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195)화 (195/215)

휙!

다다다다!

[규!]

휘익!

다다다다다!

[규규!]

지금 뭐 하냐고?

‘피폐해진 정신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냥 킹과 노는 중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꿀꿀한 기분을 눈치챈 걸까? 그라시아 제국에서 다이브와 놀아 줄 땐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공을 물고 오더니, 오늘은 반응이 아주 열렬했다.

“킹, 앉아.”

[규!]

“손.”

[규규!]

앉으라니 빠릿빠릿하게 앉아 주고, 손을 달라니 척하고 내밀어 준다.

‘기특한 놈.’

그래, 네가 나의 안식처다.

“저기… 카밀라 님?”

“왜?”

“괜찮으신 거죠?”

그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도르만이 보다 못해 한마디를 건넸다.

넋을 놓고 허허거리며 킹과 노는 모습이 인생사 다 산 사람 같았다.

“도르만.”

“넵!”

카밀라의 나직한 부름에 저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오히려 구두를 들고 날뛰실 때가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우리 여행이나 갈까?”

“여, 여행이요?”

“저 멀리 산토노 지역에 우리 소유의 별장이 있다던데. 아니면 그라시아 제국에라도 갈까? 다이브도 보고 싶고.”

[규우?]

“물론 우리 킹도 같이 가야지. 아, 안 되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넌 여기에 있어야 하나? 그래도 가문의 신수니까.”

[규규!]

“그래, 뭔 상관이야? 그치? 그냥 같이 가자.”

허허거리며 킹을 품에 안고 흙먼지가 가득한 잔디 위를 데구루루 구르는 카밀라를 보며 도르만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맛이 가셨다.’

웃는다. 아주 해사하게.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을 보면서 말이다.

그 모습에 확신했다. 카밀라가 지금 정신 줄을 일부 놓아 버렸다는 것을.

‘저게 바로 번아웃이라는 건가?’

처음 겪는 상황에 도르만은 카밀라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연신 어색한 웃음만 흘려야 했다.

“읏차.”

어쩌지? 어쩌지? 하며 발을 동동 굴리던 차, 카밀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킹을 한쪽에 내려놓은 그녀는 흙이 묻은 옷을 툭툭 털었다.

“가자.”

“지, 진짜 여행이라도 가시게요?”

“뭔 소리야?”

“예?”

“돈 벌러 가야지.”

“…예에?”

“넌 카페로. 난 상회로.”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돈을 벌어야지 않겠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세상이 망해도 내가 할 일은 해야지.

“킹, 돈 많이 벌어 올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

[규!]

얼이 빠져 있는 도르만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킹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도르만을 다시 바라봤다.

“뭘 그렇게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그, 그게…….”

“쯧.”

하긴, 예전에 현석 매니저도 처음에 딱 저랬다. 그녀가 일에 치여 반쯤 정신 줄을 놓았다가도 갑자기 다시 생생해져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며칠은 잠수라도 탈 줄 알았는데, 그 시간이 너무도 짧아 오히려 당황하더란 말이지.

‘그게 뭐?’

잠시 충전했으면 다시 움직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철없는 어리광도 습관이거든. 받아 줄 사람이 있는 애들이나 그런 거 하는 거라고.

“뭐 해? 안 따라와?”

“아, 아! 네! 가야죠!”

급히 쫓아오는 도르만을 보며 카밀라 역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규규거리며 앞발을 흔들어 주는 킹의 배웅을 받으면서 말이다.

* * *

“이게 이번에 선보일 옷이야.”

“옷 색깔이 특이하네.”

쥬엘라가 새로운 옷 샘플을 들고 왔다.

언제나처럼 아주 만족스러웠다. 당장 입어 보고 싶을 정도로.

“이런 색이 가능해?”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색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조금 어두운 붉은색인데 광택이 있어 칙칙해 보이지 않았다.

“‘엔쇼’라는 식물에서 얻은 색인데, 마음에 들어?”

“응, 좋아.”

카밀라의 대답에 쥬엘라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카밀라가 마음에 든다는 걸 보니 이번 옷도 분명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다. 그녀의 눈은 늘 정확했으니까.

“조만간 다른 것도 만들어 올게.”

“흐음.”

“……? 왜?”

카밀라가 뭔가 고민을 하듯 잠시 아무런 말이 없자 쥬엘라는 의아한 눈빛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 시선에 자리에서 일어난 카밀라는 무언가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들고 왔다.

“이게 뭐야?”

“읽어 봐.”

쥬엘라는 그녀가 건넨 서류를 빠르게 훑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거……!”

“맨티츠 베이크스, 네 오라비. 도박하더라.”

“…….”

“거기 적힌 금액 보이지?”

카밀라가 건넨 건 한마디로 빚 문서였다. 쥬엘라의 오라비이자 베이크스 가문의 장자인 그가 도박장에서 가문의 이름으로 돈을 빌린 문서.

“어째서 가문의 이름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재산과 사업체도 있는데!”

아버지인 베이크스 백작은 이미 오래전에 장자인 맨티츠에게 상당한 재산을 물려줬다.

미리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수익이 좋은 사업체도 몇 개를 그에게 맡겼다. 그런데 왜 이런 빚이 가문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있는 거냐고!

“이미 그건 홀라당 다 까먹었거든.”

“뭐?”

진작에 그거 다 날리고 얼마 전부터 가문의 이름으로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금액이 만만치가 않았다. 현재 베이크스 가문이 소유한 재산 대부분을 처분해야 갚을 수 있을 정도?

‘아들이라는 게.’

이래서 장자라고 오냐오냐하면 안 되는 거다. 세상 무서운 걸 모르니 이딴 짓을 하는 게 아니겠어?

물려받은 재산 탕진했으면 거기서 멈춰야지, 어디서 이런 큰 금액까지 가문의 이름으로 빌릴 생각을 하지?

그 정신머리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이리 돈 무서운 줄 모르는 인간이 가문의 후계자라니. 이미 글러 먹었다.

‘그러고 보면 내 주변에 있는 장자들은 참 잘 컸어.’

루드빌 오라버니도 그렇고 페트로도, 아르시…….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세 사람 다 도박은 안 하잖아?

‘하긴, 도박 중독은 약도 없다더라.’

이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니까.

본인 인생 망가트리는 걸로도 모자라 가족들 인생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경우가 많으니 더 무서운 거다.

“그런데 이걸 왜 네가 들고 있는 거야?”

한참 동안 서류를 바라보며 부들거리던 쥬엘라는 짧은 한숨과 함께 서류를 툭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맨티츠가 도박에 푹 빠져 있는 건 그녀 또한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날, 카밀라가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되었던 날의 일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도박장에 가려는 그를 붙잡다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그때 일조차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지만 말이다.

‘카밀라 영애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맨티츠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지만 아버지, 오라버니가 또 도박을 하러 가려고…….’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감히 네가 오라비를 가르치려 해?’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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