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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03)화 (20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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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아르시안이다. 문가에 서서 못마땅한 얼굴로 제이너를 바라보던 그는 리오의 부름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형이 여기서 놀지 말라고 했잖아.”

“멍멍이가 여기 있어요.”

“저 개새ㄲ… 멍멍이도 이제 여기 없을 거야.”

“왜요?”

아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또 사라지는 건가?

그런 아이의 머리를 아르시안이 달래듯 가볍게 쓰다듬었다.

“집사가 너 찾더라. 방에 없다고.”

“집사 할아버지가요?”

“간식 먹으래.”

“아! 간식! 달콤이!”

간식 먹을 시간을 깜박한 리오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데 까먹다니!

툭툭.

“어?”

그런 아이의 등을 콕콕 찌르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신수 루나였다.

자신을 돌아보는 리오를 향해 루나가 천천히 몸을 낮췄다. 올라타라는 듯이.

“아이, 착해. 우리 멍멍이!”

그 뜻을 알아들은 리오는 바로 루나의 등에 올라타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자! 멍멍아! 내 방으로!”

[…….]

멍멍이…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호칭에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쉰 루나는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방을 나섰다.

리오가 떠나기 무섭게 설전이 벌어졌다.

“신수한테 저래도 돼?”

“남의 집 일에 신경 끄고 정신 차렸으면 꺼져.”

“남을 감시한 것에 대해 할 말은 없고?”

“살려 줬더니 말이 많네?”

“하하, 그건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지. 내가 이런 계산은 또 철저하거든.”

“됐고. 꺼지기나 해. 널 찾아온 놈도 데리고.”

미간을 찌푸린 아르시안이 창밖으로 시선을 줬다. 제이너도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답게 무척 은밀한 움직임이었지만 두 사람의 눈을 피하기는 무리였다.

“칸 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듯 숨어 있던 이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으십니까?”

칸 지부 한 곳을 맡고 있는 점장 테이는 아르시안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제이너를 살폈다.

방금 전의 대화로 그가 제이너를 구해 준 사실을 알았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그가 한때 자신들의 지부를 공격했던 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테이가 힐끔 아르시안의 눈치를 보자 제이너가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라 님이 지부로 찾아오셨습니다.”

“카밀라가?”

“칸 님의 행방을 물으셨는데…….”

카밀라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말에 제이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반면 아르시안의 눈빛은 사나워졌고.

“그런데 지부를 나서는 그녀를 다니엘 신관이 급히 데리고 갔습니다.”

“뭐?”

“누가 데리고 가?”

이어진 말에는 제이너와 아르시안이 동시에 반응했다.

제이너야 다니엘의 정체를 대충 알고 있었고, 아르시안 역시 카밀라가 교황청에서 보인 반응으로 그녀가 다니엘, 그자를 경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을 붙여 뒀습니다. 행선지는 파악이 끝났습니다만.”

“안내해.”

“그런데 아무래도 함정인 듯합니다. 저희가 보는 앞에서 카밀라 님을 데리고 간 것도 그렇고,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움직인 것도……!”

우우웅.

“야! 잠깐만!”

테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르시안이 마법을 시전했다.

카밀라에게 예전에 추적 마법을 걸어 두었던 그였기에 따로 안내 따윈 필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너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씨… 뭐 하는 거야!”

한시가 급한데!

아르시안의 살기가 훅 하고 제이너를 덮쳤다. 당장 손을 놓지 않으면 그대로 죽일 기세다.

“그가 원하는 건 나야. 내 부하의 말대로 내가 가지 않으면 그녀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

더 논쟁할 시간이 없다 여긴 아르시안은 화를 삼키며 바로 다시 마력을 움직였다.

화아악!

그러자 순식간에 두 사람이 빛에 휩싸이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아.”

이를 옆에서 모두 지켜본 부하 테이는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명 함정이라고 했는데.”

두 사람 다 그 말을 듣기는 한 건가?

테이는 머리가 아픈 듯 미간을 꾹꾹 누르다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화아악!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공간.

카밀라에게 걸어 둔 추적 마법을 쫓아 모습을 드러낸 아르시안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화르륵!

“…뭐야?”

주변이 온통 불바다다. 건물로 보이는 곳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르시안의 얼굴에 핏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카밀라의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이 바로 저기니까.

“설마……!”

아르시안은 바로 달려갔다. 불타고 있는 건물 쪽으로.

“뭐 하는 짓이야!”

“놔!”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은 저기뿐이다. 그런데 저기가 타고 있다는 건?

아르시안은 자신을 붙잡는 제이너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지만 제이너는 그런 그를 다시 강하게 붙잡았다.

“정신 차려! 저건 단순한 불이 아니야!”

건물과 주변을 활활 태우고 있는 불,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저건…….

“…….”

아르시안도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멈칫했다.

제이너의 말대로 그냥 불이 아니었다. 저건 아르시안이 절대 모를 수 없는 기운이다.

“신……!”

“아르시안?”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아르시안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윽고 그의 시야에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여자가 잡혔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바로 카밀라였다.

“아! 저번에 추적 마법 걸어 뒀다고 했었지? 그걸로 찾아온 거야? 그런데 내가 위험한 건 어떻게 알……!”

와락!

그가 여기 있는 이유를 추리하던 카밀라는 끝까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성큼 다가선 그의 품에 그대로 푹 안기고 말았으니까.

“아르……!”

“너… 진짜! 하아…….”

무슨 일이냐고 되물으려던 카밀라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긴 한숨에 입을 닫아야만 했다.

토닥토닥.

카밀라는 예전의 어느 날처럼 그의 등을 그저 말없이 다독였다. 걱정을 끼쳐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떨어져라! 당장 떨어져!”

“자네 지금 내 딸한테 소리 지르는 건가? 노망이라도 난 거야?”

“거기 둘, 언제까지 붙어 있을 거냐.”

그때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익숙한 음성이 있었다.

그 소리에 아르시안의 고개가 급히 돌아갔다. 너무도 예상 밖의 목소리였으니까.

“네놈 아들은 왜 저렇게 저 애한테 찰싹 붙어 있는 거야! 얼른 떨어트려 놓으란 말이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다니. 많이 늦었구나. 내가 잘 지키라고 분명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아르시안의 눈이 답지 않게 순간 멍해졌다.

“…당신들이 여기 왜 있어?”

그를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 바로 제국의 3대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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