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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71)화 (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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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이면 더 아름다울 텐데. 표정이 아쉽긴 하구나.”

활짝 웃을 때 이 액체를 바르고 싶었는데 말이지.

오를레앙 자작은 아쉽다는 듯 아이의 얼굴을 향해 붓을 들었다. 마지막까지 기다렸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다. 속이 쓰렸다.

“하.”

“……!”

그 순간 들려오는 낯선 웃음소리.

“오랜만에 보는 참신한 미친놈이네요.”

오를레앙 자작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자신 외에 아무도 없어야 할 이 은밀한 공간에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성인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었다.

“누, 누구?!”

급히 고개를 돌린 그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서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회색 가면을 쓰고 있어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드러난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유독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요? 의뢰받은 일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만.”

“의뢰?”

가면을 쓴 남자는 한걸음 성큼 그에게 다가섰다.

특별히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니거늘 오를레앙 자작은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빠르게 물러서고 말았다.

상대의 말투는 매우 정중했지만,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저놈은 위험한 놈이라고!

“납치된 아이의 부모들이 의뢰를 했거든요. 아이를 찾아 달라고. 그리고… 제 자식을 납치한 이를 찾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달라고.”

“그럴 리가!”

오를레앙 자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아인 이들도 있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하여 거기에 매달릴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집안은 단 한 곳도 없었으니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에 급급한 이들뿐이었다.

“그런데 의뢰라니!”

가면을 쓴 남자의 입에서 다시 미소가 흘러나왔다.

“가난하다고 하여 다 자식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전 재산과 목숨을 걸고 자식을 찾기도 하지요.”

다시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는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날카로워 보이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고작 단검이었지만 검을 본 오를레앙 자작은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며 황급히 소리쳤다.

“나, 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준 거야! 그런 미천한 삶보다 훨씬 아름답고 숭고한 삶을 준 거라고!”

그 말에 남자의 미소가 더욱 해사해졌다.

“네, 개소리는 잘 들었고요.”

파악!

“크아악!”

가볍게 던진 단검이 그대로 오를레앙 자작의 발등을 파고들었다.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던 그의 움직임이 뚝 멈추며 대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뢰인의 요청이 있었으니 쉽게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 사면!”

“……?”

“신의 사면!”

“…신의 사면?”

“나, 난 면죄부가 있어!”

가면을 쓴 남자가 그 말에 멈칫하자 오를레앙 자작은 기회다 싶었던 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래! 면죄부! 여기에 있는 아이들의 수만큼 신의 사면을 샀다고!”

“…….”

“저, 저 아이를 잡아 왔다는 이유로 넌 날 벌할 수 없어!”

남자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소문으로 듣기는 했는데, 정말이었나?”

신의 사면. 일명 ‘면죄부’.

신전에서 파는 것으로 죄를 지은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증서였다. 신전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한 가지 죄를 면책받는 제도였다.

물론 정식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고 신전에서도 고위급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지금 오를레앙 자작이 그 ‘면죄부’를 당당히 들먹이고 있다는 건.

‘정말 황실이 연관되었을 수도 있겠어.’

최근 돈 좀 있다는 이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 있다.

“난 이미 신께 죄의 사함을 받았어! 신조차 용서한 일을 감히 누가 벌한단 말이야! 난 아무런 죄가 없어!”

‘신의 사면’을 받은 이들은 죄를 지어 잡혀가도 황실에서 무마를 시켜 준다는 것이다.

자작은 억울하다는 듯 더욱 소리를 높였다. 신의 사면만 받으면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분명 자신과 거래하는 신관이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혹여 붙잡히게 된다 하여도 은밀히 빼내 주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대단하네요.”

가면을 쓴 남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많은 이들에 대한 목숨값의 면죄부를 다 샀다니. 신전에서 아주 좋아했겠습니다.”

남자의 입가에 다시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어쩌죠? 전 그쪽을 재판에 넘길 생각이 전혀 없는데.”

“뭐, 뭐?”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다시 움찔하는 오를레앙 자작을 향해 남자는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며 소곤거리듯 말을 이었다.

“가장 고통스럽게.”

“……!”

“가장 처참하게 죽게 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그, 그건……!”

“재판을 받아 죽는 건 전혀 고통스럽지가 않잖아요.”

오를레앙 자작은 다시 주춤거리며 뒤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남자의 손길이 더욱 빨랐다.

“크악!”

발에 박혀 있던 단검을 순식간에 빼낸 남자는 오를레앙 자작의 가슴에 단검을 깊게 박아 넣었다.

“나도 면죄부나 사 볼까?”

장난기 가득한 남자의 말을 들으며 오를레앙 자작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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