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207)화 (207/215)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비헬에게 황위를 넘겨?”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문서로도… 황제의 인장까지 찍혀 있다고 합니다. 증인들도 존재한다고…….”

“하!”

에드센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황제가 죽고 그 황위를 2황자에게 넘겼다.

순간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그 여자가.”

쟈비엘라 황비, 그녀의 손에서 이뤄진 일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실을 누가 알고 있지?”

“아비헬 전하 쪽에서 손을 썼는지 몇 안 됩니다. 폐하께서 서거하셨음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유언장을 공개하려는 모양입니다.”

“대신들은?”

“아비헬 전하 쪽 사람들이 황궁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정말 아바마마가 죽을 때를 알고 있었던 이들 같군.”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신중히 살폈어야 했는데.”

“작정하고 움직인 이들이다. 자네 탓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지. 일단 우리 쪽 사람들에게도 어떻게든 소식을 전해.”

“알겠습니다.”

에드센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이 먼저다.

그는 페이블러 황제의 거처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이건 또 뭐지?”

하지만 그는 바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검과 창을 든 병사들이 어느새 문밖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근위대 소속 기사가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전하께선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으십니다.”

에드센의 입매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누구의 명이지?”

“쟈비엘라 황비님의 명입니다.”

근위대 소속 기사 중에 황비를 따르는 이들이 있다더니, 아마 이놈도 그중 하나겠지?

정중한 말투와 달리 비웃음을 슬며시 머금는 기사를 보며 확신했다.

“아바마마가 돌아가신 지금 최우선 결정권은 태자인 나에게 있을 텐데.”

“송구하게도 에드센 전하께선 현재 황제 폐하를 시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계십니다. 나가실 수 없습니다.”

“뭐?”

내가 아바마마를 시해했다고?

에드센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의 입매가 다시 비뚤게 올라갔다.

서걱!

순식간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방금까지 조곤조곤 말을 내뱉던 기사가 쓰러지는 걸 보며 주변에 서 있던 병사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둘러 검과 창이 에드센 황태자에게로 향했다.

“아, 미안. 이 이상으로 대화를 하기엔 내가 지금 시간이 좀 없어서.”

이미 죽어 쓰러진 이에게 뒤늦은 사과를 내뱉은 그의 시선이 천천히 병사들에게 향했다.

그 시선에 다들 주춤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또 나와 대화하고 싶은 사람?”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상황은요?”

[개판.]

“에드센 전하는 어때요?”

[못 찾았어.]

“네?”

황제의 사망 소식을 들은 카밀라는 은밀히 궁으로 향했다. 궁은 이미 폐쇄되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궁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건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카밀라는 주변에 숨어 제노에게 궁 안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 무엇보다 에드센 황태자를 찾아가 그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 부탁했다.

“황제가 죽었다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또 옮겼어?”

몸을 갈아탄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대상은 에드센 황태자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다음 황위에 오를 이로 가장 확실한 인물이었으니까.

지금껏 그런 자의 몸에 들어갔으니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도망쳤다는데.]

“도망이요?”

[황제를 시해했다더군.]

“네에?”

카밀라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자기가 들어갈 몸에 그런 누명을 씌울 리가 없잖아.

‘에드센 황태자의 몸에 들어간 게 아냐?’

그럼 누구?

“설마…….”

“왜? 저게 뭐라는데?”

“뭐야? 유령이 벌써 온 거야?”

카밀라와 함께 이 자리에 온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르시안과 제이너였다.

페이블러 황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밖으로 향하는 그녀를 두 사람이 그 즉시 뒤따랐다. 카밀라는 그들의 동행을 거절하지 않았다.

“정말 여기에 있는 거야?”

이곳으로 오며 카밀라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된 제이너는 새삼 즐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허공에 대고 대화를 시도하는 그녀의 모습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죽은 자와 얘기를 나누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놀리는 건가? 했는데…….

“너도 본다 이거지?”

“신경 꺼.”

아르시안, 저 인간도 죽은 자를 본다지 않은가.

카밀라처럼 정확한 모습을 보거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죽음의 신수를 가진 가문의 힘인가?’

칸의 주인인 저조차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만큼 세프라가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곳이었으니까.

“아비헬 황자도 확인해 봐야겠어.”

“2황자?”

“응.”

에드센 황태자가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아가씨.”

그때 집사 루브… 아니,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루브가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는 이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이미 아르시안도 제이너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세 분 공작님께서도 오셨습니다.”

아마도 황제의 죽음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오신 듯했다.

“지금 어디에 계셔?”

“정문이요.”

“뭐?”

지금 이 상황에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올 생각인 건가?

카밀라가 놀란 눈빛을 보내자,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오히려 루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블러 제국 그 어디도 세 공작님께서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그게 비록 황실일지라도 말이죠. 수호의 가문이란 그런 것입니다.”

한마디로 쟈비엘라 황비가 궁을 폐쇄해도 세 공작에겐 소용이 없다는 거다.

물론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곧 문이 열릴 겁니다. 아가씨는 어쩌시겠습니까. 가주님께선 카밀라 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카밀라에게서 페이블러 황제의 정체를 다 들은 세 공작 모두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황제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가 이미 다른 자의 몸에 기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르펠 공작은 아마도 그런 위험한 자와 더는 자신이 마주하는 걸 원치 않는 거겠지.

“나도 가.”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에드센 황태자의 몸에 기어 들어가지 않았다면…….’

분명 다른 이의 몸을 뺏었다는 건데, 그게 누구인지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알려 줘야지 않겠는가.

“가요.”

카밀라는 곧장 성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카밀라.”

“너 왜 여기로 와! 집으로 가라니까!”

세 공작은 바로 안으로 향했는지 그곳에 있는 건 루드빌과 라비뿐이었다.

두 사람의 격한 반응에 순간 움찔한 카밀라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자, 그들이 카밀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니에요. 제가 직접 확인할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우리가 대신 확인할 테니까 넌 가.”

“오라비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버지는 벌써 들어가신 거야?”

“너……!”

후다닥 도망가는 카밀라의 뒤를 따르는 아르시안이 걱정 말라는 듯 그들을 향해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다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더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저 고집을 누가 꺾겠는가.

“하아, 걱정이네.”

라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왜 저렇게 겁이 없을까? 예전에는 진짜 안 저랬는데.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냥 집으로 좀 가지.”

“너도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네?”

카밀라를 바라보며 연신 혀를 차던 라비의 시선이 루드빌에게 향했다. 설마 도움이 안 되니 돌아가라는 건가?

“저도 나름 도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라.”

“…예?”

하지만 이어진 루드빌의 말에 라비는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걱정이 돼서 가라는…….

투욱.

“다치지 마라.”

가볍게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앞서 걸어가는 루드빌을 보며 라비는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요즘 진짜 왜 저러는 거야?”

한참 후에야 투덜거리며 라비 역시 걸음을 옮겼다.

불만을 토하는 말투와 달리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말이다.

* * *

“어서들 오세요.”

그들이 올 것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쟈비엘라 황비는 나름 반갑게 세 공작을 맞아 줬다.

그녀의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다들 오래전부터 2황자를 따르던 귀족들이다.

“폐하께선…….”

“독에 당하셔서 시신조차 제대로 보존치 못했답니다.”

쟈비엘라 황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궜다. 누가 봐도 처연하기 짝이 없는 가련한 모습이었다.

“에드센이 보낸 차를 마시고 그렇게 되셨지요. 그 차에서 독이 발견되었어요.”

소르펠 공작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간신히 삼켰다.

‘역시 카밀라의 말대로군.’

몸을 뺏긴 자에게서 영혼이 도로 빠져나오면 육체가 썩어 들어간다는 말을 이미 카밀라에게 들었다. 그러니 시신조차 보여 주지 못하는 거겠지.

“두 황자님께선 어디에 계십니까?”

“에드센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도망쳤거든요.”

“…도망이라고 하셨습니까?”

“자기도 두려웠겠죠. 도망쳤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죄를 스스로 시인한 거 아니겠어요?”

세 공작은 속으로 연신 혀를 찼다. 자신들이 아는 에드센은 그리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면 좀 더 세밀하게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고작 자기가 보낸 차에 독을 탈 허술한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그보다 지금 이 상황은…….’

‘에드센 전하의 몸을 뺏은 게 아니라는 건가?’

‘그럼 아비헬 황자겠군.’

지금 황제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 공작의 관심은 황제의 몸에 들어가 있던 영혼이 누구의 몸에 들어갔냐는 거다.

카밀라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황제의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에드센 황태자의 몸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어마마마.”

그때 아비헬 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바라보는 세 공작의 시선이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특히 세프라 공작은 유심히 그를 살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비헬 황자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검은 영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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