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185)화 (185/215)

“…제가요?”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카밀라가 페트로를 쫓아다니기 전에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분명 아비헬 황자였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지라 기억에서 완벽히 지우고 있었다. 굳이 떠올리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고.

아주 단호히 싫다는 의사를 표했던 아비헬 황자의 태도에 카밀라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 녀석이 또 은근히 소심하잖아.’

상처받는 건 또 무척 무서워해 자기 싫다는 사람을 계속 좋아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페트로, 그 인간이 더 싫었던 거다.

‘마음을 줄 생각이 없으면 그런 친절도 베풀지 말 것이지.’

상대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꾸준히 여지를 주는 건 기만 아닌가?

차라리 대놓고 싫다고 말해 준 아비헬 황자가 더 나았다.

“그래서 지금 그거 확인하러 오신 거예요?”

에드센 황태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특유의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적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 늘 지어 주는 미소였으니까.

“난 내게 등 돌리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알죠. 너무 잘 알죠.

자기를 배신한 이들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용서하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지만 뒤에선 아주 개박살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그런데 애초에 난 네 사람도 아니잖아!’

억울하다! 돌릴 등도 없거늘!

하지만 그의 싸한 분위기에 카밀라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연신 흘려야 했다.

스윽.

그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아르시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어디 가는 건가 싶어 빤히 바라보자 그가 나직한 음성으로 묻는다.

“그 인간, 아직 소르펠 저택에 있나?”

“그 인간? 누구?”

“너희 집에 빌붙어 있는 놈.”

“제이너? 아마 집에 있을걸? 왜?”

“의뢰 좀 하게.”

“의……!”

자, 잠깐! 잠깐만! 의뢰라니?

“무, 무슨 의뢰?!”

너 제이너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언제? 어떻게?

아니, 그보다 그 인간에게 무슨 의뢰를 하겠다는 건데? 암살 집단 칸의 수장에게 할 의뢰라면……?!

“집에 있단 말이지?”

“아르시안! 기다려!”

대체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 * *

“이번에 발견된 마력석은 아주 고가에 내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더군.”

“품질이 아주 좋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우리 가문에서 다 구입하고 싶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채굴량이 일정 수준으로 오르기 전까진 우선권을 드릴 생각이에요. 다만 그중에서도 최상급은 경매에 붙일 생각이구요.”

“좋은 생각이야.”

카밀라가 건네는 서류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세프라 공작은 잠시 후 그것을 툭 내려놓았다.

“하나가 더 늘었군.”

세프라 공작의 시선이 카밀라 옆에 서 있는 사제 귀신 아레나에게 향했다. 평소 카밀라 곁을 맴돌던 존재들과 형태나 기운이 달랐다.

[진짜네? 이 집 인간들은 정말 유령을 보는 거야?]

[말했잖아. 이 집에선 행동거지 조심해야 한다고.]

신기해하는 그녀에게 제노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전에 함부로 집 안을 돌아다니다 아르시안에게 걸려 그대로 소멸될 뻔했다. 카밀라가 마침 와 줘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정말 소멸이었다.

[감히 누가 날 건드려?]

[그래, 그래. 너 잘났지.]

제노의 심드렁한 동조에 아레나가 눈을 치켜떴지만 역시나 오늘도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 아니, 두 귀신이다.

“요즘 주변이 시끄럽던데.”

아레나가 딱히 카밀라에게 해가 될 기운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을 내린 세프라 공작이 바로 관심을 끄고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사람들이 절 가만두지를 않네요. 제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걸까요?”

“아마도.”

“…….”

…웃자고 한 얘기인데, 그리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시면 제가 좀 민망한데요.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센 황태자에게서 쟈비엘라 황비가 자신과 아비헬 황자의 혼사를 추진한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내내 머리가 아팠다.

에드센이 소식을 듣고 찾아올 정도면 소르펠 공작의 귀에도 분명 그 얘기가 들어갔을 테니까.

집안이 또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무척 조용했다.

소르펠 공작도 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길래, 결국 카밀라가 먼저 아비헬 황자에 대해 슬쩍 운을 뗐다.

‘며칠 전에 에드센 전하께서 찾아오셨어요.’

‘전하께서? 무슨 일로?’

‘아비헬 황자 일로…….’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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