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17화 (17/49)

17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먼저 단가 때문에 공정을 최소화한 것이라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되었다. 아예 재료부터 바꾸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고무가 좋을 거야.”

그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레포트를 써내려가자 자판을 두들기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뼈대를 만들고 살점을 채웠다.

마무리만 남겼을 때는 아침이었지만 피곤함을 잊은 얼굴은 활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만들어보는 거지.”

김태호는 단순한 학부생이 아니었다.

레포트만 써서 보내는 것은 성미에 차지 않았다. 마지막은 그에 맞는 결과물로 끝낼 생각이었다.

남들의 것이 아닌 자신이 조사한 것으로 만든 결과물!

그는 벅차오르는 고양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때까지 생업이었던 것을 공부로 접한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먼저 기존의 가스켓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걸 기반으로 개선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가공 시에 놓친 부분이 있으면 안 되었다.

사전조사는 완벽해야만 했다.

“특허까지 낼 정도의 제품이었구나.”

자료를 찾아본 김태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내용은 충실했다.

저런 결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인력과 개발비가 들어간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품을 이렇게 만든 거야?”

저 내용대로라면 이런 품질로 나오면 안 됐다.

그랬기에 금형의 설계에 더 신중을 기했다.

모델링 부분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검수를 했다.

재영공업에서 발주한 금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가 기존의 금속 가스켓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고무 가스켓을 위한 사출금형이었다.

금형이 오기 전, 건일ADOS의 직원이 문제가 생긴 수소연료전지의 스택을 교체하러 왔었다.

“수고 많으시네요. 혹시 뭐 하나만 여쭈어 봐도 될까요?”

작업에 한창일 때.

김태호는 차가운 탄산음료를 건네며 물었다.

“어이쿠, 김 사장님.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건일ADOS의 직원은 넙죽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흔히 말하는 갑질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것이 지금의 재영공업이었다.

“이번에 금속분리판에 생긴 문제가 가스켓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이번 스택에 좀 잦네요.”

“가스켓이 전과 다른 거죠?”

“업체는 같은데 제품만 바뀌었죠. 이번이 유독 더 그러네요.”

건일ADOS의 직원은 불만을 술술 이야기했다.

가스켓이 바뀌고 스택조립 과정에서 불량률이 올라갔다. 특히 가스캣의 품질이 좋지 않아 금속분리판에 구겨지는 형태가 종종 나온다는 것이었다.

“재영공업처럼 좀 가공을 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에휴.”

“고생 많으시겠어요. 계속 갈아 주셔야 하는데.”

김태호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기껏 만든 제품이 타의에 의해 불량이 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수소연료전지의 스택이 교체된 날부터 김태호는 이번에 사용할 인챈트들의 점검에 들어갔다.

금속 가스켓의 가공에는 새로운 인챈트가 추가될 요소가 없었다.

그보다는 사출성형이 문제였다. 해당 가공에 필요한 인챈트가 따로 있을 터였다.

“보자, 사출이······.”

김태호는 먼저 사출성형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공부했다.

이론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보니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꼽은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출성형기와 금형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인챈트였다.

바로 내열성강화였다.

예전에 필립이 탁자를 불태웠던 것을 더듬었다.

그때 인챈트는 온도를 올린다와 성질을 이전한다로 나눌 수 있다.

이번에는 그 온도에 집중했다.

이걸 응용해서 고온에 강해진다로 바꾸었다.

아아아아아!

“좋아.”

한 번 다듬은 인챈트 문장을 곧바로 종이에 썼다.

인챈트는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그만을 위한 빛과 소리의 연회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인챈트가 된 종이에 직원이 두고 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일반적인 A4 용지임에도 곧바로 불타지 않았다. 몇 초 동안은 그을음만 생기다가 불이 조금씩 붙었다.

그러다 인챈트가 된 문장이 훼손되면서 한 순간에 재가 되었다.

“좋아! 이렇게 되는구나!”

바쁜 와중에도 인챈트 공부는 틈틈이 했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응용을 해도 성공으로 드러난 것이다.

두 번째는 사출금형에 들어가는 재료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바로 용융온도 하락이었다.

이걸 하는 이유는 사출이 될 재료가 빨리 녹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출속도마저도 줄일 수 있었다.

방금 전에 한 것을 역으로 바꾸는 것이면 충분했다.

이번 대상은 아크릴이었다.

기존에는 불을 붙이면 그을음과 함께 표면의 일그러짐이 조금씩 일어났다.

용융온도 하락이 인챈트가 된 아크릴은 달랐다.

라이터의 불에 닿자 표면의 일그러짐과 그을음의 속도는 빠르게 확장되었다.

“이런 맛에 공부를 하는 거지.”

김태호는 최종점검 후에 인챈트된 철판을 만들 준비를 했다.

곧장 머시닝 센터에 철판조각을 물렸다. 짜둔 프로그램 코드를 집어넣자 물려진 가공물이 완성 되었다.

그때마다 펼쳐지는 빛과 소리의 연회. 김태호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       *       *

저번에 주문했던 두 개의 금형이 드디어 도착했다.

김태호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장A동의 생산라인은 건드릴 수 없었고 B동은 직원들이 한창 일을 했기 때문이다.

모두 퇴근을 한 뒤에야 B동의 금형을 세팅할 수 있었다.

“음. 이 부분에서 덜 들어가네. 왜 이렇게 깎은 거야.”

시범가공 후, 결과물을 본 김태호는 투덜거렸다.

그가 아무리 설계를 잘 했어도, 금형제작은 재영공업의 몫이 아니었다.

일정의 문제 탓에 평소와 다른 업체에 맡긴 것이 문제였다.

다시 금형을 보내 수정을 요구했다.

해당 업체는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기계는 속여도 재영공업은 속이지 못한다. 그건 인근의 공단에 널리 퍼진 말이었다.

두 번째부터 가공회사는 아예 재영공업에 찾아와 물건을 가지고 갔다. 특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상세하게 피드백을 받고 물러날 정도였다.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지.”

네 번의 수정 끝에 드디어 만족할 수준이 되었다.

그 말을 들은 가공회사의 직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러났다.

주변의 반응이 저러니 김태호는 뭔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만 했다.

모든 직원들이 퇴근 후, 김태호는 금형에 인챈트 철판들을 용접했다.

“그래. 이거지.”

프레스 기계에 압력이 가해지며 금형이 맞닿았다. 서로 부딪히며 어울리는 마나의 흐름은 두 주먹에 땀을 맺히게 만들었다. 이윽고 드러난 결과물에 절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표면에 부착된 마나가 그의 계산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금속 가스켓은 순조롭게 만들어졌다. 금형을 계속 수정가공한 보람이 있었다.

“그래도 끝은 거칠어지는 구나.”

결과물에 옥의 티가 있었다.

기존 가스켓의 문제점이 그의 것에도 나타났다.

특허자체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해당 부분만 아주 조심스럽게 표면가공을 시도했다.

“제기랄!”

그러자 가공면에 부착된 마나 일부가 날아가고야 말았다.

김태호는 방법을 바꿨다. 금형에 추가적으로 탈각효과를 적용하고 가공한 것이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완전하게 해소가 되지는 않았다.

“이러면 방도는······.”

김태호는 용접했던 탈각효과를 떼어냈다. 그리고 탈각효과 인챈트를 더 길게 해서 철판을 만들었다.

“멍청하게 있는 그대로를 쓰다니.”

그는 자신의 멍청함에 혀를 찼다.

방금 전에 떼어낸 탈각효과는 CNC나 밀링에 쓰던 그대로였다.

사출성형기와 그 기계들과는 달랐다. 그걸 망각하고 기존의 인챈트를 한 것이다.

새 탈각 인챈트 철판을 금형에 용접했다.

그 뒤에 나온 결과물은 표면가공을 추가할 필요가 없는 수준까지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남았다.

제품을 보면 그가 만든 것이 더 좋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정확한 데이터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어쩔 수 없이 이건 서문철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그 다음은 사출성형이었다.

“이제 너의 차례다.”

김태호는 공장의 구석으로 갔다.

비닐커버를 걷어내자 오래된 사출성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쓰네. 드디어.”

감격에 찬 손길로 오래된 사출성형기를 어루만졌다.

사출성형은 예전에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일거리를 잡지 못해 포기해야 했었다.

그런데도 사출성형기는 처분하지도 못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묵혀뒀었다.

“모든 물건은 쓰일 때가 오는 거라니까.”

금형이 오기 전, 사출성형기의 부품을 인챈트 부품으로 교체했었다. 그 증거로 마나막이 겹쳐져 있었다. 그중 유독 두드러진 것은 실린더 부분이었다.

압력을 가하는 부분이기에 조금의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잘 작동하겠지?”

거의 2년 동안 묵혀둔 기계다. 막상 인챈트로 보완해도 불안한 점은 남았다.

우우우웅!

사출성형기는 우려와 달리 잘 작동이 되었다. 그렇다고 가공이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사출성형 자체가 오랜만이라 제대로 된 가공이 되지 않았다.

금속 가스켓 제작 때보다 더 난항을 겪은 상황!

김태호는 초조함을 인내심으로 억눌렀다.

어쨌든 가공품에는 마나가 부착되어있었다.

인챈트가 되었다면 남은 것은 오로지 작업자의 감각일 뿐이었다. 그 감이 잡히면서 점점 양품만이 나왔다.

“재밌네. 드디어 이걸 써서인가?”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할 작업. 그걸 하면서도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레포트와 함께 가공품을 서문철에게로 보냈다.

건일ADOS의 테스트 때보다 더 긴장이 된다는 사실에 김태호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어쩐지 늦어지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제품까지 만들었을 줄이야!”

서문철은 레포트와 함께 온 가스켓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준비할 줄은 몰랐다.

연구 때문에 지쳤지만, 그는 김태호가 작성한 레포트를 검토했다. 그건 서문철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 친구가 눈썰미가 남달라. 그렇지 않아도 이 가스켓이 불만이었는데.”

진즉에 서문철도 가스켓을 우려했었다.

건일ADOS의 개량스택에 쓰는 걸 반대도 했었다.

새로운 특허까지는 좋았었지만, 그 회사의 품질에 대해서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려대로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

만약 김태호가 2달 만에 문제의 금속분리판을 현실화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로 번졌을 것이다.

“이러면 국책 과제를 바로 해도 되겠는데.”

서문철도 몸이 달아올랐다. 그의 국책과제는 하이브리드 재료를 쓰는 새로운 가스켓이었다.

김태호에게 금속분리판만이 아니라 가스켓도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조교야. 이거 네가 한 번 검사 해 봐라.”

서문철은 조교에게 해당 제품의 검사 및 해석을 맡겼다.

며칠 뒤.

조교는 퀭해진 눈으로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서문철에게 건넸다.

“교수님, 전에 맡기신 물건 자료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재영공업이 진짜 대단하네요. 데이터가 너무 좋아요.”

“그렇지? 당연한 일이야. 재영공업이라고.”

서문철은 읽고 있던 논문을 내려놓았다.

곧이어 조교가 직접 뽑은 데이터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크게 웃었다.

“으하하! 그래. 이래서 건일ADOS가 그렇게 잡으려고 애를 쓴 거지! 이거 봐봐라. 문제가 된 가스켓이야. 보다시피 네가 조사한 것의 원본모델의 자료가 이거지.”

한쪽에 쌓아둔 자료를 건넸다.

조교는 그제야 서문철의 반응을 이해했다.

“재영공업의 것이니 이제는 놀라는 것도 지칠 정도네요.”

“그것도 맞지. 그래도 가스켓을 처음 해보는 업체가 문제점을 개선한 모델이 두 개나 내놨어. 너보다 어린 친구가 말이야!”

서문철의 밑에 있는 조교도 충분히 똑똑했다. 가르치던 학생 중에 제일이라 생각했기에 대학원을 제의했었다.

김태호는 그걸 훌쩍 뛰어넘었다.

“이 친구 진짜 대단해.”

금속 가스켓만 해도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단점을 보완했고 조금이지만 더 상향된 성능을 보였다. 당장 문제가 되는 스택조립 과정에서 불량률이 대폭 줄어들 터였다.

고무로 만든 가스켓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가 되는 단가도 더 줄였고 밀봉력도 기존의 것에 밀리지도 않았다.

“왜 연구직을 못 구하는 줄 알겠어. 혼자서 이렇게 잘하는데 누가 눈에 들어오겠냐고!”

서문철로서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렇게 힘겹게 내놓은 것을 김태호는 혼자서 넘어 서버렸다.

“오히려 내가 많이 배워야겠군.”

서문철이 아무리 지식을 쌓아도 한계는 있었다.

그가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증명할 수 없다면 헛된 수고가 될 터였다.

완벽한 이론을 현실화 시켜줄 수 있는 사람.

연구직에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바랄 인물이 바로 김태호였다.

서문철은 곧바로 국책을 위한 미팅을 잡았다. 정체가 되었던 과제가 실현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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