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밀라의 말이 모두 끝난 후에도 도르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놀라워하던 표정도 이내 덤덤하게 변해 있었다.
이윽고 도르만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맞습니다.”
짧은 긍정에 카밀라의 입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예상한 일이지만 막상 확인을 받자 기분이 묘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게 다…….”
이시아로 살며 받았던 고통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일들.
그 모든 게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이 일로 관리직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으면서.
“대체 뭐 때문에?”
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 옆에 있는 건데? 아무 말 없이 입 다물고 있었던 이유는 또 뭐고?
“설마 내가 네 동생의 환생…….”
“절대 아닙니다!”
도르만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
“제 동생은 아주 착한 아이였습니다.”
“…미안하다. 난 못돼서.”
“아, 하하.”
어쭈? 부정은 안 하네?
시선은 왜 피해? 피하지 마! 더 기분 나쁘니까!
“그, 그게 아니라. 제 동생의 영혼은 그때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환생 같은 거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뭐야? 내가 네 동생의 환생인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건데?”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오히려 자신에게 되묻는 도르만을 보며 카밀라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도르만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
“진실의 거울이 매번 그들의 손에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환생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동생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인간으로 있을 적 맺었던 인연이니 더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일을 저지른 뒤더군요.”
진실의 거울, 그 운명을 타고난 아이의 영혼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른 세상으로 보내 버렸다.
어떻게든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며.
“저들이 갖고 있는 기물은 진실의 거울이 태어날 때만 반응을 합니다.”
“태어날 때만?”
“네, 그 순간만 넘기자는 생각에 두 분의 영혼을 바꾸었어요. 이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게 한 뒤 다시 데리고 오면 기물이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그럼 아이도 무사할 테고.
하지만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이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될 줄은 도르만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는 데 그토록 많은 삶이 반복되어야 했다니.
“이 모든 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 결정으로 인해 이시아 님과 카밀라 님의 삶이 무척 힘들었으니까요.”
“한 명 더 있잖아.”
“네, 제이너 님께도요.”
이시아와 카밀라, 그리고 엉겁결에 휘말린 제이너까지.
자신의 결정에 의해 운명이 바뀌어져 버린 세 사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너…….”
“제 앞에 카밀라 님이 이렇게 무사히 살아 계시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빙긋이 웃는 도르만을 보며 카밀라의 입에서 다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그를 참 많이도 원망했었다.
적잖이 미워도 했고 화풀이를 한 적도 무척 많았다. 자신이 겪은 아픔이 모두 그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라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날 살리기 위해서였다니.’
그로 인해 직장에서 잘리기까지 하고 말이야.
‘저놈 인생도 참…….’
이게 뭔가 싶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도르만.”
“네.”
“나, 너한테 안 미안해.”
도르만 본인의 결정이었으니 그가 감당했어야 할 일이다. 그가 말했듯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힘든데도 꼭 살아가야만 하나 싶어 나쁜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겠어.”
살려 줘서, 이렇게 다시 제자리를 찾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 또한 쉽게 내뱉어지지 않았다.
내가 역시 못된 건가?
“하지만.”
미안하다, 고맙다, 잘했다는 말은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고생했어.”
그래도 이 말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그래, 이게 다다.
“그 긴 세월, 혼자서 날 지켜봐 주느라 고생했어.”
“…….”
짧은 그 한마디에 도르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런 그의 입가에 곧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그 말이 무척 만족스러운가 보다.
“그런데 나야 그렇다 치지만 다른 두 사람은 어쩔 거야?”
카밀라는 짧게 혀를 찼다. 이시아와 제이너는 뭔 죄냐고.
그 두 사람은 정말 아무 죄도 없이 그 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았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제이너 님께 보상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결론이 나면 찾아뵐 거예요.”
“이시아는?”
카밀라는 순간 멈칫했다.
이제 이시아, 그 이름을 남처럼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서.
피식 웃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이시아를 보내 줘야겠지.
나는 카밀라 소르펠이니까.
“이시아 님께는 아마 지금쯤 마지막 혜택이 전달되었을 겁니다.”
“전달? 무슨 혜택?”
“하나의 선택지요.”
“그게 뭔데?”
의아해하는 카밀라를 보며 도르만은 대답 대신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카밀라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하아암.]
오늘도 열심히 카밀라를 쫓아다니다 그녀가 잠든 후에야 밖으로 나온 사제 유령 아레나는 하품을 길게 내뱉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죽었는데도 지루하면 하품이 쏟아지는 게 참 신기하다.
[저 녀석, 오늘은 푹 좀 자려나?]
최근 이런저런 일로 잠을 설치는 카밀라를 보며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잠이 들던데.
[에바 교라…….]
달이 떠 있는 밤하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카밀라를 따라다니며 그녀 역시 에바 교가 다시 세상에 나타났음을, 아니, 그동안 사라진 척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퀴벌레 같은 것들.]
에바 교에 대해선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교단에 들어간 후 질리도록 들었던 이름이었다.
세상을 한때 혼란에 빠트렸던 이교도에 대해 배울 때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에바 교였으니까.
[에휴.]
그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이비교를 왜 저렇게 자주 언급을 하는 거냐고 온갖 짜증을 다 냈었는데.
짧게 한숨을 내쉰 그녀의 시선이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카밀라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곁에서 지켜본 카밀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이 무척 많아 보였다.
죽은 자를 보는 것도 그렇고 사신과 친분이 있는 것 역시 결코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거기에 이젠 에바 교까지.]
하여간 운명 한번 참 복잡하게 타고났다. 한 사람에게 저리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것도 참 드문 일인데 말이다.
[…쯧.]
조금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카밀라가 잠들어 있는 곳을 바라보던 그녀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네 녀석, 또 왔냐.]
그녀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이, 바로 사신 하벨이었다.
“오늘도 이곳에 계시는군요.”
[왜 또 온 거야. 저 녀석, 오랜만에 꿀잠 자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 썩을 것들이 뭔 일을 개같이 해서 매번 애한테 부탁을 한다고 지랄이야!]
“카밀라를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겁니까. 신으로 추대되신 분이 계속 이러고 계시면 소멸인 거 모르십니까?”
[매번 똑같은 말이네.]
지겹다는 듯 아레나가 손을 휙휙 내저었다.
[네놈이 매번 그렇게 떠들지만 난 아직도 이렇게 멀쩡히 존재하고 있잖아.]
“그거야 주신께서 계속 봐주고 계셔서 그런 겁니다. 그분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뀌라 그래.]
아레나는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날렸다.
[소멸된다고 하면 겁이라도 먹을 것 같아? 나도 살 만큼 살았… 아니지, 존재할 만큼 존재했거든. 아쉬울 거 하나 없다고.]
“아쉬울 것도 없으니 그만 따라가시죠.”
[아쉬울 것 없는데 내가 왜 따라가? 저 위 세상이 뭐가 좋아서? 내가 미쳤냐? 너희 같은 것만 모여 있는 곳에 자진해서 가게.]
오늘도 설득에 실패한 하벨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레나 역시 보육원 원장처럼 죽기 전부터 신으로 추대된 인물이었지만 상황이 좀 달랐다.
하급신이 아닌 고위급 신으로 내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려 주신이 직접 그녀의 자리를 지정해 놓았다.
그 오랜 시간 멋대로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소멸되지 않은 이유 역시 주신이 그녀를 많이 아끼기 때문이었고.
덕분에 그런 영혼을 강제할 수 없는 사신들만 죽어났다.
[아, 몰라. 난 그딴 거 하기 싫으니까 주신 영감탱이한테 똑바로 전해! 소멸을 시키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영감탱이라니요. 그분은…….”
[알 바냐? 내가 왜 죽어서까지 일을 해야 해! 썩을! 신성력도 내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줘 놓고! 내가 그것 때문에 한평생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아?]
“그분께서 아레나 님을 많이 아끼…….”
[‘원치 않는 애정은 폭력이다’ 모르냐? 어? 와, 이게 자기 일 아니라고 말 함부로 하네? 여기저기 신성력 쓰러 다닌다고 내가 진짜!]
“…….”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주신에 대한 욕을 거침없이 쏟아 낸 아레나는 속이 좀 시원해진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 모습이 이미 익숙한 하벨은 그저 소리 없는 한숨을 다시 조용히 내쉴 뿐이었다.
잠시 후 그런 그의 시선이 천천히 뒤로 향했다.
그곳에 빙긋이 웃으며 서 있는 도르만을 발견한 하벨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급히 뒤돌아 자리를 뜨려 했다.
“아직도 화났어?”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세차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도르만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하벨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지금 웃음이 나오시나?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