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넥스트 에너지.
그 미국의 기업은 연료전지 업계의 공룡이라고 불렸다.
2차 연료전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로 전기차로 시작해 지금은 수소연료전지에도 거대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세계제일의 규모라 불리는 거대한 연구시설이 그들의 힘이었다.
설립 이후에 단 한 번도 불이 꺼진 적이 없었다.
수십 개의 분야의 연구가 동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실험실 중 하나는 수소연료전지 분야의 논문 혹은 특허 검증을 담당했다.
이번 대상은 서문철의 특허였다.
신소재를 이용한 가스켓. 그걸로 넥스트 에너지가 출고한 수소자동차를 넘는 주행거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대로 쓰면 제대로 가공이 안 될 텐데?”
수석연구원인 찰스는 자료를 검토하다가 의문을 표했다. 이대로 쓴다면 제대로 실링이 될 수 없는 재료였다.
의문을 품으며 가스켓 제조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김태호의 특허도 참조했다. 놀랍게도 기존의 작업속도에서 최소 30%나 줄여졌다.
“의외로 가공은 잘 되는데? 거기다가 빠르고. 이쪽 특허 좋네. 좋은 회사야.”
찰스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금속분리판 한정으로 구형 디스펜서가 최신 모델보다 신속 정확한 가공을 한 것이다.
다만, 재영공업처럼 50%에 준하는 단축은 불가능했다.
찰스의 연구팀은 30% 단축에서 멈췄다.
가스켓의 생산속도 단축이 목적은 아니었다. 서문철의 것과 동일한 스펙으로 연구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우리 데이터가 낮은데요?”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첫 실험에 모두 충격에 빠졌다.
찰스의 연구팀의 이론보다 무려 10%는 낮게 나왔다.
그런데도 그 효율은 시장가치가 떨어지는 제품들로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문철의 신소재는 훌륭했다. 우려와 달리 밀폐성이 유독 좋았다.
“성공할 때까지 다시!”
찰스는 황금이 눈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연거푸 실험을 했다.
그래도 결과는 같았다. 여전히 서문철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의문을 풀기 위한 해석에 들어갔다.
찰스와 그의 연구팀은 10%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재영공업.”
가스켓과 금속분리판. 거기에서 10%의 차이가 발생했다.
제조회사는 재영공업이었다.
“가스켓은 20%의 속도가 늦어져서 효율이 덜 나오는 거였어.”
찰스가 무심코 넘긴 가스켓의 생산속도가 문제였다.
“하지만 10년을 따라 잡히다니!”
특히 충격적인 것은 금속분리판이었다.
재영공업의 것은 넥스트 에너지가 10년 전에 쓰던 두께였다. 그런데도 최신형과 유사한 효율을 보였다.
실험의 대상이 잘못 되었다.
집중의 대상이 서문철이어서는 안 되었다. 처음부터 재영공업이어야만 했다.
현재 업계를 들썩이게 한 주인공이 김태호였을 줄이야!
그는 보고서를 올렸다.
연구소장의 검토 후, 곧바로 CEO인 마이클에게 당도했다.
“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이클은 당혹스러웠다.
서문철의 건은 그도 관심을 가졌다. 설마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제3자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여기는 뭐지? 어째서 이게 가능한 거야?”
재영공업은 예전에도 접촉을 했었다. 처음에는 인수제안이었다. 그게 거부당하자 투자제안으로 바꾸었었다.
넥스트 에너지만이 아니었다.
다른 경쟁자나 투자자들이 재영공업에 접근했었다.
그들도 결과는 같았다.
거래도 쉽게 성사시키지 못했었다.
주변인이라 할 수 있는 서문철이나 건일ADOS를 통한 우회적인 접근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접촉도 성과를 보지 못했었다.
고작해야 직원30명도 되지 않는 아시아의 작은 회사. 그딴 곳에 휘둘리는 것 같아 마이클은 더 이상 접촉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면 다르다.
어디에도 줄 수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접촉을 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비서! 이틀 전에 한국에 뭐 있다고 했지?”
“국제학술회의 후원건입니다.”
“후원해. 조건은 재영공업의 김 사장을 초대하는 것이다.”
마이클은 욕심이 났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경쟁자가 더 늘어나서는 안 되도록 최대한 함구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경쟁자들도 특이점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 등 에너지 업계의 거물들이 대거 한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후원 및 참가 의사를 표했다.
대한민국의 재영공업.
누군가는 들어본 적도 없는 그곳을 향해서였다.
* * *
김태호는 벽에 걸린 액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특허가 정식으로 등록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드디어 첫 걸음인가.”
국책 과제는 좋은 경험이었다.
김태호는 어떤 사람이 재영공업에게 필요한 것인가 알게 되었다.
취업사이트에서 원하는 이들을 찾지 못했기에 헤드헌팅 업체에 연락을 했다.
[탑헤드헌팅 : 고객님, 접촉 가능하신 명단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개중에서 입사의향이 있는 분들은 굵은 글자로 표시했습니다.]
그 헤드헌팅 업체에게서 톡이 왔다.
“맙소사. 이렇게 많아?”
엑셀파일을 연 김태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수백 명 중에서 무려 오십 명이 굵게 표시가 되었다. 경력은 물론 실적도 충분했다.
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급인력들이었다.
재영공업의 가치를 실무자들도 잘 안다는 뜻이었다. 그걸 보며 내심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반찬 없다더니.”
그러나 막상 명단을 살피니 아쉬움이 따랐다.
누구를 뽑을까 라는 설레임은 어째서 뽑아야 되는가로 변질되었다.
[김태호 : 체크한 분들에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은 세 명이었다. 그마저도 합의 과정에서 틀어질 수 있어서 늘린 것이었다. 한 명이라도 온다면 연구개발팀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셈이었다.
“시작은 금속분리판이지.”
새로운 것은 좋다. 그것에 눈이 팔려서 기존의 것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재영공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금속분리판 덕분이었다. 회사의 수입 80%를 담당하는 든든한 돈줄이었다.
현실에 안주하면 언젠가 뒤쳐지게 될 터였다.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기술과 특허를 갖춰야만 했다.
“미리 초안을 짜둘까.”
김태호는 여러 학술지의 논문과 특허 등 다양한 매체의 정보를 수집에 집중할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연료전지협회의 운영관리팀장 정해수라고 합니다. 혹시 재영공업의 김태호 사장님 되십니까?]
“네. 제가 김태호입니다. 협회에서 무슨 일이죠?”
갑작스럽게 온 전화는 예상외의 것이었다. 팀장급이 직접 연락을 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 주 국내에서 본 협회와 국제에너지기구 주최의 국제학술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괜찮으시면 김태호 사장님도 참석하실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흠. 좋은 제의네요. 이미 신청서를 넣었다가 거절당한 입장에서는요.”
김태호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학술회의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전문가들의 논문발표와 토론 등은 지식에 굶주린 그에게는 바라던 바였다.
서문철의 국책 과제를 도운 후에 그 욕심이 더 커졌었다.
일정이 되면 신청을 했지만, 한국연료전지협회가 주관하는 행사에는 계속 거절을 당했었다.
지금은 김태호도 이유를 알았다.
협회에서 그를 서문철 일파로 판단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입김이 센 반대파들에게 견제를 당한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 제의는 어디를 봐도 의심스러웠다.
‘음? 후원사가 엄청 늘었네. 그런데 어디서 본 업체들이잖아.’
관련기사를 살핀 김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국의 넥스트 에너지와 알파퓨어셀. 독일의 톨슨을 포함해 세계적인 연료전지 기업들이 막바지에 후원을 하며 참가했다.
이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전부 재영공업에 투자를 하려고 했던 회사. 거기다 얼마 전부터 다시 제안을 하는 곳들도 있고.’
수상하다.
김태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 다름이 아니라 결원이 생겨서요. 후순위에 두신 분들에게 연락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큰 행사에 불참하는 관계자는 나올 수 없었다.
“참석은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사, 사장님. 다시 한 번만 재고를 해주시면······.]
“후원사가 늘어난 지금에야 초대가 되는 이유가 의심스러워서요.”
김태호도 바보는 아니었다. 저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특허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들이 나를 다시 원하는 거야.’
서문철의 소재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같이 쓰인 그의 특허나 제품이 재조명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확신이 들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툭 하고 던져봤다.
“거기에 참석하지 않아도 후원사들과는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합니다.”
[······.]
수화기 너머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참석하길 원하십니까? 그게 학회 전체의 의견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일정부터 확인하죠. 시간이 되면 내일까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김 사장님. 꼭 나와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뭘요. 다음 학술회의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뵈어야죠.”
김태호는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그도 이번 기회를 잘 살릴 생각이었다.
공부를 할수록 수소연료전지 시장에서 한국의 낮은 입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던 지식과 기술은 세계에 있었다. 한국에서 아등바등한다고 목표는 이룰 수 없었다.
국내에서의 경쟁이 무의미함을 점차 깨닫고 있었다.
경쟁상대는 세계여야만 한다. 모두가 주목하는 지금이야말로 적격이었다.
* * *
이번 학술회의의 규모는 유독 컸다.
한국연료전지협회와 국제에너지기구 주최에,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기업들이 후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여 인원은 대략 500명으로 협회와 기구의 구성원 이외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산업 종사자들이 참여했다.
김태호는 보기 드물게 양복과 구두를 신고, 머리까지 깔끔하게 올렸다.
“성함이랑 전화번호 확인하겠습니다.”
“재영공업의 김태호입니다. 번호는······.”
김태호는 입구 앞에 선 진행요원에게서 명찰을 받았다.
커다란 회장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 위에 이름표를 두어 각자의 자리를 지정해뒀다.
“벌써 사람들이 많네.”
30분이나 일찍 왔음에도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다들 혼자는 아니었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기는 무슨 행사라도 하나?”
정중앙 맨 앞의 테이블. 거기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김태호는 호기심에 이끌렸다.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재영공업 김태호.]
그의 이름표가 거기에 있었다.
“드디어 재영공업도 학술회의에서 보네. 서 교수 일파라고 낙인 찍혀서 그간 못 온 거였지?”
“길들이기 하려다가 학회장도 큰 코 다쳤지. 후원 들어왔다고 좋아했더니 재영공업이 없으면 취소라고 하니까.”
“애초에 서 교수 일파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도움만 준 것 아니야?”
뒷사정을 아는 이들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익히 아는 이야기.
김태호는 입꼬리만 씰룩였다. 팔짱을 끼고 잠시만 듣기로 했다.
“당연하지. 서 교수는 국책 과제 진척이 더뎠어. 김 사장님이 와서 다 풀린 거야.”
“운이 좋았지. 어떻게 재영공업이랑 거래를 트게 된 거야?”
“진짜 부럽다. 부러워. 서 교수가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던 건데.”
뒤이어 서문철에 대한 부러움이 따랐다.
이론의 정립만큼 그걸 현실로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가끔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김태호는 그걸 해냈다. 문제는 그가 아무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림의 떡이라 입맛을 다시는 것도 당연했다.
“크흠. 그래도 저희보다 급하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재영공업한테 퇴짜를 얼마나 맞았는데.”
“이번에 외국기업도 왔다고요. 이번에 안면이라도 못 트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
그들보다 급한 것은 업계 관계자들이었다. 그야말로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홀의 절반이 외국인들이었다.
무엇을 노리는가.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태호.
바로 그 하나였다.
외국기업들이 김태호의 참석을 요구한 것은 널리 퍼졌지 않은가.
이때까지 김태호는 수많은 제의를 거절했었다. 직접 찾아오는 성의까지 보인다면 다를 것이다.
이걸로 분위기 파악은 끝났다.
“잠시만요. 자리에 좀 앉겠습니다.”
김태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김태호 사장?”
“···언제부터 들은 거지?”
“벌써 와있었다고?”
군중들이 술렁였다.
누군가는 놀라움을. 누군가는 당혹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날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김태호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눈길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주눅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가치를 깎는 짓이었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자신감과 여유뿐이었다. 전보다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눈빛은 한결 더 밝아졌다.
“반갑습니다. 김 사장님. 저는 포틀리스의 이영식이라고 합니다.”
“전 한서공대의 유영하 교수라고 합니다.”
“예전에 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이툴스의 서용구 이사입니다.”
모두 자신을 알리기 급급했다.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은 인내심을 넘은 욕망을 가진 자들이었다.
김태호는 정신이 사나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화두를 던지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했다.
그때 듣기가 좋은 중저음이 들렸다. 훤칠한 인상의 사내가 정중하게 명함을 건넸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김태호 사장님. 넥스트 에너지사의 벤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벤 씨. 전 재영공업의 김태호라고 합니다.”
“사장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따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벤의 정중한 요청에 모두 김태호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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