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라의 말로는 몸을 강탈당한 진짜 영혼이 그 몸에서 떠나지 못하고 곁에 붙어 있다 했다.
‘넌 그 사실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 거냐.’
‘아, 꾸, 꿈에서 봤어요. 일종의 계시죠. 하하.’
세프라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공작의 시선이 더욱 서늘해졌다.
명색이 친우라고 오랫동안 세프라 공작과 함께한 두 사람은 그가 죽은 자의 영혼을 감지해 내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아비헬 황자인 건가.’
세 공작에게서 순식간에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쟈비엘라 황비 측 사람들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무엄하십니다! 아비헬 전하께서는 곧 황위에 오르실 분이란 말입니다!”
“황위?”
소르펠 공작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자 그들 중 한 명이 움찔하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폐하께서 직접 직인을 찍은 유언장도 있습니다. 황위를 아비헬 님께 넘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지요!”
수많은 이들의 외침에도 세 공작의 시선은 아비헬 황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선이 무척 부담스러운 듯 그가 슬쩍 눈을 피했다.
“에바 교가 다시 등장했소.”
“네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에바 교라니……!”
뜬금없는 소르펠 공작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로지 쟈비엘라 황비와 아비헬 황자만이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에바 교가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알 것이오.”
“타인의 목숨을 뺏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들이지.”
“또 하나, 사람의 몸을 뺏기도 한다는군.”
“그게 무슨!”
놀람도 잠시, 사람들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빠르게 피어올랐다.
갑자기 오래전에 사라진 에바 교라니,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지금 세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
“지금 이 자리에도 에바 교에 몸을 뺏긴 자가 있단 말이오.”
그제야 세 공작이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이유를 안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여전히 아비헬 황자와 쟈비엘라 황비에게 가 있는 걸 본 이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지금 설마 저 두 분을 의심하는 것이오!”
쟈비엘라 황비의 아버지인 듀리얼 후작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무리 수호의 가문이라고 하지만 증거도 없이 이토록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맞습니다. 에바 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세 분께선 반역자의 편을 들고 싶으신가 본데, 트집을 잡으시려면 제대로 된 걸 들고 오셨어야지요. 에바 교? 허허.”
후작이 나서자 당황하던 다른 이들도 서둘러 그의 편을 들며 외쳤다.
평소에는 세 공작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하던 이들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는 순간이다.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야지 않겠는가!
게다가 에바 교가 등장했다는 둥 몸을 뺏긴다는 둥 저들의 주장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죠? 이건 황실 모독입니다!”
쟈비엘라 황비 역시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세 공작을 향해 소리쳤다.
“신수를 앞에 두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
하지만 이어진 소르펠 공작의 말에 쟈비엘라 황비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르펠 공작은 짧게 혀를 찼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아마 이 중에도 에바 교에 속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비헬 황자처럼 몸을 뺏겼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그들을 따르며 궁에 들어와 있는 자들도 있겠지.
“크흠!”
그런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다들 피하기 급급했다. 아무리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하여도 세 공작은 세 공작이었으니까.
“신수라니요!”
하지만 그 순간 목청을 다시 높이는 이가 있었으니, 듀리얼 후작이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황궁에서 신수를 불러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시는 거요! 그 자체가 반역이오!”
여기서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
자신의 손자가 황위를 잇게 된 지금, 황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첫 단추를 잘 끼워야지 않겠는가.
듀리얼 후작은 단호한 눈빛으로 소르펠 공작을 노려봤다.
“그 증거, 제가 제시하죠.”
그 순간 사람들의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모두의 시선이 홀 입구로 향했다.
저벅.
빠르게 안으로 들어서는 이, 바로 카밀라였다.
“증거? 무슨 증거?”
듀리얼 후작은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여기저기 그녀에 대한 말들이 많은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수호의 검을 깨웠다고 했나?’
그래서 에바 교를 들먹이는 건가? 설마 증거라는 것이 여기서 수호의 검이라도 뽑아 들 생각인가?
듀리얼 후작 역시 에바 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제이빌런 가문이 차지한 수호의 검, 그 검을 듀리얼 가문에서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선대 조상들은 더 간절했을 것이다. 신수를 가진 공작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수호의 검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수호의 검조차 자신들의 가문이 아닌 제이빌런가를 선택했다.
물론 검을 찾기만 했을 뿐, 수호의 검이 가진 진정한 힘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게 위안이었거늘.’
그런데 얼마 전 잠들어 있던 검을 깨운 이가 나타났고, 그것이 소르펠가의 여식이라는 말에 듀리얼 후작은 으득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왜 모든 것이 세 공작의 손에만 쥐어지는 것인지! 어떻게 이리 불공평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듀리얼 후작가에도 에바 교에 대한 정보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잘 알았다. 에바 교인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저들의 말대로 이 자리에 에바 교인이 있다고 한들, 정말 그것이 자신의 딸과 손자라 하여도 밝혀낼 방법이 없다.
‘진실의 거울도 없는 것을.’
그는 진실의 거울이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과거 마르스의 동료 중 하나가 진실의 거울이었다는 사실을 고서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증거? 증명? 어떻게?’
듀리얼 후작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두 부녀가 이 자리에서 창피를 당하고 물러날 거라 그는 확신했다.
공작가의 권력만 믿고 설치러 온 것 같은데, 절대 이번에는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신성력?’
듣기로 카밀라, 저 아이가 신성력도 가지고 있다던데. 그거라도 펼칠 생각인가?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신성력도 에바 교인을 찾아내는 데 별 소용이 없으니까.
그러는 사이 어느새 카밀라가 쟈비엘라 황비의 앞에 멈춰 섰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는 쟈비엘라 황비의 눈을 직시하며 카밀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인의 몸을 뺏은 에바 교인은 자신의 진명이 불리게 되면 그 몸에서 빠져나오지요.”
“무, 무슨……!”
쟈비엘라 황비의 눈이 빠르게 커졌다. 아마 에바 교인들도 이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오래전에 진명을 읽어 냈던, 진실의 거울이었던 도르만의 동생도 그 능력을 에바 교인을 구별하는 것에만 썼을 뿐이었다.
사신이 아닌 이상 진명을 외친다고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셀레나 메이.”
난 다르지.
“흐읍!”
자신의 진명이 흘러나오자 쟈비엘라 황비가 주춤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카밀라는 다시 한번 정확히 외쳤다.
“셀레나, 메이.”
“아, 안……!”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은 듯 안색이 하얗게 질린 쟈비엘라 황비가 비명을 지를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쟈비엘라 황비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영혼이 빠져나오는 게 더 빨랐다.
[안 돼에에에!]
자신이 다시 영혼이 된 걸 확인한 쟈비엘라… 아니, 셀레나는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자신이 빠져나온 몸이 빠르게 썩어 가는 걸 보며.
‘이미 확인했거든.’
누구에게? 사신 하벨에게.
쟈비엘라 황비의 몸을 차지한 이의 진명을 알려 주러 자신을 찾아온 하벨에게 혹시나 해서 물었다.
‘최근에 몸을 뺏긴 자는 영혼이 빠져나와도 혹시 멀쩡해?’
‘썩어서 사라지지 않는 거냐고 묻는 거냐.’
‘어.’
‘본래의 영혼이 몸에서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 몸은 죽은 것과 같다. 새로운 영이 들어가 그 거죽만 뒤집어썼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