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9화 (9/49)

9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백광석 연구소장은 김태호의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번 교육은 그를 만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원래는 기계와 함께 사람을 보내 교육을 진행해도 충분했다.

굳이 교육을 앞당긴 것은 김태호에게 직접 부탁할 일이 있어서였다.

예정된 교육시간은 4시간. 고작 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뭐? 벌써 교육이 끝났다고?”

담당연구원의 보고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태호 사장이 바쁜 일이 있었나?”

[이해력이 너무 좋아서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실전적인 부분에서는 제가 배우는 지경입니다. ]

“허. 역시 똑똑한 친구야.”

백광석은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신기계인지라 사고가 나면 그 손실이 컸다. 그래서 이번 교육은 시간이 빡빡하게 커리큘럼을 짤 수밖에 없었다.

“어제 내가 말한 것 기억하지? 아직 가시지 않았으면, 잠깐 나랑 차라도 한 잔 하자고 전해줘요.”

백광석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남은 시간이 넉넉하니 편안한 대화가 될 수 있을 터였다.

*       *       *

갑작스런 연구소장의 부름은 김태호도 반가운 일이었다. 백광석의 사무실로 가자 그는 환한 미소를 보였다.

“가시는 길에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꼭 만나 뵙고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저야 한 번 더 얼굴 뵈면 좋죠. 어떤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김태호도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재영공업에게 다른 협력사와 다른 일을 제의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일이면 어떤 거죠?”

김태호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갔다. 이전을 했지만 아직도 재영공업은 작았다. 직원을 새로 채용할 예정으로 기계도 들였지만, 남들만큼의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들어가는 일입니다.”

백광석은 자신의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김태호는 진지하게 그걸 읽었다.

이번에 서남부발전소에서 세종 수소연료발전단지에 건일ADOS가 참여하게 되었다. 설비용량 10MW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들어갈 스택을 개량하기로 최종결정이 났습니다. 그 테스트 모델의 개발이 시급한데 재영공업이 해당 금속분리판을 가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그런 겁니까.”

김태호에게는 매력적인 제의였다.

재영공업의 장점은 뛰어난 생산기술력이었다. 소량에 특화되었기에 연구소의 제의는 합리적이었다. 또한 테스트 때보다 더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개인적인 도전 욕구는 물론 재영공업에도 이익이 될 제의였다.

하지만 주어진 것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연구소의 일만 해야 할 수 도 있었다.

언제까지 재영공업이 거기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김태호도 회사의 성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테스트 모델을 성공적으로 가공한다면, 본사에서 양산할 수 있게 해주시죠.”

“······.”

백광석은 생각에 잠겼다. 그만큼 김태호의 제안은 예상외였다.

“불가능합니까?”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스택에서 금속분리판이 제일 완벽하고 가장 빠르게 끝이 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재영공업을 대체할 회사는 없겠죠. 보통 그런 경우라면 먼저 양산을 부탁드리니까요.”

백광석은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으로 것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경영자의 허풍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김태호는 1차는 물론 2차에도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양산화를 위한 설비를 갖춰도 크게 문제는 없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재영공업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결과로 보여드리죠.”

김태호는 의욕을 보였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없었다. 그랬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다.

*       *       *

사흘 뒤.

메이저 신문에 이번 건일ADOS의 체결식이 올라왔다.

저번처럼 한 면이 아니라 두 면에 걸렸다. 특히 최우수기업이 된 재영공업은 상당한 분량을 차지했다.

김태호는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광고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직접 해당 부분을 스크랩을 하며 소중하게 보관했다.

오전이 되고 그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모두 신문을 봤다며 그간 고생했다는 축하 전화였다. 대부분이 거래처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일일이 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오전을 다 보냈다.

하루 종일 들뜰 법도 하건만, 그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곧 새로운 직원들이 온다.

그들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현장직원 4 명, 생산관리 2명, 금형설계 2명과 경리 1명이었다.

재영공업은 이제 완전히 10인 기업을 벗어나게 될 예정이었다.

먼저 현장직원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었다. 기존의 직원들의 추천으로 뽑았기에 적응에는 별 문제가 없을 터였다.

생산관리쪽이야말로 그의 고민이었다.

김태호는 이번 수소연료발전단지의 일거리까지 보고 있었다. 회사의 성공까지 직결될 일이다. 그쪽에만 확실히 몰두해야만 했다.

생산관리가 그의 빈자리를 채워줘야만 했다.

물론 품질처럼 주요한 부분은 김태호가 계속 담당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생산관리가 할 일은 많다. 기본적인 물품구매부터 자잘한 납품 등 회사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다녀야만 할 것이다.

처음에는 1명만 고용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업무를 분류해본 결과 2명은 있어야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금형설계에 2명을 뽑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호는 금형설계를 할 줄은 알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거기에 몰두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2명이 있으니 다른 금형 일을 하면서도 건일ADOS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직원도 그렇게 늘어났으면 경리의 고용도 필연적이었다. 더 이상은 김태호 혼자서 서류정리를 할 수준이 아니었다.

모든 인수인계를 분류했지만, 김태호에게도 숙제가 남았다.

바로 인챈트의 보안이었다.

직원이 많아지면 인챈트가 노출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와 재영공업만의 비밀. 지금과 달리 그걸 지킬 방도가 필요했다.

먼저 기계에 용접한 인챈트 철판의 처리에 고민했다. 기계 하단에 붙여서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었다.

여러 실험결과 테이프로 문자를 가리고 위에 페인트를 칠해서 감추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표면을 막으면 마나가 제대로 통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철판에 새긴 문자가 손상이 되지 않으면, 인챈트에는 아무런 악영향이 없었다.

김태호는 그 다음이 문제였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챈트 도구는 바로 스티커였다.

모든 재료에 스티커는 최소 두 장은 붙이는 수준이었다.

“기존직원들이야 몰라서 넘어갔지만, 새로운 직원들은 다를 수 있어. 그리고 회사가 커지면 외부인의 접촉도 많아지고.”

기존직원들에게는 품질을 확인한 증거라며 붙인 스티커라고 했다.

작업자들이 모두 그를 신뢰하니 거기에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과연 새로운 직원들도 그럴까?

김태호가 생각한 첫 번째 인챈트는 바로 투명화였다. 글자가 투명해서 안 보이면 누가 의심을 할 것인가.

“지금이 14글자였으니까.”

김태호는 그간에 정리한 자료들을 훑었다.

필립이 투명마법을 쓴 경우는 있었다. 다만, 그걸 인챈트로 쓴 적이 없었다.

“그때 마법식이······.”

김태호는 기억을 더듬었다.

필립이 마법을 펼치며 읊조린 주문과 공간에 새겨진 문자들을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두 눈을 감고 빈 공책에 써내려가는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후우. 후우.”

그걸 다 적은 것만으로도 김태호는 숨이 가빠졌다. 마치 자신이 마법을 쓴 것처럼 힘들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김태호는 아까 전에 적은 것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펼치기 전에 투명하게 만들 존재를 분석하고, 주변의 공간에 녹아들게 구성을 한다. 그 뒤에는 유지였다.

겉모습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된 것만 같이 은밀해야만 했다.

특징 세 가지 중에서 마지막을 제외했다. 그것만으로도 인챈트의 수준이 대폭 내려갔다.

카드득.

“···실패.”

김태호는 인챈트 수식을 수정해 실험에 옮겼다.

인챈트 붓 6호로 쓴 20글자.

이번에도 인챈트는 성립하지 못했다. 먹물은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손톱으로 건드리자 가루처럼 부서졌다.

김태호는 다시 수식을 정리했다.

2차 시도는 25글자였다.

“···그리고 실패.”

아까 전의 문제점을 파악해 시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인챈트가 성립이 되지 않았다.

“왜지? 어째서?”

김태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인챈트 수식을 점검했다.

글자를 보이지 않게 한다.

필립이 쓴 마법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해당수식을 뜯어고치며 계속 도전했다.

글자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결과는 같았다.

“왜지?”

현재 가장 강한 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챈트 6호붓이었다. 이걸로 안 되면 스티커로는 절대 가동이 불가했다.

“고위급 마법을 단순화시켜서인가? 아니면 역시 마나의 부족인가?”

그의 피드백은 다시 그곳에 막혔다.

도대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왜 투명화가 안 되지? 이게 안 되면 다른 방도가 있을까?”

김태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투명화 마법이 수준이 높아도 약식으로 만들면 성공할 줄 알았다.

어떤 방법으로 해야만 하나.

글자 수를 무작정 늘린다고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공장의 판넬에 붙은 나방이 보였다. 판넬이 아닌 나무에 붙었다면 못 알아봤을 것이다.

“꼭 투명해질 필요가 없잖아. 저 나방처럼 보호색을 가지거나 카멜레온처럼 색만 바뀌어도 충분한데!”

김태호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 접근하는 방식도 그리고 개념조차도 문제였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구나. 난 필립이 아니라니까.”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어려웠던 과제가 순식간에 풀리기 시작했다.

김태호는 다시 수식을 바꾸었다. 글자가 투명해지는 것을 주변과 같은 색이 된다로 바꾸게 유도를 했다.

인챈트의 글자는 20글자. 그 마지막을 완성한 순간!

아아아아아!

“···좋아.”

철판에 그려진 광간섭 인챈트가 성공했다. 특별하게 유려한 빛은 나지 않았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것처럼 주변이 일렁거렸다. 들려오는 화음도 전과 달랐다. 갈대에 바람이 부딪히는 것처럼 은은하게 스쳐 지나갔다.

인챈트가 된 부분을 아무리 살펴봐도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들었다.

김태호는 알루미늄 봉과 공장을 지탱하는 철제H빔 기둥에도 인챈트를 했다.

이번에도 성공을 했다.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다음은 더 쉽지!”

김태호의 두 번째 준비는 바로 보안경이었다.

직원들에게 숨기는 것은 좋다. 그조차도 구별하지 못하면 문제였다. 그걸 감지하도록 인챈트를 할 생각이었다.

“디텍팅 기능. 이건 필립이 자주 쓰던 거였지.”

투명화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디텍팅의 인챈트 수식은 빠르게 정리했다. 보안경의 알에 붓으로 인챈트를 했다.

아아아아!

보안경의 인챈트는 한 번에 성공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빛의 물결과 화음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과연 보안경으로 마나가 제대로 봐 질 것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보안경을 썼다. 인챈트 때문에 한쪽이 가려졌다.

그럼에도 망막에 맺히는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공장. 그 안으로 옅은 하늘색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이것이 마나.”

필립이 아니고서야 볼 수 없던 세상의 근원.

김태호의 눈에 들어왔다. 방수페인트를 발라 녹색인 바닥의 군데군데에 옅은 하늘색의 구름이 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손을 뻗었다.

옅게 분포된 마나는 그의 손길이 닿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 하하. 하하하!”

김태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멀었던 두 눈을 찾은 것이 이런 느낌일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공장의 모든 것을 시야에 담았다.

인챈트 철판을 용접한 기계. 그 하나하나마다 옅은 하늘색의 막이 쳐져 있었다.

인챈트 용접부를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거기에서 시작된 은은한 하늘색이 기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었다.

뒤이어 광간섭 인챈트 실험을 한 것들에 시선을 뒀다.

알루미늄 봉, 철제H빔에 적힌 인챈트 문장에는 은은한 하늘색이 섞여 있었다.

“그래. 그래. 이거지.”

김태호는 솜에 알콜을 묻혔다. 그리고 천천히 인챈트 문장을 닦았다.

카드득.

솜에 닿은 문장이 무너졌다.

하늘을 담은 색이 지워질 때, 짙은 어둠색이 그 자리를 잠시 메우고 사라졌다.

“좋아. 이거면 된다.”

김태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삭막한 공장. 이 세상에 누구도 볼 수 없는 그만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누가 오더라도 이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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