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23화 (23/49)

23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결국 알파퓨얼셀에게선 만족할 만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다음 미팅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바뀌었고 회사가 바뀌었을 뿐이다.

같은 말만 반복되었다.

김태호가 보던 그들의 오리지날리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려면 팩스로 제안서나 보내지. 왜 온 거야.”

김태호도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같은 말만 웃으며 들어주니 불만에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만의 강점을 말하지 못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그 먼 거리를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몇 달 전부터 거절한 제안을 그대로 들고 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 그들은 예상보다도 더 대책이 없었다.

금일 미팅을 한 업체들을 정리하니 더 실망감이 들었다.

“···내일도 같을까?”

남은 업체들도 눈과 귀가 있을 것이다. 하루라면 최소한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다른 업체들도 전날의 제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기사. 결국 이 사람들은 경영진의 제안을 그대로 들고 오는 거니까.”

협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니즈를 알아야만 그걸 충족시킬 수 있지 않는가.

비즈니스의 기본.

후원사들은 거기에서 실수를 했다.

일반적인 회사 대 회사의 경우라면, 그들의 제안은 더 없이 매력적이었다.

재영공업과 같은 소기업이 그걸 거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후원사들이 주구장창 같은 제안을 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문제는 재영공업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후원사들이 보는 성장과 김태호가 보는 성장은 확연히 달랐다.

재영공업이 오로지 김태호 한 사람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태호는 단순히 눈앞의 금전적 이득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회사 대 회사가 아니다.

회사 대 개인으로 협상을 진행해야만 했었다.

후원사들은 그걸 놓쳤다.

김태호는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올바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둘째 날의 일정도 거의 끝나갈 무렵.

독일의 PAL사와 미팅이 시작되었다.

PAL도 충분히 좋은 기업이었지만, 이틀간의 미팅 대상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회사였다.

다만, 이곳은 수소연료전지 업계의 선두주자였다.

후발주자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과는 별개로 추진하던 사업들이 연달아 실패해 재정에 타격을 입었었다.

‘그러니 여기에서 내미는 조건은 거짓일 확률이 크지.’

김태호는 만약 PAL이 다른 기업과 같은 제안을 한다면 길게 대화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먼저 저희는 다른 회사들처럼 그런 양질의 조건은 제의할 수 없습니다. 그건 당신을 기만하는 것일 테니까요.”

“······.”

루카라는 직원의 말은 의외였다.

‘지나치게 솔직한데?’

처음부터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는다. 이건 김태호로서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랬기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는 연료전지 분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렇죠, 사실상 지금의 틀을 만드신 곳이니까.”

김태호도 그건 인정했다.

PAL이 아니었다면 수소연료전지 업계의 시작은 10년은 뒤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문제는 그 역사와 명성이 빛 바라졌다는 점이다.

“본사가 김태호 사장님에게 제의를 한 이유는 다른 기업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김태호는 흥미를 떠나 의아했다.

“9시 뉴스 잘 봤습니다. 저희의 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거기서 흥미를 느끼신 부분이 있다고요? 제 인터뷰입니까?”

“아하하. 아닙니다. 바로 재영공업의 기계들입니다.”

“DEL사의 기계요?”

만약 자동화 시스템이라면 김태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 B동의 기계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스펙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가공을 하시더군요.”

루카는 뉴스에서 슬쩍 비추어졌던 기계들의 모델과 스펙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건일ADOS의 테스트 때를 언급하며 절대 불가능한 가공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여긴 다르다.’

김태호는 이 대화에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 사장님은 자신의 능력을 더 키우고 싶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특허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루카는 PAL이 보유한 주요 특허들을 말했다.

막전극접합체부터 전해질막 등 수소연료전지의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었다.

“···엄청나군요.”

김태호는 수십 장의 백지수표보다 그 특허들이 더 욕심났다.

‘나에게 배팅했다.’

PAL은 재정에 문제가 있어도 자신들의 특허는 절대 넘기지 않았다. 당연히 조건부겠지만, 그걸 재영공업에 허락한다니!

이건 완전한 배팅이었다.

김태호를 그만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본사와 업무협약을 맺는다면 서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군요. 그리고 매력적입니다.”

김태호도 부정하지 않았다. 어느새 시간도 훌쩍 지났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도 다음 미팅이 예정 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곳과 미팅을 다 마치고 연락을 드리죠.”

이틀 동안 유일하게 김태호의 마음에 든 대화였다.

*       *       *

김태호는 총 열여섯의 후원사와의 미팅을 마쳤다.

넥스트 에너지처럼 사업적으로 이득이 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PAL만이 자꾸 머리에 남았다.

사업적인 이득은 적었다.

그러나 PAL이 쌓아 올린 기술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게 제의한 이유도 간단하지. 위험부담이 적으니까.”

재정위기에도 자신들의 원천기술은 절대 팔지 않았던 그들이다.

PAL는 파격적인 제의를 한 것이다.

김태호는 나머지 업체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넸다.

마지막은 PAL의 루카였다.

[좋은 선택 감사합니다. 이사진도 기뻐할 겁니다. 역시 김태호 사장님은 우리가 한 제안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군요!]

루카는 발음이 뭉개질 정도로 기뻐했다.

“반대로 제가 바라는 것도 알아봐 주신 것도 PAL 뿐이었습니다.”

[계약서 관련해서는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식사는 하시겠습니까?]

“내일 간단하게 하죠. 저도 더 이상은 회사를 비워둘 수 없으니까요.”

김태호는 루카와 식사 후,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부터는 화상회의로 협상이 시작되었다.

모니터에는 새하얗게 샌 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PAL의 CEO인 필립이었다.

옆에는 통역을 위해 루카가 있었다.

[반갑습니다. PAL의 CEO인 필립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필립 씨. 재영공업의 김태호입니다.”

[먼저 우리 PAL을 선택해주신 것에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몇 장의 백지수표보다는 더 매력적이니까요. PAL만이 자신들의 강점을 보였습니다.”

김태호는 건일ADOS에게 지속적인 납품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거래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았다. 회사의 우상향은 정해져 있었다.

그보다는 자본으로 살 수 없는 기술이 필요했다.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간혹 본사가 가진 가치를 잘못 평가하는 곳들이 많으니까요.]

“인정합니다. 남의 가치를 잘못된 잣대로 보고는 하죠.”

[그런 면에서 참 말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갔다.

그 뒤에는 계약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먼저 본사가 독점적으로 발휘하는 특허권에 대해 허락하는 것은 조건부입니다.]

“당연하죠. 그게 거래니까요. 어떤 조건이십니까.”

[전 김태호 씨의 기계에 대한 능력을 높게 삽니다. 실제로 본사의 장인들도 감탄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말하더군요.]

잠깐 말을 끊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자신들보다 위라고요.]

“과찬입니다. 거기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사의 시작은 공작기계 판매였습니다.]

PAL은 공작기계의 명가였었다.

수소연료전지로의 전향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혔다.

그 사이 든든한 돈줄이던 공작기계도 경쟁력을 상실해갔었다.

필립은 새로 부임한 CEO로 위기의 회사를 살릴 방안을 모색했다.

[수소연료전지 사업은 계속 원천기술을 확보하며 공작기계 사업의 방향성을 전환할 것입니다. 연료전지 전용의 기계제작이죠. 거기에 김태호 사장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과연. 그런 거군요.”

김태호도 충분히 납득했다.

금속분리판을 시작으로 이번 가스켓 특허까지 그의 능력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첫 번째 특허가 그 정도다.

다음 특허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없다.

도박성이 짙지만, PAL도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번 가스켓 특허를 적용한 디스펜서가 곧바로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앞으로 생산될 모델들의 피드백 및 테스트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거기에 대한 수익은 귀사의 특허 로열티로 하죠. 예를 들면 제 특허의 수익을 내면 그만큼 귀사의 특허를 쓸 수 있게끔 말입니다.”

[과연.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필립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재영공업의 인프라로는 금속분리판 이외의 특허는 활용할 수 없다. 저 조건이면 우리가 더 유리해.’

그는 이미 계산을 끝냈다.

PAL이 독점적으로 쥔 특허다. 그걸 쓸 수 있는 비용이 한두 푼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이런 제도라면 김태호는 PAL의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어쩌면 건일ADOS의 일보다 더!

김태호의 판단은 한 분야에 열정적인 지식인의 실수라 정의했다.

[재영공업은 뛰어난 기업이지만, 아직 시작단계이니 좋은 도움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좋은 도움이 될 겁니다.”

김태호도 위험성은 잘 알았다.

하지만 도박은 통했다.

조율되는 조건은 경쟁사의 백지수표를 거절했다고만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후해졌다.

일반적인 회사에게는 절대 제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를 가볍게 보고 있구나.’

김태호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필립의 말을 루카가 너무나 잘 통역해줬다.

전문 통역사라면 하지 않을 표현도 필터링 없이 통역해버렸다. 기여도에 대한 것을 세부적으로 조절할 때는 가소로워하는 그 묘한 뉘앙스마저도 잘 살려버렸다.

‘인심을 쓰는 척 생색만 내기는.’

여전히 재영공업이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조건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걸 해결할 키가 있었다.

독소조항이 있는지 법무법인에 최종 확인 후, 계약서를 작성을 완료했다.

회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야 고마울 뿐이지.”

그리고 김태호는 웃었다.

수소연료전지의 특허 및 원천기술을 A to Z로 나누자면 단언컨대 PAL은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즉, 수십 년은 걸릴 기술과 노하우를 필요한 만큼 얻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건 백지수표 따위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수소연료전지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다니!

김태호가 필립이라면 절대 이런 거래는 없었다.

“날 과소평가했어.”

김태호조차 인챈트를 활용한 자신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PAL에게서 원하는 만큼의 특허를 얻어내려면 엄청난 실적이 필요했다.

“그러나 여기 물주가 있지.”

김태호는 명함지갑에서 두 개를 꺼냈다.

건일ADOS의 사장 최건우.

건일AODS의 연구소장 백광석.

이 두 사람이 그 기여도를 만들어줄 것이다.

밑그림은 그려졌다.

이보다 더 완벽한 기회는 없었다.

*       *       *

건일ADOS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재영공업에 경쟁사의 접촉은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재영공업의 규모다.

PAL의 일까지 할 경우, 건일ADOS와의 일에 지장이 갈 것은 분명했다.

재영공업과 김태호에게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크흠. 김 사장님이 어쩐 일입니까. 계약은 잘되셨습니까?”

김태호의 전화가 마냥 반갑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계약이었습니다. 아마 최 사장님도 좋아할 겁니다.]

“PAL의 계약을 말입니까? 우리도 그 특허에 아주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최건우는 협상의 기회도 가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PAL에서 제 특허를 사용한 디스펜서가 나올 겁니다. 한 번 구매해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전화판매는 사절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면 끊겠습니다.”

[아직 수소자동차의 제작에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군요.”

최건우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건일자동차는 수소자동차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건일ADOS의 기술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보다 더 연료전지의 크기를 줄여야만 했다.

최건우는 물론 연구소는 그걸로 골치가 아팠다. 배터리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금속분리판을 더 줄여야만 했다.

현재 쓰이는 0.12mm에서 더 얇아지기란 쉽지 않았다.

[0.1mm의 금속분리판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0.1mm는 마의 벽이었다.

배터리의 크기에 알맞게 제작할 수 있었다.

‘재영공업이라면.’

해낸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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