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인수인계를 준비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입사한 직원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현장직원들이 그중 제일이었다. 경력이 있어서 가공도 좋았고 작업 태도가 좋았다.
김태호의 작업요구를 적극 수용했다.
그건 결과로 나왔다.
작업량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광간섭 인챈트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눈치를 보지 않고 인챈트를 할 수 있었다.
건일ADOS가 오는 날은 폭풍전야였다.
이른 아침부터 트레일러가 회사에 도착했다.
함께 온 차량에는 건일ADOS의 직원과 설치기사들이 타 있었다.
“건일ADOS의 생산관리1팀 김해성 대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재영공업의 김태호입니다.”
“기계를 설치한 공장은 어디죠?”
“저쪽입니다. 안내하죠.”
김태호는 공장 A동을 안내했다.
전날에 테이프를 붙여 설치공간을 표시해뒀다.
델크 사의 제품을 설치하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크기였다. 설치기사들은 곧바로 설치를 시작했다.
“잠깐 김 사장님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1층 회의실로 가시죠.”
김태호는 김해성과 회의실로 갔다.
김해성은 먼저 이번에 가공할 금속분리판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확실히 테스트나 교육 때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네요.”
그 정보를 훑어본 김태호의 표정은 무거워졌다.
발전소에 쓸 금속분리판이기에 차량용과는 똑같을 수는 없었다.
‘미리 공부를 해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여러모로 답답했을 것이다.
“본사에서는 넉넉하게 기간을 드리고 싶지만, 최대 두 달 밖에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두 달 밖에요?”
“테스트 가공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기존 모델로 진행하기로 결국 결정되었습니다.”
“음······.”
김태호에게는 희소식은 아니었다. 결국 해내지 못한다면 양산은 물거품이다.
“제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만, 윗선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죠.”
“그렇죠. 어쩔 수 없죠.”
이미 동전은 던졌다.
김태호는 앞면이 나올 것인지 뒷면이 나올 것인지 마냥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두 달 만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면, 재영공업의 가공으로 계속 갈 수도 있겠네요?”
“그 기간에 다른 회사는 못해냈으니까요.”
김해성도 그건 부정하지 않았다. 가공 문의를 받은 기업이 조건을 듣자마자 포기했다.
재영공업이 해낸다면 그건 기적이었다.
“결과로 보이겠습니다.”
“본사도 재영공업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B동 설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런 고물로 그 결과를 냈는데 이번에 받은 기계로 가공하면 어떻겠어요.”
김해성의 말은 김태호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과제의 난이도가 올라갔어도, 보유한 장비의 수준은 차원이 달라. 해내지 못할 것은 없어,’
김태호는 잠깐 기가 죽은 자신을 반성했다.
“멋지게 성공해보이죠.”
“우린 납품만 제대로 해주면 됩니다. 교육은 다 받으셨죠?”
“메뉴얼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계 임대에 관한 절차를 마무리할게요.”
김해성은 한 무더기의 서류를 꺼냈다.
김태호는 그걸 하나하나 신중하게 읽었다. 법에 박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눈 뜨고 코 베일 정도로 무신경하지 않았다.
임대계약서에는 독소조항이 없었다.
아쉬운 것은 하나뿐이다. 임대기계로는 다른 회사의 제품을 가공하지 않는 것이다.
건일의 제품이니 당연했다.
‘내가 돈을 더 벌어서 좋은 기계를 사면 되니까.’
처음부터 남의 것이다. 거기에 지나친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사인 후에는 기계의 설치도 끝난 상태였다.
김해성은 곧바로 설치기사들과 함께 떠났다.
김태호는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직원들을 불렀다. 금형설계 2명, 생산관리 1명이었다.
“먼저 생산관리에서 일정을 체크해주세요. 시험가공을 하는 동안에 다른 프레스 기계를 비울 수 있나요?”
“당장은 무리입니다. 일정상으로는 금형이 나온 뒤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업자들의 안전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속도를 내주세요. 프레스 한 대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김태호는 그 다음에 금형설계쪽을 바라봤다.
“지금 들어가는 일은 끝났나요?”
“전 바로 모델링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금형 끝나면 합류 가능합니다.”
금형설계쪽도 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면 모델링 하실 때 주의할 점을 알려드릴게요.”
김태호와 달리 둘은 금속분리판에 경험이 없었다.
테스트 때의 자료까지 끌고 왔다. 거기에서부터 주의할 점과 중요시 할 점을 이야기해줬다.
모델링을 아무리 잘해도 실제 가공품과는 차이가 나고는 했다.
김태호는 그걸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이번 일은 회사의 성장을 확정 지을 수 있습니다. 지금 체제와 규모로 이만한 규모의 양산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우리 실력만 보이면 됩니다.”
김태호는 열의를 담았다. 직원들도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었다.
* * *
금형의 모델링이 진행되는 동안, 김태호도 할 일이 있었다.
이번에 설치된 델프 사의 프레스 기계를 점검했다. 교육을 받았던 때와 같은 상태였다.
“역시 아쉬운 물건이야.”
일반적인 프레스가 아니다.
금속분리판과 같은 박형의 가공에 최적화되었다.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기능이 다양했다.
다만, 본질적인 기능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여러 공정을 수행하는 장점을 내세우다보니 주객전도가 된 상황이었다.
양산만을 위한 기계라 할 수 있었다.
“세팅이 조금만 틀어져도 문제가 많이 생기니까.”
실습까지 해보지 않았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애물단지이지만 나에게는 다르지.”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다면 단점은 줄어든다.
김태호는 세팅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 가공을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맞출 수 있었다.
이 기계에 필요한 인첸트도 정리했다.
중점은 내구성이었다.
실제로 교육을 해준 연구원이 설치 4개월 만에 두 번이나 AS를 받았다고 말해줬다.
자잘한 고장은 모두 다양한 기능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냐인데.”
인챈트를 어떻게 할까.
김태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임대를 받은 기계에 용접이라도 했다가는 문제가 생겼다.
“붓은 안 돼. 스티커도 안 돼.”
직원이 늘어난 지금에서는 붓이나 스티커를 매번 쓸 수 없었다.
“···그러면 답은 하나.”
그는 기계의 케이스를 열고 내부를 살폈다.
비책은 하나다.
바로 필요가 없는 부품을 인챈트 가공품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김태호는 여러 부품들을 살폈다. 그중에서 인챈트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겼다. 그것과 똑같은 크기와 재료로 부품을 만들었다.
아아아아아!
머시닝 센터로 해당 부품에 가공 인챈트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울려 퍼지는 빛과 소리의 하모니는 그를 고양시켰다.
인챈트 부품을 열처리 보낸 뒤에 하나씩 교체했다.
원점고정 및 위치고정 인챈트 스티커를 붙여놔서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디텍팅 인챈트가 된 보안경으로 최종확인까지 했다.
인챈트는 기계전체에 적용되었다.
다음은 전체적인 세팅이었다. 저번에 쓴 금형으로 작동만 해봤다.
“연구소보다 훨씬 낫다.”
아직 금형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확신이 들었다.
이번 난제가 아니라 양산까지도 가능할 터였다.
* * *
금형이 도착한 날.
김태호는 설계직원을 제외하고 모두 퇴근시켰다.
야근 중인 그들이 내려오기 전에 사전 준비를 했다. 금형과 재료에 미리 인챈트 스티커를 붙였다.
직원들이 다 내려오고 가공을 시작했다.
그리퍼가 제품을 짚고 레일에 올렸다. 차례대로 압력을 가하며 모양이 만들어졌다.
보안경을 낀 김태호의 눈에는 인챈트 스티커가 사라지는 광경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휴우. 괜찮게 나왔는데요?”
“사장님이 미리 알려주신 덕분이네.”
직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
김태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첫 시험가공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인챈트가 깨지는 부분에서 수평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제품을 보니 그 부분들에 문제가 생겼다.
금형은 나쁘지 않았다. 좋은 말로는 너무 정직했다.
“한 번만 더 하죠.”
김태호는 다시 세팅을 맞췄다.
두 번째 가공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방금 전처럼 인챈트가 깨지는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개선점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간극이 좀 생기네요. 아무래도 수정을 좀 해야겠어요.”
이대로는 결과를 낼 수 없다.
김태호는 가공에서 간극이 생기는 만큼의 수정을 요구했다.
1차 시험가공은 그걸로 끝이었다.
2차 시험가공은 사흘 뒤에 진행되었다. 가공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보였다.
“금형 플레이트를 더 수정해야겠어요.”
김태호는 새로운 상부의 플레이트를 얇게, 하부를 두껍게 요구했다.
“플레이트 두께를 조정한다고요?”
“그건 문제가 있지 않나요?”
“아뇨. 하세요. 문제 없습니다.”
김태호는 강경하게 나섰다.
직원들은 해당 부품을 수정해 제작을 맡겼다.
남는 시간에 김태호는 녹화한 가공영상을 돌려봤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수정할 부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삐꺽거리는 소리가 나네. 비틀리기도 하고.”
김태호의 눈과 귀는 유달리 민감했다.
그는 문제가 심해 보이는 슬라이더와 가이드 레일을 꺼냈다. 거기에 윤활작용을 하는 인챈트를 새겼다.
새로 가공한 부품이 도착한 후에 3차 시험가공을 시작했다.
금속분리판은 전보다 더 부드럽게 가공이 되었다. 특히 상하부 플레이트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보안경으로 본 인챈트의 파괴도 비틀림이 없었다.
“와! 진짜 나아졌는데요?”
“어떻게 보기만 하고 아시는 거죠?”
직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이 어린 사장은 다 짚어냈다.
“기계를 알면 보여요.”
김태호는 웃어넘겼다. 두 눈은 기계에만 고정되었다.
금속분리판은 시험가공을 거듭할수록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재영공업의 시험가공 보고서와 결과물은 계속 건일ADOS에 제공되었다.
“이번에는 힘들겠군.”
백광석은 그들의 고전을 아쉬워했다.
재영공업에게 주어진 조건은 지나치게 가혹했다.
이전까지 금속분리판 가공에는 건일ADOS가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론적인 정보만 제공되었다. 실물가공에 대해서는 재영공업이 데이터를 만들어야만 했다.
시간도 2달 뿐이었다.
연구소 내에서는 데이터 조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말했다.
김태호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의욕 하나만으로 벌주를 마시게 되었다.
백광석은 딱하기만 했다.
재영공업의 보고서와 가공품이 점점 양호해져 더 아쉬웠다.
정상적인 기간이 주어졌다면!
김태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터였다.
“이번이 마지막이군.”
데드라인이 임박했다.
백광석은 보고서와 가공품을 살폈다.
이때까지와 달리 금속분리판이 300장이나 왔다.
“···가공이 왜 이렇게 깔끔하지?”
“소장님. 이거 완벽한데요!”
“말도 안 됩니다. 진짜 해냈어요!”
측정기로 분석한 연구원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재영공업은 구색만 맞춘 것이 아니었다. 요구하던 이론적 수치를 맞추다 못해 상회하는 것도 있었다.
“이게 무슨······.”
백광석은 믿겨지지 않았다.
저번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것처럼 보였다.
“······.”
뒤이어 보고서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가공을 하면서 생긴 문제점과 개선점이 적혀있었다. 특히 빈약한 이론적인 부분을 직접 검증했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연구원의 시점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여긴 무조건 잡아야해.”
백광석은 연구소를 뛰쳐나갔다. 곧바로 최건우 사장을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 이야기 좀 하시죠!”
“어쩐 일인가요. 연구소장님. 평소에 점잖으시던 분이.”
“읽어주십시오. 지금 당장!”
“······.”
최건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열병에 빠진 것처럼 달려드는 백광석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어쨌든 최건우는 자료를 살폈다. 그의 표정도 묘해졌다.
“···재영공업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해냈다고요. 고작 2달 만에! 지금 당장 재영공업에 양산을 주십시오. 아니. 거기를 아예 우리 쪽에 묶어둬야만 합니다!”
“흥분하지마세요. 해냈으니 이번 발전소에 양산까지 맡길 테니까.”
최건우는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전문가의 의견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다만, 경영에서는 아니었다.
“지금 데이터면 엄청 나네요. 이전 데이터도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그걸 보면 더 놀라실 겁니다. 절대 불가능한 수치였는데 지금은 당장 양산을 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니까요.”
백광석은 그 자리에서 다른 연구원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이게 되는 겁니까? 맙소사.”
최건우는 충격을 받았다. 1차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2차에서 3차까지는 괜찮지만 양산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번에는 아예 달라졌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이, 이게 말이 되요?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러니 찾아온 것입니다. 여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대적인 투자를 부탁드립니다. 이곳이 있다면 건일ADOS는 업계1위도 노릴 수 있습니다!”
“···안건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주 긍정적으로요.”
최건우 사장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백광석이 왜 이렇게 날뛰는지 이해했다. 애초에 그는 학술지의 표지모델로 쓰여도 덤덤한 사람이었다.
“맙소사. 신데렐라 수준이 아니었잖아.”
반드시 잡아야 할 사람이다.
건일ADOS가 협력사로 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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