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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10)화 (210/215)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난 이는 바로 에드센 황태자였다.

“공격해라!”

에드센의 단호한 외침에 우왕좌왕하던 이들 모두 검을 고쳐 잡았다. 그들의 검이 향한 곳은 아비헬 황자와 에바 교 무리였다.

“전에 사냥터에서 봤던 것들이군.”

루드빌 곁으로 다가선 에드센은 가볍게 혀를 찼다. 역시 그때 그 무리를 자신에게 보낸 이는 쟈비엘라 황비였던 건가.

“에바 교입니다.”

“뭐?”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을 더 요구하는 에드센 황태자를 뒤로한 채 루드빌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에드센 역시 적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끝도 없군.”

죽여도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처럼, 사냥터에서처럼 고통을 모르는 이들의 모습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으아악!”

“뭐, 뭐야!”

게다가 알 수 없는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병사들을 감싸며 혼란에 빠트렸다.

“저기 걸리면 힘들어지죠. 기운이 쭉쭉 빨려 나가거든요.”

그 순간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린 에드센 황태자의 눈에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빙긋이 웃고 있는 이가 들어왔다.

“저들부터 죽여야 합니다.”

제이너가 전에 자신이 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한쪽에서 주술을 부리고 있는 이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스윽.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이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주술사의 목을 베어 냈다.

그들은 그 후로도 은밀히 움직이며 적들의 급소만 노리기 시작했다.

“넌…….”

에드센의 의아한 시선에 제이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카밀라의 오빠 됩니다.”

콰아앙!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걸까? 한창 전투 중이던 루드빌이 적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린 후 제이너를 지그시 노려봤다.

그 시선과 마주한 제이너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아무도 인정해 주는 것 같진 않지만.”

그 말을 끝으로 그 역시 전투에 끼어들었다. 순식간에 적의 목을 날려 버리는 그의 모습에 에드센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카밀라, 그녀는 또 어디서 저런 걸 주워 왔을까.

후우욱!

그 순간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뒤를 돌아본 에드센 황태자는 커다란 새가 날아오는 걸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온 건가.”

제이빌런가의 신수였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에바 교인을 향해 날아간 신수는 그대로 불길을 일으켰다.

비명조차 내지를 사이 없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이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적들의 그림자가 꿈틀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그들을 삼켜 버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 어둠이 잠식된 공간에도 역시나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내 그곳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커다란 검은 늑대였다.

[크허어어엉!]

킹 역시 어느새 전장에 뛰어들어 아직 남아 있는 주술의 흔적을 찢어발겼다.

“무사하시군요.”

어느새 에드센 황태자에게 다가선 세 공작이 그의 안위를 살폈다.

그들의 등장에 에드센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오늘따라 저들이 왜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질까.

“서둘러 처리하죠.”

“알겠습니다.”

네 사람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 * *

“저 사람.”

“이, 이익! 에바 신께서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

“닥쳐.”

“야아아아!”

서걱!

“남의 몸 뺏어서 살고 있는 주제에 용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밖에서 한참 사람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던 그 시간, 카밀라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궁 안에 이미 퍼져 있는 에바 교인을 아르시안과 함께 찾아내는 중이다.

도망치다 잡혀 헛소리를 지껄이며 공격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저, 전 아니에요!”

“곧 심판의 검이 도착하니 그때까지 버티고 있든가.”

“으… 으아아악! 죽어라!”

끝까지 발뺌하다 본색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오래전에 몸을 뺏긴 이들은 죽자마자 몸이 순식간에 부패해 사라져 갔고, 최근에 몸을 뺏긴 이들은 쟈비엘라 황비처럼 악취를 풍기며 썩은 몸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히익!”

“애, 앤이 에바 교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이들도 그런 모습을 보며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비헬 전하… 아니, 에바 교주가 죽었대!”

기다렸던 소식이 날아들었다. 에드센 황태자의 손에 아비헬 황자가 처단되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져 왔다.

“하아.”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내내 꼭 쥐고 있던 수호의 검을 그제야 내려놓았다.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걸까? 검을 쥐고 있던 손이 저릿저릿하다.

‘드디어 그자가 죽은 건가?’

그토록 오랫동안 생을 영위한 것치곤 참 허무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세 공작에 신수들까지 나섰으니 그도 별수 없었겠지.

‘그래, 이제 끝이네.’

카밀라는 도망치고 있는 에바 교인 하나를 붙잡고 있는 아르시안을 보며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뭐지? 이 찜찜함은?

아비헬 황자… 아니, 그의 몸을 차지한 에바 교의 교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영 껄끄럽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것 같……!’

카밀라의 걸음이 뚝 멈췄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왜 계속 찜찜함을 느꼈는지.

이곳에 와 잠깐 스치듯 보았던 아비헬 황자.

“영혼이…….”

죽은 영혼이…….

“…하나였어.”

우우웅-

그 순간 바닥에 내려놓았던 수호의 검이 울었다.

[카밀라! 조심……!]

동시에 제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강하게 옭아맸다.

검은 액체 같은 것이 연신 꿈틀거리며 그녀를 옥죄었다. 전에 다니엘이 부리던 주술사가 선보인 힘과는 차원이 달랐다.

“카밀라!”

아르시안이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왔다.

“멈추시게.”

“……!”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그는 카밀라의 목을 당장이라도 꺾을 듯 손에 쥐며 아르시안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곧바로 마력을 움직이던 아르시안의 행동이 그대로 멈췄다.

“넌…….”

그를 알아본 카밀라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익히 아는 자다. 에드센 황태자를 만날 때마다 마주했던 이.

‘시종 벨.’

에드센 황태자의 손과 발이 되어 주던 남자가 연신 혀를 찼다.

카밀라는 그제야 볼 수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자리한 수많은 귀신을.

얼마 전까지 페이블러 황제에게 묶여 있던 이들이 지금은 시종 벨에게 붙어 있었다.

‘아비헬 황자가 아니었어.’

페이블러 황제가 몸을 뺏은 이는 에드센도, 아비헬도 아니었다.

‘아니, 대체 왜?’

황자들을 놔두고 왜 시종의 몸을 차지한 거지?

“진실의 거울이라니.”

그는 신기하다는 듯 카밀라를 바라봤다.

“내가 태어나지도 못하게 다 죽였는데.”

“당장 떨어져!”

그 소리에 아르시안이 먼저 반응을 했다.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한 발짝 다가서려는 그를 벨이 제지했다.

카밀라의 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이 강해진다. 손톱이 파고들어 목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아르시안이 으득 이를 갈았다.

후욱!

“아르시안!”

가소롭다는 듯 벨이 손을 움직이자 검은 액체가 날카롭게 변해 그대로 아르시안의 배를 뚫었다.

“다… 당장 그 손 놔.”

바닥에 주저앉는 중에도 아르시안은 살기를 감추지 않았다. 눈빛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했다.

“그건 좀 곤란해서 말이야. 진실의 거울은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단다.”

그는 가볍게 다시 혀를 찼다. 자신의 계획이 이렇게 또 물거품이 될 줄은 몰랐다.

다니엘이 세 공작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일이 꼬였음을 바로 감지했다.

세 공작이 에바 교, 자신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자신의 존재 또한 곧 알게 될 것임을 말이다.

“오랫동안 기다렸건만.”

에바 교가 다시 세상에 당당히 나설 때를 참고 또 참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도 역시 몸을 숨겨야 할 듯했다.

그는 바로 일을 실행했다. 페이블러 황제, 자신이 그동안 사용한 육체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세 공작이 교에서 추구하는 영생에 대해 알고 있다면 분명 페이블러 황제의 죽음에 두 황자를 제일 먼저 의심할 거라 생각했다.

‘그에 일부러 에드센에게 누명까지 씌웠지.’

모두가 단번에 아비헬 황자가 자신의 새로운 몸이라 확신할 수 있도록.

에바 교인 중 하나를 실제로 아비헬, 그 아이의 몸에 집어넣어 육신도 뺏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죽으면…….’

세 공작과 신수의 공격에 아직 미흡한 힘을 가진 자신의 교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아비헬 황자가 죽고 궁이 다시 안정을 찾으면.

‘그때 에드센의 몸을 차지하려 했건만.’

그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럼 한동안 조용히 숨어 힘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이야 그에겐 늘 무의미한 것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그런데.”

이 아이가 문제였다.

“진실의 거울.”

설마 카밀라, 이 아이가 진실의 거울일 줄 어찌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녀가 있는 한 자신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 다른 몸을 차지해 봐야 그녀가 또 자신을 찾아낼 테니까.

“아… 아르시안.”

카밀라의 눈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카밀라!]

[이거 대체 뭐야!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잖아!]

제노와 아레나 역시 당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은 액체에 휩싸인 카밀라 곁으로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이야,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

서걱!

카밀라를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던 페이블러 황제… 아니, 시종 벨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의 팔을 누군가 베어 냈기 때문이다.

“쿨럭!”

“괜찮으십니까?”

도르만이었다. 그가 카밀라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검은 액체는 순식간에 다시 두 사람을 함께 옭아맸다.

“쯧, 방해꾼이 많군.”

가볍게 혀를 찬 벨은 잘린 팔을 보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검은 액체가 그에게 빠르게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다시 팔을 만들어 냈다.

“썩을.”

잠시 마른기침을 내뱉던 카밀라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시선이 바로 아르시안에게로 향했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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