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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90)화 (190/215)

그래서 제이빌런가를 찾은 거다. 소르펠의 서재도 혹시나 싶어 뒤져 봤는데 별 소득이 없었다.

물론 제이빌런가보다 에바 교에 대한 서적이 더 잘 갖추어진 곳도 있었다.

제이빌런가 못지않게 수호의 검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가문이라는데. 바로 듀리얼 후작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가 쟈비엘라 황비의 친정이라는 거지.’

현재 듀리얼가의 후작이 쟈비엘라 황비의 친아버지였다.

아무래도 그곳을 찾아가는 건 영 껄끄러워서 차선책으로 이곳을 찾았다.

‘에바 교라.’

제노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래전에 완전히 전멸한 교이지 않나? 다들 그렇게 알고 있던데?

“언니!”

페트로의 안내를 받아 서재로 향하던 카밀라는 자신을 향해 힘껏 달려오는 엘리샤를 보곤 걸음을 멈췄다.

“언제 오신 거예요?”

바로 팔짱을 끼며 얼굴을 슬쩍슬쩍 문대는 모습이 마치 필요한 게 있어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같다. 새끼 여우에서 언제 고양이로 전환한 거니?

“저도 마중 나오려고 했는데.”

“방금 왔어.”

한발 물러선 엘리샤는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자랑했다.

“언니! 이 옷 어때요?”

그 모습을 본 카밀라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어깨 부위와 등 쪽이 얇은 시스루 소재로 되어 있어 무척 시원해 보였다.

“잘 어울리네.”

카밀라는 바로 아낌없는 칭찬을 날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번에 자신이 투자해서 쥬엘라가 만든 옷을 그녀가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언니가 입은 거 보고 저도 바로 가서 주문했잖아요. 나름 빨리 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예약자가 많더라고요. 받기까지 엄청 오래 걸렸는데, 정말 잘 어울려요?”

“예뻐.”

“그렇죠? 좀 생소한 디자인이긴 한데, 너무 예뻐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옷이 너무 가벼워서 아주 좋아요!”

좋은 포인트만 콕콕 집어내는 엘리샤의 말에 카밀라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네가 입어서 더 예쁘네.”

“저, 정말요?”

가볍게 던진 칭찬에 엘리샤가 빨개진 얼굴로 연신 꺅꺅거렸다. 칭찬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거, 디자이너가 누구예요? 다른 사람들도 무척 궁금해하던데. 언니는 알죠? 언니가 여기 투자자라면서요?”

“글쎄.”

아직 쥬엘라의 정체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그녀가 그러기를 원했다.

평민들이나 하는 하찮은 일에 또 손을 댄다고 집안에서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면서.

아직은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그녀의 뜻이었다. 지금은 오로지 조용히 옷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다나?

‘뭐, 나쁠 건 없지.’

디자이너가 옷에만 집중하고 싶다는데 방해하면 쓰나.

카밀라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여 쥬엘라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대신 옷을 홍보하는 일엔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참석하는 모임에는 무조건 쥬엘라가 만든 옷만 입는 중이다.

그로 인해 현재 주문량 폭주.

‘당연하지.’

내가 입었는걸.

내가 저쪽 세계에서 걸치고 입어서 완판 시킨 게 몇 개인 줄 알아? 망해 가던 기업도 살린 게 나라고.

처음에는 다들 얌전함과는 무척 동떨어진 새로운 스타일에 멈칫했지만 곧 눈들을 반짝였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건 본능이고, 그 새로운 것이 예쁘기까지 하다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언니, 서재에서 책 보실 거라면서요?”

“응.”

“그럼 책 다 보고 나면 저랑 꼭 차 한잔해요.”

“그래.”

카밀라가 가는 곳이 서재라는 걸 안 그녀는 따라오는 걸 바로 포기했다.

연극 관련 책이 아닌 이상 질색을 하며 책에 절대 손을 대지 않는 그녀였기에.

카밀라는 그런 엘리샤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거, 올해 연말 시험도 7자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앞자리가 백 자리가 아닌 십 자리여야 할 텐데.

‘이제 사이도 멀어졌는데 그놈의 7자 모임에서도 좀 탈퇴할 것이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기가 공부하기 싫다는데 강제로 시킬 수는 없는 일이고.

언제 날 잡아 다시 연기나 가르쳐 줄까?

‘은근히 그걸 바라는 것 같던데.’

나름 소질도 있고 말이야.

“여깁니다.”

잠시 후, 그렇게 페트로의 안내를 받아 서재 안으로 들어선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넓네요.”

예상은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내부를 보고 있자니 이번 조사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감이 확 왔다.

“찾으시는 책이 어떤 겁니까?”

“직접 찾아 주시게요?”

사서가 있던 것 같은데? 굳이 자기가 왜?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그가 특유의 미소로 응답했다.

“도와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네, 뭐.”

도와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카밀라는 바로 자신이 원하는 책들을 읊었다. 제노에게 들어 이미 몇 가지 책 제목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에바 교와 관련된 책은 다 가져다주시면 좋겠어요.”

그러자 페트로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갑자기 에바 교에 대해선 왜 찾으시는 겁니까?”

“그냥 좀 궁금해서요. 수호의 검이 오래전에 에바 교를 상대할 때도 그렇게 빛을 냈다면서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혹시나 검이 저에게 반응한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요.”

카밀라는 대충 핑계를 댔다. 상대가 에바 교일 가능성이 생긴 지금 행동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페트로는 더 자세히 묻지 않고 바로 수호의 검과 마르스, 그리고 에바 교와 관련된 서적들을 꼼꼼하게 찾아 가져왔다.

“…많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선대 중에 유독 이쪽에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 계셔서 자료가 좀 많습니다.”

잠시 후 책상에 가득 쌓인 책들을 보며 카밀라는 진저리를 쳤다. 책 읽는 걸 딱히 싫어하진 않지만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혹시 페트로 님은 이 책들을 다 읽으셨나요?”

혹 요약본이라도?

“어쩌죠? 제 관심 분야가 아니어서.”

뭐, 어쩔 수 없지. 저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건데.

다시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네, 고마워요.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니 이제 그만 볼일 보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카밀라는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았다. 이왕 시작한 거 조금이라도 빨리 읽고 해치우는 게 나으니까.

‘응?’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페트로가 카밀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기 때문이다.

‘할 일 하라니까 거기에는 왜 앉아?’

카밀라가 뭐 하는 거냐고 눈으로 묻자 그가 빙긋이 웃는다.

“오늘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요. 저도 여기서 책이나 천천히 읽을 생각입니다. 혹시 방해가 될까요?”

“아뇨, 뭐.”

집주인이 그러겠다는데 객이 뭐라 하겠는가. 카밀라는 그냥 신경을 끄고 가장 가까이에 놓여 있는 책을 바로 집어 들었다.

이내 그녀는 대본을 읽던 집중력을 발휘해 곧 책에 빠져들었다.

‘내가 또 한 집중력 하거든.’

대본 읽을 땐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른다.

그 모습을 잠시 가만히 지켜보던 페트로 역시 곧장 책 하나를 들고 와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책보다 카밀라를 바라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카밀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어느새 곱게 휜다.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녀와의 이런 시간이 이리도 편안하고 소중한 것을.

“아르시안은 언제 보셨습니까?”

“어제요.”

“어…제요? 무슨 일로…….”

“그냥요.”

“…그냥?”

“툭하면 그냥 찾아와요.”

처음에 아르시안의 이름만 들어도 싫은 내색을 내보이던 식구들이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안 오면 둘이 싸웠냐고 물을 정도로.

“……?”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히 대답을 내뱉던 카밀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친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이 왜 저렇게 멍하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를 했네요.”

페트로가 그제야 급히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카밀라는 다시 책에 시선을 줬다.

“…….”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페트로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다시 걸렸다.

‘어쩌면…….’

어쩌면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다.

계속 외면하고 있었지만, 아르시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었다.

카밀라에 한해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를 보면서.

‘이번에도 봐라.’

바빠서 아카데미도 나오지 못하는 그녀에게 혹 피해라도 줄까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자신과 달리 아르시안은…….

“하아.”

페트로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미 책 읽는 것에 푹 빠져 있는 카밀라를 보며 페트로의 입가에 다시 씁쓸한 미소가 걸린다.

“흐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읽은 책이 옆으로 수북이 쌓여 갈수록 카밀라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아무래도 이거, 맞는 것 같은데?’

제노가 한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동안 보고 듣고 겪은 적들의 모습과 책에 언급하고 있는 에바 교인들의 모습에 일치하는 점들이 너무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거.’

책에 적힌 한 구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바 교를 따르는 이들 모두 영혼을 뺏긴 자들이다.」

‘영혼을 뺏긴 자.’

이단에 빠져 정신이 타락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카밀라가 보기에는 말 그대로의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이건 도저히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에바 교가 포교로 내세운 게 바로 ‘영원한 생명’이었다.

에바 교를 믿고 따르면 절대 죽지 않는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는 내용을 보며 카밀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건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 하긴, 알릴 수 없었겠지.

‘사람을 제물로 써야 하니까.’

그들이 아이들,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제물로 썼다는 그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이후 마르스를 중심으로 에바 교를 몰아낸 것이고.

육신을 차지하기 위한 제물.

“하.”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마르스가 수호의 검을 들고 세상을 구했을 때 사람들은 에바 교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확신했다.

‘사라지긴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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