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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77)화 (17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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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계시요.”

하지만 그녀는 계시 따위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날 아이들을 찾아간 것도 계시를 받아서랍니다.”

“어떤…….”

확실히 그날 그녀의 방문은 무척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다. 그때 이미 신의 계시를 받고 움직였단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걸 느끼며 카밀라는 다시 한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눈앞에 있는 자들을 한 명, 한 명 지그시 바라봤다.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

그런 그녀의 표정이 빠르게 변해 갔다. 방금까지 편안하게 짓고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냉엄한 가면이 씌워졌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당황하는 이들을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웃었다.

‘이런 건 일도 아니지.’

자신이 대배우 타이틀을 그냥 딴 게 아니다. 울다가도 웃고, 화내다가도 즐겁게 뛰어노는 장면을 바로바로 찍는 삶을 한평생 살았다.

순간순간 필요한 가면을 찾아 쓰는 게 뭐 대수라고.

‘그리고 지금 필요한 가면은…….’

예전에 판사 역을 맡았을 때 딱 이런 표정으로 연기를 했다.

그래, 판사. 죄지은 놈들 상대하기에 딱인 가면이지.

“그런 자들의 처리를 제게 맡기셨습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리라니……!”

“신의 이름을 더럽히다니요! 누가 말입니까?”

표정이 굳어진 이들을 다시 쭉 훑던 그녀의 시선이 슬쩍 한곳을 향했다. 그곳에 연신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고 있는 사제 귀신 아레나가 있었다.

[누구긴 누구야. 네놈들이지.]

그녀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이 썩을 것들아.]

귀신의 몸만 아니었다면 당장 목이라도 조를 기세다. 그런 그녀와 잠시 눈을 맞춘 카밀라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신께서 그러시더군요.”

[이 새끼야. 이놈이…….]

“신의 이름을 빌려 더러운 짓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한 사람을 똑바로 응시했다.

“성도들이 낸 기부금을 횡령한다거나.”

움찔!

그 시선에 고위 사제 하나가 눈에 띄게 표정이 굳는다. 찔리긴 하냐? 그러게 왜 보육원으로 가야 할 기부금을 매번 반이나 뜯어먹었니? 어?

[그리고 이 자식은…….]

“또는 아동 학대.”

“흐읍!”

또 다른 고위 사제 하나가 눈을 부릅떴다.

‘왜? 너도 찔리냐?’

악마가 씌었다느니, 귀신이 들렸다느니. 별 웃기지도 않는 이유로 아이들을 데려와 끔찍한 폭행을 자행한 놈.

[이거 완전 또라이야. 자기 기분 나쁘면 애들한테 화풀이를 한다니까. 개 같은… 아니지, 개보다 못한 새끼지.]

애들이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냐? 미친놈.

[요 새끼가 제일 문제야. 요놈!]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카밀라의 시선이 추기경에게 향했다. 그 눈빛을 받은 스테라 추기경이 아직 제대로 말도 꺼내지 않았거늘 지레 움찔했다.

“어린 사제를 건드린 놈도 있다던데.”

“허억!”

“무, 무슨!”

이번 말에는 다들 기함했다. 스테라 추기경 역시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게 눈에 다 보였다.

[저 새끼가 어린 사제들을…….]

막 수련생 딱지를 뗀 이들이 그의 타깃이 되었다.

신입 사제의 직분을 받고 기쁨에 충만해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제대로 된 사제 교육을 시켜 준다는 명분으로 불러내 마수를 뻗은 것이다.

그중 네 명이 두려움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웃긴 건 그들의 죽음에 가장 분노한 이가 바로 스테라 추기경이었다.

‘자살은 신의 뜻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신이 버린 이들입니다! 당장 더러운 저들의 시신을 신전 밖으로 내보내세요!’

어린 사제들의 시신은 그렇게 제대로 안치되지도 못했다.

‘X새끼.’

넌 내가 절대 가만 안 둬.

‘살려는 줄게.’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공포심을 꼭 안겨 주마. 딱 기다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결국 보다 못한 교황이 노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성녀로 추대되고 있는 인물이라지만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저희 교에 그런 자들이 어디 있……!”

“마지막으로.”

카밀라의 시선이 이번에는 교황에게 정확히 향했다.

“신의 사면.”

“……!”

“돈 앞에 신의 이름을 판 자.”

면죄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교황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또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카밀라는 앉아 있는 이들… 아니, 죄인들과 다시 한 명, 한 명 눈을 맞췄다.

그런 그녀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는 이들이 없었다. 매라도 맞은 것처럼 시선을 피하기 급급하다.

자, 그럼 판결을 내려 볼까?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자신이 말한 이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 산 채로 불에 활활 태워 그 죄를 갚게 하라고.”

말을 마친 카밀라는 판사의 가면을 집어 던지며 방실방실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성녀직, 정말 받을까요?”

입을 여는 이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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