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211)화 (211/215)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짜증 나!”

당장 아레나의 힘이 필요한데! 이 액체가 자꾸 거슬리게 한다.

‘액체?’

카밀라는 바로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그러고는 그곳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손에 꽉 쥐었다.

“아이슬라.”

화아악!

순간적으로 주변 온도가 확 낮아진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뭐야? 이 상황은?]

이어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 새하얀 머릿결을 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겨울의 정령왕 아이슬라였다.

파지직!

상황을 살핀 그녀는 카밀라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그녀를 옭아맨 검은 액체를 바로 얼려서 부숴 버렸다.

이어 카밀라와 대치 중이던 벨 역시 그녀의 냉기에 그대로 몸이 얼었다.

“아레나!”

검은 액체에서 풀린 카밀라는 곧장 아르시안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뜻을 알아들은 아레나가 그대로 카밀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화아악!

엄청난 신성력이 아르시안을 순식간에 감쌌다.

구멍이 뚫리다시피 한 그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처음부터 상처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그의 상처를 치료한 아레나는 바로 카밀라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몸에 오래 머물수록 카밀라가 겪는 후유증도 컸기에.

“아르시안!”

그녀의 부름에 아르시안이 힘겹게 눈을 떴다.

신성력으로 상처는 완벽히 아물었지만 그사이 흘린 피가 너무도 많았다.

“너… 괜…찮아?”

자신의 안위부터 묻는 아르시안의 모습에 카밀라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켰다.

쩌저적!

그 순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얼어 버린 몸을 강제로 움직이고 있는 벨의 모습이 보였다.

얼음과 함께 몸이 여기저기 부서져 내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순식간에 다시 검은 액체가 그의 몸을 재구성했다.

“이건 또 뭐지?”

아이슬라를 바라보는 벨의 눈빛이 써늘하다.

아이슬라가 준 얼음 결정체를 이용해 정식으로 그녀를 불러낸 거라 다른 이들 눈에도 아이슬라가 똑똑히 보였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이거 뭐야? 저 검은 액체는… 에바 교?]

그녀는 벨이 쓴 힘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에바 교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마르스가 다 없앴는데?]

“…마르스?”

아이슬라가 마르스를 들먹이자 벨이 움찔하며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마르스를 저리 친근하게 부른다는 건?

“아이슬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카밀라는 아이슬라를 급히 불렀다. 그녀가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날아왔다.

“혹시 알아요?”

[뭘?]

“마르스가 죽인 에바 교 교주의 이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이슬라의 존재를!

당시 마르스와 에바 교의 충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두 지켜봤을 존재인 것을!

진명을 읽어 낼 수 있었던 진실의 거울, 도르만의 동생은 마르스의 동료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혹시…….

[알지.]

“……!”

카밀라는 입을 멍하니 벌렸고, 벨은 움찔하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가 빠르게 다시 힘을 개방했다.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카밀라와 아이슬라를 덮쳤다.

[존 카터.]

“네?”

[그 교주 놈 이름이 존 카터야.]

…뭐지?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흔해 빠진 이름은?

“닥쳐라!”

수백 년 만에 자신의 진명이 불리자 벨의 얼굴에 처음으로 난색이 떠올랐다.

그가 더욱 힘을 강하게 이끌어 냈다.

“존 카터.”

“……! 다, 닥쳐!”

그의 당혹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카밀라가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더욱 크게 외쳤다.

“존, 카터!”

“으……!”

[으아아아아악!]

그 또한 진명에는 별수 없는 듯 그대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왔다. 40대 중반의 정말 평범해 보이는 남자였다.

잠시 분한 마음에 비명을 질러 대던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다.

예전에도 그랬다. 진실의 거울을 어떻게든 가장 먼저 없앤 뒤 원래의 육체이자 교주로 군림하던 몸은 미련 없이 버렸다.

대신 다른 이를 그 몸에 집어넣은 뒤 자신은 몸을 꽁꽁 숨겼다. 그리고 마르스가 교주를 죽이고 에바 교를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그저 가만히 지켜봤다.

세상이 잠잠해지고 에바 교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점점 흐릿해져 갈 때쯤, 그는 은밀히 황실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사람들의 몸을 뺏어 나갔고 끝내 황제의 몸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그토록 공을 들였건만.

[감히, 감히, 너 따위가!]

그간의 고생을 수포로 만들다니!

[젠장!]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려고 했다. 다른 이의 몸을 차지해 예전처럼 다시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존 카터.”

[……!]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들이었다.

그중에는 하벨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 듯, 존 카터의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댄 지옥으로 바로 갈 수조차 없다.”

[무, 무슨……!]

“지옥조차 그대에겐 과분하다는 뜻이지.”

그동안 저놈이 벌인 일로 명부에 혼란이 일어 얼마나 고생했던가!

상관의 구박, 끝없는 야근, 건강상의 이유로 탈주하는 동료들……! 지금까지의 수모를 떠올린 사신들 모두 살벌한 눈빛으로 그를 압박했다.

“일단…….”

“우리 할 말이 좀 많지?”

“와, 씨! 내가 이 새끼 때문에 상사한테 깨진 걸 생각하면!”

“야, 새끼야, 내가 왜 야근해야 해! 왜 제시간에 일 못 끝내는 무능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해! 내가 너 죽일 거야!”

끌고 가기 전에 각자 볼일이 많은 듯 다들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구두 굽이 나름 아프더군.”

사신 하벨의 조언에 다들 주변에 버려진 구두가 없는지 살벌하게 살폈다.

[나, 난……!]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페이블러 황제… 아니, 존 카터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런 그를 둘러싼 채 사신들이 빠르게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하벨 역시 도르만과 카밀라를 잠시 바라본 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현실 반영이야 뭐야. 다 끝나니까 나타나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신들이 어이없었다. 뭐 하다 이제야 나타나서는!

“하…….”

그렇게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왠지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토록 오랫동안 세상을 농락하던 인간이 사신들에게 둘러싸여 벌벌 떨며 사라졌다.

그 역시 한낱 인간이었다는 것이 체감되자 뭔가 속이 시원하면서도 허망했다.

겨우 저딴 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희생된 거야? 내가 그토록 고생했던 게 저놈 때문이었다고?

‘피곤하네.’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신성력을 쓴 후유증일까? 한숨만 연신 흘러나오며 손가락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

그때 도르만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왔다.

“넌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어쨌든 적절한 타이밍에 도와준 건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이슬라를 불러내지도 못하고, 아르시안을 치료할 틈도 만들지 못했겠지.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카밀라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도르만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이 녀석, 또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그런 카밀라의 시선에 도르만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생을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생을 살게 해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생?”

“네. 좋은 환경, 새로운 가족… 그동안 겪으신 아픈 기억은 모두 지워지게 될 겁니다.”

“…….”

카밀라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때 실없이 던졌던 질문이 그냥 한 말이 아니었어? 지금 삶이 여전히 힘드냐고 물었던 게 이거 때문이었던 거야?

카밀라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새로운 삶… 새로운 가족…….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고?’

“이 X 같은 X!”

“죽어! 죽으라고!”

“너 같은 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