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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88)화 (18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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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영애와 어떻게든 친해져 보라고 했더니, 모처럼 함께할 자리를 만들어 놓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딴 거나 만들고 있으니.”

어릴 때부터 천 쪼가리를 만지는 걸 좋아하는 쥬엘라의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던 그다.

취미 삼아 자수를 놓는 수준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하루 종일 인형 옷이나 만들고 있으니.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선물에 쓰일 돈은 얼마든지 준다고 하였거늘. 보석이나 장식물이라도 선물할 것이지, 그 좋은 기회를 제 손으로 날리다니!

거기에 그 철없는 것의 행동으로 카밀라가 장남, 맨티츠를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듣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베이크스 백작님?”

오늘 제대로 쥬엘라를 혼내야겠다는 생각에 성큼 걸음을 옮기던 그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다시 뵙네요.”

“카밀라 영애?”

카밀라,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카밀라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여긴 어쩐 일로…….”

“저번에 쥬엘라 영애가 준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답례차 들렀답니다.”

“네에?”

베이크스 백작의 입이 저도 모르게 멍하니 벌어졌다. 정말로 그딴 인형이 마음에 들었다고?

당황도 잠시, 그는 곧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환영했다.

“다행이군요.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니. 시간이 괜찮으시면 저와 차나 한잔하실까요? 이번에 좋은 차가 들어왔는데.”

“폐가 되지 않는다면요.”

“폐라니요!”

두 사람은 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방금까지 분노로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이 더없이 환해졌다.

“저번 모임에서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많이 부족해서.”

“전혀요. 아주 좋은 시간이었어요. 선물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간단히 대화를 나누던 카밀라의 시선이 베이크스 백작의 목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의 목에는 붉은 돌이 걸려 있었다.

“참, 제가 드릴 게 있는데.”

“제게 말입니까?”

카밀라는 작은 상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기꺼운 마음으로 상자를 연 베이크스 백작의 얼굴이 곧 의아해졌다.

그녀가 건넨 건 반지였다. 처음 보는 은색 광물이 상자 안에서 반짝거렸다.

“제 기도로 만들어진 성물이에요.”

“네에?!”

성물이라는 말에 그가 깜짝 놀라며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반지를 바라봤다.

[성물은 무슨.]

‘쉿, 쉿!’

오늘도 자신을 따라온 사제 귀신 아레나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보기에는 반짝거리며 나름 예뻐 보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마력석 주변에 있던 아무 쓸모 없는 광물이었다.

최고급 마력석에 모든 기운을 빨리고 남은 일종의 찌꺼기 광석이라고나 할까?

아직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고 나름 반짝거려 이번 일에 잘 써 주기로 했다.

“주신께서 제게 말씀하셨답니다. 이 성물을 들고 있는 이는 사후 자신의 곁으로 오게 될 거라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급히 숨을 들이켠 베이크스 백작의 눈빛이 감격에 젖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신을 믿고 따랐던 이로서 죽어 신의 곁으로 가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이미 그녀가 교단에서 성녀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단,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니요? 걸리는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그의 태도와 말투가 더욱 정중해졌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따르겠다는 듯 눈빛이 단호하다.

“그 목걸이 말입니다.”

“목걸이요?”

베이크스 백작의 손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붉은 돌로 향했다.

카밀라는 짐짓 안타깝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그 성물과 저의 신성력이 맞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그녀의 말이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에서 만든 성물이 어찌 성녀의 신성력과 맞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글쎄요. 저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 신성력에 자꾸 성물이 깨어지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드린 이 성물을 끼고 계실 땐 그 목걸이를 멀리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충돌이 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 성물은…….”

엄청난 돈을 주고 손에 넣은 성물이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지병이 좀 완화될까 싶어 무리를 해서 구매를 했다.

그런데 확실히 목걸이를 차고 나니 점점 통증이 주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선뜻 결심이 서질 않았다.

이를 눈치챈 카밀라가 한 번 더 낚싯대를 던졌다.

“왼쪽 무릎이 많이 안 좋으시군요.”

“……!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저리 떠들어 주는 이가 있으니 알지.

[무릎에 염증이 가득하네. 오랫동안 약도 잘못 썼구만. 그래서 염증이 더 늘었어. 어디 사는 돌팔이가 이딴 식으로 치료를 한 거야?]

이리저리 베이크스 백작의 몸을 매만지며 꼼꼼하게 살피던 사제 귀신 아레나가 연신 혀를 찼다.

[이런 염증에는…….]

“북쪽 지역에서만 나는 루스벨리라는 열매가 있어요. 그 열매를 구해 하루에 두 번 챙겨 드시면 훨씬 좋아지실 겁니다.”

“루스벨리?”

“가격이 좀 나가긴 하지만 구하기 어렵진 않을 거예요.”

“그게…….”

“강요는 아닙니다. 그 성물이 더 중하시다 여겨지시면 어쩔 수 없죠. 누군가에겐 죽은 뒤의 삶보다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법이니까요.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말이죠.”

“지, 지옥!”

카밀라가 내려놓은 반지를 다시 집어 들려 했다.

“아닙니다!”

베이크스 백작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차고 있던 성물 목걸이를 바로 풀었다. 그러곤 카밀라가 준 반지를 손에 곧장 꼈다.

“딱 맞네요.”

…좀 큰 것 같은데? 뭐, 자기가 맞는다면 맞는 거겠지.

다음부터는 반지가 아니라 다들 착용하기 쉽게 목걸이로 해야겠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주신의 축복이 함께할 겁니다. 기존의 성물 목걸이도 매우 귀한 것이니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드린 성물 반지가 기운이 다했을 때 따로 말씀을 드리지요. 그땐 이 목걸이를 다시 착용하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비싸게 준 성물 목걸이를 그래도 후에 다시 쓸 수 있다는 말에 베이크스 백작은 더욱 기뻐했다.

‘물론 절대 그런 말을 해 줄 생각은 없지만.’

혹여 다른 이에게 저 목걸이를 넘기거나 팔까 봐 염려되어 하는 말이다. 후에 쓸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든 자기가 들고 있을 테니까.

똑똑.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쥬엘라였다.

카밀라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듯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조금은 당황한 눈빛으로 베이크스 백작과 카밀라를 연신 번갈아 바라봤다.

“놀러 왔어.”

“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을 되뇌던 쥬엘라는 베이크스 백작의 시선에 급히 표정을 갈무리했다.

“어서 와.”

역시 너도 연기 좀 배워야겠다. 저리 웃는 게 어색해서야 원.

“그럼 전 이만 친구와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카밀라가 쥬엘라를 친구라고 칭하자 그의 얼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네 방으로 가자.”

다시 황당한 표정을 짓는 쥬엘라를 데리고 카밀라는 서둘러 응접실을 나섰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곧장 쥬엘라의 방으로 향했다.

“호오.”

방에 들어선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저기 인형들이 즐비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앉으라는 말도 안 하니?”

쥬엘라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인상을 썼다. 이젠 대놓고 싫은 티를 다시 팍팍 낸다.

“백작님! 쥬엘라가 차도 안 주고 앉으라는 소리도……!”

“앉아, 앉아!”

진작 그럴 것이지. 카밀라는 의자에 앉으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탁자 위에는 방금까지 만들고 있었던 듯 미완성된 인형 옷이 놓여 있었다. 카밀라는 그걸 집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이리 줘.”

쥬엘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손에서 인형 옷을 뺏어 들었다.

카밀라 역시 아버지처럼 애같이 이런 거나 가지고 논다고 한 소리 할 것 같았다.

‘하아.’

그걸 알면서도 이번에 큰 용기를 낸 거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시겠지만…….

정성껏 만든 자신의 인형을 한 사람이라도 좋아해 준다면 상관없을 것 같다.

“너 말이야.”

카밀라가 다시 입을 열자 쥬엘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역시 한 소리 하려는 거겠지?

“나랑 사업 하나 하자.”

“…뭐?”

하지만 이어진 카밀라의 말은 무척 뜻밖이었다.

“사업이라니? 나와?”

“응.”

“하…….”

쥬엘라는 뜬금없는 소리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나를 놀리려는 거야?”

갑자기 자신과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미간을 다시 찌푸리려는 쥬엘라를 향해 카밀라가 손을 뻗었다.

“이거?”

그녀가 가리킨 건 방금까지 자신이 만들고 있던 인형 옷이다.

“…인형을 팔겠다고?”

역시 놀리는 게 분명하다.

쥬엘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반응을 해 줄까 고민을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친분을 쌓으라고 했는데 예전처럼 머리채를 잡고 싸우면 안 되겠지?

“인형 말고 그 옷.”

“인형 옷을 팔겠다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인형 옷을 사람이 입을 수 있게 만들어서 팔자고.”

“…뭐?”

“옷을 팔자는 거야. 네가 디자인한 그 인형 옷 말이야.”

눈이 동그래지는 쥬엘라를 보며 카밀라는 다시 찬찬히 방 안을 살폈다.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그녀가 준 테디 베어를 보고 느낀 건 곰 인형 주제에 무척 도도해 보였다는 거다.

그 몽실몽실하고 점같이 작은 눈을 가진 곰 인형 주제에 말이다.

그 원인이 뭘까?

고민도 잠시,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곰 인형이 입고 있는 옷에서 비롯된 영향이었다.

“네가 만든 옷들. 마음에 들어.”

오랜 연예계 생활로 보는 눈이 높다 못해 하늘에 달린 자신의 눈에 만족감을 줬다는 건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곳에 넘어와서 수많은 옷가게를 다녀 봤지만 쥬엘라가 만든 저 인형 옷보다 나은 건 보지 못했다.

장담컨대, 저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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