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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02)화 (20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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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라니아가 자신을 꾀어낼 때 딱 이런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내가 열심히 찾고 있는 이의 행방을 안다며 아주 호들갑을 떨었지.’

그땐 정말 별생각 없이 따라갔었다.

라니아가 진짜로 공작의 딸이라 믿었었고, 영혼을 뺏긴 이들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을 때니까. 말 그대로 방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시선이 앞서 걷고 있는 신관 다니엘에게로 향했다.

‘당신, 지금 엄청 수상해.’

그때의 라니아보다 더.

안 그래도 의심하고 있었는데 아예 확신을 심어 주네?

‘사람이 죽어 간다며?’

그런데 처음 봤을 때 당신, 엄청 여유로운 척했잖아. 찾는 물건이 있으면 구해 주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야.

필요 없다고 하니 그제야 무척 안타깝다는 듯이 제이너의 얘기를 꺼내 들었다.

‘아주 조급한 표정으로 말이야.’

자기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잘 모르는 것 같던데.

남의 표정을 유독 잘 읽어 내는 카밀라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평소와 달리 그가 지금 무척 다급해하고 있다는 걸.

‘제이너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뭐,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제이너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그가 알고 있다는 거잖아.’

실제로 다친 제이너가 그의 손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가 한 말 모든 게 거짓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지금 제이너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와 다니엘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이곳에서 그와 만난 것 역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고.’

혹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이곳 칸 지부를 홀로 찾을 때를?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을 쫓아왔던 건가?

‘하긴, 다른 이들이 보기엔 내가 지금 좀 허술해 보이겠지.’

납치하기 딱 좋은 상태라고나 할까?

지금 카밀라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칸의 지부를 방문하는 일이었기에 다른 이를 데려올 수가 없었다. 그에 호위도 없었고 도르만이나 다른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았다.

제이너가 말하길 혼자가 아닌 의뢰자는 안전을 위해서 절대 만나 주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혼자는 아닌데 말이야.’

[저놈, 교황 놈과 자주 놀던 녀석인데?]

[야, 저 인간 방금 웃었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해, 이상해! 열나 이상해!]

[여기서 딱 만난 것도 그렇고. 지금 그냥 확 처리할까? 라비 녀석이 만들어 준 마법 검은 발목에 잘 차고 있는 거지? 급하면 네가 허락 안 해도 들어간다.]

[신성력 중에 상대를 잠재우는 것도 있어. 말만 해.]

아우, 든든해라.

사제 귀신 아레나와 제노의 음성을 들으며 카밀라는 다니엘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이쪽입니다.”

“네.”

그와 눈이 마주친 카밀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미소를 화사하게 날렸다.

‘뭐가 됐든 한 가지는 결론이 나겠네.’

다니엘, 저자가 어떤 이인지 말이다.

그를 따르는 카밀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콩콩콩, 콩을 심어요- 쿵쿵쿵, 땅을 밟아요-”

…이게 무슨 소리지?

정신을 잃었던 제이너는 귀를 파고드는 아이의 나직한 노랫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로 낯선 천장이 들어왔다.

‘여긴…….’

대체 어디야?

“아니야, 멍멍아. 콩콩콩이 아니라 쿵쿵쿵 할 때 바닥을 치는 거야.”

…멍멍이?

흐릿한 시야가 완전히 돌아오자 너무도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남자아이가 검은 멍멍… 늑대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저건 잔소리다.

허리에 야무지게 손까지 올린 채 단호히 고개를 젓는 모습이 학생을 가르치는 아주 엄한 선생님 같다.

“콩콩콩, 콩을 심어요- 쿵쿵쿵, 땅을 밟아요- 쏙쏙쏙, 싹이 났어요- 아니, 아니. 쏙쏙쏙 할 때도 치는 거 아니야.”

[…….]

바닥에 엎드려 박자를 슬쩍슬쩍 맞춰 주던 검은 늑대가 결국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이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자 또 박자를 맞춰 준다.

“넌…….”

“어? 깼다!”

“넌 누구니?”

제이너의 물음에 아이가 한쪽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제 이름은 리오입니다! 햇살 보육원… 아! 나 이제 거기 안 사는데.”

“…리오?”

마치 정해진 음률을 읊듯 자신을 소개하던 아이, 리오가 순간 아차 하며 헤헤 웃었다.

“여긴…….”

“우리 집 멍멍이가 아저씨 데리고 왔어요.”

“나 아저씨 아니야. 그런데… 멍멍이?”

검은 늑대를 본 제이너는 이곳이 어딘지 대충 감을 잡았다.

저렇게 크고 엄청난 기운을 가진 검은 늑대를 소유한 곳은 세상에 단 한 곳뿐이었으니까.

칸의 수장인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오.’

그 이름도 잘 안다. 카밀라가 무척 아끼는 아이의 이름이 리오였지.

‘내가 왜…….’

여기가 세프라가라는 건 알겠는데, 자신이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건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쓰러졌었는데.’

쓰러지기 전의 상황은 나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공격한 적들을 모두 처리하긴 했지만.

‘나 또한 큰 부상을 입어야만 했지.’

상대가 알 수 없는 주술을 쓰는 바람에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그것들은 뭐지?’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살아 있는 액체?

자신을 공격한 이들 중 몇몇이 뭔가를 중얼거리자 주변에서 검은 무언가가 생겨나 온몸을 옭아맸다. 마치 끈적끈적한 늪 같은 것에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그 더러운 기분이란.’

온몸의 기운이 그 끈적끈적한 것에 다 빨려 나가는 느낌?

급히 피하긴 했지만 결국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전투가 모두 끝났을 땐 그 자리에서 제대로 숨지도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그런데 깨어나니 세프라가란 말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걸까?

쓰러진 자신을 저 검은 늑대, 신수가 주워 왔다는 거지? 어떻게 알고?

“그런데 넌 왜 여기에 있는 거니?”

뭐, 어쨌든 다 좋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준비가 됐다.

‘그런데, 왜?’

왜 꼬맹이가 여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멍멍이랑 놀려고요.”

“멍멍이랑?”

“우리 멍멍이 집에 잘 없거든요. 매번 어디 가고 없어요.”

아마도 신수 소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신수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죽음의 신수라 불리는 검은 늑대를 멍멍이라 칭하고 있는 건 오로지 저 아이뿐일 것이다.

“그럼 데리고 나가 놀지 그러니?”

“안 돼요.”

“왜?”

“우리 멍멍이가 아저씨 지키고 있는 거래요.”

…지키는 게 맞나?

‘감시가 아니고?’

리오의 말을 듣고서야 대충 감이 왔다.

아마도 아르시안, 그자가 자신을, 카밀라와 함께 있는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신수를 붙여 놓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자신이 쓰러지자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게 아닐까?

“하.”

역시 신수는 신수라는 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뭔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에 제이너는 허탈하게 웃었다.

“휴우.”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쉰 제이너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보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마법으로 치료를 해 준 것 같은데.

‘어째서?’

저번에 자신에게 검을 겨누며 그리 살벌하게 죽이려고 했던 인간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며 그냥 죽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르시안이 자신을 살려 준 건 정말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제이너는 창가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구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가볍게 그걸 창밖으로 튕겼다.

그러자 구슬이 터지며 환한 빛 한 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칸에서 쓰는 마법 신호탄이다. 자신의 위치를 부하들에게 간단히 알리는 수단이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된 건지 모르겠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부하들이 지금 한참 자신을 찾고 있을 게 분명하다.

“콩콩콩, 콩을 심어요-”

창가에 기댄 채 짧은 한숨을 내쉬던 그의 귀로 다시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신수와 노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상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사는 게 재밌나 봐.”

저도 모르게 툭 말을 내뱉은 제이너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애한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아프고 나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어…….”

리오가 어느새 노래를 멈추고 제이너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에 다시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저씨는 사는 게 재미없어요?”

“…뭐?”

하지만 잠시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던지는 리오의 물음에 제이너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하.”

이내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무척 신선하다고나 할까?

“나름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 중이야.”

“뭐든 노력하는 건 좋은 거라고 했어요.”

“누가?”

“누나가요!”

“누나?”

“카밀라 누나요. 저번에 숫자 오십까지 외우기로 했는데 중간에 까먹었거든요. 그래도 노력했으니 괜찮다고 했어요.”

“좋은 누나네.”

“응! 누나는 좋은 누나예요. 그러니 아저씨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뭐?”

“노력했는데도 사는 게 계속 재미없으면 그건 아저씨 탓이 아니니까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

뭘 알고 하는 말인가? 그보다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러네.

잠시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던 제이너는 결국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이렇게 크게, 진심으로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런 제이너의 모습에 리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웃긴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거 줄게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이가 제이너에게 사탕 몇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이거 먹으면 행복해져요.”

“행복?”

“응! 달콤이는 행복이라고 했어요!”

“그것도 카밀라가 말해 준 거야?”

“네!”

손에 올려진 사탕을 보며 제이너의 입가에 다시 옅은 미소가 걸렸다.

행복이라…….

이런 작은 것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 본 게 언제였더라?

“애한테 사탕 뺏으니 좋냐?”

그 순간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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