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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01)화 (201/215)

“저희 점장님께서 일단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으신지 좀 더 정확히 들어 보고 싶다네요. 절 따라오시겠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여자는 점원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점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이곳까지 안내를 맡았던 점원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한쪽으로 물러섰다. 입구를 막듯이 말이다.

“두 마리의 흑뱀이 새겨진 물건을 찾으신다고요?”

“응.”

“찾으시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흑뱀이 새겨진 정보.”

“…….”

점장의 입가에 더욱 짙은 미소가 걸린다.

“그 물건은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넘기지를 않습니다만.”

그 말에 여자는 별다른 거부 없이 바로 깊게 눌러쓰고 있던 로브를 천천히 벗었다.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본 점장과 점원이 동시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카밀라 공녀님.”

로브 속의 인물은 바로 카밀라였다.

“역시 바로 알아보네.”

“저희가 비록 암살을 주된 일로 하지만 정보력은 그 어떤 조직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암살 집단 칸. 그녀가 이렇게 직접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 가지다.

“당신들의 주인, 지금 어디에 있어?”

제이너, 그가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돌아올 줄 알았던 그가 벌써 3일째 아무런 연락이 없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이쯤 되자 소르펠 공작을 비롯해 다른 식구들도 의아해하는 중이었다. 손님으로 묵고 있는 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이상할 수밖에.

‘급한 일이 있어 며칠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들었다고 둘러대긴 했는데.’

슬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의 수장이라는 자리가 그리 안전한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뭔가 일이 있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거였다면 적어도 자신에게는 미리 언질을 줬을 텐데?

며칠째 연락조차 없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생각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스크라 공작에게 알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또 걸리는 게 너무 많단 말이야.’

혹여 제이너에게 별다른 일도 없는데 괜히 내가 오버한 거라면? 일만 커져서 그의 정체만 밝혀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랫동안 가족에게까지 숨겨 온 그의 비밀이 자신으로 인해 밝혀진다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결국 카밀라는 칸의 지부를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부를 찾는 건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한 번 와 봤는걸.’

수호의 탑이 무너졌을 때 라비의 생사를 몰라 제이너의 도움을 받아 칸의 지부에 들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정신이 전혀 없긴 했지만 위치 정도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제이너에게 칸을 이용하는 방법도 들었다. 제국 곳곳에 일반 상회로 꾸며져 있는 자신들의 가게를 찾아 흑뱀 두 마리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매우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그 안에는 칸의 수많은 눈이 함께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손님들을 살피고 감시하는 은밀한 시선이 수십 개란다.

심지어 일종의 암호인 흑뱀을 찾더라도 바로 의뢰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관계자가 바로 만나 주기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상대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한 뒤 칸 쪽에서 따로 날을 잡아 의뢰인을 찾아간 뒤에야 정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너네들 수장이랑 지금 연락이 안 돼.”

카밀라의 말에 점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던 그의 입에서 결국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쳤어?”

문제라는 말에 떠오르는 건 역시 그것뿐이었다. 의뢰를 수행하다 크게 다치기라도 한 건가?

상처를 크게 입었다면 공작가로 돌아오기 힘들 테니까.

‘그러게 내가 좀 얌전히 지내라고 했잖아!’

대체 이번에 무슨 의뢰를 받고 움직였기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확신이 전혀 없는 점장의 대답에 카밀라의 미간이 더욱 일그러졌다.

점장의 입에서도 긴 한숨이 다시 흘러나왔다.

“저희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마지막 흔적을 쫓아갔는데 전투 흔적만 남아 있더군요. 그걸 끝으로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십니다.”

“행방을 전혀 모른다고?”

“지금 열심히 찾고 있긴 한데…….”

그 말에 카밀라의 표정 역시 급격히 굳어졌다.

이건 단순히 다친 정도의 상황이 아닌 거 아냐? 부하들에게 연락하지 못할 정도로 신변에 큰 이상이 생겼다는 거잖아.

‘설마 죽은……!’

헉! 아니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자.

‘죽더라도 보상은 받고 죽어야 할 거 아냐!’

너 이렇게 죽으면 인생 진짜 억울한 거다! 도르만이 보상해 준대! 목숨 줄 딱 붙잡고 있으라고!

‘이걸 어째야 하지?’

역시 에스크라 공작에게 알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오라버니들에게라도? 가문의 힘을 빌려서라도 찾는 게 좋지 않을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카밀라의 모습에 점장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결코 누군가에게 쉽게 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저희도 열심히 찾고 있으니 곧 행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제이너에 대한 믿음이 아주 확고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카밀라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여기서도 그의 행적을 모른다면 더는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고민한다고 뭔가 해결이 될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나한테 이리 다 말해 줘도 되는 거야?”

문득 의아함이 들었다.

일단 다급한 마음에 이곳을 먼저 찾아오긴 했는데, 이리 쉽게 제이너의 현 상황에 대해 답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돈으로든 뭐로든 대답을 이끌어 내야 할 줄 알았거늘. 너희들 이렇게 쉬운 인간들이었니?

“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이너가? 무슨 말?”

그놈이 정상적인 말을 했을 리가 절대 없는데? 뭔 또 엉뚱한 소리를 한 거야?

“카밀라 영애에 한해서는 자신을 대하듯 하라고.”

“그런 것치곤 그동안 내게 받아 간 의뢰비가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한 푼도 깎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하하.”

웃음으로 넘기기?

카밀라는 가볍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껏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결국 얻어 낸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인간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무사하긴 한 건가?

저 부하의 말대로 쉽게 죽을 놈이 아니긴 한데, 이번 삶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건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거겠지?

카밀라의 입에서 다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썩을!”

내가 왜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건데!

카밀라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자 점장과 점원이 움찔했다.

‘뭐? 왜?’

나 원래 욕 잘해! 연예계 생활하면서 는 건 욕뿐이라고!

“하아.”

역시 거기를 찾아가 봐야 하는 거겠지?

‘거기…….’

세프라가 말이다.

카밀라는 마지막으로 제이너의 행적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를 곳을 지금 당장 찾아가 보기로 했다.

* * *

“카밀라 영애?”

상회를 나서던 카밀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다. 익숙한 목소리였으니까.

고개를 돌리니 신관 다니엘이 빙긋이 웃으며 서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구할 물건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빈손이신 듯합니다.”

“찾는 게 없네요.”

“뭘 찾으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신전에서도 이리저리 물건들을 많이 구입하다 보니 알고 지내는 상회가 좀 많답니다.”

“아니에요. 이미 주문을 넣어 놓고 나오는 길이에요.”

“그런가요?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카밀라는 그 대화를 끝으로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신전 쪽에도 에바 교와 관련 있는 자가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그쪽에 몸담고 있는 이들과의 밀접한 접촉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 다니엘 대신관.’

자신에게 성물을 넘긴 그가 가장 의심스러운 상태다.

물론 그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성물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고 팔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바로 가 봐야 할 곳도 있고.’

세프라가 말이다. 최근 제이너 주변을 서성거리는 한 녀석을 똑똑히 봤거든.

‘루나.’

자기 딴에는 나름 은밀하게 제이너를 쫓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눈에는 녀석이 너무 잘 보였다.

‘눈까지 마주쳤는걸.’

눈이 마주치자 꼬리를 마구 흔들던 루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제이너에게 루나를 붙여 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끼어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이너에게도 루나에 대해 일절 말해 주지 않았다.

‘계속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이너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는 세프라가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를 계속 쫓아다닌 루나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카밀라 님,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런데 자리를 뜨려는 그녀를 신관 다니엘이 다급히 붙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가 지금은 좀 바빠서요.”

“그러신가요? 제이너 님에 대해서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제이너요?”

그냥 무시하고 떠나고 싶었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럴 수가 없었다.

제이너라니? 그가 왜 그 이름을 내뱉는 거지?

“며칠 전에 쓰러져 있는 그분을 발견했습니다.”

“네에?”

“그런데 너무 많이 다치셔서……. 뭔가 큰일에 휘말리신 것 같아 다른 분들에게 쉽게 알리지도 못한 채 제 미력한 신성력으로 치료 중입니다.”

뭐야? 지금 이자가 제이너를 데리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셔서…….”

다니엘은 안타깝다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카밀라 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카밀라 님의 신성력이라면 충분히 그분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제이너 님과 친분도 있으시고.”

카밀라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본 다니엘의 음성이 더욱 간절해졌다.

“도와주십시오, 영애.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제이너 지금 어디에 있죠?”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에 다니엘은 안도하며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힐끔 한 곳으로 향했다. 방금 카밀라가 나온 상회 쪽이다.

창가에 서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점원들의 모습에 그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서두르죠.”

앞서 걸어가는 다니엘을 따르며 카밀라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상회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굳어진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방금 만난 점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자신을 붙잡을 기세였다.

‘그건 안 되지.’

카밀라는 그런 그를 향해 살며시 고개를 저어 주며 안심하라는 듯 희미한 미소까지 지어 줬다.

‘어째 하는 짓이 똑같네?’

지금 상황, 무척 익숙하지 않나?

‘라니아 때도 이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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