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19화 (19/49)

19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비밀입니다. 기껏 말했는데 실리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글쎄요. 벌주를 드신 것을 생각하면, 확신이 서신 것 같은데.”

“아하하. 곧 알게 됩니다.”

서문철의 자신감은 취기로도 감춰지지 않았다.

김태호는 궁금했지만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과일도 무르익을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하는 법이다.

“기대하겠습니다.”

“물론이죠. 기대에 못 미치면 제가 벌주를 마시러 가죠.”

“알겠습니다. 그때는 제가 사도록 하죠. 다른 분들도 그때는 시간을 좀 내주세요.”

그랬기에 서문철의 장단에 맞추어주었다.

다른 이들도 웃으며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는 막힘이 없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술자리는 오래가지 않고 끝났다.

1달이 지난 뒤, 김태호는 여전히 그 답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조급하지는 않았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언젠가는 당연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넘겨왔기 때문이다.

[서문철 : 김태호 사장님. 택배가 도착했으니 확인해보시죠.]

“드디어 왔구나.”

그랬기에 서문철의 톡은 만사를 제쳐두게 만들었다.

김태호는 사무실에 도착한 택배를 확인했다. 생일선물을 개봉하던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이 일었다.

“와! NESIA잖아!”

꺼내자마자 드러난 책 한 권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지를 꼽으라면 항상 NESIA부터 거론되었다. 특히 에너지쪽으로 각광을 받아 학생 때부터 종종 뉴스로 접해왔었다.

“서 교수님이 투고를 한다는 것이 여기였구나. 맙소사!”

표지를 장식한 인물도 서문철이었다. 왜 그가 기대하라고 한 것인지 십 분 이해하고야 말았다.

김태호는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첫사랑에게 고백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동을 품은 손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NESIA를 어루만졌다.

NESIA에 재영공업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사실이 주는 감동은 형언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김태호는 행여 구겨질까봐 조심스럽게 한 장씩 넘겼다. 빼곡하게 채워진 수많은 데이터. 그걸 읽는 두 눈은 떨림을 감추지 못한 손과 달랐다. 생산된 제품을 살피는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가 기다리던 것은 아직이었다.

그런데도 하나하나 주옥 같은 내용들 뿐이었다. 이건 허투루 놓칠 수 없었다.

김태호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나왔다.”

절반 쯤 읽었을 때.

드디어 서문철이 투고한 논문이 나왔다.

재영공업이 거론된 것은 후반부였다.

건일ADOS의 테스트에 참여하면서 업계의 후발주자임에도 눈부신 성과를 거둔 예시였다.

금속분리판의 가공은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었다. 그랬기에 수많은 기업들이 도전을 하고 있었다.

국내외를 통틀어 재영공업과 같은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서남부발전소까지 적은 이후, 서문철은 기술력만큼 중요한 기술자에 대한 것을 강조했었다. 물론 그 주인공은 김태호였다.

제3자의 시선으로 써내려진 김태호의 존재는 마치 기적과도 같을 일을 당연하게 해낸 것이다.

김태호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귀를 닫고 있으려고 해도 아직 그와 재영공업이 한 일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래도 그럴 수 있을까?”

시기. 질투. 부정.

그들을 조롱하듯이 서문철의 논문에는 거짓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사실만 나열되어 있었다.

학회에서 나오던 썰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었다.

NESIA에 실린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터였다.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라 치부될 일들이 사실이라고 검증된 것이다. 이로서 수많은 석학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김태호의 곧바로 서문철에게 톡을 보냈다.

[김태호 : 최고의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서 교수님.]

[서문철 : 최고는 김 사장님입니다. 다른 사람은 감히 넣을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까요.]

[김태호 : 그렇군요.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국책 과제 최고의 결과로 만들겠습니다.]

김태호는 말이 유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것에 익숙했다.

[서문철 : 건일ADOS쪽에서도 협조한 결과물이라는 것만 잊지 말아주십시오.]

서문철의 마지막 답변에 김태호는 자연스레 백광석을 떠올렸다.

건일ADOS는 여전히 재영공업을 최고의 조건으로 우대하고 있었다. 같이 국책을 진행하던 사람들의 말대로 슈퍼 을이라는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김태호는 의욕이 충만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일에 집중을 하고 있었지만, NESIA의 효과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저번 투자사건 때보다 상향된 제의가 쏟아졌다.

김태호는 어떤 금액이 찍혀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리한 확장이나 계약상의 변동은 그가 지켜온 신뢰에 금이 가는 행위였다.

그 이외에 건일ADOS보다 무조건 배로 줄 것이니 자신들의 금속분리판도 가공해달라는 제의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재영공업은 충분히 많은 일을 받고 있었다.

“이건 고민해야겠지만.”

모든 것이 사업이야기는 아니었다.

여러 매체의 취재 요청들도 쏟아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언론에는 소극적이었다.

건일ADOS를 통한 것이 아니면 아예 접촉도 꺼려했었다.

재영공업에 지나친 관심이 자칫 독이 될까 우려스러웠다. 아직도 김태호는 재영공업이 무너지던 날에 쏟아지던 비난들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김태호도 욕심이 있었다.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재영공업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보여줬다. 단언컨대 아버지의 시대보다 더 장래가 밝다고 할 수 있었다.

과장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될 시기였다.

“재영공업도 이미지를 만들어야해.”

재영공업은 흔하디흔한 회사가 아니었다.

이번에 쏟아지는 관심을 흘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걸 이용해 인지도를 확실하게 굳힐 생각이었다.

내실만 다져서는 안 된다. 금속분리판으로 기술력과 품질은 이미 수없이 보여줬다.

그러나 부족하다.

업계관계자가 아닌 이들도 알 수 있어야만 했다.

“정작 고객들도 재영공업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포털에 재영공업을 치면 수십 개의 업체가 나왔다. 그중에 어떤 것이 김태호의 재영공업인지 일일이 찾아봐야만 했다. 여기에서부터 진입장벽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 회사를 알아야 사람들이 지원을 하지.”

중소기업을 꺼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 옥석을 가리기란 너무 힘들다.

재영공업이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만 했다.

“회사 홈페이지부터 만들자.”

먼저 관련 업체에 연락을 해 뼈대를 잡았다. 거기에 올리기 위한 자료 중에는 당연하게 언론과의 인터뷰도 있었다.

건일ADOS의 협력사부터 서남부발전소의 시공식. NESIA의 논문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간 노력을 한 결과물을 고작 이걸로 표현하기에는 아깝다.

김태호는 여러 언론을 검토했다. 공중파 뉴스와 경제지 인터뷰로 하나씩 가닥을 잡았다.

*       *      *

“왜 다들 퇴근 안 해요?”

김태호는 미심쩍은 눈으로 직원들을 바라봤다.

생산관리쪽에서 일정을 잘 관리하기도 했고, 그도 무리하게 일을 잡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무리하고 야근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퇴근시간이 1시간은 넘게 지났음에도 직원들은 모두 휴게실에 모여 있었다.

“뭐긴요. 오늘이 그 날 아닙니까.”

“이런 날은 같이 봐야지.”

“여기 팝콘이요. 같이 드실 분?

직원들은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브라운관에 꽂혀 있었다.

김태호는 그게 탐탁지 않았다.

“···퇴근하셔도 되는데요.”

“안됩니다. 남아야죠.”

“일 끝나고 쉬는 거잖습니까.”

“사장님도 앉으시죠. 흐흐.”

직원들은 아예 정중앙의 자리를 비워뒀다. 머뭇거리던 김태호가 자리에 앉았다.

9시가 가까워질수록 직원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에 김태호는 얼굴이 불덩이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9시 뉴스한다!”

“우와아아아!”

9시 정각.

공중파의 뉴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직원들은 축제처럼 환호했다.

“······.”

김태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쪽 다리가 방정맞게 덜덜 떨렸다.

[금일 오전 7시 경에 교통체증은······.]

“아아. 이번에도 아니네.”

“우리는 언제 나오냐.”

뉴스 하나하가 나올 때마다 탄식과 야유가 나왔다. 그들이 기다리던 단 하나의 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대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절감입니다. 그걸 위해 에너지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수소입니다.]

[네. 특히 수소연료전지는 국내외 수많은 업체들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내의 한 소기업이 세계에 견주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바로 재영공업입니다. 윤현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드디어 재영공업의 차례가 나타났다.

회사의 전체 풍경이 드러나며 문앞에 선 기자에게로 천천히 클로즈업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김태호는 재영공업을 소개하는 멘트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공장의 A동과 B동의 작업환경이 차례대로 비추어지며 나타나는 문구는 놓치지 않았다.

건일ADOS의 테스트가 소개되며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금속분리판 가공을 혼자 해내는 젊은 인재라는 문구가 뜬 직후였다.

[김태호 대표 / 재영공업.]

“으아악!”

그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나타나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금속분리판은 스택을 구성하는 핵심부품입니다. 수소와 산소······.]

브라운관에서 그는 금속분리판에 대한 짧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재영공업에서 가공한 금속분리판이 클로즈업되며 그가 거둔 성과가 세계시장에서 어느 정도인지 기자의 음성으로 설명이 되었다.

두 번째 등장한 컷신에서 김태호는 현 시점에서의 사업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했다.

나머지는 기자의 몫이었다.

건일ADOS가 진행 중인 수소연료전지의 연구성과가 간략하게 설명되며 서문철 교수의 논문을 통해 강조된 재영공업을 포함해 소기업등의 성장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났다.

“으하하하! 우리 사장님 말씀 잘하시네! 하루종일 준비한 보람이 있으셨네!”

“짧게 하신 것치고 너무 잘 하셨어요!”

“우리 회사도 9시 뉴스에 나오네!”

직원들은 화면에 지나갔던 당당한 모습의 김태호를 잊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지 곁에서 오랫동안 봐왔었다.

“···다 보셨으면 다들 들어가세요. 내일도 일하셔야 하잖아요.”

붉어진 얼굴로 김태호는 얼른 티비를 껐다.

직원들도 볼 것은 다 봤으니 웃으면서 퇴근을 했다.

“그래도 뿌듯하네.”

김태호도 해당 뉴스의 링크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퇴근을 했다.

경제지 인터뷰는 다음 주에 발간이 되면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남은 것은 그 사이에 잡은 자잘한 인터뷰들이었다.

“서 교수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하셨습니까.”

[9시 뉴스에 우리 김 사장님이 나와서 전화 드리는 거죠. 인터뷰 잘 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직원들도 웃고 가더라고요.”

김태호는 머쓱함을 참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볼을 긁적였다.

[사실 그 이외에도 고민이 있어서요.]

“고민이요? 어떤 거죠?”

[국책 과제 때문입니다. 저번에 새로운 소재는 거의 다 개발되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네. 그러셨죠.”

김태호도 이 이야기에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책 과제의 수행은 그에게도 몹시 중요했다.

[이론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봤는데, 영 결과가 좋지 않아서요.]

“이런······.”

김태호도 안타까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냥 방관할 일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가서 보도록 하죠. 어차피 그 소재로 가스켓을 만드는 것은 저잖습니까.”

[감사합니다. 사흘 내에 회사에 직접 방문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도록 하죠. 일단 교수님의 설명도 같이 들어야만 할 것 같아서요.”

김태호는 일정을 확인했다. 이번 주는 시간을 뺄 수 없었다. 다른 업체들의 방문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네. 감사합니다. 그때까지 안심할 수 있겠군요.]

“저번에 약속한 술 한 잔도 사야 하니까요.”

김태호도 과연 무엇이 문제일지 궁금해졌다. 서문철에 닥친 난제가 이상하게도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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