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두려워? 넥스트 에너지의 CTO인 내가?’
조지의 두툼한 입술이 뒤틀렸다.
넥스트 에너지의 성공신화. 그 중심을 꼽으라면 조지는 무조건 들어갔다.
CTO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재능을 믿고 설치는 애송이들은 많았다.
그들은 잠깐의 우연으로 포장된 거짓된 천재들이었다. 간혹 빛나던 재능도 세월 앞에서는 무뎌졌다.
그건 재능이 아니었다.
그저 요행이었다.
행운이 따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영원할 수 없었다. 또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조지는 그 가짜들 사이에서 있던 천재였다. 그랬기에 김태호를 보고 싶었었다.
소문은 틀리지 않았다.
주변에 널린 가짜들과 달랐다.
김태호는 진짜 천재였다.
‘지금은 아니다.’
재영공업이 넥스트 에너지의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때의 자신은 세월에 무르익은 명품이 되리라 확신했다.
아직 김태호에게서는 풋내가 났다.
경영자이자 기술자. 두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가 분명히 올 터였다.
“두렵게 만들 수 있겠나?”
“느낄 때는 늦을 겁니다.”
“우연의 산물인가. 노력의 산물인가.”
“우연을 실력으로 만든 노력입니다.”
조지와 김태호는 눈이 마주쳤다.
일방적인 비즈니스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이질감.
“자주 보겠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조지는 물러났다.
“김 사장님, 괜찮으시면 이야기 조금만 더 나누시죠.”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자마자 이경민과 최건우가 김태호를 붙잡았다.
“시간은 얼마든지 내드려야죠.”
김태호는 요청에 따랐다.
조지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까닭이 있을 터였다.
“김 사장님은 넥스트 에너지의 기술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최신의 기술이더군요. 덕분에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도 짐작하십니까?”
“그야 건일과의 거래니까요.”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인가.
김태호는 거기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제3자였다.
“후우. 수소 트럭이 일찍 제조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이제 짐작이 되는군요.”
김태호도 바보는 아니었다.
수소 트럭의 일정이 늦어지면 넥스트 에너지와 건일 양쪽의 경제적 피해가 따른다. 그래서 최대한 일정을 지키는 것이 좋았다.
그게 일반적이었다.
만약에 반대의 경우면 어떨까.
일정이 늦어져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면 어떻게 될까. 다른 곳도 아니고 넥스트 에너지라면?
“건일자동차의 노하우. 이거군요.”
넥스트 에너지는 공룡이다.
하지만 그건 연료전지 시장의 경우였다.
건일자동차와 같은 자동차 업계에서라면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마치 건일ADOS처럼 말이다.
차이점은 있었다.
넥스트 에너지는 작정하고 건일자동차의 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할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CTO인 조지가 직접 온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래서 우리 건을자동차가 일을 진행하면서 건일ADOS의 역할이 큽니다.”
“문제는 건일ADOS의 역량으로는 그렇게 빨리 진행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경민의 말에 최건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경민과 최건우.
둘은 일정대로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랬기에 회의 전부터 기가 죽어 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네요.”
김태호는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다.
어느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조건적인 상생은 없었다.
그는 기회를 대가로 노동력을 바치는 것은 늘 익숙한 일이었다.
넥스트 에너지가 더 뺏어간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럴 시간도 사치였다.
“저도 연료전지를 제작하면서 느꼈습니다. 건일ADOS는 충분한 역량이 있어요. 넥스트 에너지가 생각한 것보다 더요.”
건일ADOS가 갖춘 인프라는 허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역량은 일방적으로 뺏길 수준이라 판단할 수 없었다.
소화하기 어렵도록 더 좋은 기술을 줬다.
그게 왜 문제란 말인가.
그것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만 했다.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CEO인 분들이 이러면 사기가 떨어져요.”
패배의식은 위험했다.
이건 지독한 전염병이었다.
김태호는 이번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인드부터 다르구나.’
‘정말 배워야 할 젊은이야.’
이경민과 최건우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설비와 시간. 그럼에도 드러낸 완벽한 결과물. 김태호의 신화가 그 마음가짐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사장님 덕분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맞죠. 해보지도 않았는데 불가능하다니!”
두 사람은 의욕을 되찾았다.
이번은 절호의 기회였다. 책상에 앉아서 불안을 토로할 이유는 없었다.
* * *
재영공업의 새 공장도 드디어 완공이 되었다.
김태호는 두 개의 공장을 가동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앱티드의 줄어든 판매량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두 개의 공장은 무리한 확장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쉽지만 기회는 언제든지 올 터였다.
그래도 생산 라인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규모를 줄이지도 않았다.
가정용 연료전지의 교체사업 덕분이었다. 거기에 재영공업의 제품이 채택되었다.
그래서 수소연료전지의 공급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구매해오는 제품이 많아 마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기적인 일거리 확보는 늘 긍정적인 요소였다. 그 덕분에 직원들의 연료전지 작업의 전환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긍정적인 요소는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그걸로 투자를 해야지.”
이번으로 느꼈다.
사업에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필수였다. 하나만 밀고 갔다가는 유연성이 떨어졌다.
돌발변수에 자금이 막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계획이 틀어질 것이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의 대형시설의 공급까지!
그 목표가 우선이었다.
지속적인 투자가 경쟁력을 키워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작업에 들어가야지.”
사업가로서의 영역은 거기까지다.
기술자 김태호로서의 시간이 돌아왔다.
그에게 남은 과제는 이제 캐시카우인 수소 트럭의 금속분리판 작업이었다.
직전에는 0.09mm까지였다.
회의 때 장담한 것처럼 최소 0.085mm까지 만들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무려 두 가지니까.”
건일ADOS가 준 금속분리판 모델은 두 가지였다.
금속유로의 핀 형과 병렬 형이었다.
김태호는 그중에서 어느 모델이 가공에 더 적합한지를 판별하기도 해야만 했다.
금속분리판 가공. 그 하나만큼은 김태호는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었다.
단 하나 뿐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모델링은 순조롭게 되기는 하는데.”
김태호는 금형 모델링을 살폈다. 그 단계에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금속분리판의 두께는 앞으로 더 얇아질 터였다. 0.01mm라는 작은 차이를 위해서 엄청난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었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금형이었다.
금형 또한 극도의 정밀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문제였다.
“···업체가 못 따라와.”
기존의 업체도 수소문해서 찾았다. 충청남도에서 이름난 금형제작 전문 업체였다.
그런데도 점점 수정가공 횟수가 늘어났다.
“역시 직접 만들어야할까.”
전과 달리 공간은 넉넉했다.
오래된 기계도 처분해 손이 남는 직원도 있었다.
그랬기에 직접 와이어컷팅 방전 가공을 시도할 여유는 있었다.
“아니. 해야만 해.”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마나였다.
마나의 부착량이 많아질수록 제품의 성능은 증가해왔다.
금형은 금속분리판 가공에서 가장 많은 표면에 닿는 제품이었다.
금형제작에 인챈트까지 추가되면 마나량은 반드시 늘어난다. 성능향상은 곧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지금이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테스트 예정 중인 기계가 있으시죠? 이번에 그걸로 할게요.”
김태호는 즉각 PAL에 전화헸다.
PAL과의 관계는 좋았다.
김태호가 테스트해주는 기계는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들의 물건을 찾는 이들도 크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PAL은 즉각 프로토타입의 와이어 방전가공기를 보냈다.
프로토타입이지만 걱정은 없었다. 이미 해당 제품의 스펙은 잘 알았다.
시장에 나온 어설픈 최신형보다 더 좋았다. 그만큼 좋은 성능과 훌륭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태호는 와이어 가공에 들어갔다. 경험이 있는 직원에게 교육도 받았었다.
작업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우우우웅!
“···어?”
와이어 가공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김태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즉시 인챈트 안경을 썼다. 대기 중의 마나 흐름이 묘하게 비틀어짐을 느꼈다.
지속적인 관찰 결과.
단면가공 중에서 문제가 일어남을 발견했다.
작업 후에 3D 측정을 실시했다.
모델링과 제품에서 0.001mm의 오차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태호로서는 절대 허용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기계자체의 진동도 줄여야 하고. 가급적이면 와이어도 수직이어야만 해.”
당장의 개선점은 두 가지다.
하지만 미덥지 않았다. 그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가공범위를 줄인다면?”
와이어 가공의 핵심은 방전이었다. 그 범위를 인위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정밀한 가공도 가능할 터였다.
“할 수 있어. 이거면 되는 거야.”
김태호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인챈트 수식은 더 없이 빠르게 나왔다.
아아아아!
빛과 진동의 하모니.
김태호는 한 폭의 뮤지컬을 담은 부품으로 교체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첫 시도에는 방전이 되는 모든 흐름이 억제되었다. 가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또한 마나 자체도 표면에 부착이 되지 않았다.
인챈트를 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완전한 실패였다.
“이 수식은 아예 억제를 하는 거구나. 그러면 기준점을 잡아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김태호는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수식을 고쳐도 뭔가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의 눈에 와이어가 들어왔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어.”
현재 사용 중인 와이어는 직경 0.1mm 미만이었다. 저것보다 더 작은 직경으로 출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김태호는 인챈트를 수정했다. 와이어의 단면을 그대로 축소하도록 억제했다.
우우우웅!
두 번째 인챈트는 마치 가면 무도회와 같았다. 특유의 화려함 속에서도 가슴에서 답답함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랬기에 확신이 들었다.
와이어 고정부에 인챈트 부품을 심고 시험가공을 했다.
일부러 더 복잡한 모양으로 택했다.
그런데도 가공은 매끄러웠다.
오차는 허용범위 내로 들어왔다. 표면에 충분할 양의 마나도 부착되었다.
본 가공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해!”
금형도 드디어 납득할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
직접 만드니 시간은 대폭 단축되었다. 최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벌었다.
수정가공이 생략된 덕분이었다.
김태호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았다. 그랬기에 세팅에서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프레스 가공에 들어가면서 우려했던 금형의 충돌은 없었다.
“두 모델 다 가공이 잘 되었어. 역시 내가 직접 처리해야해!”
김태호는 가공된 금속분리판들을 보며 만족했다.
초기부터 관여를 하는 것이 맞았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인챈트 덕분에 마나가 더 풍부해졌다.
이보다 더 좋게 만들어질 수 없었다.
“앗!”
들떴을 때, 사고는 일어났다.
금속분리판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 얇은 금속판이 끝부분만 조금 찌그러진 것으로 끝난 것이다.
충격을 받을 때의 모양도 이상했다.
본래라면 충돌 순간에 낭창낭창하게 휘어져야만 했다.
그 흔들림이 크지 않았다.
“전보다 더 강해진 건가?”
김태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제의 금속분리판의 강도실험을 했다.
이전까지는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강도가 최대 1.1배 정도로 높았다.
“마, 맙소사!”
김태호는 경악했다.
이번에는 무려 1.2배에 가까운 강도를 보였다. 마나글자에 부착된 마나량이 많아서 생긴 결과였다.
의도한 현상은 아니었다.
“0.085mm가 문제가 아니야!”
이만한 강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 이하도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은 건일ADOS에 보낼 0.085mm의 금속분리판의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 금형을 새로 제작했다. 0.001mm라도 더 줄이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목표치인 0.08mm조차 넘을지도 모른다.
“아니. 넘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
김태호는 웃으며 작업에 들어갔다. 오로지 그만이 마나가 꽃을 피우는 공간 속에 있을 수 있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