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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의 말투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신관도 아닌 놈에게 존대를 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녀의 물음에 다니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바보니?”
“네?”
“현재 제이너가 다쳐서 사라진 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범인뿐이니까.”
“아, 그렇군요.”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다니엘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오히려 얘기가 쉬워졌다는 듯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기까지 했다.
“영애를 이곳으로 모시고 온 이유 중 하나가 제이너, 그분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더군요.”
“행방을 몰라?”
그 말에 카밀라는 내심 안도했다. 제이너를 추적 중이라는 건 아직 그가 무사하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굳이 칸 지부 앞에서 날 납치한 거야? 부하들을 통해 숨어 있는 제이너를 어떻게든 불러내려고?”
다니엘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이미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납치라고 하긴 뭐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한데, 그걸 다 아시면서 저를 따라오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칸 지부 역시 아는 게 없던데.”
나를 제이너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쓸 생각이었나 본데, 너 헛다리 짚은 거야.
어이가 없는 상황에 카밀라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뭐라고.’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다.
그들은 남이었다.
고작 양부의 딸을 구하기 위해 이런 위험한 곳까지 올 거라 생각한 건가?
‘오랫동안 함께 산 다이브도 그냥 내버려 뒀던 놈인데?’
다이브의 유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걸 칸의 수장인 그가 정말 몰랐을까?
그럴 리가.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뒀던 인간이다.
‘뭐,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뭘 하든 회귀와 동시에 원점으로 돌아가니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 여겨졌겠지.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이야 그래도 동생이 고통받는 걸 외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인간은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인 데다 손익도 무지하게 따진단 말이지.’
그런 놈이 자신을 구하러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기요, 아저씨. 미끼 선택을 잘못하셨어요.
“글쎄요.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죠.”
다니엘 또한 큰 기대를 한 건 아닌지, 제이너가 오든 말든 별 상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애를 유인책으로 삼은 건 맞지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
“진심으로 제대로 얘기를 한번 나누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카밀라는 말없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뭔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해 보라는 듯이.
“세상에는 주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에바 교에 대해 말하는 거야?”
“……!”
쓸데없는 말로 질질 끄는 것 같아 대신 바로 핵심을 꺼내 주자 다니엘,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다니엘은 가볍게 혀를 차며 확신을 갖고 물었다.
“제이너 님이 말해 주신 건가요?”
제이너에게 들어?
에바 교에 대해서? 이건 또 뭔 소리야?
‘뭐야?’
제이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카밀라는 기가 막혀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언제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뭐 알아낸 거 없냐는 말에 자꾸 말을 돌리더니!’
이 자식! 너도 도르만 닮아 가니?
왜 말을 안 해 주는 거야! 이 상도덕도 없는 놈! 의뢰를 한 게 나인 것을!
그럼 당연히 나한테 제일 먼저 알아낸 게 있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이번에 의뢰비는 한 푼도 없을 줄… 잠깐만!’
속으로 열심히 제이너를 씹던 카밀라는 순간 멈칫했다.
‘설마… 나 때문인가?’
내 의뢰를 하다가 다니엘, 저자의 정체를 알게 된 건가? 그러다 에바 교에 대해서도 알게 된 거 아냐?
‘혹 그래서 저들에게 쫓기다 위험해진 거고?’
카밀라는 굳어지려는 표정을 급히 감췄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이건 명백한 자신의 실수다.
그저 성물을 유통시킨 자에 대해서만 조용히 알아봐 달라고 한 건데, 칸의 주인인 그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보다.
“그래서 뭐야?”
카밀라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숨긴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에바 교 홍보라도 하게?”
“저는 그저 오해를 풀고 싶을 뿐입니다. 동시에 좋은 말씀도 전하고요. 에바 교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해?”
“알려진 것과 달리 저희는 단 한 번도 원하지 않는 이를 강제로 교로 끌어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안타깝다는 듯 연신 혀를 찼다.
“모두가 원해서, 간절히 교에 들어오기를 바라서 받아들였을 뿐이죠. 사람들은 그만큼 영생을 바라니까요.”
“몸을 뺏긴 이들은?”
“네?”
“너희들 손에 육체를 뺏긴 이들도 강제가 아니었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시군요.”
이번에야말로 다니엘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에바 교가 사람들의 육신을 뺏는다는 사실은 예전에도 지금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다들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생을 영위해 나간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
에바 교에 속한 이들이 생을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듯 다른 사람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젊고 생생한 육체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다.
“그들도 강제가 아니었냐고 묻잖아.”
“어떤 일이든 큰일을 위한 작은 희생은 늘 따르는 법이지요.”
“하.”
개소리도 저리 진지하게 하니 신선하네.
“그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영생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어.”
“맞습니다. 영생… 네?”
“안 원한다고.”
누가 사이비교 아니랄까 봐 멘트도 식상하기 짝이 없어.
‘영생을 원하냐고?’
그 헛소리 제이너 앞에서 한번 해 보지 그래? 아마 당장 깔깔 웃으며 네놈 목을 스삭- 해 버릴걸?
“계속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니란다.”
인생 다 산 사람 같은 멘트에 다니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며 카밀라는 피식 웃었다.
“내가 생각보다 좀 많이 살아서 말이야.”
지금껏 죽기 싫어서 정말 아등바등하긴 했지만 그거야 내게 원래 주어진 삶을 지키려고 그런 거고, 주어진 생을 강제로 연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것도 남의 생명을 이용해서까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야.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나만큼 죽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는 맛이 무서운 거라고.
“너도 한 스물여섯 번 죽어 볼래? 간접 경험인데도 매번 무섭더라. 전혀 익숙해지지 않더라고.”
“무슨…….”
“그래서 뭐야? 나보고 너희 교에 들어오라고?”
“예? 그, 그렇습니다. 저희 교의 성녀가 되어 주십시오.”
“…성녀?”
[이런, 씨……! 저런 머리에 칼 맞은 놈을 봤나! 주신의 힘을 쓰는 성녀에게 뭐가 어쩌고 어째? 이단 놈들이라 양심을 아주 쓰레기통에 처박았구나!]
워, 워. 진정하시고요.
카밀라보다 아레나가 먼저 반응을 했다.
그녀의 엄청난 신성력을 눈앞에서 직접 봤음에도 에바 교의 성녀가 되라는 말이 그녀를 아주 열받게 만들었나 보다.
“성녀라는 직책은 저희 교에서도 아무에게나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영애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상상하시는 그 이상의 부와 권력이 영애에게 주어질 겁니다. 또한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원하는 모든 것이라.”
“네, 에바 교의 성녀라는 자리는 그런 것이지요. 신전에서처럼 성녀의 힘만 빼다 써먹는 양심 없는 짓은 저희는 절대 안 합니다.”
[어? 그건 인정. 더럽게 일만 시키긴 하지.]
저기요? 거기서 지금 인정을 하시면…….
아레나가 언제 또 화를 냈냐는 듯 다니엘의 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바 교의 성녀라.”
“엄청난 힘을 얻게 되실 겁니다.”
“흐음.”
“부와 권력, 그 모든 것을!”
카밀라가 관심을 보이자 다니엘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다.
‘됐다!’
다니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이너를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교로 끌어들인다면 교주께선 분명 자신을 다시 받아 주실 것이다.
그녀가 자신들과 뜻을 함께한다면 더 이상 수호의 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엄청난 신성력을 이용한다면 에바 교의 힘을 더 널리 알릴 수 있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 사실을 교주님도 너무 잘 알기에 카밀라 소르펠에 대한 처분을 고민하고 계시는 게 아니겠는가.
‘이건 기회다!’
두 번 다시 없을!
‘명을 어긴 것도 용서해 주시겠지.’
홀로 제이너를 처리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결국 다른 이들을 동원했다.
현재 이 건물 곳곳에 에바 교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제이너가 보이는 순간 바로 주술을 동반한 공격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니까.’
비록 제이너를 혼자 처리하라는 명을 어겼지만 카밀라를 포섭하고 제이너까지 깔끔히 제거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실 게 분명하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제국을 갖고 싶으십니까? 저흰 충분히 드릴 힘이 있습니다.”
“그딴 건 필요 없는데.”
“그럼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가 원하는 건…….”
잠시 말을 끈 카밀라가 빙긋이 웃었다.
“교주의 목.”
“…네?”
“그쪽 교주의 목이 필요하다면 어쩔 거야?”
“…….”
“목을 가져오면 생각해 볼게. 아, 내가 너무 밑지는 거래인가?”
카밀라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몸으로 들어가면 될 테니, 지금 들어앉아 있는 몸이야 버리면 그만이잖아. 으음, 이렇게 하자. 너 말고 교주 본인이 직접 자기 목 가져오는 걸로.”
“당신…….”
이죽거리는 카밀라를 보며 다니엘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애초에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걸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실망이군요. 말이 통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나도 실망이야. 생각보다 너무 허술하게 본색을 드러내서.”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후회야 늘 하는 거라.”
심드렁한 카밀라의 대답에 다니엘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실행해라.”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나직한 명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제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말 아쉽네요.”
이건 진심이다. 육체만 얻었다가는 수호의 검이나 신성력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온전한 상태의 그녀가 갖고 싶었거늘.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리 강경히 싫다는데. 아쉽지만 저 몸이라도 가져가야겠다.
“그래도 영애의 몸은 교의 높은 분께 넘겨 아주 귀히 쓰이게 할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