사인 건일ADOS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거잖습니까.”
[건일자동차에게서 자동차 관련 제조기술을 얻었습니다. 차후에 넥스트 에너지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넥스트 에너지는 그럴 기술이 있죠. 그러나 가정용 발전시장에 그런 업체가 있습니까? 당장 넥스트 에너지부터가 포기한 일인데요. 그래서 외국의 인재에 접촉하는 겁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일본에 시장을 다 내준 마당에 뭔들 못 하겠습니까.”
윌리엄은 그 일을 꼬집었다.
미국에서도 건물용 혹은 발전소용의 연료전지는 꾸준하게 성장 중이었다.
단, 가정용 시장은 아니었다.
가격경쟁력이나 기술력에서 밀렸다. 일본시장에 점령당한 수준이었다.
자국의 경쟁력은 전무한 수준이 돼버렸다.
모두 넥스트 에너지를 비롯한 공룡들이 더 돈이 되는 것만을 찾아 떠난 탓이었다.
그런데도 국익을 말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라리 일본기업이 그대로 낫지 않을까요? 한국의 기업을 믿습니까? 제품의 질이 다르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지금 그대로 둔다면 가정용 발전기 시장의 경쟁력을 완전히 손실합니다. 한국업체는 다르죠.”
윌리엄이 재영공업을 주목하는 것은 간단했다.
바로 판매되는 제품이었다.
가정용 연료시장의 최고기업인 펜타소닉은 늘 완제품만 판매를 했다.
반면에 재영공업은 연료전지만 지급을 하는 형태였다. 시공이나 설치 등 나머지는 다른 기업에 일임했다.
자국에서도 그러는데 미국이라도 다를까.
재영공업과의 계약은 더 우수한 가정용 연료발전기는 물론 관련 업계에 일자리가 창출로 이어졌다.
“그리고 두 회사의 성능 차이는 관계자인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2020년 기준.
미국은 kg당 5~5.3달러 수준의 녹색수소 생산비용을 보였다.
한국보다 무려 2달러는 낮은 수치였다.
양국의 수소가격의 격차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앞으로 이건 더 벌어질 예정이었다.
그랬기에 한국에서는 아무리 지원금을 줘도 발전기의 상시가동률이 떨어졌던 것이다.
연방정부는 한국의 사례를 예의주시했다. 무작정 지원금을 주는 보여주기식의 정책의 실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이 상황을 바꾸었다.
바로 김태호였다.
“재영공업의 제품은 미국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겁니다. 3년 이내에 신규사용자를 10~13%를 유입시킬 수 있겠죠. 물론 상시가동률도 80%에 육박할 겁니다.”
윌리엄이 이걸 언급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넥스트 에너지는 해외에 공장을 자꾸 설립했다. 국익을 따진다면 자국의 일거리를 우선시해야만 했다.
G20의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 실태를 보면 미국은 상위 50%인 2분위에 위치했다.
상위 25%에는 유럽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 아시아에는 한국과 일본 뿐이었다.
현재 미국의 목표는 1분위의 합류였다.
탄소중립에 법제화는 아니지만, 명확한 목표를 세운 연방정부였다.
연방정부는 2030년까지 정부의 건물을 포함해 모두 그린전기를 사용할 포부를 밝혔다. 거기에 탄소 배출량의 50% 축소도 필요했다.
온실가스의 주범 중 하나인 난방장치는 특히 취약한 분야였다.
김태호의 가정용 수소발전기가 도입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사례가 이걸 증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료전지가 5년은 앞선 결과라고 평했다.
미국 또한 1분위에 올라갈 기반이 만들어질 터였다.
그래서 이번 재영공업의 방문이 중요했다.
다른 국가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이 빠르게 한국에 시찰계획을 세우자 곧바로 편승할 정도였다.
절대 뺏길 수 없었다.
“아니면 넥스트 에너지가 그들과 같은 기술과 제품을 제공할 수 있습니까?”
[크흠. 우리가 수소 트럭만 아니었으면 또 모릅니다만. 뜻이 그렇게 확고하니 어쩔 수 없군요.]
“용건은 더 있습니까? 전 국익에 도움이 될 재능 넘치는 젊은이를 볼 생각에 설레는군요.”
윌리엄은 그걸로 전화를 끊었다.
‘유독 재영공업에 반응하는군.’
불쾌한 통화지만 수확은 있었다.
펜타소닉 때는 이렇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재영공업에만 민감하게 나왔다.
‘건일자동차의 프로젝트에 재영공업도 끼어있다지?’
윌리엄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말을 안 듣는 놈들을 자극 시킬 수 있겠어.’
넥스트 에너지 같은 기업이 한둘이 아니었다. 방만한 그들을 위해서라도 재영공업이 필요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모든 젊은이들의 꿈일 테니까.”
재영공업 자체를 품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과 미국.
어느 곳의 지원이 좋을 것인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터였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지.”
좁은 땅덩어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능력이 있는 자는 그에 맞는 욕심이 있었다. 그게 성립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미국은 최고의 땅이다.
차원이 다른 인프라. 그건 직접 겪지 않고서는 몰랐다. 무수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움켜쥘 부와 명예.
욕심이 있고 기회를 원하는 자에게 이만한 곳은 없었다.
최고의 인재는 최고의 장소에서 나오는 법이다.
윌리엄은 그 장소를 만들 기회를 줄 수 있었다.
그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태호에 대한 조사는 끝났다. 끝을 모르는 재능은 기회의 땅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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