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면접을 다녀온 다음 날.
김태호는 일찍 나와 직원들에게 분배할 일거리를 정리했다.
모든 직원들이 출근한 뒤에 그것들을 알려줬다. 특히 해당 작업에 대한 주의점은 꼼꼼하게 설명을 해줬다.
전날에 술을 마셨거나 혹은 잠에서 덜 깬 직원들도 그때만큼은 진지했다.
김태호가 짚어주는 것만 제대로 해내면 가공에는 문제가 없었다.
평소라면 바로 작업 시작일 터였다.
김태호는 마지막에 회사를 빠른 시일 내에 이전할 계획임을 밝혔다.
“혹시 협력사가 된 건가요?”
“어? 그러면 세종까지 가는 건가요?”
“아뇨. 확정은 아닙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전할 계획이었어요. 그러니 세종이 아니라 같은 공단 내의 이전이 최우선일거예요. 몇 군데 임대로 나온 곳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김태호는 자신이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굳이 밝히지 않았다.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 퍼져서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직원들도 평소에 공장부지가 작다며 투덜거린 김태호를 알았다. 그래서 있는 사실 그대로만 받아들였다.
김태호는 그날부터 중개인과 주변 부지를 돌아봤다. 어디를 가도 지금의 공장보다는 좋았다.
그래도 하나씩 결점이 보였다.
길목이 좁아서 화물차 이동에 제한이 있거나 공장 옆의 사무실이 컨테이너 한 칸이거나 등등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김태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정해지면 좋기는 했다. 그보다는 하루가 늦어져도 제대로 된 곳에 가는 것이 좋았다.
며칠 동안 같은 공단을 몇 바퀴나 돌았다. 매물은 다 확인했지만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중개인은 아예 다른 공단을 권했다.
“아니면 옆 공단은 어떠세요? 5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일단 가보죠.”
김태호도 어쩔 수 없었다.
천안 제4공업단지와 길 하나를 둔 마정일반산업단지로 향했다.
중개인의 차가 멈춘 곳은 그 공단에서 가장 구석진 곳이었다.
먼저 부지는 이때까지 본 곳 중에서 제일 큰 편이었다. 큼지막한 공장 한 동과 2층의 사무실 한 채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김태호는 먼저 공장에 들어갔다. 하나의 건물이 가벽에 의해 A동과 B동으로 나눠져 있었다. 기존의 기계와 건일ADOS의 기계를 나눠서 보관하기도 가능했다.
“공장이 넓네요.”
“그렇죠. 지은지 오래 되었지만, 관리가 잘 된 편이에요.”
“사무실을 봐도 될까요?”
“네. 바로 가시죠.”
뒤이어 들린 사무실은 1층을 현장직원들의 휴게실과 회의실로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2층은 사장실과 접객실, 사무직원들이 쓸 공간으로 할 수 있었다.
“보통 여길 사장님들이 쓰시더라고요.”
중개인은 2층의 맨 끝을 가리켰다.
김태호는 그 이유를 알았다. 사장실의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면 공장이 훤히 보였다.
“잠시 사진 좀 찍을게요.”
차라리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도 사진을 찍어 다른 곳과 면밀히 비교할 참이었다.
그때 같이 넣어둔 인챈트 스티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깜짝 놀라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어······?”
김태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인챈트 스티커가 은은하게 번들거렸다.
햇볕에 비추어보니 확실했다.
인챈트 문장 중에서 ‘마나를 흡수한다’는 문구가 유독 빛나고 있었다.
“왜?”
그는 스티커를 조심히 들어 올렸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일까.
스티커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필름도 벗겨지지 않았다. 문장에 이상한 점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품에 넣기 전에 파쇄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보시면 저기에 있는 것이 미륵산이거든요. 더 멀리에 용와산도 있는데 공장부지 치고 경광이 참 좋아요.”
외지다는 단점을 중개인은 애써 포장했다.
“산이 가깝다?”
반면에 김태호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연···마나······.”
이때까지 인챈트를 시도한 곳은 모두 공장이었다.
공단에서도 중심에 속한 곳이라 흔히 말하는 쇳덩이만 주변에 가득했다.
일단 공기는 최악이었다.
흰색 차를 며칠만 두면 쇳가루가 덕지덕지 붙을 정도였다. 그곳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었다.
‘그래. 여긴 필립의 세계가 아니야.’
드디어 이유를 깨달았다.
필립의 세계는 어디를 가도 마나가 풍부했다. 자연환경에 마나량이 변한다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그의 지식과 상식으로만 마법을 접한 김태호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필립의 세상과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다른 세상에는 다른 법칙이 있다. 그걸 김태호는 자각하지 못했었다.
‘자연환경이 제대로 구성이 된 곳이면 마나가 비교적 풍부한 거야.’
같은 공단이라도 외곽에 산을 낀 곳이라면 공기부터가 달랐다.
마나가 풍부하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인챈트 스티커를 보듯이 그 효과도 높아지지 않을까.
“···잠시 화장실 좀 갈게요.”
김태호는 도망치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 버려진 녹이 슨 캐비넷에 갔다.
누가 걷어찬 것인지 정면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인챈트 스티커를 붙였다.
우우웅!
인챈트 스티커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강하게 빛과 진동을 토했다. 아지랑이처럼 글자가 아른거릴 정도였다. 그건 김태호가 처음으로 인챈트를 성공할 때와 흡사한 수준이었다.
한 발자국 물러난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리고 캐비넷을 힘껏 후려쳤다.
콰앙!
캐비넷은 작은 흔적만 났다. 오히려 그의 주먹만 깨질 것처럼 아팠다.
“푸하하!”
통증이 그를 웃게 했다.
김태호는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피부로 느꼈다.
주변 공단을 다 찾아도 이만큼 마나가 풍부한 곳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중매인에게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은행에 최대한 대출을 받은 다음 계약했다. 남는 돈으로는 일거리를 소화하기 위해 머시닝 센터와 프레스 기계를 추가로 구매했다.
물론 중고였지만, 지금 재영공업의 것들보다 상태는 훨씬 좋았다.
거기에 인챈트 효과까지 준다면 새 기계에 비해서 모자랄 것은 없었다.
* * *
이주일 뒤.
재영공업은 드디어 이사를 시작했다.
금요일에 이사를 하고 토요일에 모든 기계의 세팅이 끝났다. 거기에는 중고로 구매한 기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텅 비어져있던 공장B동이 온전히 기계로만 채워졌다.
일요일에는 김태호가 홀로 나왔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인챈트 도구들을 챙겼다.
휴일의 공단은 적막하다.
김태호는 공단 전체를 빌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마나가 풍부한 환경에서 인챈트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 생각에 전날부터 잠을 설쳤다.
만약 실험성과가 좋다면 붓대나 장식에 가공으로 인챈트 한 것처럼, 공작기계에도 전부 가공을 할 생각이었다.
이때까지는 상대적으로 고가이고 급히 소화할 물량이 있어 차마 손을 대지 못했을 뿐이다.
새로운 기계도 구매했으니 그런 부담은 덜했다.
“뭐든지 개발에 중요한 것은 소형화 혹은 경량화지.”
김태호가 인챈트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있다.
바로 문장의 길이었다.
희박한 마나를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 최대한 문장을 길게 구성해야만 했다.
만약 그 길이를 줄일 수 있다면 인챈트를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평균값을 내기 위해서 이때까지 가장 많이 쓴 1번 붓을 꺼냈다.
벼락을 맞은 나무에 자수정의 장식.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으로 붓촉을 만든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내구성 강화를 하려면 최소 20글자 이상을 적어야만 했다.
그는 창고에 쌓인 철조각을 들고 왔다. 간단한 인챈트 실험은 이걸로 충분했다.
먼저 20글자에서 18글자로 줄였다. 혹시나 실패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우우우웅!
“···좋아!”
마지막 한 획이 그어지면서 인챈트 문장이 빛을 토했다. 충만한 마나만큼 더 시각적 효과는 컸다.
김태호는 알콜로 인챈트를 지웠다.
전이라면 알콜에 닿자마자 부서져내렸다.
이번에는 인챈트가 끝부분부터 서서히 부서졌다. 인챈트 자체의 내구성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차이가 나네.”
물론 이곳의 마나가 유달리 풍부한 편은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그도 마나를 직접적으로 마나를 느꼈을 것이다.
그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지금 조건만으로도 기존의 인챈트를 얼마나 상승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계속 한 글자씩 줄이는 실험을 했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14글자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필립이 글자 하나로 끝낸 것과는 엄청난 차이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다.
“이러면 스티커 크기도 줄일 수 있겠다.”
김태호는 몸이 달아올랐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뭘 손대도 행복할 것 같아 고민이었다.
“···이거면 기계에 인챈트 가공해도 되겠는데?”
짧으면 하루에서 길면 이틀.
김태호는 매번 기계를 붓으로 인챈트를 했었다. 필요해서 했지만, 사실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여기에 들이는 시간만 줄여도 좋은 성과였다.
다만, 기계의 어느 부위에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가공을 하는 순간부터 붓과 똑같이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핸드드릴을 떠올렸지만 작은 실수로도 인챈트가 실패라 금지였다.
“꼭 그것만이 답은 아니니까.”
김태호는 창고에서 3mm 두께의 철판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가로 100mm에 세로 30mm를 기준으로 20개를 잘랐다.
잠깐 사무실로 올라가 그 규격에 맞게 인챈트를 하게끔 가공코드를 작성했다.
그 뒤에는 머시닝 센터로 가공을 시작했다.
키기기긱.
공구가 철판을 1mm씩 파고들었다.
14개의 글자가 하나씩 완성이 되었다.
공구는 마지막 획의 방점을 찍기 전에 물러났다. 마지막까지 가공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안전 때문이다.
인챈트가 완성이 되면 곧바로 효력이 발생한다.
전보다 비교적 마나가 풍부한 공장이었다. 재료가 일반적인 철판이라고 하더라도 혹여 기계나 공구에 손상이 갈까 봐 조심스러웠다.
김태호는 다시 가공을 했다.
아까 전보다 1mm만큼 더 깊게 다른 철판조각을 깎았다.
각인의 깊이가 1mm와 2mm의 철판 조각. 그는 혹여 가공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거듭 깊이를 확인했다.
그 다음에는 드릴링 머신으로 갔다.
머시닝 센터에서 쓰던 공구와 똑같은 직경의 드릴로 바꾸었다.
그 뒤에는 인챈트였다.
위치고정화 인챈트 스티커를 기계와 재료에 붙였다. 이렇게 해두면 수제로 내리는 드릴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오차가 생길 수 없었다.
“딱 내가 원하는 깊이만.”
드릴링 머신을 가동시켰다. 요란한 소리가 나자 급히 정지시켰다.
“진동감소 인챈트가 사라졌었네.”
그는 사무실에서 여분의 인챈트 스티커를 챙겨왔다.
드릴링 머신에 진동감소 스티커들을 주요 부분마다 붙였다. 그리고 가공을 하자 아까 전의 듣기 싫은 소음이 줄어들었다.
“이게 뭐라고 떨리냐.”
머시닝 센터를 통한 가공 때보다 지금 더 떨렸다.
김태호는 먼저 1mm만 각인한 철판에 마지막 가공을 시작했다.
드드드득!
공구가 마지막 방점을 천천히 갉았다. 딱 1mm가 되자 김태호는 가공을 멈추었다.
아아아아아!
“······.”
인챈트가 성공했다.
김태호는 전율하고야 말았다. 뒤늦게 차오르는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광경에 정신이 팔렸다.
철판조각에 새겨진 1mm의 각인. 거기서 찬란한 빛이 형형색색으로 흘러나왔다. 서로 엉켜 춤을 추는 빛의 물결은 오로라처럼 보였다. 그에 더해 글자마다 더해지는 진동이 겹겹이 쌓여 마치 성가대의 화음처럼 들렸다.
기적.
지금 김태호의 뇌리에 생각나는 두 글자였다. 그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마법사가 한 인챈트처럼 성공했어.”
방금 전의 현상은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꿈속이었다.
어린 소년이었던 필립이 처음으로 인챈트를 성공시켰을 때의 광경이었다. 물론 필립은 더 상위의 인챈트와 마법을 펼침으로써 그 작은 현상 하나하나에 감동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태호는 달랐다.
10초도 되지 않아 사라진 현상. 그 짧은 순간이 끝나고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만이 남았다.
1초가 마치 1분과 같기를 바랐다.
“마법 같은 일이 펼쳐졌어. 아니. 이건 마법이야.”
인챈트는 마법과 연금술의 중간영역이었다. 이전까지 인챈트가 연금술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마법에 가까워졌다.
그 차이는 마나를 극도로 살리는 것에 있었다.
전보다 더 풍부한 마나. 그 가치를 제대로 느꼈다.
이곳에 온 것은 틀리지 않았다.
꿈으로 끝났을 다른 세계의 지식과 경험을 현실로 만든 것은 온전히 그의 노력이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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