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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70)화 (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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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큭.”

“야.”

“아, 미안.”

“그만 좀 웃지?”

“미안, 미안.”

입가를 씰룩이며 애써 웃음을 참는 모습이 더 기분 나빴다. 그렇다고 대놓고 깔깔거리는 것도 꼴 보기 싫겠지?

“아우! 짜증 나!”

카밀라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제이너를 지그시 노려봤다.

“대단해.”

“뭐가?”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잖아.”

“내가 전생에 co난이었나 보지.”

“코… 뭐?”

“아, 나도 몰라.”

이 붉은 용용이 녀석!

‘다음에 만나면 네가 보는 앞에서 단풍 든 나뭇가지를 확 다 잘라 버려 주겠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난리야!

“정말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거야?”

“신의 축복은 무슨.”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이너는 이번 일을 무척 신기해했다. 계속 물어보길래 어물쩍 대답하고 넘겼다. 귀찮다고!

“제멋대로인 것들 다 짜증 나.”

카밀라는 조금은 사나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혹시 이 정원에도 정령이라는 것들이 와 있는 거 아냐?

‘딱 걸리기만 해 봐.’

그 팔랑거리는 날개를 정말 확 묶어 버리고 말 테니까! 진짜 성질나면 나, 아이슬라 부른다!

“제멋대로인 게 누군데?”

“그런 것들이 있어. 색색으로 팔랑거리는 것들.”

“뭐?”

제이너는 다시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넌 참 비밀이 많아.”

“…너한테만은 그런 말 안 듣고 싶거든.”

세상 누구보다 많은 비밀을 갖고 있는 게 누군데!

“그래서 너무 재미있지만 말이야.”

“너 재밌자고 내가 이러고 사는 게 아니란다.”

다시 짧게 웃음을 터트린 그가 순간 손을 뻗어 왔다.

“먼지 묻었어.”

카밀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지만, 그가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떼어 줄게.”

먼지가 눈가에 묻은 건가?

그가 눈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간지러움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며 눈이 감겼다.

“잘 안 떨어지네.”

“그냥 내가 할……!”

카밀라가 다시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제이너의 손이 먼저 치워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이미 떨어진 것 같군.”

“오라버니.”

제이너의 손을 붙잡아 그녀에게서 떨어트려 놓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루드빌이었다.

“아, 그런가요? 언제 떨어졌지? 몰랐네요.”

능청스럽게 대꾸한 제이너가 빠르게 손을 뺐다. 그런 그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루드빌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훈련 끝나셨어요?”

“응.”

“여긴 어떻게…….”

“루브가 저자와 네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씻고 바로 온 듯 머리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뭐가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젖은 채 나오셨을까.

“마침 잘됐네요. 오라버니 드리려고 아침에 푸딩 만들어 놓은 거 있는데. 지금 가져다드릴게요.”

간 김에 마른 수건도 하나 챙겨 올 생각이었다. 도르만을 시킬까 했지만, 제이너와 한자리에 있는 걸 싫어하는 놈이라 오늘도 어느새 소리도 없이 사라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툭하면 농땡이네?’

이놈의 자식! 시종 일조차 제대로 안 하지? 내일부터 하루 종일 카페에서 일을 시켜 버리겠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잠시만 기다리세요.”

카밀라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지금쯤 홍차 푸딩이 차갑게 잘 식어 있을 것이다.

“…….”

“…….”

그렇게 카밀라가 사라지고 제이너와 루드빌만 남게 된 곳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제이너였다.

“생각보다 사이가 무척 좋으시네요.”

그의 입가에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걸 루드빌은 바로 알아봤다.

“가족이니까.”

짧은 그 대답에 제이너가 쿡-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루드빌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는데 가족이군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네요.”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카밀라와 피가 안 섞인 건 너나 나나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같이 산 세월은 내가 훨씬 더 길지.”

답지 않게 뒷말까지 덧붙인 루드빌은 다시 평소의 무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이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녀부터 찾을 텐데.”

돌아가? 어디를?

“이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하니. 이것 참, 아쉽네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그를 루드빌이 지그시 바라봤지만 제이너는 설명 대신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아, 싫다고.”

“내가 말했지. 그러다 몸에 곰팡이 핀다니까!”

“살아 있는 사람 몸에 곰팡이가 어떻게 펴.”

“네 몸에 최초로 피겠지.”

순간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카밀라가 다른 이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바로 라비였다.

“아, 배고파.”

어제부터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던 라비가 하품을 하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잠깐 쉬면서 간식이나 먹을 겸 주방으로 향했던 그는.

“야!”

“…젠장.”

운이 없게도 하필 카밀라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바로 도망치려는 그를 카밀라가 덥석 붙잡았다.

“야! 인간아!”

따악!

“아앗! 이게! 지금 너 나 때린 거야?!”

“아프긴 하니? 좀비가 따로 없고만.”

“좀비? 그게 뭔데?”

“잔말 말고 따라와.”

“왜? 나 바빠.”

“마력석 공급 끊을까?”

“야!”

그는 결국 그대로 끌려 나오고 말았다. 햇빛 좀 받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주입받으면서 말이다.

“저거 다 먹을 때까지 움직일 생각 마.”

“움직여야 밥을 먹지.”

“말장난할 시간에 처먹기나 해.”

“처… 너, 갈수록 말이 거칠어지는 거 아냐.”

“말만 거칠어지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러면 좀 전에 난 누구한테 맞은 건데?”

“글쎄, 누굴까?”

“뻔뻔한 것.”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뒤로 시종과 시녀들이 쟁반을 든 채 졸졸 따라왔다. 쟁반 위에는 라비가 먹을 간단한 음식들이 골고루 차려져 있었다.

“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너의 눈이 곱게 휘었다.

“역시 반쪽이라도 피가 섞인 게 좋은 거군요.”

“…….”

루드빌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지만, 카밀라와 라비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무척 복잡했다.

* * *

“엄마! 저거, 저거 사 줘요!”

“또?”

“엄마아!”

“에휴! 알았어. 가자.”

“와아!”

어둠이 내린 수도 거리는 낮보다 더욱 큰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축제의 열기가 가득한 밤답게 거리에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줄을 이었고, 하늘에는 화려한 불꽃이 수를 놓으며 사람들의 흥을 더욱 돋우었다.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먹거리를 가득 든 채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펑!

“흐윽…….”

“어, 엄마…….”

“무서워…….”

그렇게 수도 전체가 축제의 흥겨움으로 뜨거워져 있는 밤. 수도 한복판에 자리한 고급 주택가에까지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불꽃이 터지자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공간에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디넓은 공간. 전시실인 듯 수많은 석상이 즐비해 있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석상도 있었고, 하늘을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두 팔을 높이 들고 있는 천사 조각상도 있었다.

똑같은 포즈를 한 조각상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조각상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 울고 있거나 잔뜩 일그러져 있다는 거.

“으… 으흑!”

그런데 그 수많은 조각상 중에서 실제로 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릎을 꿇고 있던 천사상. 자세히 보니 그건 평범한 석상이 아니었다.

고작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어깻죽지에 날개 장식을 단 아이의 입에선 쉬지 않고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조금도 헝클어트리지 않고 있었다.

“아… 아파.”

“엄마… 으… 으흑!”

주변에 있던 몇몇 다른 석상에서도 우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벌컥.

“……!”

하지만 다음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아이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잔뜩 겁을 먹은 듯 굳어 있는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변해 갔다.

저벅.

그런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온 이는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조금은 긴 듯한 머리를 깔끔히 모두 뒤로 쓸어 넘긴 남자는 제법 이지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안경을 쓴 그의 눈매가 유독 날카로워 보였다.

오를레앙 자작. 예술에 무척 조예가 깊고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로 아주 유명했다.

더불어 신앙심도 매우 두터워 신전에 한 해 동안 내는 후원금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대로 물려받은 자작가의 재산이 엄청나 돈에 대한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였다.

“날개가 아주 잘 붙었구나.”

천사상 모습을 한 아이에게 다가선 남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날개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 희열이 가득했다. 그는 정말로 아름답다는 듯 연신 감탄사를 토해 냈다.

“정말로 천사 같아.”

“흐윽!”

“이런. 이번 작품도 웃는 얼굴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

“으… 으으.”

“웃으면 더욱더 아름다울 텐데.”

그는 안타깝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그러곤 한쪽에 놓아둔 붓을 집어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들려 있었다.

그는 붓에 액체를 듬뿍 묻힌 뒤, 울고 있는 아이의 몸에 아주 정성껏 바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진지하게 붓을 움직이는 자작의 행태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제발… 흐윽! 살려 주세요, 아저씨…….”

“세상에, 난 널 죽이지 않아!”

오를레앙 자작은 무슨 무서운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오히려 기겁을 했다. 그러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래듯 말했다.

“너희들은 영원히 사는 거야. 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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