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수소연료전지 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었다.
예전이라면 그저 막막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머릿속에 필요한 지식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사고의 속도를 손이 쫓지 못할 정도였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관련 지식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특정분야를 한정하면 오히려 넘칠 정도였다.
“가정용이니까 최근에 한 것들은 전부 제외하고.”
건일ADOS는 대부분 차랑용이었다.
단 하나, 서남부발전소만 예외였다.
“그대로 가서는 안 돼. 내가 만드는 내 물건이니까.”
이번 일은 건일ADOS의 것이 아니었다.
재영공업 자체적으로 진행될 일이다. 그의 기준에 맞는 물건이어야만 했다.
“특히 두께는 0.095mm로 줄여야지. 그러면 수정해야 될 부분이······.”
김태호는 해당 정보들을 바탕으로 개념설계를 이어나갔다. 이걸 정식으로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직원들은 이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살필 것이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간의 정보를 꾸준히 데이터화 시킨 덕분이었다.
문제 될 소지가 없다면, 곧바로 실행에 돌입해야만 했다.
김태호는 필요한 제품들을 발주했다. 대상은 자신과 같은 건일ADOS의 협력사들이었다. 늘 생산공장이 돌아가기에 필요한 수량은 금방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소량주문은 받지 않아서요.]
[제가 따로 위에 여쭈어보겠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상당수의 회사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윗선에 물어보면 되지.”
김태호는 사장들에게 직통으로 전화했다.
[어이쿠, 김 사장님이 어쩐 일입니까.]
“오랜만에 전화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실험할 것이 있어서 연료전지 촉매를 좀 구하고 있거든요. 소량이라서 힘들까요?”
[김 사장님 부탁이면 바로 드려야죠. 염려마십쇼!]
거래처의 사장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럴 걸.”
김태호는 다른 사장들에게도 직접 문의를 했다.
건일ADOS를 넘어 건일그룹 자체가 김태호에게 집중하고 있다.
협력사 사장씩이나 되서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래서 재료 수급도 금방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다.
거기까지가 연료전지를 구성하는 스택의 구성품들이었다.
그 이외에 개질기, 연료 공급기, 전류 변환기 등이 필요했다. 다행히 해당 항목은 기성품들이 많아 수급에 문제가 없었다.
김태호는 금속분리판과 금속 가스켓까지 다 제조하며 준비를 마쳤다.
입찰까지 남은 기간은 대략 3주.
거기에 필요한 데이터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수소연료전지의 가동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확실히 좀 막연하기는 하네.”
창고에 산적한 재료.
김태호는 예전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건일ADOS의 1차 테스트. 그때처럼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
“마지막 공통점은 내 실력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지.”
아예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건일ADOS를 몇 번이나 왕래하면서 조립과정을 직접 살폈었다.
문제라면 보기만 한 것과 직접 해본 것은 다르다는 점일 뿐이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았다.
해당 작업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장님, 도와드릴까요?”
“뭘 그렇게 혼자 하시려고 합니까.”
“괜찮아요. 다들 일 끝나시고 퇴근하세요.”
혼자서 또 무언가를 한다.
직원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도 처음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어설프게 누구와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나부터 해내야하니까.”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싫은 일이 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이 작업을 완벽하게 체득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만의 작업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직원들의 손을 빌리는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
작업은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었다. 다들 퇴근을 하고 난 뒤에도 두 손은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도저히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스택에 들어가는 재료의 양은 엄청났다. 1kW라고 하더라도 수백 장의 금속분리판과 나머지 재료들을 일일이 적층해야만 했다.
그걸 혼자서 한다.
그 지독한 반복 작업에 김태호조차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제길!”
그답지 않게 험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가스켓을 조립하다가 그만 금속분리판에 흠집이 난 것이다.
“한 번씩 이렇게 되네. 제품에는 문제가 없는데.”
그는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전에 개발한 액상 가스켓 디스펜서가 눈에 아른거렸다. 아쉽게도 그건 자동차 전용이었다.
가정용 발전에는 손색이 있었다.
“아쉬워할 시간도 없어.”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려면 최대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노력과 별개로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부족한 경험은 적층을 할수록 더 크게 드러났다.
작업 중간마다 정밀검사를 한 결과, 오차가 정상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완성을 할 가치가 없었다.
불량품을 왜 가동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건 예상 못했는데.”
김태호는 아예 작업을 멈추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상실감이 찾아오는 것은 잠깐이었다. 이 난제를 해결하고픈 욕심이 더 컸다.
“당연히 어려워야지. 그게 아니면 할 이유가 없으니까.”
과연 무엇이 좋을까.
김태호는 기본적인 설비부터 눈에 들어왔다. 건일ADOS에서 봤던 장비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짜악!
그는 자신의 뺨을 때렸다.
해결할 생각은커녕 문제만 찾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자세는 버려야만 했다.
“남들의 기준을 버려. 난 김태호야.”
남들처럼 해야만 할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건일ADOS의 장비가 화려했던 것은 그래야만 일을 할 수 있어서였다.
그는 아니었다.
“난 만드는 사람이니까.”
김태호는 다시 필기구를 챙겼다.
수천억의 설비보다 더 값진 것은 그의 머리와 손에 있었다. 그걸 쓰지 않고 놔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우연에 그쳤을 꿈속의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그만이 한 일이었다.
“적층단계에서 오차를 줄여야해. 그렇다면.”
제품의 표면끼리 붙인다.
첫 번째 인챈트가 그것이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현대의 지식과 이계의 지식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렇기에 현대의 물리법칙 따위는 기꺼이 비틀 수 있었다.
‘제품에 마나가 부착되는 개념을 확장시킨다.’
마나 글자로 S극과 N극처럼 붙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자성이 아니었다. 오로지 마나끼리 반응해야만 했다.
마법과 공학. 그 사이의 무언가를 그만의 법칙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수식의 정리였다.
지금의 김태호는 필립의 지식에 집착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정도였다.
자신만의 인챈트가 가능했다.
우우우웅!
마나 글자로 만들어진 사물밀착의 인챈트.
김태호는 그걸 여분의 금속분리판에 새겼다. 그 위에 하나를 얹자 거짓말처럼 찰싹 달라 붙었다.
손끝으로 살짝 밀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이것 하나로는 모자라다.
볼펜의 손잡이를 물고 있던 그의 두 눈이 번뜩였다.
“적층을 할 때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지. 그럼.”
모든 제품의 원점 일치도 필요하다. 이전부터 종종 썼던 것이라 이건 눈 감고도 쓸 수 있었다.
“처음부터 제품이 똑바로 있어야 해.”
사물밀착의 단점도 있었다. 잘못된 채로 계속 적층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선택은 재료들의 수평이었다.
받쳐주는 작업대의 불균형에도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배열. 땅과 하늘을 네모나게 빚어낸다면 펼쳐질 광경처럼 상상했다.
그렇게 되면 적층 시에 누적되는 오차가 사라질 터였다.
짧은 순간에 만들어 낸 인챈트의 조합. 전과 다른 희열은 없었다.
실현되지 못한 공상에 떨릴 수준은 진즉에 지났다.
“이걸 다 작업대에 새긴다.”
김태호는 붓으로 작업대에 인챈트를 시도했다.
다리 하나를 빽빽하게 채워나간 문장.
그 하나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토해내는 빛의 연회는 그의 손을 춤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층은 시작되었다.
막전극접합체부터 시작해 금속분리판 등의 부품들로 채워지는 셀.
그 작업부터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책을 꽂듯이 하나하나 얹을 뿐이었다.
그 셀들이 겹겹이 쌓여 점점 스택을 완성해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적층의 오차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김태호의 피로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손끝이 말해줬다.
이번에는 스택은 성공했다.
그러나 가동 전까지 안심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검사를 했다.
인챈트 돋보기로 살펴보니 수소연료전지에 전체적으로 마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수백 개의 전구가 감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였다.
과연 어떤 효과가 나올까. 그걸 기대하는 김태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침이 되어 직원들이 출근하고 나머지 장비들을 연결했다.
그리고 가동에 들어갔다.
그는 유심히 관찰했다. 마나의 흐름은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되어있었다.
우려했던 사고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금부터는 견적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이 숫자놀음이 문제란 말이지.”
그는 가격을 책정하는 것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수주를 위해서는 가격을 낮출수록 좋다. 그렇다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윤도 생각해야 했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가.
그걸 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근 일들을 기준으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건일그룹에서 그를 잡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이득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이러면 결과물을 보고 정해야겠는데.”
가격을 정하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하다.
견적서는 공백으로 뒀다.
“사, 사장님! 잠깐만 와주십시오!”
“왜 그래요?”
“꼭 보셔야만 합니다. 당장요!”
한창 데이터를 분석 중이던 직원이 그를 불렀다.
김태호는 심장이 철렁였다. 설마 판매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가 나온 것인가.
“···뭐야. 이건.”
데이터 시트를 본 김태호는 얼어버렸다.
눈앞의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고체산화물(SOFC)의 발전효율은 통상 50~60%대였다.
김태호의 것은 그걸 뛰어넘었다. 무려 68%까지 나온 것이다.
반응열은 29% 내외로 그걸 포함한 종합효율은 최대 97%까지 나왔다.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입니다. 프로그램이나 데이터의 문제인 줄 알았다고요!”
직원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재 점검을 했지만, 아무런 오류가 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재영공업의 정당한 결과였다.
시중에 공개된 것 중에 이만한 효율을 가진 연료전지는 나온 적이 없었다.
“아하하하!”
김태호는 보기 드물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저히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희열을 억누를 수 없었다.
누구도 이런 결과를 낸 적이 없었다.
김태호. 오로지 그만이 가능한 값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한 제품. 그렇다면 그에 맞는 가치를 받아야만 했다.
* * *
이번 수소규제자유특구의 가정용 발전기 사업은 천안주택공사에서 심사했다.
비대면 입찰을 한 기업들은 총 여섯 곳이었다.
수소규제자유특구의 기업들이 대상이라 참여기업은 많지 않았다.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기업들을 검토했다.
그런데도 쉽게 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경쟁력이 높았다.
사업이니 책정단가는 중요했다. 그보다 앞선 것은 얼마나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있는가였다. 그래서 기업들에게 제품들에 대한 상세한 자료도 요구했었다.
기업 하나하나를 놓고 토론하며 어느 곳이 더 좋은가를 논했다.
물망에 오른 것은 알파퓨얼셀이었다. 가격도 적당했고 기존에 하던 사업이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재영공업이었다.
자문단만이 아니라 천안주택공사 측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가격이 맞아요? 앞자리가 잘못 적힌 것 아니에요?”
“금속분리판만 만들던 곳이 왜······.”
“쓰읍. 이건 너무 한데.”
재영공업의 제시금액은 너무 높았다.
금속분리판만 제조하던 재영공업이었다. 해당 분야가 아무리 뛰어나도 가정용 발전 관련해서는 신뢰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자료를 보기 전이었다.
“이거 자료 바뀐 것 아니죠?”
“이게 가능하다고? 잘못 출력한 것 아닙니까?”
“마, 말도 안 되잖아!”
자문단은 하나 같이 경악했다.
업계의 관계자들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이건 상식을 깨는 결과였다.
냉정히 이 사업에 투입하는 것이 아까울 정도의 제품이었다.
“잘못 적힌 것 아니겠죠?”
“데이터를 봐보세요. 이건 진짜로 실험을 한 결과입니다.”
“재영공업은 도대체 뭐하는 곳이죠?”
“이래서 세계에서 여길 잡지 못해 난리를 치는 건가?”
자문단은 재영공업의 결과에 매료되었다. 오류나 조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재영공업에 들러서 실물을 보고 싶을 정도였다.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업. 그렇다면 아무리 금액이 높더라도 그들을 택하는 것이 지극히 옳은 선택이었다.
자문단은 전부 재영공업을 선택했다.
천안주택공사의 관계자들도 이견이 없었다. 높은 단가? 세계최고의 제품을 쓰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였다.
“이거면 가동난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정부에서도 그걸로 골머리 썩히잖아요.”
세계 발전용 연료시장에서 가장 많은 설비를 구축한 것은 한국이었다. 무려 749MW를 기록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실상은 썩 그렇지 못했다.
공공건물에 설치된 연료전지는 10곳 중에서 7곳이 미가동일 정도였다.
보조금을 받은 민간시설의 가동률은 절반 수준이었다.
문제 중의 하나는 보조금을 받음에도 돌릴수록 금전적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김태호의 것이면 어떨까. 저 물건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이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를 바꿀 물건입니다.”
“천재가 나타난 걸까요?”
“어쩌면 테슬라의 재림일까요?”
전문가들은 심각하게 토론했다.
처음으로 만든 연료전지가 세계의 기준을 새로 쓸 물건이었다. 당장 가정용 연료전지를 60%는 점유하고 있던 일본의 기업들이 휘청거릴 것이었다.
“그런데 김 사장이 본래는 차량용 금속분리판을 만들었잖아요. 이미 건일ADOS를 넘었는데, 그가 직접 만든다면?”
“···수소자동차가 전기차를 넘어서는 시대를 만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들어선 가정에 다들 굳어졌다.
연료전지 시장에서 발전이나 난로용도로 쓰는 고정형은 20%의 비중이었다.
자동차나 선박과 같은 운송형은 60%를 넘어섰다.
김태호가 거기에 손을 뻗으면 어떻게 될까.
모든 기업을 떠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를 원할 것이다.
연평균 30%씩 성장하는 것이 연료전지 시장이었다. 2030년에는 50조원까지 간다는 말이 있었다.
그 거대한 시장이 단 한 명에게 주도가 된다면?
전문가들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한국의 작은 기업 하나가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가 올지도 몰랐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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