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태호는 나머지 철판조각도 가공했다.
드릴로 방점을 찍은 철판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물결과 화음의 조합은 그가 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가슴속에서 울렁이는 감정을 뭐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어떤 미술관과 박물관을 들러도 지금 이 순간보다 더 감명 깊지 않았다.
“후우. 진정하자. 지금 할 일은 산더미니까.”
하지만 감상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었다.
인챈트 철판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지고 있는가.
인챈트 스티커에서 인챈트 붓 사이. 지금은 딱 그 정도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기계가 좋을까.”
그는 자신의 오래된 기계들을 훑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제일 상태가 좋지 않은 NC기계를 택했다.
이번 중고기계를 구매했을 때, 저렴하고 상태가 좋은 것들을 이미 확인했다.
만에 하나 고장이 나더라도 큰 부담은 없었다.
“이왕에 시도를 할 거면 다른 것도 같이 해야지.”
인챈트 하나로는 아쉽다. 진짜 효력을 보려면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어울려져야만 했다.
기계에 인챈트를 할 것이라면 여러 개를 한 번에 하는 것이 좋았다.
그는 내구도 강화만이 아니라 진동감소와 충격감소 인챈트 철판도 추가로 만들었다.
앞선 것과 똑같은 황홀함이 차올랐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매번 새롭고 짜릿했다.
“이제 이걸 어떻게 붙이냐는 건데.”
먼저 순간접착제로 붙여봤다. 그리고 가공을 해보자 NC 기계는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실패다.
그렇다고 다음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게 실패하면 기계에 직접 가공해야하는데.”
김태호도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일단 구석에 놓인 용접기를 챙겨왔다.
인챈트 철판을 용접하는 것.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김태호는 먼저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 뒤에 드러난 전선부분은 방지포로 덮어뒀다. 불똥이 튀어서 사고가 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김태호는 용접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용접은 곧잘 해냈었다. 특히 비드 부분이 깔끔함은 주변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몇 달 만의 용접이지만, 감각을 잃지 않았다.
직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하단부에 정확하게 용접했다.
용접 마스크를 벗자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단순히 인챈트가 성공해서가 아니다.
인챈트가 기계 전체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인챈트는 길게 쓰는 것보다 함축적일 경우 더 효력이 강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챈트 철판은 그저 기계로 가공했을 뿐이었다.
인챈트 붓과 먹물처럼 마나를 풍부하게 담기 위한 도구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기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큼 이곳의 마나가 풍부한 것인가?”
그는 당장 붓을 들었다. 다른 기계에 똑같이 14글자를 새겼다.
인챈트 철판을 만들 때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런데도 인챈트가 기계 전체로 퍼지지는 않았다.
“왜······?”
붓으로 쓴 인챈트가 효력은 더 좋다. 시각적으로는 월등했다. 그런데 왜 인챈트의 범위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알콜로 지우고, 인챈트 붓을 6호로 바꾸어 다시 인챈트를 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14글자로는 안 되었다.
기계전체에 영향을 주려면 최소 30글자는 되어야만 했다. 그마저도 골고루 퍼지는 것 같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김태호는 참지 못하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필립의 지식을 기록한 노트를 훑었다.
도저히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있는 만큼, 이해를 해야만 했다.
몇 번이고 읽은 것이지만 그의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갔다.
“그렇구나. 인챈트가 되는 재료의 차이였어!”
목구멍에서 유레카가 간질거렸다.
인챈트 철판을 용접한 것이 더 효과가 좋은 이유는 결국 같은 기계와 같은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면 왜 필립은 펜과 잉크로만 인챈트를 했을까?’
김태호는 생각에 잠겼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필립은 그렇게 비효율적인 인챈트를 했을까.
“마나. 결국 그거였어.”
김태호는 근본적인 차이를 되새겼다.
결국 필립의 세계에는 마나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비효율적인 행위도 문제가 없던 것이다.
특히나 필립은 마법사다.
꿈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존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필립이 딱 그 경우였다. 그는 굳이 인챈트 할 도구를 가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마나를 다루는 자에게 인챈트 도구의 차이는 미미한 것이었다.
막상 필립도 마법을 입문하던 어린 시절을 보면 달랐다.
골렘을 만들 때는 펜과 잉크가 아니라 보석이 박힌 조각칼로 인챈트를 했었다.
“아니지. 명필일 필요가 없어.”
필립에게 중요한 것은 마법이다.
그에게 인챈트는 곁다리에 불과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 없었다. 부족한 부분은 그의 훌륭한 마법으로 대체하면 될 뿐이었다.
필립의 인챈트 대부분이 마법에서 기인한 것도 그래서다.
그에게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었다.
김태호는 아니었다.
인챈트는 멋들어지게 성공한 지금도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필립에게 당연한 것은 김태호에게 불가능했다. 그 진의를 따라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만 따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푸하하하!”
김태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한 것도 아니다. 날개가 없는 들짐승이 날려고 퍼덕인 셈이었다.
인챈트 붓을 새로 만들면서 느꼈던 깨달음을 되새김질한 셈이었다. 깨달았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걸 알았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네. 재밌어.”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간 암기하듯이 외웠던 필립의 지식을 처음부터 자신만의 색깔로 바꿔나갈 좋은 기회였다.
그는 다른 인챈트 철판을 가공했다. 그 뒤에는 하나씩 직원들이 모를 위치에 용접을 했다.
그때마다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기계들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야.”
잘못된 접근으로 쌓은 인챈트.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던가. 당장 이번 기회로 기계들의 성능은 반영구적으로 상승되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쌓아 올릴 인챈트는 어떨까.
남는 시간은 온전하게 자기개발에 신경을 쓴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현 시대의 지식의 정점 과학. 그리고 필립의 시대에 정점인 마법.
이 두 가지를 모두 배울 수 있음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 * *
인챈트 철판을 용접한 기계의 성능은 훌륭했다. 효력이 반영구적이고 기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특히나 컸다.
전처럼 기계가 가동 중에 인챈트가 깨지는 일이 없었다.
그 여파는 적지 않았다.
김태호가 당장 쉴 때마다 기계를 살필 필요가 없었다. 그부터 쉴 때마다 움직이지 않으니 직원들도 눈치를 덜 보며 쉬게 되었다.
서로 쉴 때 푹 쉬게 된 것이다. 작은 차이에서 오는 차이는 컸다.
전체적으로 작업능률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태호의 수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퇴근 후의 공부에도 더 집중이 잘 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았다.
인챈트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 필립의 꿈을 갈무리했을 때처럼 진행속도가 더뎠다.
필립의 모든 행동을 당연시 여기며 지나갔던 과거의 김태호부터 지워야만 했다. 지금의 그는 필립의 모든 행동에 의문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이 시대의 관점으로 재해석을 해야만 했다.
작은 퍼즐조각이 하나하나 맞춰지는 느낌. 거기서 오는 희열은 이루어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쳇바퀴 같은 삶.
김태호는 조금씩 쌓이는 노력의 결과를 알기에 그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
“진짜 중간중간 제대로 쉬어야만, 뭔가를 할 수 있구나.”
그 원동력은 결국 집중력이었다.
김태호는 체계적인 일정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때부터는 무리하게 잠을 줄이면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일정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김태호는 하루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른 아침에 작업량을 정한 뒤, 평소처럼 직원들에게 작업을 배분했다.
직원들이 숙지하는 사이에 추가로 들어온 재료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인챈트 스티커들을 붙였다.
남은 인챈트 스티커 재고가 부족하자 사무실로 갔다. 스티커를 인쇄하는 도중에 계속 전화가 왔다.
“네. 재영공업 사장 김태호입니다. 사흘 뒤요? 아, 어쩌죠. 저희가 지금 일정이 다 찼는데.”
예전이라면 스팸전화나 대출문의뿐이었다.
지금은 항상 작업을 문의하는 업체들의 전화가 왔다. 그것도 하루에 몇 통씩이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네. 재영공업의 사장 김태호입니다.”
김태호는 스마트폰이 울리자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민망하게도 전화가 아닌 문자였다.
[Web발신]
[건일ADOS]
안녕하십니까, 건일ADOS입니다. 3차 테스트 합격 및 최우수업체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협력사 체결식 및 기기 임대를 위한 일정 및 정보를 메일로 발송하였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건일ADOS의 중소기업 상생 프로젝트가 끝났다.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재영공업이 최고로 꼽힌 것이다.
다만, 일정이 문제였다.
최건우 사장의 해외출장으로 인해 이틀 뒤에 건일ADOS로 가야만 했다. 대리인을 보내도 되지만, 김태호는 직접 가야만 했다.
직원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당일에 임대를 할 최신기기의 교육일정도 잡혔기 때문이다.
최소 반나절은 비워야한다.
김태호는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포기했다. 그 시간만큼 잔업을 택했다. 자신의 몫을 맞춘 뒤에야 홀가분하게 건일ADOS로 향할 수 있었다.
* * *
김태호는 전과 달라졌다. 이제는 엄연히 협력사 사장이었다. 건일ADOS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 것도 그래서였다.
세 명 밖에 없는 대기실은 어색했다.
최종 합격자들이 모이는 것은 10시 30분. 이미 그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들이 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끝인가보네요.”
“그러게요. 마지막에 떨어질 줄은.”
다른 두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3차 면접. 거기서 한 명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도 못했었다.
‘내 앞에 그 사람이네.’
김태호는 탈락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끝까지 재영공업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않던 자였다.
그래서 아쉽지 않았다.
딱히 악감정도 없어서 후련한 마음도 없었다.
서로 다행이라며 위로하던 이들이 김태호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번에도 최우수기업은 재영이죠?”
“아. 맞아. 최우수가 누구야?”
“재영공업이 맞습니다.”
김태호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30분도 있지 않아 드러날 사실이었다.
“역시 재영인가. 못 이기겠네.”
“도대체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난 거야.”
다른 둘은 그 흔한 질투도 보이지 않았다. 전처럼 재영공업에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1차, 2차, 3차.
결국 누구도 재영공업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하지 못하는 일거리를 재영공업에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아. 우리도요. 무리하게 했다가 괜히 회사 평판만 깎일 것 같은 일이 있거든요.”
“제 일정이 되는 선에서는 얼마든지요.”
김태호는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
그 말에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곧 체결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세 분께서는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건일ADOS의 직원이 찾아왔다.
그의 안내를 받아 간 회의실은 이미 체결식 준비가 다 끝나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현수막이 먼저 눈에 띄어졌다.
테이블 위에는 꽃다발, 협력사 계약서가 있었다. 차례로 그걸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최우수업체가 재영공업임을 입증하듯이 단체사진이나 인터뷰는 김태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번 체결식의 주인공은 김태호였다.
“체결식 동기끼리 한 잔이나 할까요?”
“좋죠! 김 사장도 갈 가지?”
체결식이 끝난 후, 나머지 둘은 술자리를 제의했다.
“죄송합니다. 진짜 가고 싶은데 기계임대 건으로 교육 받으러 가야해서요.”
김태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겉으로야 아쉬움을 표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귀한 교육 시간과 단순 친목을 위한 술자리 따위를 비교할 수 없었다.
연구소로 향하는 그의 걸음은 더 없이 가벼웠다.
배움은 항상 기쁘고 감사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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