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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78)화 (17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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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녀의 폭력성은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더군요. 수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영애와 머리채까지 잡고 싸웠다던데.”

“쯧.”

기세를 잡았다 여긴 스테라 추기경이 속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좀 더 강력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애초에 그 신성력도 의문입니다. 정말 그게 신성력이었을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신성력이 아니면 그게 뭐라는 건가요?”

“그녀의 오라비가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설마 지금 마법으로 그런 현상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분명 신성한 힘이었습니다!”

“마력 따위가 절대 아니었어요! 그녀의 신성력 덕분에 목숨을 건진 아이들의 일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결국 논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의견을 내놓는 모두가 물러설 생각이 없었기에 다시 긴긴 논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

그 모든 상황을 교황 브리셀은 상석에 앉아 묵묵히 지켜봤다.

그는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았다. 또한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이번 일의 결과가 어찌 날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보인 건 분명 신성력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신성력!

스테라 추기경이 주장하는 마법 따위가 결코 아니었다.

그건 아마 스테라 추기경 본인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카밀라가 한 말을 거짓으로 만들려면 그녀의 신성력을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할 테니까.

‘역시 껄끄러운 존재야.’

성녀라는 존재가 무척 탐이 나지만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다. 잘못 마셨다간 바로 죽는 거다.

‘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말한 이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 산 채로 불에 활활 태워 그 죄를 갚게 하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그 말을 내뱉던 소르펠 공녀의 표정을 떠올릴 때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르르 몸이 떨렸다.

자신의 몸이 불에 활활 타오르며 비명을 지르는 꿈까지 요즘 종종 꾼다.

누구보다 그녀가 성녀의 직책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건 바로 그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스테라 추기경의 편을 들 수도 없었다. 그녀를 이교도로 잘못 몰았다가 오히려 자신들의 죄만 밖으로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매사에 조심스러운 성격이 이번에도 그의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똑똑.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고위 사제 하나가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인 그는 교황 앞에 뭔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카밀라 공녀께서 보내셨습니다.”

“카밀라 영애가?”

“성녀께서요?”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교황 앞에 놓인 상자로 향했다. 카밀라, 그녀가 대체 무엇을 보낸 것일까?

달칵.

브리셀 교황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상자 안에는 단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저런 검을 이 자리에 왜 보낸 것일까?

“자, 잠시만요!”

“저거……!”

의아해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빠르게 변해 갔다.

“설마, 이건!”

“저 문양은……!”

“허억!”

은으로 세공된 작은 단검. 검의 정체를 다들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어찌 저걸 모르겠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검인 것을!

“심판의 검 아닙니까!”

교황청 중앙 복도에 세워져 있는 아레나 성녀의 동상. 그 동상의 오른손에 쥐여 있는 것이 바로 심판의 검이다.

오래전, 그녀의 죽음과 함께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검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성전에 적혀 있지 않았습니까!”

“성전이요?”

“아레나 성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성녀나 성인이 나타날 때 심판의 검도 돌아올 것이라고.”

“그, 그건…….”

당연히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심판의 검을 찾아온 사람이 카밀라 소르펠이라는 것은 정말 그녀가 성녀라는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게 진짜 심판의 검이라고 어찌 증명하실 겁니까?”

혼란에 빠진 이들을 대신해 스테라 추기경이 반론을 제기했다.

“마, 맞습니다!”

“저희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로 만든 것일 수도 있지요.”

주위에서도 서둘러 동조의 목소리를 높였다. 저게 정말로 심판의 검이라면 자신들이 지금껏 주장한 카밀라를 이교도로 몰아간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믿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교단에서 찾지 못했던 저 검이 뜬금없이 지금 이런 상황에 나타난 것이 영 미심쩍었다.

“뭘 고민하십니까? 확인을 해 보면 되는 것을.”

“확인이라 하시면…….”

“심판의 검이 가진 힘을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심판의 검은 그저 성녀가 썼다는 상징만 지니는 게 아니었다. 검이 가진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검을 들고 스스로 지은 죄를 고하면 거기에 맞는 벌을 검이 내린다.

다만 아주 드물게 진실을 말하며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이에겐 그 어떤 벌도 내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검이 그 사람의 진심을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심판의 검을 든 자가 거짓으로 죄를 외면하면? 자신의 죄를 끝까지 속이려 할 땐?

손가락을 자르기도 하고, 눈을 찔러 앞을 못 보게 할 뿐만 아니라 혀를 잘라 두 번 다시 거짓된 말을 못 하게도 했다.

종국엔 검을 쥔 손이 저절로 심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사정없이 심장에 검을 박아 넣게 만든다.

죽지 않으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검이 절대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니까.

그렇게 자살 아닌 자살로 죗값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신이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니 시신조차 제대로 안치되지 못했다.

정말로 신이 벌을 내리고 버린 존재가 되어 내쳐지는 것이다.

“이 검이 진짜 심판의 검인지 시험해 보면 되는 일 아닙니까?”

대신관의 말에 눈빛들이 흔들렸다.

검이 가짜라 주장하는 이들도, 진짜라고 주장하는 이들 모두 누구 하나 선뜻 검을 집어 드는 이가 없었다.

* * *

[좀 어때?]

“저번보다는 나아요.”

[쯧, 역시 넌 체력이 너무 약해.]

“이건 체력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체력 맞아.]

“네, 네. 제가 체력이 약한 걸로 하자구요.”

심판의 검을 찾으러 간 곳은 그리 깊지 않은 산속이었다. 교황청이 있는 중앙 신전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조금 놀랐다.

교단에서 아레나가 죽은 후 사라진 심판의 검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카밀라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레나가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발걸음을 한 곳은 샅샅이 훑었다고 들었다.

‘아니, 그렇게 코앞에 있는데 못 찾았다고요?’

[그것들은 다 신성력 고자니까.]

‘고…….’

[신성력이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찾을 수 있게 내가 만들어 놓았거든. 그러니 한심한 것들이 찾을 리가 없잖아.]

‘신성력이요?’

[검이 잠들어 있는 곳은 동굴이야. 그런데 일정 이상 신성력이 되지 않으면 동굴의 입구를 절대 찾을 수 없게 해 놓았어.]

‘왜요?’

[나만큼 강한 신성력을 가진 녀석이 그 검을 찾아 써 줬으면 했으니까.]

‘그럼 저도 못 찾는 거 아니에요?’

[너에겐 내가 있잖아.]

‘그 말은…….’

[얼음주머니라도 넉넉히 준비해 놓는 게 어때? 아니면 열을 내리는 약이라도 먹고 들어가는 것도 추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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