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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화 (215/215)

외전 4화

덤덤한 제이너를 보며 도르만은 다시 당황했다. 몇 번 헛기침을 내뱉은 그는 나름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흔히들 말하죠. 지옥에 가면 영혼이 불구덩이에 던져진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닙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죠. 영혼이 갉아 먹힌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 주는 곳입니다.”

“영혼이야 생을 반복하며 이미 다 갉아 먹혀서 더 갈릴 것도 없는데.”

“그, 그러게요. 하, 하.”

도르만의 미소가 더욱 어색해졌다.

“흐흠, 어쨌든 지옥이라는 곳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드리고 싶네요.”

“뭐지?”

“사후 사신이 되시는 건 어떠십니까?”

“…사신?”

제이너의 얼굴에 처음으로 놀람이 깃들었다.

“물론 만만한 자리는 아닙니다.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지옥행보다는 낫다고 확신합니다.”

“흐음.”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이라는 것도 장담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도르만은 조용히 제이너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이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건 좀 끌리는 제안이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도르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누군가를 호명했다.

“하벨.”

그러자 아무도 없던 곳에 스르륵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 하벨이었다.

“서류.”

“여기 있습니다.”

하벨은 품에서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도르만에게 건넸다.

“영혼 계약서입니다. 사후 제이너 님이 사신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손 내밀어라.”

도르만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하벨은 제이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곤 귀걸이를 풀어 그의 손가락을 스윽 그었다.

“너의 이름이 적힌 난에 피를 찍으면 된다.”

제이너는 바로 하벨이 시키는 대로 행했다. 그러자 서류는 그대로 떠올라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럼 죽은 뒤에 보지.”

하벨은 그 말을 끝으로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그 자리에서 바로 사라졌다. 물론 도르만에게 아주 깍듯이 인사를 건넨 뒤 말이다.

그렇게 도르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사신이라.’

보상을 받기 전에도 도르만,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이 오류에 휩쓸린 일이 도르만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카밀라,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그 또한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네.’

사후 취업 자리도 보장받았고 말이야.

피식 웃은 그가 다이브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방학하면 카밀라나 보러 갈까?”

“정말요?”

“응, 카밀라도 너 온다고 하면 좋아할걸?”

“좋아요!”

제이너의 말에 다이브가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방학이 언젠데?”

그때 두 사람의 대화에 조용히 끼어드는 이가 있었으니 에스크라 공작이다.

“그건 왜요?”

“그 전에 급한 일은 다 처리해 놔야 하니까.”

“…아버지도 따라가시게요?”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두 사람을 보며 에스크라 공작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카밀라가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다이브 곁에 있으라고 했어.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따라가야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제이너와 다이브가 이내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스크라 공작은 다시 서류 처리에 속도를 올렸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해야 저들을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에스크라 공작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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