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재영공업의 분위기가 점차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회사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뒤부터였다.
직원들은 전보다 당당해졌다.
전이면 다른 업체 사람이 보이면 은연중에 기가 죽어 보였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었다.
건일ADOS도 전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금속분리판을 주에 한 번씩 가지러 오던 건일ADOS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보다 더 특혜였음을 모를 수 없었다.
물론 그 특혜가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일반 직원만 왔었다.
지금은 최소 대리급이 직접 와서 제품을 확인하고 챙겨가기 시작했다.
부서도 다양해졌다.
생산관리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품질관리와 연구소 직원들도 동반했다.
과한 배려와 관심은 오히려 불편한 법이다.
김태호는 직원들이 불편함을 느끼면 제재하려고 했다. 다행이게도 건일ADOS쪽은 공장A동에만 관심을 가졌다.
“김 사장님. 가공 세팅은 얼마 만에 맞추신 거죠?”
“어떤 부분을 신경에 중점을 두시고 공정을 나누신 건가요?”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져왔다.
김태호는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답했다.
건일ADOS쪽에도 현장에 대해 알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 또한 업무적으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재영공업의 제품은 특별한 가공이라도 하는 건가요? 이렇게 불량품이 없는 경우도 드물어서요.”
“글쎄요. 저 기계는 연구소에서 쓰던 거잖아요. 그냥 금형부터 세팅까지 자잘한 차이가 누적된 것 같은데요.”
김태호는 내심 찔렸다. 인챈트에 대한 비밀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직원이 성질이전 인챈트 철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금형에 저 부분은 뭔가 다른 작용을 하는 건가요?”
“저건 그냥 남는 철판으로 하부 금형 표시한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하부에만 저 철판이 붙어있던 것이 그래서였군요.”
김태호는 침착하게 답했다.
인챈트를 알아볼 사람은 그 이외에는 없다. 그마저도 가공면은 테이프를 붙여서 확인할 수도 없었다.
“전 잠시 B동 좀 보고 오겠습니다.”
김태호는 잠깐 공장B동으로 갔다.
“재영공업이 자동화를 되게 일찍 시작했는데 되게 관리 잘 하네요.”
“맞아요.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김 사장님이 세팅을 직접 해서인지 문제도 없어 보이네요.”
A동의 공정을 보는 건일ADOS의 직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영공업은 하루하루가 달랐다.
얼마 전까지 고물 기계만 쓰던 곳이었다. 지금은 고액의 가공기계를 구입하고 로보트 암까지도 사용하고 있었다.
김태호는 젊은 나이라서인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굉장히 빨랐다. 또한 모든 공정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놀랍기만 했다.
“이래서 뭣도 모르고 재영공업의 직원을 빼돌린 회사에서 사고가 난 거였구나.”
“아. 2차 테스트에서 떨어진 LS정밀이죠? 교육 때 호들갑 떨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재영공업 건드려서 건일 자동차 일감이 끊긴다고 하더라고요.”
건일ADOS의 직원들의 이야기는 오로지 재영공업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들도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
재영공업은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사장이 1부터 10까지 모두 담당했다. 그것도 모르고 재영공업의 직원을 빼돌린 회사가 불쌍할 뿐이었다.
“재영공업이 잘 하는 것은 맞는데 왜 특별한 제품이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요. 보고서를 써야만 하는데 쓸게 없어요.”
“우리끼리 말이라도 맞추죠.”
재영공업은 특별했다. 문제는 그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계도 연구소에서 있던 것이었다. 로보트 암도 델프 사에서 흔히 파는 물건이었다. 금형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건 미스테리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해야만 하니 눈앞이 컴컴해졌다.
* * *
건일ADOS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남부발전소의 세종수소연료 발전단지의 기공식 일정 때문이었다. 해당 공사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참관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잠시만요. 일정 좀 확인할게요.”
김태호는 기공식이 뭔지도 몰랐다. 일정과 함께 어떤 것인지
‘아. 뉴스에서 보던 거구나.’
포털에서 검색하니 흔히 보던 건물 앞에서 테이프 커팅식이었다. 그랬기에 흥미로움이 동했다.
이때까지 해보지 못했던 걸 할 수 있다.
공사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수소연료전지에 대해 말만 들었지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다른 업체의 대표들도 올 것이 분명했다. 여러모로 좋은 인맥을 쌓을 기회였다.
“가겠습니다. 일정 조절이 되네요.”
[그러시면 자택으로 차를 보낼까요? 아니면 회사로 보낼까요?]
“네? 제가 건일ADOS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VIP분들은 직접 모시는 것이 사장님의 뜻입니다. 끝나고 머무실 숙소도 잡았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진짜요? 그러면 회사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떠나기 좋았다.
건일ADOS가 배려를 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성과를 거두었으니 좋은 대우와 배려를 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실적도 없던 시절에 따르던 냉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이야.”
예전을 생각하면 매일이 새롭기만 할 뿐이었다.
시공식 날에는 건일ADOS의 차가 재영공업으로 왔다. 기사가 얼마나 운전을 잘하던지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 정도였다.
건일ADOS에 도착을 하자 최건우와 백광석이 직접 그를 맞이해줬다.
“어서오세요. 김 사장님. 오는 길은 괜찮았어요?”
“같이 점심 드시고 출발하시죠.”
“네. 저야 좋죠.”
김태호는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의 생각과 달리 다른 업체 사람들은 없었다.
“최 사장님. 혹시 저만 온 건가요?”
“우리와 움직이는 것은 김 사장님 뿐이에요.”
“아······.”
김태호는 특별대우라는 것에 오히려 납득을 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던 최건우가 말했다.
“재영공업의 생산량이 너무 좋아졌어요. 품질도 흠 잡을 때가 없어서 현장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이번에 실험을 하느라 금속분리판 일부를 사용했는데 추가 발주가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일일 생산량이 늘어나서 추가 주문을 소화할 수 있거든요. 수량만 말해주시면 저번이랑 같은 조건으로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조건은 이렇게 하죠.”
“단가를 10%나 올려주신다고요?”
김태호는 깜짝 놀랐다.
최건우가 내민 발주서의 수량도 막상 소량도 아니었다. 무려 사흘치의 일이었다.
“그만한 제품이니까요. 그렇죠. 백 연구소장님?”
“물론입니다. 여길 보시죠.”
백광석이 들고 있던 보고서를 보여줬다.
“이번 연료전지군요.”
김태호는 보고서를 읽었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집중을 했다.
“이론보다 높은 데이터라니. 과연 건일ADOS네요!”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값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런데 그것조차 초월한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김태호는 위화감을 느꼈다.
최건우와 백광석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건 본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백광석은 쓰게 웃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이건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번 현상은 오로지 김 사장님의 재영공업으로 인한 겁니다.”
백광석은 추가 자료를 건넸다.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의 양산이전과 이후에 대한 데이터였다.
“맙소사.”
김태호도 두 눈을 의심했다. 양산을 한 시점의 금속분리판이 들어간 연료전지가 10%나 높은 결과를 보였다.
문제는 외형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료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
김태호도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 인챈트의 힘인가.’
하지만 어떤 인챈트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 수 없었다.
“혹시 1차나 2차 테스트 때도 이랬나요?”
“그때는 제품자체만 볼 뿐이지 실제로는 가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 사장님을 따로 보고 싶었던 것이죠.”
“과연. 그렇군요.”
김태호는 왜 건일ADOS가 신경을 써주는지 알 것 같았다.
결과 그 이상이라니!
그 어느 회사라도 재영공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버스펙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확실합니다. 재영공업을 더 보호하는 것이죠. 본사에서도 일이 있었듯이 보안을 강화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크흠. 그 문제는 건일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할 겁니다. 김 사장님이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신경을 쓸 수 있죠.”
백광석과 김건우의 제안은 솔깃했다.
“보안은 좋은 이야기네요.”
김태호도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직원이 퇴사할 때는 별 일이 없었다.
다음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그 이외에 계약조건을 높여드리고 싶습니다. 본사에서는 재영공업이 다른 곳에서 아무리 유혹을 해도 흔들리지 않게끔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돈이 목적이면 투자나 인수를 받았을 겁니다. 그보다는 성장을 원합니다. 건일ADOS와 같이 일하는 것에 아쉬움이 없게 해주십시오.”
“네. 건일그룹 차원에서 재영공업을 지지할 겁니다. 당장 건일자동차에서부터 일감을 받도록 추진하겠습니다. 그깟 투자 따위가 아쉽지 않게요.”
최건우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늘을 위해 건일그룹의 회장에게 찾아가 허락을 받았다.
재영공업을 하이에나 따위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김태호는 특별관리대상이었다.
“바로 확답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협력사이기는 하지만 건일만 고객은 아닙니다. 건일과 서로 존중을 하지만, 제약도 많아지는군요.”
김태호가 지적한 것은 일감에 대한 것이었다. 좋은 일감을 주는 것은 맞지만 거기에 재영공업의 선택권이 없었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최건우도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강압적으로 느껴지셨나 보군요.”
“재영공업이 바라는 성장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원청과 협력의 관계라고 하지만, 저희의 독립적인 경영에 침범을 받는 형태는 어떤 식으로도 계약서에 올릴 수 없습니다.”
“우리 김 사장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일정을 확인하고 추천을 드리는 쪽으로는 가능하겠습니까?”
“지금은 그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는 갑작스럽기도 하네요. 계약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니 다음에 이 부분들을 더 중점적으로 나누시죠.”
김태호는 섣불리 승낙하지 않았다. 그도 사람이었다. 건일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은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재영공업이 건일그룹에게만 의존하는 그림은 원하지 않았다.
기업관계는 냉정하다.
언제 어떻게 건일그룹의 태도가 바뀔 것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무너졌는데.’
기업간의 계약에 선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어차피 협상이 길어질수록 조급해지는 것는 건일ADOS일 뿐이니까.
‘건일그룹은 재계4위. 특히 건일ADOS는 유일하게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기술단계야.’
다른 곳의 투자 및 인수제안 덕분에 김태호의 시각은 굉장히 넓어졌다.
재영공업의 건실한 성장을 위한 최고의 선택은 건일ADOS였다.
* * *
“저기 최 사장님 오셨네.”
“옆에 누구지? 새로 온 비서인가?”
“옷차림은 인턴도 아닌데.”
서남부발전소의 공사현장.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이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건일ADOS의 사장 최건우 옆. 젊은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있었다.
특히 최건우가 귀한 손님처럼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들 오셨군요. 여기 이분이 재영공업의 김태호 사장님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재영공업의 김태호라고 합니다.”
최건우가 김태호를 소개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재영공업? 그 최우수 협력사!”
“아! 그 재영공업이구나!”
“소문의 사장을 여기서 보다니.”
다들 김태호의 이름 석 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모였다면 그 이름을 보를 수 없었다.
“역시 재영공업이니 같이 움직이는구나.”
“대단하네. 저 젊은 나이에 그런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니.”
“저 친구 결혼은 했으려나.”
최건우만 아니었다면 다들 김태호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어봤을 것이다.
지켜보던 서남부발전소의 이들도 김태호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김태호는 그런 관심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부담감 따위도 없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한 노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건방져 보이는 것은 안 되지.’
김태호는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도 넓은 발전소 단지에 틈틈이 시선을 보냈다.
그때마다 보석을 본 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이 단지에 건일ADOS의 수소연료전지가 들어설 것이다. 거기에는 재영공업의 금속분리판으로 가득 찰 터였다.
“우리 김 사장님은 제 옆에 오시죠.”
시공식의 마지막에 최건우가 그를 불렀다.
테이프를 커팅하는 사람들의 중앙에 자연스럽게 서게 되었다. 그게 재영공업의 위치였다.
누구도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시공식이 끝난 후.
김태호는 나머지 이들과 명함을 나눴다. 그들은 한 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최건우가 숙소로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몇 시간은 붙잡혔을 것이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정신이 없으셨을 텐데 어떠시던가요.”
“새로운 분들이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늘 즐겁죠. 좋은 경험이지만 자주 할 일은 아니네요.”
김태호는 뭔가 속이 후련해졌다.
전에는 재영공업과 자신을 향한 관심이 형태가 없는 허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김태호는 오늘 금속분리판에 대한 것을 보면서 확신을 얻었다.
재영공업은 아직도 시작일 뿐이었다.
‘얼마나 더 뛰어난 물건을 가공할 수 있을까.’
또한 인챈트 공부도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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