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좋소기업 사장이 마법을 숨김-3화 (3/49)

3화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직업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작스런 말에 김태호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다 강단을 내려가면서 크게 고갯짓으로 답했다,

경쟁자들의 못마땅한 시선이 정면으로 쏟아졌다.

김태호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겨우 저런 못난 시기심은 그를 흔들 수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후, 그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응?”

옆자리에 바짝 붙어있던 중년남성이 없었다. 그는 본래 자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앉아 김태호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2차 테스트의 설명에 앞서 주의사항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런 백광석의 말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파트별로 우수한 업체를 선별하지만, 기준에 미달되면 아예 선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2차 테스트에서는 이곳에 계시는 전원이 탈락하실 수 있으니까요.”

백광석은 맨 앞줄의 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하는 경고인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맨 앞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백광석의 시선이 다시 강당 전체를 훑었다. 스크린의 PPT도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1차 테스트에서 파트별 현황이 나왔다. 도드라지는 것은 몇몇 파트의 완전한 전멸이었다.

공통점은 하나.

외국기업들에만 의존해야하는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건일자동차 협력사가 있던 파트도 날아갔는데.”

“진짜 기술로만 보나?”

“그러면 저 내정자들은 뭐야.”

“이번에는 진짜 살벌하구나.”

내정자에 대한 불미스러운 추측도 한 풀 꺾였다.

“2차 테스트는 1차와 동일한 소재를 드릴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일 중요한 생산력을 중심으로 볼 예정입니다.”

백광석은 2차 테스트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갔다.

‘남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치명적이야.’

김태호에게는 좋지 않은 과제였다.

재영공업과 가장 궁합이 좋지 않은 테스트였다. 1차 때와 다르게 직원들이 모두 잔업을 하는 상황도 컸다.

우우웅.

백광석의 말을 경청하던 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재영공업의 김태호 사장님이 맞으십니까?]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김태호는 일거리인가 싶어 맞다고 답장을 했다.

[건일ADOS의 연구원 김상문입니다. 연구소장님과 편하게 대화를 위해서 설명회가 끝날 즘에 안내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그러면 지금 나가면 되나요?]

[지금 나오시면 됩니다. 강당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태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백광석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중년남성도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강당 바깥으로 나왔다.

“김상문 연구원입니다. 김태호 사장님이시죠?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김상문은 곧바로 본사건물을 나왔다.

“설명회가 끝나기 전에 부른 이유가 있나요?”

“연구소장님은 뒷말이 나오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남들의 눈을 피하려는 거죠.”

“그렇군요.”

연구소로 이동하며 김태호는 백광석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막 연구소로 입장했을 때.

백광석의 설명회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김태호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은 곧바로 맨 뒤로 갔다.

“재영공업 사장이 안 보이는데?”

“짐 다 챙기고 벌써 간 건가?”

“이봐요. 김태호 사장 어디에 갔어요?”

김태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누군가는 강당에서 기다렸고, 또 누군가는 본사 로비를 유심히 봤지만 김태호와 만날 수 없었다.

*       *       *

“우와.”

김태호는 연구소장실에 안내를 받았다. 거기에서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화이트로 통일된 인테리어는 기름때와 철가루로 더러워진 그의 사무실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책도 많네. 와. 이거 자료들인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수많은 파일과 영어로 된 책들로 가득했다.

김태호는 곧바로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나 출입 때 렌즈를 막은 스티커가 문제였다.

“괜히 문제가 되면 안 되니까.”

메모장 어플에다가 그 책들의 이름을 적어뒀다.

연구소장이 가지고 있을 정도면 연료전지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손님용 소파에 앉았다.

“···왜 내 침대보다 더 포근하지?”

김태호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소파의 쿠션감이 너무 좋았다.

5년은 쓴 침대보다 여기에 잠드는 것이 더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드실 커피를 좀 사오느라.”

살짝 눈이 감기려고 할 떄, 백광석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아메리카노 두 잔이 들려져 있었다.

“커피 배달이 빠르군요.”

“사내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사왔습니다.”

“와아.”

김태호가 마시는 커피는 믹스커피 혹은 근처 함바집에 설치된 자판기 커피였다.

“제가 따로 부른 이유가 궁금하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많이 궁금했죠. 합격은 예상했지만 최우수 업체는 의외였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에 그 어떤 곳보다 적합한 회사니까요. 재영공업과 같은 회사가 이렇게 가공을 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백광석은 굉장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소장님이 직접 인정해주시니 더 기분이 좋네요.”

“또한 평가에는 이전의 성과나 실적은 관계 없이 기술력만 본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백동석이 다시 그걸 강조했다.

김태호로서는 더없이 만족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미리 준비를 한 곳도 보였지만, 아마 그들에게 뒤쳐지지 않을 겁니다.”

“아아. 강당에서 그 박수 말이군요. 이번 태도는 그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입니다.”

“아까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술력만 보실 테니까요.”

“아하하. 그러니까요. 허상 밖에 없는 말 따위에 흔들리지 말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십시오.”

백광석은 건일그룹이 워낙 거대해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보다 조금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답을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하겠습니다.”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회사를 조사했습니다. 혹시 예전에 회사가 보유했던 기술로 가공을 한 겁니까?”

백광석의 말에 김태호는 쓰게 웃었다.

예전 재영공업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었다.

그런 오해를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회사는 프레스가 아니라 다축밀링을 통한 가공회사였습니다. 특허도 그쪽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회사로 넘어갔죠.”

“그렇다면 지금의 규모와 매출액으로 가공이 가능했다는 겁니까?”

“직접 현장에 몸으로 부딪히면서 갖춘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어떤 돈으로도 살 수가 없죠.”

지금의 결과는 스스로 쌓아온 노력의 결정체다. 그렇기에 김태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설마 지금 재영공업도 프레스 공업이 아니라는 겁니까?”

“제가 하는 여러가지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백광석은 혀를 내두르며 예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건일자동차의 연구소에 속해있을 때였었다. 국내기술로 금속분리판의 제작을 문의했을 때, 수많은 금형업체들이 제작을 꺼려했다. 기술적인 문제로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업체가 태반이었다.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걸 재영공업의 어린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기계에 투자를 한 것이겠군요.”

“아뇨. 고가의 장비가 없더라도 기술력으로 커버가 된다는 겁니다. 물론 장비가 있었다면 더 제대로 된 가공을 했을 겁니다.”

“······.”

백광석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금속분리판을 일반적인 프레스 기계로는 가공이 힘들었다. 특히 더 얇고 유로에 변형이 들어간 경우는 더욱 더 그랬다.

“다른 회사에서는 절대 갖출 수 없고 또한 따라 할 수 없죠. 그래서 오로지 저만 가진 기업비밀입니다.”

“과연. 그런 결과물이라면······.”

다른 이라면 허황된 말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백광석은 달랐다. 그는 김태호가 가공한 것을 확인했다. 그랬기에 목소리는 더 은밀해졌다.

“혹시 건일ADOS에서 같이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재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술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더 큰 지원이 필요할 겁니다.”

“······.”

이 제안은 김태호도 의외였다. 사장인 그를 직접 스카우트를 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죄송합니다. 제가 이 회사를 버릴 수 없으니까요.”

재영공업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김태호에게 남은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이걸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그렇군요.”

“좋은 제의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받은 오퍼라 절대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도 변함은 없었을 것이다.

김태호는 자신에게 연구개발이 어울리지 않는 분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보다 지금과 같은 생산기술이 좋았다.

이번 금속분리판처럼 수많은 석학들이 세운 이론적인 난제를 실현시키는 것!

건일ADOS의 테스트에서 그 희열을 느끼고 말았다.

“아쉽지만 이해합니다. 2차 테스트를 넘어 최종합격까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때 다시 뵙도록 하죠.”

“가시기 전에 재영공업이 최우수업체로 최종선발되면 임대받으실 기기를 보고 가시죠.”

“정말입니까!”

김태호는 아예 눈빛부터 달라졌다. 이때까지 보인 모습 중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백광석은 기계 테스트 실로 갔다. 그곳에는 여러 기계들이 쉴 새 없이 작동되고 있었다.

“저 가운데가 금속분리판 쪽에 임대가 될 기계입니다.”

“좋네요. 아주 멋져요.”

유리창으로 가려진 테스트실.

김태호는 아예 얼굴을 붙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연구원이 작동하고 있는 기계는 연속성형으로 금속분리판의 모양을 곧바로 만들어냈다.

‘역시 저런 모델이어야 단축이 되는구나.’

김태호는 연신 감탄했다. 그의 프레스 기계는 구식이라 한 번 공정마다 매번 세팅을 다르게 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었다.

‘뭔가 이상한데.’

막상 기계를 지켜보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재료를 운반해서 가공을 하는 부분까지 뭔가 조금씩 어긋났다.

“프레스 자동화 좋네요. 다만, 그리퍼로 이송할 때 약간의 빈틈이 보입니다. 가공시에도 너무 유로쪽에만 집중한 것 같아요. 저러면 스프링백 확률이 높아질 텐데.”

저 좋은 기계를 저렇게 밖에 살리지 못한다니!

김태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구원이 막 빼낸 금속분리판을 보자 불량품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이 거리에서 그게 보입니까? 측정기기도 없이?”

“네. 보입니다.”

“수정방안을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주시겠습니까? 연구원에게 전하죠.”

백광석의 요청에 김태호는 지금 가공의 문제점을 알려줬다. 직접 써본 적이 없지만 가공에 대한 전문가는 바로 그였다.

‘아직 젊군. 이런 어필을 하다니.’

백광석은 외부인에게 허락이 되는 부분만 구경시키고 김태호를 보내줬다.

그 뒤에 연구원에게 김태호의 수정방안을 톡으로 알려줬다.

다음날 아침.

백동석에게 톡 하나가 왔다.

[연구소장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말씀해주신 그대로 했더니 불량률이 10% 줄었습니다!]

“······.”

백광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김태호의 훈수 한 마디가 낳은 결과는 엄청났다.

직접 결과물을 확인한 그는 헛웃음만 나왔다.

“어허허! 그래. 이러면 거절할만도 하지!”

백광석은 김태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영공업에 대한 한 줄의 의견이 더 추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사흘 뒤에 2차 테스트의 소재 310장이 도착했다. 10장은 여분으로 본 가동 전의 시험용이라 되어 있었다.

김태호는 물건들을 받자마자 곧바로 일일이 측정을 했다.

금속분리판의 소재는 워낙 얇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실수는 있으니 면밀히 살펴야만 했었다.

“너무 많다. 많아.”

모두 살피느라 두 눈이 빠질 것 같았다.

김태호는 먼지로 더러워진 손으로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무려 300장의 생산이다.

누군가에게는 소량이겠지만, 그에게는 대량이었다.

‘내가 하루 종일 이것에만 매달리면 50장까지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6일 동안 다른 걸 포기하고 이것에 매달려야만 한다.

제출시기까지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넉넉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두 가지.

김태호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잠을 줄이면 10일 정도가 걸릴 것이다.

이건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시간을 단축해야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김태호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건일ADOS에서 본 최신기계처럼 시간만 줄일 수 있다면!

“아! 그래!”

김태호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작업 시간에서 가장 소모가 큰 것이 공정을 준비할 때였다.

반드시 그걸 줄여야 했다.

모두가 포기할 현실적인 한계. 그걸 타개할 기적과 같은 마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꿈으로 접한 미지의 지식을 정리해둔 책을 펼쳤다. 그건 세상에 그만이 읽을 수 있는 지식의 보고였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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