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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79)화 (17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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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다른 식구들은 이제 멀쩡하게 구는데, 저놈만 아직도 정신이 나가 있다. 이게 말이 되냐고!

“왜 이러는 건데?”

“뭐가?”

“나 이제 안 아프다고 했잖아.”

이럴 놈이 아닌데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예전처럼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오버하잖아. 절대 이런 짓을 할 놈이 아니란 말이야!’

얼마 전부터 좀 이상하다. 신열을 앓고 난 뒤에 더 그러는 것 같다.

더 웃긴 건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눈도 제대로 안 맞추려 한다는 거다.

라비, 너 이 자식! 설마!

“솔직히 말해 봐, 오라비. 너 나 모르게 사고 친 거 있니?”

카밀라의 물음에 라비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말하기가 거북한 듯 연신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지만 카밀라가 계속 압박하듯 지그시 시선을 보내오자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싫어서.”

“뭐?”

“후회하기 싫어서 그런다! 왜!”

“후회?”

갑자기 뭔 소리야? 후회라니?

눈이 동그래져 되묻자 그가 다시 짜증스럽게 머리를 매만진다.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저거, 라비 녀석의 오래된 습관이다. 불안하거나 말하기 곤란할 때 늘 저리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예전에는 그냥 자기 성질 못 이겨서 저러나 했는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지.

“널 보내지 않은 거.”

“보내? 날? 어디다?”

“…그 인간한테.”

“그 인간?”

그 인간이 누… 잠깐만, 설마……!

“에스크라 공작?”

짐작이 맞는 듯 그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야! 지금 여기서 입을 왜 다물어!”

사람 복장 터져 죽는 꼴 볼래? 갑자기 뭔 소리냐고! 여기서 그 인간 이름이 왜 나와!

“얼른 똑바로 말 안 해?”

“아, 진짜! 그 인간이 널 데려갔다면 아프지도 않았을 거 아냐!”

“뭐?”

“네가…….”

카밀라가 쓰러져 있는 동안 그냥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에스크라 공작이 저 녀석을 데리고 갔다면 저렇게 아플 일은 없지 않았을까? 괜히 이곳에 있는 바람에 자꾸 위험한 일에 휩쓸리는 게 아닐까?

제이빌런가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어떻게 된 게 이곳으로 돌아와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게 너무 이상했다.

혹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가 있지 못해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할 말이 없잖아.”

“뭔 할 말?”

“그 인간한테.”

혹여 이러다 이 녀석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후회할 것 같아서.”

널 붙잡은 걸. 그 인간에게 보내지 않은 걸…….

결국 라비의 고개가 아래로 툭 다시 떨어졌다.

퍼억!

“크윽!”

하지만 그는 바로 다시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얼얼한 턱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면서 말이다.

“야! 뭐 하는 짓……!”

“뭐래? 이 멍청이가.”

카밀라가 그의 턱을 그대로 머리로 들이박은 것이다. 고통을 호소하던 라비는 급히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허리에 척, 손을 올린 그녀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라비 눈에는 내가 그리 착한 동생으로 보여?”

“뭐?”

“네가 가란다고 가고,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인간으로 보이냐고.”

“그건…….”

…아니지.

“멍청이.”

“야!”

“시끄러워! 한 대 더 들이박아 줘?”

“으.”

라비가 새삼 아픈 턱을 매만지며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하여튼 땅 파는 재주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왜? 내가 길 가다 넘어져도 네 탓이라고 하지?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 라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눈을 피했다.

‘어쭈?’

이제 와 민망한가 보지?

“내가 선택한 일이야.”

“…후회 안 해?”

에스크라 공작, 그를 따라가지 않은 걸. 그가 떠난 후 카밀라를 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그를 따라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냐고.

결국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워 한 번도 묻지 못했지만 말이다.

“할지도 모르지.”

“뭐?!”

“오라비가 지금처럼 자꾸 멍청하게 굴면 말이야.”

“…….”

…참 가지가지 한다.

라비 녀석이 답지 않게 시무룩해졌다. 자기가 잘못해도 끝까지 뻔뻔하게 구는 게 라비의 전매특허인데 말이지.

저렇게 기가 죽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라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시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러곤 급히 고개를 돌리려는 그의 볼을 빠르게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뭐 하는 거……!”

“나 어디 안 가.”

“…….”

“여기가 내 집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쫓겨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쭈우욱!

“아, 아아앗! 야!”

볼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 준 후에야 그를 놓아줬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고민 하지 말라고.”

“이게 오빠한테!”

“이거나 받아.”

“…이게 뭐야?”

“이번에 새로 발견된 마력석.”

“뭐?!”

어른 엄지손톱만 한 크기였다. 그런데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에 라비는 눈을 부릅떴다.

고스트 상회에서 취급하는 최상급 마력석보다 한 단계 위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거 정말 극소량으로 나오는 거야.”

이건 가격을 올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얼마 전에 발견된 건데 아직 시중에 내놓지도 못했다.

정말로 채굴량이 적어서 현재 이 마력석의 존재를 아는 건 세프라 공작과 아르시안, 그 두 사람뿐이다. 오늘 비로소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지만 말이다.

“나 간다.”

라비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마력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동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이 마치 새로운 장난감에 넋을 놓은 어린아이 같다. 아마 한동안 또 연구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겠지.

“그래, 그래야 라비 오라비답지.”

웃기지도 않는 무덤을 자꾸 파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며 카밀라는 다시 피식 웃었다.

* * *

타악.

어둠이 짙게 내린 늦은 시간. 소르펠가의 후문을 날렵한 몸놀림으로 빠져나가는 이가 있었다.

“휴우.”

빠져나온 공작가를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는 이는 바로 제이너였다.

“집 안에 마법사가 있는 게 영 불편하네.”

제법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 라비의 눈을 피해 이동 마력석을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마나를 바로 감지해 낼 테니까.

‘걸리면 재미있긴 하겠지만.’

자신이 칸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는 카밀라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로 의심하는 이가 나올 때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편을 들어 줄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미움받는 건 사양인지라.”

결국 제이너는 소르펠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뒤에야 이동 마력석을 꺼내 사용해야만 했다.

휘익!

하지만 마법석을 사용하려는 순간, 그는 황급히 몸을 비틀어 자리에서 벗어났다.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그가 있던 자리를 순식간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훌쩍 뒤로 몸을 날렸지만, 또 다른 검이 끈질기게 그를 쫓았다. 몇 번을 더 피하고 나서야 간신히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장난치곤 검에 살기가 너무 짙은 거 아닌가?”

제이너는 짐짓 서운하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상대에게 농을 건넸다.

“역시 맞네.”

하지만 상대는 그와 농담을 주고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 냉랭한 음성으로 검을 다시 들어 올렸다.

“너지?”

“뭐가 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니라고 대답할게.”

“너 맞잖아. 그때 가면 썼던 놈.”

제이너를 공격한 이, 아르시안의 얼굴에 살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이전에 암살 집단 칸 지부를 부수고 다닐 때 만났던 놈.

가면을 쓰고 있어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아닌데?”

“아니야? 아니면 아닌 대로 죽어.”

“어이, 그건 아니지.”

저를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날렵하게 피하며 제이너는 다급히 소리쳤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오해가 있다면 일단 죽인 뒤에 사과할게.”

“야, 그건 진짜 아니지.”

이미 확신을 내린 듯 다른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순간 아르시안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그가 마법까지 쓰려고 한다는 걸 알아챈 제이너는 다시 다급히 외쳤다.

“나 카밀라 오빠야.”

멈칫.

‘오.’

역시 저 인간이 반응을 보이는 건 단 하나뿐인 건가?

“그래서 더 가만 못 두겠어.”

하지만 곧 아르시안의 기운이 한층 더 사나워지는 걸 보며 제이너는 가볍게 혀를 찼다.

“아니, 왜!”

“너 같은 게 그 녀석 옆에 있으면 안 되니까.”

몰라서 묻냐? 이 뻔뻔한 새끼가 감히 지금 누구 옆에 붙어 있겠다는 거야.

“그 녀석을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그 녀석도 알아.”

진득한 살기를 내보이며 공격 마법을 시전하려던 아르시안이 멈칫했다.

“…안다고?”

“알아. 내가 이미 말했으니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카밀라가 먼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거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지금 당장 가서 카밀라에게 물어봐도 좋아.”

“…….”

모든 사실을 카밀라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에 아르시안의 살기가 한풀 꺾였다는 게 중요한 거다.

“아는데도 널 그냥 둔다고?”

“오빠니까.”

‘오빠’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줬다.

“…….”

그 효과일까? 제이너를 바라보는 아르시안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기세는 이전보다 한층 누그러들었다.

“쯧.”

결국 짧게 혀를 찬 아르시안은 들고 있던 검마저 집어넣었다.

그녀가 저놈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자신이 나설 이유가 없다.

“뭐야? 끝난 거야?”

아르시안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저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이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나,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음흉한 새끼.’

지금도 자신을 상대하면서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겉으로야 버거운 척, 힘든 척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여유를 못 읽을 그가 아니었다.

제이너의 능력이 만만치 않다는 건, 조금 전 자신의 검을 피하던 실력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

그렇게 떠나가는 아르시안을 바라보던 제이너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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