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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65)화 (1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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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흘러내린 피 더 없냐며 유심히 살피는 카밀라의 모습에 하벨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더는 못 한다.”

“아, 왜에? 우리 조금만 더 뽑자, 응?”

혹여 이대로 그가 도망갈까, 카밀라는 하벨의 팔을 더욱 꼭 붙잡았다.

“잠깐만…….”

그러다 순간 카밀라의 눈이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도르만에게로 향했다.

“너도 사신이었잖아.”

“그, 그런데요?”

“그러면 같은 능력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아뇨!”

“아니라고?”

“제 피에는 그런 능력 조금도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직장에서 잘린 몸이잖아요!”

“쳇.”

아쉽네. 역시 쓸모없다.

짧게 입맛을 다시다 다시 하벨을 붙잡는 카밀라를 보며 도르만은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직에서 진작에 제명당한 게 처음으로 다행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피 한 번 뽑을 때마다 네가 원하는 게 뭐가 되었든 하나씩 들어줄게.”

“원하는 거?”

“그래! 예전 원장 할머니 때처럼 이승 안 떠나겠다고 똥고집 피우는 귀신 설득도 무조건 콜!”

카밀라가 건 조건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하벨이 순간 솔깃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사신의 피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권능이다.”

“권능?”

피 좀 뽑자고 했을 뿐인데, 뭔가 말이 무척 거창하다.

“쓸수록 나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부담?”

끄덕.

“아.”

그 말을 들은 카밀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내 그녀는 꼭 잡고 있던 하벨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미안.”

그녀의 사과에 이번에는 하벨의 얼굴에 조금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녀에게 사과의 말을 들을 줄은 몰랐으니까.

“몰랐어.”

알았으면 이렇게 철없이 조르지 않았을 거다. 남을 위한 희생은 딱 질색이었으니까. 나도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할 마음 따윈 당연히 없었다.

“설마…….”

혹시 조금 전 나한테 피를 묻힌 일로 몸에 무리라도 간 거 아냐?

카밀라는 하벨의 안색을 급히 살폈다.

“뭐 하는 거냐.”

“가만히 있어 봐. 어디 아픈 데 없어?”

“…없다.”

“그래? 그럼 다행이… 왜? 뭔데, 그 눈빛은?”

나도 남 걱정할 줄 알거든?

“그건 그렇고, 부담이 된다면서 나한테는 왜 사용한 거야?”

카밀라는 하벨의 피가 묻었던 자신의 손을 새삼스레 바라봤다. 괜히 찝찝하잖아! 남에게 부담까지 주며 도움받고 싶지는 않은데.

“도르만 님이 시키셨다.”

“그러니까 왜 했냐고.”

“도르만 님이 시키셨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그…….”

뭐지? 이 결론 없는 도돌이표 대화는?

“그게 다야?”

“뭐가 더 필요하지?”

“…….”

미안. 쓸데없는 거 물어서.

‘역시 뭔가 있다니까.’

분명 도르만에게 약점 같은 걸 잡힌 거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쟤 이제 네 상관도 아니잖아.’

도르만이 시켰는데 다른 이유가 왜 더 필요하냐는 듯, 오히려 한심한 눈빛을 보내는 하벨의 모습에 카밀라는 기가 막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맹목적인 관계는 대체 뭔지 모르겠다.

“혹시나 해서 제가 부탁했습니다. 그놈들이 카밀라 님을 노릴지도 모르니까요.”

그제야 도르만이 빙그레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어쨌든 고마워.”

아주 강력한 안전장치 하나가 생겼는데 싫을 이유는 없다. 살짝 부담스럽긴 하지만 카밀라는 둘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차 한 잔 줄까?”

이런 귀한 선물도 줬는데 그냥 바로 보내기가 좀 그랬다.

원래 헌혈한 뒤에는 뭐라도 먹어야 하는 거잖아. 차라도 한 잔 준 뒤에 보내야겠지?

“됐다.”

하지만 하벨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내가 왜 너랑 그딴 걸 마셔야 하냐는 듯 아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우, 저 싸가지에 밥 말아 먹은 놈!

“내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아…….”

“바빠? 쿠키도 있는데 좀 먹고 가지 그래?”

“안 바쁩니다. 주십시오.”

“…야.”

이 빠른 태세전환은 뭔데!

도르만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리며 감격스럽다는 듯 고개까지 숙이는 하벨의 모습에 카밀라는 어이가 없었다.

진짜 궁금하다. 저놈의 약점이 대체 뭔지.

‘도르만을 협박해서 알아낼까?’

저놈이 왜 너한테만 저렇게 꼼짝을 못 하는 거냐고.

그렇게 하벨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 카밀라는 잠시 후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상회에 가시는 거죠?”

“응, 크리스가 오늘 꼭 좀 와 달래.”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손님이 온다네.”

제법 중요한 손님인지라 되도록 상회의 주인인 카밀라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크리스의 부탁이 있었다.

달칵.

“좀 서둘러야겠……?”

“외출하나 보지?”

준비를 마치고 막 방문을 열고 나서려던 카밀라는 그 앞에 서 있는 이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에스크라 공작이었다. 그 뒤로 언제나와 같이 빙긋이 웃고 있는 알트온 백작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네, 상회에 일이 좀 있어 가 봐야 해요.”

“바쁜가 보군.”

“무슨 일이에요?”

그것도 두 사람이 같이?

카밀라의 물음에 에스크라 공작은 대답 대신 그녀를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그 시선에 카밀라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뭐 긴히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분위기가 평소와 좀 다른데?

“간다.”

“가요? 어디요?”

“집.”

“네?”

“가라며? 집에.”

“…돌아가신다고요?”

“그래.”

“언제요?”

“지금.”

“네에?!”

이렇게 갑자기? 카밀라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라고 할 땐 들은 척도 않더니,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요?”

그라시아 제국에 뭔가 다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떠날 이유가 없잖아?

“딱히?”

“그런데 왜…….”

“왜? 내가 막상 간다고 하니까 서운해?”

“네.”

“…….”

장난스럽게 물었던 그가 멈칫했다.

“꼭 지금 바로 가셔야 해요?”

자신의 대답이 무척 의외였던 듯 에스크라 공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 왜? 함께 지내던 강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도 서운한 법이거늘.

‘으음, 강아지와 비교하는 건 좀 너무했나?’

어쨌든 막상 간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 별일 없는 거 맞아요?”

“네 말대로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 둘 수 없으니까.”

“정말 그게 다예요?”

“그래.”

내가 그렇게 안 바쁘냐고 몰아붙일 땐 한가하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이제 와서? 정말 무슨 일인데?

의아함이 가득 담긴 카밀라의 시선에도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여전히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확인했으니까.”

한참 후에야 그가 픽 웃으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확인이요?”

뭔 확인?

“잘 지내렴.”

“진짜 지금 바로 떠나시는 거예요?”

스윽.

“어……!”

대답 대신 그의 커다란 손이 가볍게 카밀라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 손길이 답지 않게 너무도 다정해 카밀라의 눈에 순간 당혹감이 어린다.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속이 간질간질하다고나 할까?

“또 보자.”

그는 고작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바로 돌아섰다. 그런 그를 조금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알트온 백작이 슬쩍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려니 정말 아쉽네요.”

“저쪽에 정말 별일 없는 거죠?”

“네, 없습니다. 다만 돌아가는 순간부터 잠자는 건 글렀다고 봐야죠. 일이 정말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요.”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대체 왜 왔대요?”

에스크라 공작이 일에 치여 살고 있다는 건 카밀라도 직접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라시아 제국에 있을 때 하루의 대부분을 집무실에서 보내던 그였으니까. 그렇게 바쁜 인간이 굳이 여기까지 왜 온 건지 새삼 의문이 들었다.

‘날 데려가려고 온 거라 말은 했지만.’

막상 그의 행동이나 말투를 미루어 보아 그저 장난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는 것만 봐도 애초에 자신을 데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닌가?

“직접 확인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무슨……?”

“그리고 확인이 끝나셨고요.”

조금 전에 에스크라 공작도 그러더니. 대체 뭔 확인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의아해하는 그녀의 표정에도 알트온 백작 또한 딱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듯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또 볼 수 있겠죠? 그라시아 제국에서요.”

“글쎄요.”

“카밀라 님의 방은 항상 깨끗하게 관리 중입니다. 언제 돌아오셔도 편히 사용하실 수 있게 말이죠. 그 방이 하루속히 주인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앞서 걸어가고 있는 에스크라 공작을 서둘러 따랐다.

“…….”

그렇게 빠르게 떠나가는 두 사람을 카밀라는 잠시 멍하니 응시했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는 에스크라 공작의 모습에 카밀라의 입가에 결국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올 때랑 똑같네.”

올 때도 갑작스럽더니 가는 것 역시 뜬금없다. 저리 예고도 없이 쿨하게 떠나는 모습이 무척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서운하세요?”

“딱히.”

“정말 이대로 돌아가셔도 되겠습니까?”

앞서 걷던 에스크라 공작의 걸음이 뚝 멈췄다.

“애초에 데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긴 하죠.”

알트온 백작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찼다.

‘그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올린 내가 바보였지.’

예전에 가볍게 조사를 마쳤던 것에 이어 2차로 꼼꼼하게 카밀라에 대한 모든 조사를 마친 서류가 얼마 전에야 완성됐다.

그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고스란히 올렸던 알트온 백작은 그날 에스크라 공작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분노하시는 모습은 처음이었어.’

평소에도 늘 까칠하고 화가 나 보이는 그이지만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고 심드렁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카밀라의 보고서를 읽던 그날의 에스크라 공작은 평소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모든 일에서 손을 놓은 채 하루 종일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그에게 그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스스로 탓하는 모습도 처음 봤지.’

자책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던 이가 바로 에스크라 공작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탓하며 분노했다.

그리고 며칠 후 당장 카밀라를 보러 가겠다며 짐을 싸는 그를 말리느라 알트온 백작은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렇게 여차저차 이곳에 와 카밀라 주변을 맴돌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그게 아무래도 원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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