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카밀라는 그를 부른 용건이나 빨리 해결하기로 했다.
“궁에 쟈비엘라 황비의 몸을 차지한 영혼이 있어.”
“쟈비엘라 황비?”
“몸을 차지한 이의 진명을 알고 싶어.”
카밀라는 자신이 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려 줬다.
오늘 그를 부른 이유가 바로 이거다. 쟈비엘라 황비 몸을 차지한 이의 진명을 알아내야 하는데, 하벨이라면 가능하겠지?
“알아보고 알려 주마.”
사신들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녔던 영혼을 찾았다고 해도 담당자에게 알리고 절차를 다시 밟는 과정이 제법 까다롭단다.
“최대한 빨리 부탁해.”
그래도 도망친 영혼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줬으니 생각보다는 빨리 알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진명을 알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외쳐 볼까? 그럼 라니아 때처럼 쟈비엘라 황비 역시 온몸이 썩어 사라지려나?
‘아닌가?’
다 그런 게 아니면 어떡해? 그럼 곤란한데?
오히려 내가 괴이한 수를 써서 황비를 죽게 한 걸로 오해할 수도 있잖아!
“하아.”
역시 답은 진실의 거울뿐인가.
“혹시 말이야.”
카밀라는 하벨을 본 김에 요즘 계속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인 일을 더 물어보기로 했다.
사신이자 제법 오랫동안 세상을 떠돈 존재인 그라면 혹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진실의 거울이라고 알아?”
챙그랑.
“음?”
그런데 그 순간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고개를 돌리니 깨진 컵 조각이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이는 바로 도르만이었다.
벌떡!
하벨이 순식간에 그곳으로 달려가 대신 깨진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여튼, 도르만과 연관되면 행동 하나는 빠르다니까.
“죄송합니다. 다치진 않으셨나요?”
“네, 괜찮아요.”
깨진 컵 주변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도르만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서비스로 마카롱 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저 녀석 보게? 화도 못 내게 미소를 마구 날리네?
그리고 누구 맘대로 서비스야? 그거 네 월급에서 깔 거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저런 엉성한 실수를 할 녀석이 아닌데?
평소 보이는 어벙한 모습과 달리 신체 반응이 무척 좋은 녀석이다.
전에 자신이 실수로 떨어트릴 뻔한 포크를 순식간에 낚아챈 적이 있을 정도로.
집에 손님이 왔을 땐 한 번에 수십 개의 컵을 자연스럽게 들고 나르던 모습도 종종 보았었다. 그 모습에 옳다구나 카페로 데려왔거늘.
‘그런 녀석이 고작 컵 두 개를 옮기다 깼다고?’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쭈?’
그런데 그가 먼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자연스럽게 피한다.
‘뭐지?’
방금 뭔가 표정이 아주 묘했는데? 잘못 봤나?
“진실의 거울이라고 했나?”
잠시 후 하벨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응, 혹시 알아?”
“처음 듣는다.”
“그래?”
그나마 믿을 게 이 녀석이었는데 역시나 아는 게 없는 듯했다. 나중에 도르만에게도 물어보는 게 좋겠지?
“그게 뭔데 찾으려는 거냐.”
“책에서 봤거든. 진실의 거울이 있……!”
챙그랑.
벌떡.
“진실의 거울이 뭐냐면…….”
챙그랑.
벌떡.
“진실… 너 그릇 한 번만 더 깨면 이번 달 월급 한 푼도 없을 줄 알아.”
하벨 너도 그만 좀 왔다 갔다 하고.
“그냥 내버려 둬! 깬 놈이 치우게.”
아니면 아예 청소부로 우리 가게에 취직하든…….
“제가 할 테니 나오십시오, 도르만 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벨이 빗자루를 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니 오히려 뭐가 문제냐며 눈을 부릅뜨는 하벨의 모습에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네 멋대로 해라.
‘그건 그렇고…….’
쟤 진짜 왜 저러는 거야?
카밀라는 실수 연발인 도르만을 지그시 노려봤다.
* * *
“차 드세요.”
“응.”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응. 너는 그릇 깨느라 고생했고, 난 그거 치우느라 고생했지.”
“…제가 깨트린 그릇은 하벨이 다 치웠는데요.”
“이번 달 월급은 반만 주는 걸로.”
“바, 반은 너무하세요.”
울상을 짓는 도르만을 카밀라는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네가 그딴 표정 짓는다고 지금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거든.
“너 말이야.”
“네.”
“진실의 거울에 대해 아는 거 있지.”
“…제가요?”
“잡아뗄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바보니? 너 아까 아주 대놓고 이상했거든. 알아봐 달라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어?”
“…….”
“뭔데? 그게 뭔데 자꾸 움찔움찔하는 건데.”
진실의 거울에 대해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도르만의 분위기가 묘하게 싸해졌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 않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일단 넘어갔을 뿐이다.
“진실의 거울, 너 아는 거 있잖아.”
확신을 갖고 묻는 말에 결국 도르만이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건 갑자기 왜 찾으시는 겁니까?”
“너도 알잖아. 요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말이야. 아무래도 그것들, 에바 교가 확실한 것 같거든.”
“그런데 진실의 거울은 왜요?”
“그게 있어야 사람들이 내 말을 믿을 것 같아서. 책에서 보니 에바 교인들을 그걸로 다 찾아냈…….”
…잠깐만.
“야.”
“네?”
네? 네에?
그래도 한때 영혼 관리자였다면서 이 덤덤한 반응은 뭐지?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
“…너 또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야?”
“…….”
시선 피하지 마, 피하지 마! 이 자식아!
“똑바로 말해!”
도르만의 입에서 결국 긴 한숨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런 그가 잠시 말없이 카밀라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또 뭔데?”
왜 답지 않게 분위기를 잡는 건데?
“너 대체 또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도대체 왜 한 번에 쭉 다 말을 안 해 주는 거냐고!
친아버지에 대한 것도 그렇고, 제이너에 대한 것도 그렇고! 왜 먼저 말을 안 해 주는데, 왜!
“네가 사람 복장 터지는 꼴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어?”
그 전에 꼭 너부터 죽이고 말 거야! 이 자식아!
안 그래도 제이너가 너 벼르고 있는 거 아니, 모르니?
“진실의 거울이 대체 뭐야?”
“진실의 거울은…….”
말을 꺼내던 그의 입이 다시 닫혔다. 카밀라는 그런 그를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그의 분위기가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며.
기분 탓일까?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거울이 아닙니다.”
“뭐?”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비유를 했던 것이죠.”
“그럼?”
“…사람입니다.”
한참 후 이어진 도르만의 말에 카밀라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진실의 거울이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리고…….”
카밀라가 질문을 다시 던지려는 순간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제 동생이 바로 진실의 거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