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2차 테스트 결과발표까지 김태호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롭지도 않았다.
재영공업에 가공문의를 하는 업체가 하루에 열 곳은 넘었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거래가 끊이질 않았다. 오히려 더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업체들도 지금은 재영공업부터 찾았다.
같은 가공을 해도 그들의 제품이 유달리 좋았기 때문이다. 그 단가로 나올 수 없는 수준에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남들이라면 행복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호는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주의하는 입장이었다.
얼마 전까지 항상 거래처를 찾아다니던 것이 그였다.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무턱대고 돈을 쫓다가는 실수가 나올 터였다.
다시 평판을 잃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일거리는 안 되겠는데.”
그래서 일을 고르는 것에 몹시 신중했다.
먼저 직원들의 능력을 감안했다. 그들을 신뢰하지만, 맹신하지는 않았다.
같은 단가라면 가공수준이 낮은 것을 택했다. 또한 딱 소화할 수 있는 물량만 받았다. 그랬기에 일정에 맞게 납품이 가능했다.
품질이야 김태호가 직접 관리하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재영공업의 평판이 날로 높아지는 이유였다. 또한 그만큼 기본을 못 지키는 업체가 적지 않기도 했다.
비어버린 일정을 새 거래로 채운 뒤.
김태호는 잔업이 끝난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켰다. 가급적이면 그들을 오래 두지 않았다.
혼자여야만 안심하고 인챈트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차 테스트가 끝났지만, 단 하루도 공부를 빼놓지 않았다.
1차와 2차 테스트를 보듯이 인챈트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지식. 기술자이자 경영자인 김태호의 단점을 채워줄 확실한 도구였다.
‘경쟁을 포기하면 도태된다.’
그날은 필립의 지식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익힐 것을 나눴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내구력 강화, 충격 및 진동감소, 원점고정 및 위치고정. 마지막으로 깊은 수면 유도였다.
모두 2차 테스트에 요긴하게 쓴 것이었다.
김태호는 해당 인챈트를 따로 기록했다.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
기계 혹은 부품의 강도강화. 이게 된다면 금형 혹은 공구들의 파손이 극히 줄어들 터였다.
프레스의 압력강화는 물론이고 가공하는 재료를 약하게 하는 것도 필요했다.
마지막은 인챈트자체의 내구성이었다. 해당 부위가 오염되거나 일정 횟수를 지나면 인챈트가 파괴 되었다.
납품할 재료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여러 번 가공을 하는 기계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이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해.”
2차 테스트에서 그는 물리적인 한계를 느꼈다.
지금의 재영공업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다.
건일ADOS의 프로젝트의 결과와 상관이 없었다. 결국 회사를 키우려면 고정적인 수입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대량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인챈트도 그만큼 할 수 있어야 해.”
재영공업이 지금의 평판을 유지하려면 좋은 기계만으로 불가능하다.
인챈트는 필수불가결이었다.
거기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직원들이 퇴근하고 인챈트를 할 수 없었다.
“방도가 없으려나.”
하루 종일 인챈트만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인챈트도 대량으로 할 방법이 필요했다.
“내가 쓰는 만큼만 따라 하면 되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켰다.
처음에는 인감도장을 생각했다. 각인을 해서 찍으면 빠른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평면은 아니었다. 표면이 곡선을 이루는 제품에는 인챈트가 불가했다.
손글씨를 따라 써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하니 관련된 제품이 나왔다.
“차라리 이게 낫겠는데.”
김태호는 여러 모델을 살펴봤다.
저렴한 모델의 리뷰를 보니 글자는 고사하고 원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가의 모델을 찾았다.
30만원에 육박하는 모델은 두 개의 붓을 장착이 가능했는데 제법 능숙하게 글자를 써 내려갔다.
김태호는 고민 끝에 그 모델을 구매했다.
물건을 수령한 날은 설명서부터 꼼꼼하게 읽었다.
어플로 노트의 일부를 스캔해 전송했다.
손글씨 기계가 천천히 작동을 했다. 그럴듯하게 흉내를 냈지만, 인챈트가 발동되지 않았다.
글자가 너무 컸고 그마저도 한 획씩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해당 모델로는 불가능했다.
“골치 아픈데.”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만 할까.
“딱 인쇄해서 붙이면 좋을······아!”
순간 머리에 벼락이 쳤다.
“타투 스티커. 그것처럼 붙이면 되잖아.”
굳이 손으로 쓸 필요가 없다.
정밀하게 인쇄한 것을 붙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를 테니까.
먼저 스티커 프린터를 구매했다. 인쇄를 하려면 이미지 파일도 필요했다.
추가로 태블릿과 펜도 구매했다.
포토샵을 통해 두 가지 종류의 이미지 파일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인챈트 문장 전체를 담은 스티커였고 두 번째는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찍은 스티커였다.
글자 크기를 다르게 해서 곧바로 인쇄를 했다.
“···된다.”
그중 하나를 들어 올려 유심히 살폈다. 글자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는 공장의 불을 다시 켰다.
얇은 금속판에 인챈트 스티커를 붙이고 필름을 떼냈다. 미약한 빛이 나는 문장만이 금속판에 남았다.
우웅!
인챈트는 성공했다. 금속판에 붙었던 문장이 느리고 옅은 궤적으로 허공을 멤돌았다.
최종확인을 위해 드릴링 머신으로 가공을 했다. 효과는 약해도 인챈트는 확실히 성공했다.
다만, 가공 도중에 효과가 다해버렸다.
다음은 글자 인챈트 스티커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붙여 문자를 이루자 앞선 경우처럼 미약하게 인챈트가 성공되었다.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2차 테스트 때의 고생이 눈에 아른거렸다.
스티커 프린터로 인해 대량생산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파일은 한 번 만들었으니 앞으로 인쇄만 해서 붙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이로써 직원의 눈치를 보며 밤늦게까지 인챈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대낮에도 직원들이 쉴 때 스티커 하나만 붙여두면 끝이었다.
물론 여전히 문제점은 있었다.
바로 내구력과 미미한 효력이었다. 특히 스티커는 사실상 재료에만 쓰기도 애매한 수준이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가능했다.
바로 마나의 부족이었다.
“프린터의 헤드쪽만 자수정을 넣고 나머지는 석영이나 수정을 박아볼까.”
김태호는 대대적인 개조를 계획했다.
케이스를 열고 보니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많아 보였다.
마나전도율은 일반적인 금속보다는 보석들이 좋은 것으로 알았다. 그중에서 석영이나 수정은 경제적 부담이 덜해 필립도 애용했었다.
스티커 제작 자체에 지장이 갈까 봐 잉크는 당장 건드릴 수 없었다.
“기계는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겠네.”
문제는 기계의 인챈트가 몇 시간도 가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먹물이랑 붓을 어떻게 바꾸지.”
지식은 당장에 늘 수 없다.
그러나 도구는 달랐다.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장식을 자수정이 아니라 사파이어나 루비로 바꿔볼까.”
필립이 애용한 것이 자수정일 뿐, 다른 마법사는 각자 다른 보석을 장식했다.
김태호도 그 부분에서의 데이터가 필요했다.
“잠깐만. 붓대가 꼭 나무일 필요도 없잖아. 반대로 장식이 보석일 필요도 없고.”
지금의 수제 붓은 필립의 스태프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서로의 세계가 달랐다. 마나가 희박한 김태호의 세계에 맞는 조합이 있을 터였다.
지금은 벼락을 맞은 나뭇가지를 쓰고 있지만, 꼭 나무일 필요는 없었다. 도금을 한 금속을 쓰거나 아니면 보석을 붓대로 쓰는 것이 더 효율이 좋을 수 있었다.
장식도 마찬가지였다. 꼭 보석을 쓸 필요가 없을 수 있었다. 이쪽이 오히려 나무로 된 장식이 좋을 수 있었다.
“아예 금속이 나을 수 있어. 금속은 안정적으로 인챈트를 새겨버릴 수 있잖아.”
본래 인챈트의 정석은 소재에 문자를 새기는 것이다. 그러면 해당 문자가 파괴되기 전까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만년필이나 붓처럼 써 내려가는 식은 어떤 소재에도 사용이 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흔히 알고 있는 마법스크롤에만 사용하는 정도였다.
“내가 뭘 했던 거야!”
김태호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인챈트를 할 도구에는 얼마든지 가공을 해도 문제가 없었다. 도구 자체에 마나를 부여하면 효과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때까지 왜 그러지 못했던가.
그건 아무런 의심없이 따라했기 때문이다.
왜? 필립이 인챈트를 쓸 때 자수정 펜을 썼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내가 진짜 멍청한 짓을 했구나!”
김태호는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필립은 마법사였다. 또한 그의 세상은 마나가 풍부했다. 인챈트 도구 하나하나에 굳이 마나를 부여할 이유는 없었다.
“와, 그러면 어떻게 인챈트 도구를 바꾸면 되지? 내 마음대로 뜯어 고쳐볼까!”
모든 가능성이 열린 순간.
김태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조합의 인챈트 도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통점은 하나. 도구가 마나를 더 많이 품게 한다.”
그는 필립의 지식을 인용해 기존의 인챈트의 문장을 재조립했다.
즉석에서 만든 스티커를 천장에 비추니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그걸 인챈트 도구인 붓에 붙였다.
우우웅!
붓대를 감싼 스티커가 인챈트 되었다. 손으로 그린 것처럼 충만한 빛이었다.
김태호는 창고로 달려가 여분의 금속판을 꺼냈다.
획을 그려 만들어낸 글자는 전보다 영롱했다. 그 하나하나가 만들어져 이루어진 문장이 인챈트를 성공시켰을 때!
우우우웅!
금속판 위로 문장이 떠올랐다. 형형색색의 글자 하나하나가 춤을 추듯이 그 위를 떠다녔다.
“아아······.”
김태호는 그 광경을 보며 전율했다. 직접 실험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때까지 한 인챈트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이러면 참을 수 없지!”
인챈트 도구를 어떻게 만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
비금속인 나무만 하더라도 수십 종류다. 같은 비금속인 플라스틱도 실험할 수 있고 고무 같은 특이한 재료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금속으로 넘어가도 텅스텐이나 스테인리스 등도 가능했다.
수십 가지의 재료를 적으니 수백 가지가 넘는 조합으로 넘쳐났다.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이토록 기쁜 줄은 몰랐다.
* * *
건일ADOS의 사장 최건우는 2차 테스트 결과 보고를 받았다. 최종 선발이 된 업체는 고작 5곳에 불과했다. 최우수업체가 1차와 똑같은 것이라는 것이 이목을 끌었다.
“백 소장. 재영공업이 정말로 협력사가 될 정도입니까?”
최건우는 의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재영공업은 도드라질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본격적인 협력사가 되면 제대로 협업이 될까 우려가 되었다.
“기술력만을 보는 것이잖습니까. 이들의 생산기술력이면 다른 곳에 가기 전에 잡아야만 합니다.”
“그 부분에서는 견해 차이가 있겠네요. 기술도 돈이면 됩니다. 양산에서 데이터가 무너지잖아요.”
“불량률이 없습니다. 다른 곳과는 다르죠. 3차에서도 재영공업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회사입니다.”
백광석은 강하게 의견을 제출했다. 그의 앞에서 제품에 대한 데이터 놀음은 무의미했다.
최건우가 보는 것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니까.
“그리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멀리서 한 번 보고 우리 직원들의 세팅을 정정해줬다고.”
백광석은 저번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세상에 한 눈에 보고 연구소에 쓰는 기계의 불량률을 낮춰버리다니.
업계의 날고 기는 장인에게서나 볼 법한 눈썰미였다. 그런 이들이 있으면 연구소의 난제도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연구소의 개발시기를 더 당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선별은 당신의 소관이니까.”
최건우는 2차 합격 명단에 사인을 했다. 그는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수용하는 편이었다.
“면접에는 생산관리와 품질관리 쪽에서 사람을 불러서 면접을 볼 겁니다. 알고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백광석은 거기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2차 테스트에도 재영공업이 최우수 업체가 되었음에 뿌듯할 뿐이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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