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긴급히 일정을 조절했다.
서문철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의 일이다. 결코 가볍지 않을 터였다.
‘분명 내 담당파트겠지.’
도대체 어떤 난제가 생긴 걸까.
김태호는 오히려 기대가 됐다. 문제를 해결할수록 끝은 가까워지는 법이었다.
사흘 뒤의 방문을 기다린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서문철은 그를 보자마자 가슴을 크게 쓸어내릴 정도였다.
“휴우. 다행입니다. 이렇게 일찍 시간을 내주시다니.”
“교수님의 문제는 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르시겠죠.”
서문철은 자료를 넘겨주며 실험실로 안내했다.
“테스트 가공을 진행 중인데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제품이 결국 답안지죠. 참조할 데이터가 쌓이는 것인데 좋지 않겠습니까.”
말과 달리 김태호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서문철은 재영공업의 일정을 잘 알았다. 그랬기에 먼저 참고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 테스트 가공만 다른 업체에 맡겼던 것이다.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네요. 설마 데이터를 얻을 수준도 아니라니.”
김태호는 제대로 된 데이터도 없다는 것에 당황했다.
서문철은 전처럼 작업자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았다.
작업자의 입장에서 쉽게 가공하도록 되어있었다.
테스트 가공을 맡길 정도라면 최소한의 데이터를 확보할 기술력이 있어야할 터였다.
“이게 그나마 양품이라고 보내온 물건이라는 거죠?”
실험실에는 결과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4차례의 테스트 가공. 그 결실을 김태호는 하나씩 만지며 살폈다.
“이게 1차 제품들이죠? 설계보다 두꺼워 보이는데.”
“맞습니다. 바로 아시는 군요.”
“그리고 이쪽이 2차겠네요. 단면이 평평하지 못하고 쏠림 형상이 있으니까.”
“맙소사. 그게 보입니까?”
서문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는 측정기를 쓰지도 않았다. 그저 눈과 손으로 어떤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아내고 있었다.
작업자로서의 능력은 여전히 경악스러웠다.
“여기 업체에서 쓰던 금형 자료는 있습니까?”
“가공 동영상이랑 사진은 있죠.”
“보여주세요.”
김태호는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봐야만 했다.
“흐음. 진공주형이네요.”
진공주형은 테스트 가공용으로 자주 썼다. 제작기간도 짧고 금속금형에 비해 특히 저렴했기 때문이다.
“화면으로는 이렇게 나올 금형은 아닌데······.”
그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4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가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맞춘 것으로 보였다. 이러면 지금의 재료 자체가 프레스 가공에 맞지 않았다는 것으로 불 수 있었다.
“성분의 비율을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렇게 하려면 계산하던 성능이 나오지를 않을 거예요. 더 부드럽게 하면은 모르지만요.”
서문철은 우려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네요. 실링 작업이면 나을 것 같은데요.”
“액상 가스켓으로요?”
“네. 어쨌든 재료를 최대한 살려야죠. 그게 국책의 주제잖습니까.”
김태호는 전부터 실링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금속분리판의 손상 때문에라도 액상 가스켓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을 터였다.
이번 기회에 액상 가스켓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싶었다. 국책 과제는 물론 김태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터였다.
만약 액상 가스켓까지 만들 수 있다면, 재영공업은 수소연료전지분야에 선택지가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쪽으로 부탁드리죠.”
서문철은 진행 방향을 수정했다.
다른 이들의 제안이라면 고려의 가치도 없었지만, 김태호라면 달랐다.
서문철은 김태호의 실력을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김태호가 해보겠다는 말은 그에게 있어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 * *
실링을 위해서는 디스펜서가 필요했다. 문제라면 재영공업에 그 기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태호는 고민을 하다가 중고 디스펜서를 구매했다.
먼저 직접 기계를 다루며 실링작업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실링을 위한 데이터는 물론 작업을 할 금속분리판도 얼마든지 있었다.
도착하는 즉시 작업도 가능했다.
실링 작업 자체가 난이도가 엄청 높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실링을 위해 토출량을 조절하는 정도겠지?”
문제라면 딱 그것뿐이다.
토출량이 너무 많거나 적어서도 안 되었다.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할 수 있는 그 적정량이 중요했다.
“그 전에 인챈트를 해야 하는데.”
김태호는 디스펜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중고제품의 장점은 인챈트를 하는 것에 큰 부담이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필요하냐는 건데.”
그는 먼저 디스펜서를 작동시켰다.
디스펜서는 머시닝 센터라든가 프레스처럼 기계 자체에 큰 부하나 충격이 가해지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산 것도 아니었다.
신소재를 쓸 수 있는 스펙으로 골라 구매했기 때문이다.
예전 재영공업의 기준이면 신제품이나 다름이 없었다.
“실링에는 뭐가 좋을까.”
김태호는 노트에 떠오르는 인챈트들을 기록했다.
첫 번째는 역시 기계의 내구성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진동감소였다. 어쨌든 모터를 통해 토출구가 움직이니 거기에서 문제점을 줄이고자 했다.
“···재료에는 더 넣을 것이 없네.”
어차피 재료는 액상이었다. 거기에 뭔가를 할 수 없었다.
“나머지 인챈트는 작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민하자.”
뭐든지 인챈트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인챈트는 촉매였을 뿐, 결국 기반은 그 자신의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근래의 일 중에서 인챈트가 제일 적게 들어간 작업이었다.
그랬기에 디스펜서와 실링 작업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에 집중했다.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지나친 초조함은 독이었다.
그 결과 김태호는 디스펜서로 만족스러운 작업들을 해냈다.
얇은 금속분리판에 그어지는 액상의 재료가 가스켓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쌓여 양품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 되었다.
“그래. 이 느낌이지.”
김태호는 오랜만에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근래에는 인챈트를 성공할 때만 오던 감각이었다.
그리고 물건들을 서문철에게 보냈다.
역시나 며칠이 되지 않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사장님! 역시 해내셨군요!]
“액상 가스켓은 처음이라 예상보다 지체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맙소사. 금속분리판보다 가스켓을 더 잘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김태호도 자신의 금속분리판이 유독 특별함을 알고 있었다. 결국 오버스펙을 보인 것은 수많은 인챈트의 조화였다.
반면에 디스펜서의 인챈트는 유독 적었다.
액상 가스켓의 표면에는 부착된 마나가 희미한 것이 그 증거였다.
[아닙니다. 제 소재만으로는 이렇게 좋은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혹시 작업과정에서 문제점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양산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제작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요.”
김태호는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을 털어놓았다.
직접 제작한 결과 실리콘이나 고무 같은 비금속 가스켓이 금속 가스켓에 전혀 밀릴 소지가 없어 보였다.
다만, 현재 사용하는 디스펜서는 토출구 하나로만 작업이 가능했다.
결국 가스켓 모양을 그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 속도가 결코 느린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더 줄일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면 토출구가 여러 개라면 작업시간은 더 단축될 터였다.
로보트 암까지 쓰면 곧바로 자동화 체제까지 가능했다.
김태호는 그 모든 것을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설명했다.
[그러면 해보시겠습니까?]
“네?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김 사장님 덕분에 일정이 아주 넉넉합니다. 그러니 방금 전에 말씀해보신 것을 해보세요. 이번 기회에 특허까지 진행하는 것이죠.]
“특허요?”
김태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그쪽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어차피 한 번은 숙제를 내드리려고 했거든요. 마침 자율적으로 찾은 주제이니 동기부여도 확실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확실히 지금이라면 뭔가를 더 해내고 싶으니까요.”
[피드백과 데이터 정리는 얼마든지 지원 해드리겠습니다. 구상한 것을 한 번 해보세요.]
“얼마든지요.”
서문철의 숙제를 김태호는 거부하지 않았다.
전화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직원들과 회의를 했다.
그 결과 가스켓 모양의 틀을 제작하기로 했다.
모델을 정한 뒤에는 시뮬레이션이었다. 틀에서 찍어내듯이 액상의 소재를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틀에는 바닥에 얇은 구멍을 여러 개를 뚫었다.
토출구에서 흐르는 소재가 틀을 타고 금속분리판에 떨어졌다.
몇 번을 실험했지만, 첫 시도는 실패였다.
가스켓에서 응고가 되어 구멍이 막히는 현상이 거듭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금속분리판에 떨어진 소재는 가스켓의 흉내도 내지 못했다.
그 치명적인 문제를 수정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바라는 것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아. 맞아. 나보다 먼저 특허로 나온 내용이 있을 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문득 든 생각에 아차 싶었다.
남들이 먼저 해두었다면 헛고생이었다. 그는 비슷한 내용이 있는가를 살폈다.
“휴우. 다르구나.”
유사한 것은 있지만, 그중에서 서문철의 신소재에 해당할 것은 없었다.
계속 진행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거면 될 것 같은데?”
그것들을 살피다 김태호는 이 난관을 해결할 방안이 떠올랐다.
* * *
서문철의 국책과제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재영공업 덕분에 마지막 생산을 남겨두고 있었다.
성공을 목전에 두고 멈춰진 상태이지만, 초조하지는 않았다.
이미 프로토 타입이 이론값을 상회했기 때문이다.
건일ADOS의 건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걸 상정했음에도 2%나 더 높은 효율이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 재영공업의 가스켓 덕분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거지. 금속 가스켓도 저번이 처음이었는데.”
데이터를 살펴볼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김태호라는 사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하는 것일까.
“이번 특허는 어떨까.”
그래서 김태호가 진행 중인 특허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뭘 생각하더라도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남자였다.
“교수님. 재영공업에서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확인할게.”
조교의 말에 서문철은 곧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첨부파일 중에 하나에는 가공 동영상이 있었다.
“뭐지? 저 금형은.”
첫 부분부터 일시 정지를 눌렀다.
직전의 것은 토출구 바로 아래에 가스켓 모양의 틀이 있었다. 그때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었다. 틀에다가 구멍만 뚫어서 소재를 흘러 넣을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구멍만 뚫려있던 틀의 바닥에는 토출 건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군. 저걸로 양을 조절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래 봐야 문제는 같을 것인데.”
소재를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라면 마치 생크림을 짠 것처럼 표면이 변했다. 그러면 스택의 조립시에 빈 공간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은 곧 부서졌다.
디스펜서는 전과 달리 움직임을 시작했다. 다만, 아주 조금씩만 움직이는 것으로 끝이었다.
금속분리판의 가스켓은 원형이 양 끝에 들어갔다. 그냥 소재만 흘려보내면 거기에서 문제가 크게 나올 터였다.
그때 각 배출구 밑에 설치된 가이드가 빛을 발했다. 곡선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매끄럽게 작업이 된 것이다.
전처럼 재료가 응고되지도 않았다. 폐쇄형으로 만든 덕분에 온도가 유지가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스켓의 표면도 울퉁불퉁함이 없이 매끄러웠다.
“허허허, 말이 쉽지. 이걸 해낸다고?”
서문철은 가공영상을 보고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는 이로써 기존의 작업시간을 무려 절반이나 단축시켰다.
같이 첨부된 레포트에도 감탄했다. 이 정도면 특허를 등록하는데 크게 더 손을 댈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김태호는 연구실의 조교만큼이나 레포트를 작성할 수 있던 것이다.
서문철은 만족스러움을 표하며 조교와 함게 수소연료전지를 가동시켰다.
“온 세계가 주목하겠구나!”
데이터가 쌓이고 그걸 분석에 들어가자 서문철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뜬 수치들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직전의 것보다 더 높아진 효율은 현재 시장에 나온 고분자 전해질형(PEMFC)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효율을 보였다.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걸 깨달은 그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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