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16화 (16/49)

16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서문철은 수업을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2시간 동안 혼자 떠든 탓에 입안이 텁텁했다. 커피를 내리는 중에 백광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쩐 일이야. 또 검토할 자료가 있어?”

백광석은 그에게 흥미로운 숙제를 주는 친구였다.

건일ADOS의 중소기업 테스트부터 저번 문제의 연료전지 스택까지.

모두 자문을 맡아달라는 백광석의 제의가 있었다.

[그건 아니야. 따로 물어볼 것이 있었거든.]

“그래? 아쉽네. 난 그 서남부발전소 이후로 재밌는 일거리가 없거든.”

[자네가 거기에 관심이 있는 건 알아. 하지만 물건보다는 사람한테 더 있지 않았어?]

그 물음에 서문철은 고민도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마침 자네 협력사잖아. 소개 좀 시켜줄 수 있어? 국책과제 때문에 상담 좀 하고 싶었거든.”

[참 진국이야. 그 젊은 친구가 수소연료전지에 대해서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는데 기회가 없지 뭐야.]

“말 빙빙 돌릴 필요가 있나? 연락처나 줘. 직접 찾아가지. 사람은 보기 전에 모른다고.”

서문철은 제3자를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싫었다. 사건은 당사자를 통해서 일어나야만 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재영공업의 사장 김태호라고 합니다.”

김태호는 익숙하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를 보는 서문철은 기대감에 가득 찼다.

“김 사장님은 정말 젊으시네요. 이야기를 들은 것보다 더요.”

“저도 백 연구소장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김태호는 서문철의 방문을 고대했다.

광양공업대 교수이자 한국연료전지학회에 속한 인물. 특히 백광석도 자문을 구할 정도의 인물이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회사부터 소개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기적을 만든 회사를 직접 볼 수 있다니 행운이군요.”

“기적이요? 하하. 그렇죠.”

김태호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항상 묘한 어감을 남겼다.

남들의 눈에는 기적이다.

하지만 재영공업의 저력을 본 이들이라면 기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서문철도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먼저 A동은 본사의 주력인 금속분리판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델프 사의 프레스 기계로 라인을 구축했는데, 자동화의 실적이 좋아서 추가로 증설할 예정이죠.”

“과연. 체계만 갖춰진다면 자동화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죠.”

“예. 세팅부터 품질까지 제가 직접 하니까 문제가 될 소지도 없죠.”

김태호는 자부심에 가득 찼다. 자동화의 실적은 예상보다 더 좋았다. 건일ADOS에서 추가로 발주를 준 이유이기도 했다.

“B동은 과거 재영공업이 하던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머시닝 센터를 포함한 가공 기계들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죠.”

“과연. 세월을 담은 기계들은 다 역전의 명수 같군요.”

“사라지지 않는 노병이죠. 저기 프레스 기계들이 건일ADOS 테스트를 담당했던 것들입니다.”

“···맙소사.”

서문철은 두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다. 소문으로 익히 들었다. 반쯤 과장이라 생각했지만, 온전한 진실이었다.

저걸로 금속분리판을 가공했었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

“2차에서 300장은 어떻게 맞춘 겁니까?”

“금형을 바꿔가면서 계속 작업을 했습니다. 직원들의 손을 빌릴 수 없어 퇴근 시간 넘겨서 혼자서 했죠.”

“···엄청나군요. 김 사장님은.”

서문철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단순히 논문을 쓰고 학회만 다니던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최근에는 국책과제를 위해 발로 뛰어다녔다.

그래서 비교적 현장을 잘 알았다.

김태호가 한 일은 그의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들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습니다. 정말로요. 혹시 금속분리판을 가공하실 때······.”

서문철은 직접 재영공업을 보며 생긴 의문점들을 물어봤다.

김태호는 그것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단순한 가공만이 아니라 수소연료전지에 관한 질문도 제법 능숙하게 답했다.

백광석의 단기교육에 독학한 지식이 채워진 결과였다.

역으로 서문철에게 궁금한 것을 던졌다.

그때마다 서문철은 깜짝 놀랐다. 그가 가르치는 학부생 수준을 아득히 넘는 수준의 질문도 있었다.

“제가 김 사장님이 젊다고 오해했군요. 재영공업이 한 것은 기적이나 우연이 아니었군요.”

서문철은 김태호가 기술자로서 엄청난 능력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배우려고 하니,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재영공업이야말로 내가 찾던 업체다.’

서문철은 파트너가 될 곳을 찾았다. 재영공업이야말로 그가 찾던 기술력을 가진 회사였다. 정확하게는 김태호라는 존재뿐이었다.

‘엄청난 원석이야. 옆에서 조금만 알려줘도 뭐든지 할 수 있을 사람이 분명해.’

세상에는 간혹 주변을 좌절하게 만들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들 중에 일부는 남들의 노력을 비웃을 정도로 게으른 삶을 추구하고는 했다.

김태호는 오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남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백광석이 말이 맞았다.

김태호는 지식에 굶주림을 느꼈다. 그래서 연구직을 찾는다는 말이 기억났다.

“김 사장님은 연구개발쪽으로 투자를 계속 진행하실 것입니까?”

“네,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전문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연구인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죠. 하지만.”

김태호라고 모든 것이 순탄하지 않았다.

건일ADOS 방문 이후로 꾸준히 연구직들을 모집하고 면접을 봤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재영공업의 처음을 맡길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투자를 보류할 겁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재영공업의 규모와 방향성 때문입니다.”

짧게 답했지만 가벼운 문제는 아니었다.

재영공업은 김태호 혼자의 힘으로 돌아가는 회사였다. 방향성과 성장은 오로지 그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김태호는 연구개발에 문외한이었다. 방향성을 잡아줄 경력과 실력을 가진 이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재영공업은 작은 회사였다. 그런 고급인력들이 재영공업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현실적인 조건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회사의 초석을 다질 인물인데 아무나 들일 수 없죠.”

필연적으로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연구직에 의지할 터였다. 그 초석에 위험요소를 하나라도 줄여야만 했다. 확실하지 않은 투자는 재영공업의 파산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서문철 교수님과 이야기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분이 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김태호는 그런 인재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재영공업을 키울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계시면 뒤쳐지지 않겠습니까?”

“아까 전에 질문에 답할 때, 막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 알아야 합니다. 사장이 무능하면 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부족한 지식을 쌓으면서 점진적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멋진 자세군요. 그렇게 하지 않고 방만하게 경영하는 분들이 많은데.”

서문철은 감탄하면서도 그를 도울 제도가 생각이 났다.

“중소기업 R&D지원은 어떠십니까. 해당 문제에 대해서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 중입니다. 수소연료전지 쪽은 유망하니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아서요.”

“크흠. 사실 국책과제 수행을 위해 협력업체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는 것은 어떠신가요.”

“서 교수님과요?”

김태호에게는 뜻하지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서문철의 방문목적이 궁금하던 차였다.

“재영공업을 보면서 여기여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와 함께하신다면 김 사장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렇겠죠. 서 교수님이 하는 분야라면 당연히 수소연료전지일 테니까요.”

“예. 그 기간 동안에 제가 직접 수소연료전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필요한 인맥도 생길 수도 있겠죠.”

“······.”

김태호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그래. 억지로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것보다 더 좋아.’

그는 결국 마음을 굳혔다.

“연구개발쪽으로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전 좋습니다.”

결국 이쪽의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더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절 도와주시는 것에 조금도 후회가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대학원 진학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제가 대학을 자퇴했거든요. 사이버대학이라도 다닌 후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군요. 그러면 도움이 될 논문과 서적을 추천하겠습니다. 연구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숙제도 내어드리겠습니다.”

“서 교수님에게 배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김태호는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만남은 만남을 불러왔다.

*       *       *

[미리 알고 있었던 겁니까?]

며칠 후, 전화를 하던 서문철은 경악했다.

김태호가 그 짧은 시간 만에 추천받은 모든 서적과 논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답이 올 정도로 이해도도 높았다.

“교수님이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덕분이죠.”

[아하하. 그러면 이번에는 그 지식을 활용하는 것으로 해보죠.]

서문철은 교육을 조금 앞당겼다.

재영공업에 건일ADOS로부터 수소연료전지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서남부발전소에 들어간 모델로 그걸 직접 관찰하며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산출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재영공업에서 도착한 수소연료전지가 가동되기 시작한 날.

김태호는 한참을 바라봤다. 그간에는 지나치면서 잠깐만 봤었다. 이토록 오래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고 멋지기만 했다.

직원들이 퇴근하면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뽑으며 정리를 했다. 작업이 익숙해지고 자료도 쌓이자, 서문철은 그 수소연료전지의 개선할 점으로 레포트를 쓰라고 했다.

김태호는 이론값과 실제값에서 나는 차이에 대한 개선방향으로 레포트의 주제를 정했다.

재영공업은 기계적 혹은 기구적인 접근 이외에는 자료를 만들 수 없었다.

그 한계를 고려한 주제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김태호는 인챈트 돋보기로 수소연료전지를 관찰했다.

실제로 가동 중이라 멀찍이 떨어져서 보기위해 눈을 찌푸려야만 했다.

수소연료전지 안에는 소량의 마나가 있었다. 그건 금속분리판에 부착된 마나의 양을 아득히 넘는 수준이었다.

연료전지에 주입되는 수소와 산소에 마나가 함유되었기 때문이다.

그 흐름에서 김태호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주입된 마나가 금속분리판에 부착된 마나와 부딪혔다. 그때마다 작은 불빛이 터졌다. 그렇게 순환하던 마나는 물과 함께 배출되었다.

“내 금속분리판의 효율이 높은 이유야.”

그 이외의 수확도 있었다.

마나도 일정 속도의 유체 흐름에는 물체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직접 관찰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일이다. 흡족하게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연료전지 내부를 순환 중이던 마나 알갱이 하나가 돌연 외부로 새어 나왔다.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물과 함께 배출이 되어야만 했다.

그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김태호는 네 시간을 관찰했다. 대략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여긴 가스켓 부분인데.”

김태호는 뻑뻑해진 눈을 깜빡였다. 금속분리판과 접촉해있어서 전부터 욕심을 내던 부품이었다.

가스캣은 밀봉을 위해 딱 맞게 가공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금속분리판은 개발될 수록 점점 얇아졌다. 그래서 스택의 조립시에 금속분리판이 손상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터였다.

김태호는 수소연료전지의 작동을 멈췄다. 열이 식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문제가 된 부분에 닿은 금속분리판이 미세하게 접혀 있었다.

“진짜로 흠집이 갔었네.”

왜 이걸 지금에야 알았을까. 당혹스러웠지만 이걸 전화위복으로 삼기로 했다.

이것만큼 레포트의 사례로 알맞은 것은 없었다.

“가스캣 혹은 스택조립 때문에 금속분리판이 손상되어서는 안 돼. 새로운 재료? 아니면 새로운 공법?”

곰곰이 생각하던 김태호가 박수를 쳤다.

갑자기 머릿속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 하나만이 그림처럼 머리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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