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과학기술통신부 장관. 엄경식은 재영공업의 시설을 구경했다.
높아진 명성에 비해 아쉬운 규모였다.
대부분 실망하거나 당황했다.
엄경식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넉살 좋게 선물로 사온 5만 원 이하의 음료수를 건넬 뿐이었다.
“선물 감사합니다. 직접 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시설을 벌써 보고 오신 겁니까?”
“아하하. 아닙니다. 시설보다는 우리 재영공업의 김태호 사장님의 만남이 먼저죠!”
“바쁘신데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호는 약속되지 않는 방문의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
“이번 고무적인 성과에 과학기술통신부 장관으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유심히 보는 이유를 이번에야 느꼈지 뭡니까.”
엄경식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두 부처에서 재영공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한 곳도 아니라 두 곳이라고?’
김태호도 놀랐다. 계속 귀찮은 제의만 할 줄 알았다. 이런 큰 소식을 전해줄 줄이야.
대화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졌다.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자국기업을 밀어주는구나.’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은 주요했다. 그랬기에 수혜를 보는 것은 수소와 같은 대체에너지였다.
‘건일ADOS에서 테스트를 받게 된 것도 결국 정부의 정책 덕분이니까.’
김태호도 엄연히 수혜자였다.
정부는 자국기업의 기술성장을 주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은 잘 알았다.
중요한 것은 그 무게추였다.
대기업 중심에서 천천히 재영공업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이 기회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한 가치를 보였기에 주어지는 정당한 대가였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니까.’
김태호로서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일이었다.
정부의 투자가 지속 된 만큼, 한국의 수소시장 규모는 커졌다. 문제는 자국의 기술력이 그 규모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연료사업은 외국기업에 많이 의존해야만 했다.
핵심부품 중 일부는 아직도 외국에 의존해야만 했다. 제품의 국산화를 괜히 고집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 사장님이 계속 거절한 것은 압니다. 그래도 이번 사업의 연계는 꼭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특히 온수를 농가로 해결한 것은 모든 부처에서 성공사례로 보고 있어요.”
엄경식은 입이 아플 정도로 칭찬했다.
뛰어난 기술력과 기발한 시도.
재영공업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설비 가동률로 골머리가 아프던 상황. 재영공업의 존재는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었다.
“저번처럼 공사 전체를 감독할 수 있는 인력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용 발전기로 쓸 연료전지를 제공하는 것은 됩니다.”
김태호도 사업가였다. 가정용 발전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확실히 수익이 나고 지원을 받을 분야였다.
서남부발전소의 현장은 아직 잊지 못했다.
그 드넓은 발전소에 재영공업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싶었다.
다만, 현실성도 고려해야만 했다.
재영공업은 공사 전체를 담당하면 효율이 떨어졌다. 생산에만 집중하면 대략 10% 정도로 생산량이 높아졌다.
“휴우. 거기까지라도 다행입니다. 김태호 사장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엄경식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만큼 재영공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정부에서는 늘 가시적인 성과를 원했다.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도 성장을 바랐다.
현재로서는 재영공업만이 가능했다.
건일그룹과의 수소차. 가정용 수소발전기. 세계가 주목하는 것에는 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호도 그건 부정하지 않았다.
가정용 발전기의 경우. 국내업체의 종합효율은 80%대였다.
반면에 일본업체의 종합효율은 90%에 있었다.
기술력과 생산 인프라 등 모든 것은 일본업체가 앞섰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수치였다.
단 하나.
재영공업만이 그들의 기술력을 넘어섰다.
“금속분리판으로 건일의 수소차에 참여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만, 가급적이면 지금의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 장관으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엄경식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은 김태호를 주목했다. 그는 새롭게 펼쳐질 에너지 경쟁전에서 한국을 이끌 핵심이었다.
그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정부입장은 간단했다.
재영공업이 지금처럼 독자적인 기술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은 과정일 뿐입니다. 당장 가정용 발전기의 점유율은 인프라적인 문제로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만.”
김태호는 말을 끊었다.
엄경식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고였다.
“적어도 펜타소닉과 같은 기업들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김태호는 확신했다.
회사의 규모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감히 허풍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할 때.
김태호는 결과로 보였다.
‘국가차원에서 지원이 있다면 오래 걸리지도 않아.’
예상하지 못한 만남은 김태호의 등에 날개를 달아줬다.
* * *
수소규제자유특구에 준공 중인 재영공업의 공장. 공장 한 동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
김태호는 곧바로 금속분리판 생산설비를 옮기기로 했다.
공사현장이 옆이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주변의 소음도 문제없었다.
기계의 오염을 우려해 청결만 유지하면 되었다.
그러니 기존의 생산시설 이외에 추가적으로 주문한 프레스들의 이전이 시작되었다.
업체를 고용하니 이송 및 설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태호는 혼자 공장에 남았다. 아무도 없다. 동력을 잃은 기계들만이 차지했을 뿐이다.
적막함에 그는 행복했다.
먼저 기계들의 커버를 떼어냈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둔 인챈트 부품들을 하나씩 교체했다.
그 작업들은 너무 익숙했다. 또한 행복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것만 같았다.
아주 작은 차이.
그러나 거기서 오는 결과물은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멋지다.”
부품 교체 후.
김태호는 마나 안경을 썼다.
렌즈로 보이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여러 인챈트가 섞였다.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세팅을 위해 기계를 가동시켰다.
전 라인이 돌아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반복적인 움직임. 가공 때마다 부분적으로 보이는 빛의 점멸.
김태호는 그간의 피로를 잊었다. 최소한의 수면만 취하며 모든 기계를 조정했다.
며칠 동안의 세팅을 끝낸 후.
김태호는 생산된 제품에 문제가 없음에 만족했다.
생산관리 직원들에게 인수도 마쳤다. 앞으로 건일ADOS는 새 공장에서 금속분리판을 받아갈 것이다.
김태호는 아직 준공 중인 현장을 가까이서 살폈다.
“생각보다 더 넓어서 더 추가해도 되겠는데.”
김태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인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완공날짜까지 문제없이 될 것 같았다.
새 공장을 실물로 볼수록 욕심이 생겼다.
기존계획보다 더 많은 설비를 추가하고 싶어졌다.
“연료전지 조립이 좋겠어.”
김태호는 그 일거리는 절대 끊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정부 부처의 관심을 증명하듯. 재영공업에 더 매력적인 가정용 발전기 제의가 들어왔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3년 치 일거리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여유가 생겼다.
규모를 키운다면 더 많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니면 마정공장이랑 이곳을 동시에 써도 될 것 같은데.”
김태호는 그 부분에서도 고민이 생겼다. 공장이 두 곳이면 목적에 따라 일감을 나누기도 좋았다.
현장의 번잡함도 덜해진다.
투자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다.
관련 자료를 확인도 않고 섣부른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장단점이 확실해서 리스크를 따져야만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건일ADOS로 가야만 했다.
드디어 수소 트럭 프로젝트의 첫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본래는 건일자동차 본사였었다. 그를 의식해서인지 비교적 가까운 건일ADOS로 변경된 것이다.
회의실에는 건일자동차와 건일ADOS의 사장과 핵심 실무진이 있었다.
넥스트 에너지도 마찬가지였다. 최고기술경영자인 조지가 직접 온 것이다.
‘넥스트 에너지의 기술의 정점에 선 자.’
김태호는 이 자리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넥스트 에너지를 만든 인물 중 하나가 아니던가.
“김 사장님. 이번 소식 잘 들었습니다. 가정용 발전기가 엄청나더군요.”
“설마 그렇게 뛰어난 물건을 만드실 줄은 몰랐습니다.”
“공사 관계자들이 그렇게 극찬을 했다더군요.”
먼저 건일ADOS의 관계자들이 말문을 텄다.
웃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건일ADOS의 좋은 제의를 거절하고 만든 가정용 발전기다. 아무리 재영공업이라도 좋은 결과는 힘들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또다시 김태호는 예상을 뒤집었다.
재영공업의 제품은 상상 이상이었다.
건일ADOS는 당장 그런 효율의 제품을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건일그룹은 골머리가 아팠다.
재영공업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협업을 하니 지금 당장은 괜찮다.
만약 그들과 사이가 틀어진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반면에 건일자동차는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저번의 일 때문일까.
이경민 사장은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예의를 지켰다.
김태호를 위해 회의실의 상석을 비워뒀을 정도였다.
두 번 사양하던 그는 결국 자리로 이동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터 킴.”
“저도입니다. 조지 씨.”
“영어도 괜찮게 하시는군요.”
“그냥 인삿말이니까요.”
옆 자리의 조지와도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발음은 조금 어눌했지만, 듣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는 없었다.
가벼운 대화가 끝난 뒤.
조지의 주관으로 회의는 시작되었다. 그가 준비한 자료에 다들 집중을 했다.
“자료들은 잘 봤습니다. 훌륭합니다만, 어떤 스펙으로 진행될 것인지 알 수 없군요.”
중간에 김태호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넥스트 에너지의 자료는 좋았다. 이보다 좋은 준비를 하기란 힘들었다.
다만, 정확한 결과물이 보이지 않았다.
“좋은 질문입니다. 본사의 기술과 이론을 과연 한국의 기업들이 구현할 수 있냐는 겁니다.”
조지는 추가적으로 넥스트 에너지가 구상 중인 스펙들을 열거했다.
현존 최강의 스펙. 거기에 들어가는 기술들에 대한 설명은 압도적이었다.
왜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인지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건일ADOS는 가능합니까?”
“···당장은 힘들어도 실현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건일ADOS의 연구소장 백광석의 목소리는 작았다. 떨떠름한 표정은 자신감이 결연되어 있었다.
“특히 이걸 위해서는 금속분리판도 중요합니다. 더 얇아야만 합니다. 이제 막 0.09mm를 가공한 상황에서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조지는 김태호에게도 물었다.
재영공업의 가정용 발전기의 금속분리판. 그 두께를 고려하면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본사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김태호는 넥스트 에너지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더 이상 김태호를 영입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
건일의 두 회사가 김태호를 주목했다.
그들도 의문이 생겼다.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김태호라면?’
‘이때마다 해내기는 했지.’
하지만 두 회사는 김태호를 알았다.
불가능은 없다.
김태호는 늘 가능하게 했다.
“할 수 있습니다. 더 얇게 하죠. 아무리 두꺼워도 0.085mm에서 0.08mm는 만들 겁니다.”
그 기대를 김태호를 저버리지 않았다.
“역시 김태호 사장님이시군요.”
“그 짧은 기간에 더 얇게요?”
건일측에서는 더 없이 기뻐했다.
반면에 넥스트 에너지쪽에서는 더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
회의는 마라톤처럼 길게 되었다.
첫 단추이기에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겨우 틀을 잡고 회의를 마쳤다.
다들 진이 빠진 상태였다.
김태호가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올 때였다.
바로 앞에 있던 조지가 작게 말했다.
“미스터 킴? ADOS보다 재영이 더 뛰어난데 다음에는 건일자동차와 재영만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
김태호는 대답을 아꼈다. 저런 말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무례한 말이었다.
건일ADOS가 무시당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찮은 이간질.’
김태호는 이 능글맞은 미국인의 속내를 알 것 같았다.
재영공업의 성장 옆에는 늘 건일ADOS가 있었다. 그 연결고리부터 흔들려는 것이었다.
조지의 말은 제법 컸다. 그래서 건일 측의 사람들도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영공업과 건일의 시너지가 두렵습니까?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세요.”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한 어떤 축구선수의 말처럼.
김태호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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