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태풍의 눈
“아비헬을?”
“네, 알베르토 님.”
신관 다니엘의 대답이 무척 의외였기에 페이블러 황제는 설명을 더 요구하듯 그를 말없이 응시했다.
“성물로 영혼을 빼내지 못한다면 일단 그녀를 저희 쪽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굳이 영혼을 빼내겠다고 애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 수단이 아비헬이다?”
“조사를 해 보니 카밀라 영애가 한때 아비헬 황자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흐음.”
페이블러 황제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고작 그런 방법으로 카밀라, 그녀를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의외로 잘 통할지도 모릅니다.”
“근거라도 있나?”
“그녀에 대해 알아보니 의외로 자기 사람에게 무척 약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자기 사람?”
“자신에게 애정을 주는 이에게 모질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영향일까? 그녀는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작은 애정이라도 주는 이에게 금세 호감을 표했다.
아비헬 황자의 일도 그랬다. 예의상 웃어 주고 가볍게 베푼 친절에 과할 정도로 집착을 보였다.
물론 그 후 바로 아비헬 황자가 차갑게 그녀를 쳐 내는 바람에 끝이 나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녀의 행적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아비헬 황자에 이어 또 다른 친절에 마음을 금세 뺏겼으니까.
제이빌런가의 페트로에게 말이다.
“현재 성격이 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근본은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여전히 애정에 굶주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카밀라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일에 꽤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듯했다.
가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선행을 베푸는 일 모두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쉽게 넘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글쎄.”
“아비헬 황자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원래도 좋아했던 이이고.”
외모야 두말할 것 없고 성격 또한 무난하다. 에드센 황태자 못지않게 영애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다.
오히려 속을 알 수 없는 에드센 황태자보다 아비헬 황자를 좋다고 따르는 영애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받아 본 적 없는 애정을 준다면…….”
의외로 간단히 그녀의 일이 해결될 수도 있었다.
“그럴지도.”
페이블러 황제도 결국 그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감정에 약하지.”
엄청난 세월을 살아오며 누구보다 많은 인간의 삶을 지켜봤다. 그중에는 카밀라처럼 정에 굶주려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에 그 또한 잘 알았다. 그런 이들이 얼마나 애정에 목말라 있고 그것을 갈구하는지. 관심과 애정을 얻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나쁠 건 없겠군.”
만약 실패한다 하여도 특별히 손해 볼 일은 없지 않은가. 성공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결과인 거고.
“일단 진행해 보게.”
“알겠습니다.”
* * *
“맛있어?”
“네!”
카페에 놀러 온 리오를 위해 카밀라는 모든 메뉴를 가져와 아이 앞에 펼쳐 놓았다.
“합.”
입을 크게 벌려 맛있게 케이크를 냠냠거리는 리오의 모습에 카밀라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킹은요?”
“집에.”
“다음에 보러 가도 돼요?”
“응.”
리오가 놀러 온다는 소리에 영상 구슬이 집에 몇 개나 남아 있나 고민을 하는 그녀다. 좀 더 사 두는 게 좋겠지?
“그런데 형은 언제 와요?”
“곧 올걸?”
아르시안도 함께 왔지만, 그는 이번에 발견된 마력석에 대한 서류를 작성할 게 있어 현재 크리스와 사무실에 있었다.
리오를 계속 거기에 둘 수 없어 카밀라가 먼저 아이만 데리고 카페로 온 것이다.
“늦게 오면 안 되는데… 자꾸 줄어드는데…….”
“그래서 남겨 놨구나?”
카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반은 남겨 두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아르시안 주려고 그랬나 보네.
“아르시안 오면 내가 새로 줄 테니까 이거 더 먹어.”
“합.”
여름에 한창 잘 팔렸던 수박 스무디를 한입 넣어 주자 아이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구멍이 넓은 빨대가 있었다면 더 잘 먹었을 텐데.’
하지만 스푼으로 받아먹는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빨대 개발은 좀 미뤄야 할 것 같다.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카밀라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헤헤 웃던 아이가 뭔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저도 누나한테 줄 거 있어요!”
“줄 거?”
아이가 사선으로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제가 만들었어요!”
작은 쿠션이었다. 거기에 카밀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수가 고르지 않고 색깔도 일정하지 않아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게 아니었다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나이에 이런 걸 혼자 완성했다는 게 어디인가! 우리 리오 천잰데?
“정말 네가 한 거야?”
“응! 저 손가락 막 피도 났어요!”
…이거 좀 감동이다.
카밀라는 아이의 머리를 다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귀여운 녀석이 예쁜 짓만 골라 한다.
“제가 형보다 더 빨리 완성했어요!”
“뭐?”
형? 여기서 아르시안이 왜 나와?
딸랑-
마침 입구 문이 열리며 아르시안이 카페로 들어섰다.
그를 알아본 리오가 바로 손을 번쩍 들며 아르시안을 불렀다.
“형!”
그는 곧장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후 무심코 탁자를 바라보더니 쿠션에 시선이 뚝 멈췄다.
“형도 이거 만들고 있는데 아직 완성……!”
“리오! 이거 먹어!”
“합!”
아르시안이 빠른 손놀림으로 케이크를 한입 크기로 잘라 아이의 입에 넣어 줬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카밀라의 눈치를 살폈다.
‘…젠장.’
그녀가 자신과 쿠션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에 아르시안은 천천히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서서히 미소가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을 그는 슬쩍 외면했다.
“언제 완성되는데?”
“뭐가?”
“이거.”
“리오가 잘못 본 거야. 내가 그런 걸 만들 리가 없…….”
“아닌데? 형 거는 나보다 좀 더 큰 쿠……!”
“리오! 아!”
“합.”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르시안이 머리가 아픈 듯 그대로 미간을 꾹꾹 손으로 눌렀다. 카밀라가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망할!’
리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 다시 크게 케이크를 한입 떠먹을 뿐이었다.
딸랑-
그때 다시 카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무심코 그곳에 시선을 준 카밀라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왜?”
그 모습에 덩달아 고개를 돌린 아르시안은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역시 여기 있었군.”
에드센 황태자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카밀라는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인간이 여기 왜 있는 거지?
‘게다가 저 어색한 차림은 뭐야?’
제 딴에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평범한 옷을 차려입은 것 같은데.
그러면 뭐 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귀태 때문에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딱 봐도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 다른 이들 몰래 마실 나온 것 같은 복장으로 들어선 그를 보며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그것도 호위도 없이?
그의 검술 실력이야 잘 알고 있지만 그를 노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정말 겁도 없다.
“물어볼 게 있어서.”
“저에게요?”
자리에 앉은 에드센은 대답 대신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리오에게 시선을 줬다.
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눈을 끔뻑이는 아이를 그는 제법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 아이가 그 아이군.”
세프라가에서 아이를 한 명 입양했다는 얘기는 그 또한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귀족가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이를, 그것도 평민을 입양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에 당시 말이 많았다.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그 세프라 공작가이지 않은가.
대체 어떤 아이이기에 세프라 공작과 그 후계가 아이를 받아들인 것인지 다들 무척 궁금해했다.
“줄까요?”
“음?”
“아아.”
“…….”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오해를 한 듯 아이가 케이크를 포크로 떠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당황한 에드센 황태자는 곧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먹으렴.”
“맛있어요.”
“단걸 좋아하지만 아이 걸 뺏어 먹을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아서. 너 먹어.”
“네, 합!”
에드센은 그 후로도 리오가 디저트 먹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볼이 터질 듯 가득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는 모습이 꼭 새끼 다람쥐 같다.
“저기, 에드센 님.”
결국 보다 못한 카밀라가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 먹방이나 보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대체 뭘 물으러 온 것인지 의아했다.
“아비헬을 만났다던데.”
“네에?”
아비헬? 2황자?
‘만나긴 했지.’
쟈비엘라 황비의 티파티에서 뜬금없이 만난 건 맞는데, 설마 지금 고작 그거 물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저번에 잠깐이요.”
“쟈비엘라 황비가 아바마마께 청을 올렸더군. 그대와 아비헬의 혼사를 추진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쿨럭!”
지, 지금 뭐라고? 누가 뭘 추진해?
카밀라는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뿜어낼 뻔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역시 그대는 모르는 얘기인가 보군.”
“농담이시죠?”
“내가 농담이나 하자고 여기까지 온 것 같나.”
“그러니까요.”
그날 갑자기 아비헬 황자가 티파티 자리에 나타난 것부터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런 황당한 전개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아바마마께서도 긍정적인 반응이라더군. 그대 생각은 어떻지?”
“제 생각이요?”
그 인간들이 무슨 꿍꿍이인가 하는 생각뿐이다.
페이블러 황제와 쟈비엘라 황비의 정체를 대충 알고 있는 카밀라는 그들의 이번 행동에 대해 소름이 끼쳤다.
왜 자꾸 그들과 연관이 되는 일이 생기는 걸까?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거늘!
“혹시나 싶어서 말이야. 예전에 그대가 아비헬을 참 많이 쫓아다녔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