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풍요의 축제
“…제이너?”
“응, 오랜만이야.”
오랜만이긴 뭐가 오랜만이야! 우리 얼마 전에도 봤잖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면서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그가 왜 저기에 앉아 있는 걸까? 그것도 저리 당당히?
“저쪽에서 보고 처음이지?”
“아……!”
칸의 주인으로 와 있는 게 아니구나.
이어진 그의 인사에 아차 싶었다.
그제야 지금의 상황이 대충 이해가 갔다. 에스크라 공작의 아들, 그 가문의 장남으로 이곳에 온 거라는 말인 거지?
“아버지가 가 보라고 하셔서.”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제이너의 입에서 에스크라 공작이 언급됐다.
“쯧.”
에스크라 공작, 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이곳의 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고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르펠 공작의 미간이 습관처럼 찌푸려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1도 없던 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말이다.
“설마 그대도 내 딸을 데려가려고 온 건가?”
“동생을 옆에서 잘 지키라는 명만 받았습니다.”
“동생?”
“아, 혹시 거슬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조금은 처연한 미소로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네자 냉랭했던 소르펠 공작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이미 카밀라는 제게 소중한 동생인지라,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말에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끝까지 동생이라는 말은 거두지 않겠다는 건가?
그래도 아비 되는 자보다는 예의가 무척 바른 듯하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속지 마세요!’
저거 다 연기라고요! 와, 저 인간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건 진작 알았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저러다 울겠네.
‘배우 해도 되겠어.’
세상 가장 선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너를 보며 카밀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머물겠다는 건가.”
“동생 옆에 있으면 안 될까요?”
제이너가 다시 가련한 표정을 짓는다.
“한 놈이 갔다 했더니.”
그놈이 누군지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짧게 혀를 찬 소르펠 공작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옆에 시립해 있는 집사 루브를 바라보며 간단히 명을 내렸다.
“방을 내주게.”
“네, 가주님.”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쫓아낼 수도 없는 일이다. 어쨌든 카밀라를 찾아온 손님이지 않은가.
“그래도 아비보다는 나은 것 같군.”
아버지! 속지 마시라고요!
“감사합니다.”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선 제이너는 끝까지 예의 바른 모습으로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곧 지내실 방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집사 루브도 곧바로 응접실을 나섰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자 카밀라는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여긴 어쩐 일이야?”
에스크라 공작도 그러더니 이 무슨 갑작스러운 등장이란 말인가! 지금 돌아가면서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흐음.”
의자에 몸을 푹 파묻으며 나른한 미소를 짓는 제이너를 보며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예의 바른 귀족가의 영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암살 집단 칸의 주인이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주 난리를 쳤던데?”
“난리? 누가? 내가?”
“제이빌런가에서 말이야.”
“그건…….”
“그 일을 직접 그렇게 나서서 처리할 줄은 몰랐는걸.”
재미있다는 듯 연신 키득거리는 그를 보며 카밀라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가 저 모습을 꼭 보셨어야 하는데!
“넌 참 매번 예상을 벗어난단 말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일로 여전히 제이빌런 공작은 자신만 보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호의 검을 어찌해야 할지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자니 아깝고, 안 주자니 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거겠지. 그런데…….
‘내 의견은? 왜 내 의견은 안 듣는 건데!’
누가 달래? 왜 고민을 하는 거냐고!
필요 없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제이빌런 공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어쩐 일이야?”
“아버지가 아무 말씀 안 하셨어?”
“뭘?”
“네가 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런 위험한 일에 휩쓸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곤 신경을 많이 쓰셨거든.”
“그 사람이?”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는데? 여기에 있는 동안 제이빌런가의 일을 그가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
‘아, 그래서 그랬나?’
소르펠 공작을 만나러 집으로 찾아온 제이빌런 공작과 가볍게 시비가 붙은 적이 있긴 했다.
제이빌런 공작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를 유독 마뜩잖은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결국 말다툼이 일었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소?’
‘무슨 보답을 했나 해서.’
‘보답이라니?’
‘어린아이가 목숨을 걸고 도와줬는데 어떤 보답을 했나 궁금하군. 설마 뻔뻔하게 입 싹 닦은 건 아니겠지?’
‘뻐, 뻔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