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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69)화 (16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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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차원인가?’

새삼 자신이 받았던 목걸이가 불량품이었던 걸 떠올린 카밀라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신전에서 불량품을 만들어도 되는 거냐고 확 따져?

‘에휴, 됐다. 공짜로 받은 건데.’

그러고 보니 주변에 목걸이를 찬 사람이 제법 많았다. 아마도 기부를 많이 한 이들 위주로 초대한 거겠지?

사제 귀신은 붉은 돌을 걸고 있는 교황을 보며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저 성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멍청한 새끼.]

헉! 지금 욕한 거야?

[X 같은 놈. 한심한 새끼. 교황 자리에 앉아서 돈 생각만 하고 있으니 신성력이 그따위지. 너 같은 놈도 교황이라고 떠받들고 있는 애들이 불쌍하다.]

카밀라는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러고는 눈을 비비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다시 확인했다. 저거 진짜 사제복 맞아?

‘아닌데? 맞는데?’

아니, 아무리 죽었다지만 말투가 어쩜 저렇게 걸걸해? 저래도 되는 거야?

[…….]

흐헉!

시선을 느낀 걸까? 사제 귀신이 고개를 획 돌렸다. 카밀라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그래, 신경 끄자. 귀신이 교황의 곁에 붙어 있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란 말인가. 사제도 사람인데 욕 좀 할 수도 있지.

그렇게 카밀라가 딴생각을 하는 사이 식이 빠르게 진행됐다. 그녀 또한 다른 것에 신경을 모두 끄고 기원제에 집중했다.

풍요를 바라는 성가대의 노래가 정원에 가득 울려 퍼졌고, 대신관들과 교황의 지루한 설교도 이어졌다.

“주신께선 말씀하시길…….”

와… 진짜 졸리다. 왜 세상의 모든 설교는 자장가와 친분이 이리도 두터울까?

카밀라는 졸지 않기 위해 혀끝을 연신 깨물어야만 했다.

이거 대체 언제 끝나는 건데? 끝나기는 하는 거니?

[흐… 하아암.]

…귀신도 하품을 하는구나.

조금 전의 그 사제 귀신이 설교를 하는 교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내뱉었다. 사제가 저러는 걸 보니 좀 신선하긴 하다.

[진짜 더럽게 지루하네. 저놈이나 이놈이나 설교를 왜 이렇게 길게 하는 거야. 누가 집중해서 듣는다고. 본론만 간단히, 몰라?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귀에 딱지 앉겠다, 이것들아!]

내 말이.

“이제 축도가 있겠습니다.”

확 쓰러지는 연기라도 해서 탈출할까?

진심으로 고민하던 찰나 드디어 설교가 끝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진행자의 말에 따라 교황이 주신의 나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빛 속에 그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신성력이었다.

[나 참, 저것도 신성력이라고.]

그 순간 다시 귀를 파고드는 삐딱한 음성. 그러는 사이 교황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그대로 나무에 스며들었다.

“와아!”

그러자 말라 있던 나뭇가지 곳곳에 작은 잎이 토독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올해도 풍요로울 것 같네요.”

“잎이 작년보다 더 많이 나온 것 같지 않아요?”

“역시 교황님이세요.”

고작 잎 몇 개가 피어난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탄하는 이들을 보며 카밀라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신기하긴 하지만, 저게 저리 놀랄 일인가?

‘여전히 나무는 앙상하기 짝이 없는데?’

그녀의 황당한 표정을 읽은 크리스가 대신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줬다.

“예전에 어떤 교황은 잎을 하나도 깨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은 제대로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지요.”

“뭐야? 저걸로 점이라도 치는 거야?”

그거야 각자가 지닌 신성력 차이 아닌가?

‘그걸로 왜 그해 농사를 점치고 난린데? 그것도 신을 모시는 신관들이?’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무언가에 자기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디를 가나 똑같나 보다.

“저건 뭐 하는 거야?”

교황에 이어 식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차례차례 앞으로 나와 나무를 향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원제의 마지막 순서죠. 식에 참석한 모두가 주신의 나무를 향해 풍요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겁니다.”

“모두 다? 그럼 나도 해야 해?”

“네.”

크리스의 설명에 카밀라의 입에서 다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왠지 오기 싫더니, 진짜 기도까지 해야 하는 거야?

‘게다가 저 많은 사람이 언제 다 기도를 올려?’

그냥 한 번에 다 같이 하면 안 되나?

[실력도 없는 것들이 쓸데없는 격식은 또 엄청 차리지.]

이번에도 동감!

“어?”

사제 귀신의 말에 속으로 연신 공감을 표하던 카밀라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무 위에 뭔가 아주 익숙한 것이 팔랑거리며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고 희미한, 붉은색 용.

‘히어로 용용이?’

그라시아 제국 황실 온실에서 봤던 그놈!

[그 인간이다!]

용용이도 마침 카밀라를 발견하곤 작은 날개를 힘껏 움직이며 빠르게 날아왔다.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게 무척 반가운가 보다.

[너 여기에 있었구나. 저쪽에 더 이상 안 보인다 했더니.]

나야 여기가 주 터전이니 그런 거고, 너야말로 여기에 왜 있는 건데?

카밀라의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붉은 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을을 다스리는 왕이 가을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건 당연한 거야.]

주변을 연신 맴돌던 붉은 용용이가 카밀라의 머리 위에 툭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머리 위에 왜 앉아?

당장 머리를 마구 흔들어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헉!’

게다가 교황 옆에 붙어 있던 사제 귀신까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 역시 붉은 용용이를 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듯했다.

서, 설마 지금 눈 마주친 거 아니지? 급히 피하긴 했는데…….

[인간들은 참 웃겨.]

‘뭐가?’

그러는 와중에도 가을의 정령왕은 주신의 나무를 향해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이들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매번 자기들 멋대로 해석한다니까. 수확을 주관하는 건 우리 정령들이야! 저런 걸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인간들이 원래 좀 그래.’

뭐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난리지. 지나가는 똥개도 신으로 추대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인간이거든.

[그리고 저 나무, 나이 엄청 많다? 늙어서 몸이 이전 같지 않다고 잠깐 쉬고 있는 것뿐인데, 그런 애한테 무슨 풍요를 기원한다는 건지 모르겠어. 요즘 것들은 어른 공경할 줄을 몰라.]

가을의 정령왕은 못마땅한 눈빛을 연신 교황에게 보냈다. 조금 전 신성력으로 나뭇잎을 강제로 나오게 한 행동이 불만인 듯했다.

[자연을 다스리는 건 바로 우리야. 신성력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바보들아!]

…아무래도 이 녀석, 지금 이 행사를 비웃으러 온 것 같지? 나도 같이 비웃고 싶지만, 어쩌겠니? 나도 인간인걸.

“카밀라 님.”

“응.”

크리스가 카밀라를 불렀다. 순서가 된 것이다.

교황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도 어느새 모두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이. 자신에 대한 소문이 그렇게 난 상태이다 보니 다들 뭔가 기대를 하는 눈빛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소문이 허황되었다 말하며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당연하지.’

그거 다 헛소문이라니까? 내가 여기서 뭘 어쩌겠어?

[내가 도와줄까?]

‘뭐래?’

지금 여기서 도울 게 뭐가 있다고? 그냥 나가서 기도만 하고 들어오면 되는데?

카밀라는 용용이의 말을 무시하곤 바로 걸어 나가 기도를 올렸다.

그냥 눈 감고 있기도 뻘쭘한데, 뭔가 빌긴 빌어야겠지? 저 좀 오래 살게 해 주세요오.

“허억!”

“저, 저것 좀 봐요!”

“와아!”

…뭔 소리야?

나름 집중해 기도를 올리던 카밀라는 잠시 후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헉!”

상황 파악이 끝난 그녀는 급히 숨을 들이켰다. 부릅뜬 그녀의 눈이 연신 흔들렸다. 이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방금까지 앙상하게 말라 있던 나무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잎이 풍성하게 나 있는 주신의 나무가 떡하니 자리해 있었다.

[어때?]

“……!”

그 순간 다시 들려오는 용용이의 목소리.

[이게 자연을 다스리는 정령의 힘이라고. 신성력과는 차원이 다르지. 에헴!]

너냐? 네가 한 짓이었어?!

어느새 다시 팔랑거리며 곁으로 날아와 득의양양 외치는 붉은 용용이를 보며 카밀라는 기가 막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방금 봤죠?”

“봤어요! 카밀라 영애가 기도를 드리는 순간 나무에서 빛이 났잖아요!”

“주신의 나무가 저렇게 풍성해진 모습은 처음 봐요.”

“신의 축복을 받고 있다 하더니…….”

“헛소문이 아니었네요!”

환장하겠네.

카밀라는 자신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교황까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무슨 황당한 오해란 말인가!

“너…….”

[왜? 사람들이 너 대단하다고 하잖아. 좋은 거 아니야?]

“하나도 안 좋거든.”

카밀라는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거냐고! 너 오늘 내 손에 한번 죽어 볼래!

[웃긴 인간이네. 원래 인간은 남에게 주목받는 거 좋아하지 않아?]

난 너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주목받고 있거든. 오히려 너무 주목받아서 골치가 아플 지경이란 말이야!

[흥, 도와줘도 난리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너도 힘든 것 같은데 도와줄까?”

[뭐? 인간인 네가 날 뭘 돕겠다는 거야?]

“아이슬라 불러서 여길 꽝꽝 얼려 주는 건 어때?”

[뭐, 뭐?!]

“가을 따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그러면 너 좀 한가해질 것 같지 않아?”

[나, 나 좀 바빠서. 이만!]

겨울의 정령왕 아이슬라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표정이 굳어진 붉은 용용이는 재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하아.”

그래, 나도 튀자.

사람들의 집중 어린 시선을 피해 카밀라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들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했지만 무시했다.

“…….”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관 다니엘이었다.

그는 총총 사라지는 그녀에게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카밀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짙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정말 탐이 나는군요.”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은 그는 이내 언제나와 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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